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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합단체 통합논의 이번에는 꼭 성공을
    한국교회의 분열된 연합단체들의 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국기독교연합(한기연)과 한국교회총연합회(한교총)의 통합논의가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 여기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도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사실 이들 중 한기연과 한기총은 본래 한 몸둥아리였다가 갈라진 단체이고, 한교총은 이들 두 단체를 다시 하나로 만들겠다고 작심하고 나온 교단장협의회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모두 하나인 셈이다.이들은 이달 말까지 통합을 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기연이 적극적으로 나선 가운데, 한교총은 8월말까지 추진하려던 법인 등록도 잠정적으로 연기하고 있고, 또 한기총 역시 이 논의에 적극 동참을 밝히고 있다. 무더위 속에서 한국교회에 들려오는 한 줄기 소나기와도 같다. 이 소나기가 열을 식혀 꽉막힌 열기를 식힐 수 있기를 바람과 같이, 세 단체의 통합논의가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불어닥치는 바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다교파, 다교단으로 이루어진 한국교회는 연합과 일치없이는 아무런 존재감도 없는 종교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한기총이 분열된 이후 벌써 정부와 사회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아왔다. 새로운 좌파 실험정부가 들어서 교회의 복음전파를 위협하는 정책을 쏟내는데도 한국교회가 아무런 견제도 못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한국교회의 청원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순전히 기독교 목사들을 표적으로 한 종교인 과세나, 한국교회의 혈서 투쟁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는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NAP)’에서 기독교의 목소리는 완전히 무시되었다.사실 한국기독교는 그 교세로 볼 때는 우리사회의 주류종교이다. 그러나 갈갈이 찢어져 분열해 있기 때문에 한국교회 목소리는 외면되고 있다. 교회는 '하나'라는 구호가 무색해진 상황에서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이 못나서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데,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사 종의 형체를 가지신 것같이, 이번에는 꼭 자신들을 낮추사 연합단체의 통합이 성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선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운동이 활성화 되어야 한국교회에 닥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 연지골
    • 사설
    2018-08-23
  • 대신총회 비대위의 ‘옳지 않은’ 명분
    3년 전 백석총회와 통합한 대신총회(통합합류측) 일부인사들이 양 교단의 통합은 무효(개회정족수 부족)라는 사법부의 판결을 내세워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교단을 만들려다 여의치 않자 수호측으로 합류하려 하고 있다. “우리는 통합무효라는 사법부의 판결을 받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교단 통합 재검토라는 절차를 거쳐 심사숙고한 끝에 통합무효 판결로 인한 법적문제에 부담감, 법적 지위를 보장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과 함께 양 교단이 통합하기에는 여러 여건들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저들이 내세우는 명분이 참으로 요상하다. 언제 저들이 교단을 만들 때 사법부의 허락을 받아 만들었는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은 교회를 세우거나, 교단을 만들거나 모두가 교회 내부의 자율에 속한다. 교회 밖의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다. 그것이 국가든, 사법부든, 행정부든 마찬가지이다. 당연히 교단의 통합도, 해체도 자율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교단통합을 운운하면서 사법부의 판단에 기대려 하는가.이번 백석과 대신의 통합 문제가 사법부로 간 것은 순전히 통합에 반대하는 일부 인사들이 소송을 제기했고, 사법부는 이 소송에 대해 행정 절차상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했을 뿐이다. 교단통합의 정통성 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다. 사법부 판단이 있었다 하더라도 통합한 교회는 그대로 있으면 된다. 저들의 주장과는 달리 아무런 법적 행정적 불이익도 없다.따라서 대신측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자들은 그냥 ‘우리는 되돌아 간다’ 하고 가면 된다. 그런데 굳이 사법부의 판단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칫하면 사법부가 교단통합의 정통성을 좌우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는 일이다. 이는 교회의 자율을 스스로 위축시키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한국교회는 모든 교파가 교단분열을 가져왔다. 그 중에서 장로교는 300여 개에 이르는 교단 간판을 내걸었다. 교리도, 신학도, 신앙도 한 치의 차이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교단이 나뉘어져야 하나. 한국장로교는 열교(裂敎)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 그러므로 교단통합은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군소교단으로서는 하나님이 맡기신 선교적 소명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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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8-23
  • 우리는 일산 킨텍스에서 한국교회의 희망을 보았다
    지난 7월 31일 일산 킨텍스에는 21차 2018 월드 렘넌트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 컨퍼런스는 세계복음화상임위원회 총재 류광수 목사가 주도하는 대회였다. 그런데 이 날 킨텍스에는 한국을 비롯한 71개국에서 2만여명의 청소년들이 성경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 중에 한국 청소년은 1만 5천여명이니 되었다. 여기에는 유년 학생부터 대학생 그리고 청년 리더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이 행사는 세계복음화전도협회가 주도하고, 예장개혁측 교단이 참여했다. 사실 예장개혁측은 군소교단에 불과하다. 그런데 내노라 하는 대교단들에서도 하지 못하는 청소년대회를 이들이 매년 이렇게 큰 규모로 실시하는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지금 대교단 교회들도 주일학교나 교회학교가 사라지고, 심지어 절반이 넘는 교회가 중고등부도 사라져 여름성경학교도 열리지 않는 형편이다. 그런데도 이번 킨텍스에는 그 폭염에도 불구하고 많은 청소년들이 신앙을 배우기 위해 모여들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유능한 기독교 교육학자들이 운영하는 교회에도 청소년 교육이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아예 청소년들이 모이지 않기 때문이다.한국교회의 소위 대교단의 청소년들을 위한 공과교육을 살펴보면 성경을 가르치기보다 세상을 가르치려는 내용이 더 많다. 그런 내용은 굳이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TV 등 세속적 매체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사정이 그러니 교회가 청소년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주위에 애들이 없다’는 우리사회의 낮은 출산율에만 핑계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진짜 열정이 있는 교사가 있는 교회는 지금도 주일학교도, 교회학교도 잘 유지되고 있다.60~70년대 한국교회는 전도중심의 교회였다. 어린이전도는 말할 것도 없고, 청장년을 비롯 모든 계층에 복음을 전도했다. 그 결과가 80년대 급성장을 이룬 것이다. 이번 일산 킨텍스서 열린 청소년들을 위한 렘넌트 컨퍼런스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많다.한국교회는 어리석은 분열주의적 자세를 버리고 청소년 부흥을 렘넌트에서 배워야 한다. 한국교회의 희망이 바로 다음세대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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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8-09
  •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 회복해야 산다
    한국기독교는 연합과 일치의 에큐메니칼 정신 없이는 대사회로부터 교회 대접을 받기가 어렵다. 이유는 갈갈이 찢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는 처음부터 미국의 교파주의 교회를 받아들였다. 미국은 이민의 나라이기 때문에 각 나라에 있던 교회가 교파주의 교회로 자연스레 정착됐다. 게다가 20세기 초에 일어난 현대오순절운동의 영향으로 생겨난 수많은 교파가 합류했다. 이들 교파들이 거의 모두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해 가히 한국교회는 기독교 교파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다가 장로교는 300개가 넘는 교단으로 분열해 있다. 따라서 각 교파간, 교단간 연합과 일치가 절대로 중요하다.그런데 작금 한국교회는 그동안 어설프게나마 유지되어오던 연합과 일치가 파괴되어 대표성을 잃었다. 한기총이 갈라졌기 때문이다. 2012년에 한기총이 갈라지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 교단은 예장합동측이지만, 결정적으로 한기총을 가른 교단은 예장통합측이다. 당시 어리석은 통합측 인사들이 합동측의 무리한 요구와 행동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을 때, 거기에 기름을 부운 자들이 소위 이단감별사들이다. 그들은 ‘한기총이 이단 푼다’는 헛소리를 떠벌려 통합측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당시에는 통합측 자체가 이단감별사에게 놀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통합측은 2012년 9월 제97회 총회에서 한기총을 탈퇴하고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을 창립했다.한기총에서 통합측이 떠나자, 한기총에는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극보수 분열주의 세력만 남아 아예 정관을 개정하고 통합측의 복귀를 원천봉쇄 해버렸다. 이제 통합측이 한기총으로 가고자해도 한기총에서 먼저 정관을 개정하기 전에는 그 길이 어렵게 되었다.그런데 문제는 한기총이든, 한기연이든, 한교총이든, 현재 상태로는 어느 연합단체도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지도자들이 진심으로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 내려놓고 당장 통합해야 한다. 그것이 답이다. 누가 대표자리에 앉고, 누가 그 그늘에서 밥을 먹고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논하는 것은 소인배들의 짓이다. 한국기독교가 위기라는데 그 지도자란 자들이 엉뚱한 생각에 빠져있어서야 되겠는가.
    • 연지골
    • 사설
    2018-08-09
  •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킬 것인가
    교회가 사회로부터 불신을 받는 것은 교회가 지닌 고유한 도덕성을 의심받을 때이다. 교회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불의를 멀리하고 정의를 추구하며, 거짓을 미워하고 정직한 사회를 이루려 노력한다. 그래서 교회가 있는 그 사회는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도덕성이 상실되어 교회의 권위가 어디에도 먹히지 않게 되면 사람들은 자연히 교회를 외면하고 교회를 떠나게 된다. 그때는 마치 이빨빠진 늙은 호랑이가 자신 앞에서 어설렁거리는 자칼을 보고 ‘응’하고 소리를 질러도 자칼은 겁먹지 않는 것과 같다.요즈음 한국기독교가 처한 꼴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교인도, 사회도 교회의 권위를 우습게 여긴다. 주류종교로서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다. 거기에다 교회 ‘개혁’을 앞세운 기독교 주변의 일부 매체들이 한국교회가 마치 부패한 집단처럼 호도하고, 이들과 내통하는 세속 상업주의 언론들이 끊임없이 기독교를 공격해 교회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또 교회안에서는 목사와 장로간에 누가 더 쎈가를 다툰다. 그래서 이 꼴 보기 싫다고 지성인들은 교회를 떠나 노미날리티로 변해가고 있다.작금 한국의 6만 교회 가운데 역사와 전통을 가진 주요 교회 수 백여 개가 이 목사와 장로간의 분쟁으로 세속 법정에서 어느 쪽이 옳은가를 놓고 심판을 받고 있다. 목사와 장로는 똑같이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를 섬기고 봉사하라고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자이다. 목사는 설교와 행정으로, 장로는 교회의 운영과 치리로 교회를 섬기도록 부름 받았다. 그런데도 오늘날 한국교회는 목사와 장로간의 불신과 분쟁이 왜 그렇게도 많은가.목사도 장로도 그리스도의 양을 돌보는 것이 그 사명이다. 교회의 주인은 그리스도 외에 아무도 없다. 다만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간의 불신에서 비롯된 교권싸움은 지금 당장 그만 두어야 한다. 누가 손해고 누가 이익이고를 따질 필요가 전혀 없는 일이다.한국기독교는 지금 안팎으로부터 도전과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이런 엄중한 현실에서 누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바로 세우고 지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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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7-13
  • 여호와의 증인이 병역을 거부하는 진짜 이유
    여호와의 증인이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그들이 평화주의자이기 때문에 집총거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세상을 ‘여호와의 조직’과 ‘사탄의 조직’으로 나눈다. 왕국회관을 중심한 여호와의 증인만이 여호와의 조직이고, 나머지 모든 국가, 사회, 문화, 경제조직은 사탄의 조직이다. 따라서 아예 세속 국가는 ‘사탄의 조직’으로 본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으로써 국가라는 사탄의 조직에 복무할 수 없다는 것이 병역거부의 본질이다. 그래서 대체복무제도 국방부 산하에서는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세계 가톨릭교회가 로마의 교황청의 지시를 받는 것과 같이, 여호와의 증인은 미국 뉴욕 부르클린에 있는 세계통치체의 지시를 받는다. 이 세계통치체의 지시에 따라 각 나라에 있는 지부통치체가 행동하는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많이 읽고 외우고 하지만, 그들의 통치체의 필요에 따라 성경을 완전히 왜곡·변질시켜 가르친다.여호와의 증인은 세뇌집단임으로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을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 성경의 권위를 아는 기성교인들을 상대로 전도한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의 약 90%가 기성교회에서 넘어간 사람들이다. 일단 한번 빠진 후에는 설득이 불가능하다.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간이나 이혼을 한다, 두들겨 팬다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박해를 받는 것이 종말에 상급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에 피를 먹지 말라(레 3:17)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수혈’도 거부한다. 그동안 여호와의 증인이 우리사회에서도 자신뿐 아니라, 수술이 필요한 가족들에게도 수혈을 거부해 멀쩡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경우가 있어 사회적 물의를 일의켜 왔다. 저들의 성경해석은 그 내용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그것을 오려내고 도려내어 자신들의 교리를 합리화 시키고 변호하는데 이용되고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의 성경해석은 모두 현실에 맞추어져 있어 성경의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 이는 신학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사실 우리사회에서 신천지나, 하나님의교회보다 더 무서운 종교조직이 여호와의 증인이다. 성경은 뱀과는 말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 연지골
    • 사설
    2018-07-13
  • 자학(自虐)을 그치고 전도에 투자하라
    한국교회는 기독교 선교 역사상 참으로 특이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복음이 전래된지 100여년 만에 1000만명의 기독교인이 탄생했음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누군가로부터 일대일 전도를 받아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6만 개에 이르는 교회당이 생겨나고, 15만 여명에 이르는 목사가 탄생했다.그런데 과연 한국교회 교인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주장이 각기 달라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많이 헷갈리고 있다. 목회자들은 언필칭 1200만 성도라 하고, 국가 통계청 인구조사에서는 850여 만명이라고 하는데, 기독교 지성인들은 불과 500여 만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기독교인의 숫자가 이토록 큰 격차를 보이는 것은 각 교단의 통계가 이중삼중 잡혀 허수가 많기 때문이다.주요교단이 밝힌 교인수만 살펴보아도 예장 통합이 280만명, 합동이 270만명, 백석대신이 150만명, 기감이 150만명, 기성이 70만명, 기침이 70만명, 순복음이 60만명, 고신이 40만명, 기장이 25만명, 예성이 17만명, 합신이 15만명, 그리스도교가 13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이 숫자만 해도 940여 만명에 이른다. 매년 주요교단 교세가 약간씩 줄어들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도 이들 주요교단 교세는 엇비슷하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에 기독교인의 활동이 두더러진다. 그런데 왜 기독교인 스스로 그 숫자를 줄이며 불과 50여년 안에 기독교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둥 자학적인 발언을 쏟아내는지 알 수 없다. 한국교회가 급속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또 하나같이 그 자리를 천주교와 이슬람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섬뜩한 이야기이다.지금 한국교회는 다음세대의 육성에 실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돈에 눈먼 교회가 돈이 안되는 아동 및 청소년 세대에 대한 투자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아예 동네에 청소년이 없는 농어촌교회는 그렇다 치더라도 교육연령대가 모여있는 대도시 교회들조차 주일학교나 중고등부가 운영되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운영 교육정책에 절대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교회를 전도중심체제로 바꾸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8-06-30
  • 세상에 교회의 하나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주후 7세기 초부터 14세기 경까지 중국엔 기독교가 널리 퍼져있었다. 이때는 가톨릭교회가 중국에 아직 전래되기 전이다. 635년 당태종 정관 9년에 당시 장안(서안)에 들어온 기독교는 네스토리우스의 동방기독교였다. 이 교회를 중국에서는 ‘경교’(景敎)라고 불렀다. 이후 수나라를 거쳐 몽골이 중국을 통일한 원나라 때는 기독교가 황하유역을 따라 중국 전역에 퍼졌다. 지금도 그때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그런데 명·청을 거치면서 중국의 동방기독교는 사라졌다. 대신 17세기에 들어온 가톨릭교회가 기독교의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면 그 많던 동방기독교는 왜 사라졌나. 그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중국문화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탓이다. 기독교는 어떤 문화권이든 그 문화권에 재해석되어 토착화 되어야 뿌리를 내릴 수 있다.최근에 이르러 한국기독교가 위기라고 한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불신을 받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그래왔다.근래에 이르러 기존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전도가 어려워졌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사회로부터 불신을 당해서가 아니라, 교회 스스로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긴 탓이다. 사람을 죄로부터 회개하고 구원을 받도록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 본연의 사명보다 기복주의, 성공주의, 물신주의에 빠져 강단에서 ‘돈타령’만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70~80년대 한국교회의 급성장이 비정상이지, 지금 한국교회가 결코 비정상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곧 망할 것처럼 떠벌리는 패배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지금도 전도를 열심히 하는 교회들은 교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약 3800만의 전도대상이 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전도정책을 내어놓지 않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만을 보고 교인이 줄어든다고 아우성인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한국기독교인들은 천주교화 하거나 이슬람화 될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8-06-30
  • 이젠 시민단체와 종교계가 나서야 한다
    6.13 지방선거 결과 여당의 압승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전국 광역단체장 17곳 중 14곳에서 당선됐다. 야당인 한국당은 전통적 보수권인 부산, 울산, 경남을 모두 내어주고 겨우 경북과 대구만을 지켰다. 민주당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그리고 이번에 지방선거까지 승리를 거둠으로써 입법·행정권에 이어 지방 권력까지 거머쥐었다. 또 이날 함께 치뤄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도 12곳 중 11곳에서 여당이 승리했다.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야당이 이처럼 참패한 선거는 일찍이 없었다. 이는 지방선거에 임하는 야당의 선거전략에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야당에 지역을 대표할 만한 참신한 인물이 없었다는 것이고, 그보다 선거 전에 불어닥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 ‘북풍’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 있어서 남북 문제는 언제나 중요하다.그러나 보수의 궤멸로 나타난 이번 지방선거는 선거 때마다 언제나 권력을 견제하며 중심을 잡아오던 우리 국민의 판단에 실망스러움을 남겼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 정권은 지금보다 훨씬 좌편향 정책을 밀어붙일 것이고, 특히 안보 문제에서 국민을 불안케 하는 독선적 행태를 드러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추상적 용어만 선언문에 담았을 뿐, 동맹만 흔드는 한미연합훈련의 중지와 주한 미군의 지위를 거론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 정세를 바꿀 중대한 사안이다. 이런 때 일 수록 문재인 정부를 견제할 세력이 필요한데, 이번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권선거는 반대로 오히려 문재인 정권에 기를 살려주는 꼴이 되었다.사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이라는 빌미로 지난 1년간 우리사회를 불안불안하게 만들어왔다. 거기에다가 최저임금 정책의 실패 등 경제운영의 정책실패도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실패라고 지적되고 있는 정책을 고치려 하지 않는다. 이미 독선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지방선거에서 압승함으로써 더욱 거칠 것이 없게 되었다.이제 정권을 견제할 세력으로 시민운동 단체와 종교계가 나서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8-06-21
  • 기독교 목회자들의 특정 후보 지지선언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지난 6.13 지방선거 과정에서 기독교 목사들이 또 한번 한국교회를 우습게 만들었다. 목사들이 서울시장 선거에 개입하여 지지를 발표한 것이다. 처음엔 ‘서울특별시 기독교 목회자 1341명은 박원순 후보를 지지합니다’라며 기자회견을 하더니, 이에 질세라 417명이 김문수 후보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했다.대관절 목사들이 할 일이 없어 패거리를 만들어 정치와 선거에 개입하고 나서는가. 그것도 공개적으로 성명을 발표하고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는 기자회견까지 하는가. 물론 목사도 투표권이 있고, 호불호에 따라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치와 종교가 구분되어 있는 대한민국에서 수백명, 수천명씩 패를 만들어 기독교 이름을 걸고 지지선언을 하는 것은 명백히 종교의 정치 개입이다.만에 하나 반대 후보가 당선되어 기독교가 자신을 반대했다며 기독교를 멀리한다면 누가 손해인가. 당연히 서울시를 복음화 해야 할 한국교회가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다.기독교는 여도 야도 아니고, 좌도 우도 아니다. 교회는 서울시장이 누가 되든 그를 도와 시민의 안녕과 질서가 유지되도록 하는 일에 기도와 봉사로 시정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지, 누구를 지지하여 당선시키고, 누구를 반대하여 떨어뜨리는 것은 목회자가 취할 옳은 행동이 아닌 것이다.기독교는 예언자적 전통에 서 있는 종교이다. 예언자는 당대의 통치자나 권력자에 대해 그 잘잘못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촉구하는 사명을 갖는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예언자들과 달리 그들 통치자나 권력을 가까이 함으로 언제나 기득권을 누리고자 했다. 거기에서 종교의 타락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왜냐면 거기에는 통치자나 권력자에 대한 견제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목회자는 설교로든, 조언으로든 하나님의 이름으로 통치자나 권력자를 견제하고 충고해야 한다. 그런데 권력자를 일방적으로 지지하게 되면 그에게 잘못이 있더라도 눈 감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정치권의 타락을 견제할 기능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의 정치인 지지선언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 연지골
    • 사설
    201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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