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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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사는 인생관과 가치관도 중요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의 생명관으로 참 인생의 삶의 의미를 가진다. 인생의 모든 삶의 문제가 생명의 기본적인 것이기에 생명관으로 산다. 이는 올바른 생명관으로 살아야 자연의 피조세계와 더불어 사는 생명관으로 공생의 삶의 둥지를 틀수 있기 때문이다. 이 생명관은 생명을 내신 분으로 창조자의 창조섭리를 알게 하고 창조의 질서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통하여 삶의 과정에서 감사를 깨닫게 한다. 하나님의 숨결이 서린 생명들을 통하여 그 삶은 서로의 공생공존의 의미를 알고 서로 감사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세계가 아름답고 또한 합리적이며 완전한 창조질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이를 창조한분의 창조의도를 알고 사는 것이며 자연계와 인과관계(因果關係)를 거쳐 계속하여 원인을 규명해야 결과가 있기에 심어야 거두게 하시는 심는 대로 거둠의 원인과 결과로 그 인과(因(果)를 아는 감사인 것이다. 이는 자연이 어디까지나 목적에 적응한 질서를 지니고 있는 이상 자연 전체의 설계자로서의 신이 존재해야하는 이유를 사계절의 태어나고 자라다가 흥왕하다가 망하고 성하다가 쇠하는 변화를 통해 거듭나 감사로 생명을 보게 한다.
인간은 일생 두 번 태어난다고 한다. 한 번은 존재하기 위해서 태어나고 한 번은 살기 위해서 태어난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것은 깊은 자아의 자각의 탄생을 의미한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생각하고 보람 있게 참된 삶을 살기 위한 길을 찾아 믿음으로 거듭남을 알게 한다. 인간은 인간의 높은 존엄과 품위를 간직하고 자아실현을 위하여 삶의 길을 가야 한다. 이를 위해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는 삶에 사는 길이 있다. 하늘 높이 오르고 삶의 질이 알차게 살찌는 짙어가는 가을을 맞게 한다. 삶의 가을에는 감사와 풍요로 다듬어진 보람이 영근 삶의 아름다운 열매를 보게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는 표현과 같이 삶은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으로 회복되고 유지되어야 한다. 창조질서의 아름다운 모습은 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에서 감사의 표현으로 생활해야 한다. 인간 안에 나타난 사물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가리는 변별(辨別)로 사물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가리는 가치로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선을 취하고 악을 물리치는 의식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성서는 이를 풀이하여 길, 진리, 생명을 찾게 한다. 곧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기에 내림사랑으로 받은 하나님의 은총이기에 사람은 근본적으로 감사하고 사랑으로 삶을 영위해야 함을 알게 한다.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에 기초를 두고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형상은 창조자와 피조자의 관계에서 사랑과 감사로 이해된다. 성서의 전통으로 볼 때 하나님의 형상은 관계성으로 표현된다. 이 관계를 떠나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이는 사랑으로 얽힌 관계는 피조물의 세계를 초월하시고 또한 관계도 초월하신다. 하나님과 인간의 정확한 관계란 신앙인으로 볼 때 창조자와 피조자의 관계이며 예배와의 관계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해되어야 하기에 신앙인의 예배 행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예배 행위 속에 인간과의 관계에서 은총으로 역사 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 감사에서 삶이 실현되어야 한다. 예배(Worship)는 흠정역은 봉사(Service)로 번역했고 바울은 헬라어로 '라트레이아'(삯 받고 일한다)는 말에서 온 명사로 사용한다. 그것이 후대에 '전력을 다해 섬긴다'는 뜻이 되었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는 지상의 명령으로 이것은 변화된 거듭난 자의 빛 된 삶의 특징을 언급한 것이 된다. 세상에서 사는 삶은 자기본위가 아닌 하나님중심의 삶 즉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삶에 회개해가야 한다. 우리는 이 세대의 거대한 흐름에 편승하여 타락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너무도 익숙해진 것 같다. 그러나 가치관과 변화된 삶 심령이 개혁되는 삶을 가져야 한다. 헬라 말에 '새것'에 대한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Neos란 시간적인 의미와 Kaios란 본질적인 의미가 있다. 악인이 회개하여 선인으로 변한 것은 Kaios의 뜻이 담긴 것이다. 참예배는 새마음(카이오스)을 가지고 예배드리는 것이다.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란 말은 고식적인 의식 예배라는 관념에 대한 혁신이다. 믿는 사람이 기도하는 시간이나 예배하는 시간만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요 그 외에 시간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그것은 주안에 있는 생활이라 할 수 없고 참신앙의 생활이라 할 수 없다.'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삶'은 우리는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든지 정직과 성실과 봉사의 정신으로 그곳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감사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인간 존재의 첫째 의미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제를 통해서 인간이 하나님과 친교할 수 있도록 만드셨다는 것이요 인간 소명에 대한 궁극적인 목표는 웨스트민스터 소교리 문답서에 ‘인생의 최고의 목표는 무엇인가?’ 에 대해 ‘인생의 최고목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고, 영원히 그를 기쁘시게 하여 드리는 것이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아름다운 믿음의 교제에서 얻은 기쁨은 감사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자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의 순종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며 하나님의 은총을 아는 감사와 사랑으로 보답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