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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현수 목사의 석방을 위한 기도
    임현수 목사가 평양 당국에 의해 구금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반공화국특대형 범죄행위“라는 죄명과 함께 종신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필자가 아는 임현수 목사는 선교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분이셨다. 임 목사는 CCC 라는 선교기관에 간사님으로서 함께 활동하셨고, 필자도 공부를 했던 CCC의 교육 기관인 국제신학대학원(International School of Theology)을 마치고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캐나다에 가셔서 교회사역을 하였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것은 방학 때만 되면 캐나다에서 학생들을 대리고 단기선교차 필리핀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남북이 해빙 무드로 돌아선 이후부터는 북한을 주요 선교지로 택함과 함께 식량과 필수품 그리고 선교비를 들고 북한 자주 드나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쩌면 남한의 교회들이 우선순위로 해야 할 동포 선교를 임 목사님이 앞장서서 감당했다고 본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 목사는 북한의 암울한 감옥 에서 사투를 벌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국내의 각종 언론에서 임현수 목사에 대해 보도된 내용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캐나다 정부에서는 앞서 북한이 지난 16일 10개월째 억류한 임 목사에게 국가전복음모죄를 씌워 종신노역형을 선고한 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연달아 우려의 뜻을 밝혔다. 이러한 캐나다의 생각에 대해서 북한은 12월 22일 임현수 목사에 대한 북한 최고재판소의 종신노역형 판결을 캐나다 정부가 비판한 데 대해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반발했다고 한다. 또 “조사 과정에서는 영사 접촉을 불허했지만 조사 사업이 끝난 다음 특례적으로 캐나다 대표단을 초청해 재판에 방청으로 참가시키고 영사 접촉도 실현시켜줬다”며 “캐나다 정부는 이에 대해 걸고들 아무런 법률적 명분도 없다”고 주장했다.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자기 공민이 저지른 악랄한 범죄행위로 우리 앞에 죄를 진 처지에 놓여 있는 캐나다 정부가 거꾸로 우리의 정정당당한 사법조치를 놓고 ‘우려’요 ‘국제법 위반’이요 하면서 시비질해 나서는데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 대변인은 “반공화국특대형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재발방지 조치를 취해야 할 캐나다 정부가 오히려 비호두둔하면서 도적이 매를 드는 격으로 우리에게 삿대질하는데 대해 절대 묵과할 수 없다”며 “캐나다 측의 부당하고 무례한 처사는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한국계 캐나다인 임현수 목사에게 종신 노역형을 선고한 것은 2년 전 미주 기도성회 등에서 있은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최근 임현수 목사에 대한 재판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4분 분량의 임 목사의 선교집회 강의 영상을 증거자료로 제시했다고 한다. 임 목사는 이 동영상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권력 장악을 못해 극악한 공포 정치를 하고 있다며 김정은 정권의 붕괴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소리 방송은 오늘 이 동영상은 임 목사가 지난 2013년 10월 세계선교동역네트워크의 미주 기도성회에서 한 강의 장면이라고 보도했다. 이 동영상은 주최 측 관계자의 부주의로 유튜브에 올려졌다가 임 목사 억류 보도가 나간 뒤 삭제됐다고 한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이 강의 내용과 유튜브에 오른 또 다른 교회 강의 동영상을 문제 삼아 북한이 지난 1월 말 방문한 임 목사를 구금했다”고 한다.선교는 정치적인 경계를 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계를 넘을 때에 수 없이 많은 박해가 있었다. 초대교회 때에는 로마의 정치 제도 아래서 예수님을 믿고 포교 한다는 죄목으로 사자밥이 되기도 하고, 검투사의 칼날아래 목이 잘리기도 하고, 카타콤 속에서 삶을 마감하기도 했다. 이러한 고통 속에서도 사도 바울은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선교의 지향점을 고백했다.엘리뇨의 현상으로 지구 전체가 추운 겨울이 없어졌다고들 한다. 사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북한에 억류 중인 임현수 목사의 겨울은 이곳처럼 따뜻한 곳이 아니다. 성탄과 함께 임현수 목사도 석방되어 함께 새봄을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12-30
  • 선교사의 선한 싸움
    2015년 12월이 되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삶의 결산을 생각하는 것은 늙어 가는 아이 탓이기도 하다. 1년을 돌아보면서 주님의 제자로서 얼마나 선한 싸움을 싸웠는가 생각해 볼 때에 그저 함량 미달의 삶을 살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럴 때 일수록 모범된 선교사의 길을 걸었던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그리워진다. 디모데 전서 1장 12절부터 18절을 살펴보면 바울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사도 바울은 자신의 제자인 디모데 에게 자신이 간직한 복음이 얼마나 위대하며, 선한 것이며, 또 죄인의 괴수 이지만 주님의 은혜로 직분을 받아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며, 은혜 가운데에서 직분을 감당하고 있음을 말하면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믿음위에 굳게 서서 이단의 침략 속에서 자신을 기기라 라고 말하고 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의 직분을 맡겨 주셨다.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을 때에 자신에게 은혜의 직분을 맡겨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 9:15절에 의하면,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 이라”라고 바울이 무슨 직분을 가지고 평생에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바울 자신은 이와 같은 은혜의 직분을 받는데 합당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써 그에게 직분을 감당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8:3에 의하면,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였다. 그러나 변화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었다고 고백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이는 비단 바울에게만 주는 은혜가 아니다 인류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다. 예수님의 탄생의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마태복음 1:21을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인류는 구원을 받아야 한다. 타락한 인간은 반드시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에 의한 구원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우리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인내로써 나타나는바, 하나님의 인내가 우리를 덮은 것을 볼 수 있다. 사도행전 13:39절에는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 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이것 이니라”라고 말씀 하시고 있다. 최근 서방 세계의 재앙이라고 할 수 있는 IS의 준동이 이제 서서히 우리의 목도 조여오고 있음을 감지한다. 비록 무자비하고 잔악한 IS대원일지라도 복음이 필요하다. 복음만 들어가면 그들도 사도 바울처럼 사울이 바울이 될 수 있다. 그 만큼 그리스도의 은혜는 강력한 능력이 있다. 이제 선교사의 삶을 살고 있는 우리는 선한 양심으로 악을 이겨야 하겠다. 선한 양심은 때로는 손해도 보고, 때로는 핍박을 받기도 한다. 우리가 약해질 때면, 사탄은 우리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밀 까불 듯이 까불기도 한다. 이때에 우리의 신앙이 매우 낙심되기 쉽다. 정말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싸움을 싸워야 한다. 믿음은 가장 강한 하나님의 무기 이다.이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는 어떤 일 을 할 만큼 그러한 능력 있는 자도 아니며, 자격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의 직분을 주셔서 감당하게 하셨다. 따라서 충성스럽게 주어진 직분을 감당하여 복된 신앙생활을 하므로 축복을 듬뿍 받는 선교사들이 되어야 하겠다.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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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15-12-19
  • 고난에 대한 선교적 의미
    2015년 한해를 마무리 짖는 시간이 되었다. 삶은 누구에게나 희망과 고난이 겹치는 것 같다. 활기 넘치는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또 다른 해인 2016년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삶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고난 속에서 허우적거린 사람들은 어서 속히 이러한 환경에서 벗어 나기위해 기도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을 향하여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라고 말씀 하셨다. 바울의 선교 초기에 로마에 있는 교우들이 얼마나 많은 박해 가운데 있었는가를 집작하게 하는 대목이 엿보인다. 성도들의 삶이란 간단하지 않다. 다른 말로 하면 애매히 고난을 받을 때가 있다. 칼빈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각각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했다. 성화의 길은 어차피 십자가의 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도 독생자이신 예수님께 십자가의 길을 통과하게 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지체들의 고난은 복음을 방어하고, 모든 형태의 의를 방어하는 일과 대적들로부터 오는 핍박에서 일어나게 된다. 칼빈은 가혹한 고난을 통해서 주님과 사귐으로써 고난 자체가 우리에게 복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촉진하는 수단이 된다고 하였다.여기에서 우리는 칼빈은 성도들의 십자가와 성화의 필연적 연관 관계를 다음의 몇 가지로 논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성도가 일생동안에 계속적으로 십자가 밑에서 지내야할 이유는 고난이 자아의 교만을 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며 겸손을 배우는 길이라기 때문 이라고 하였다. 성도는 관이라는 역경의 병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경고를 받아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되며, 육에 대한 사악한 신뢰를 탈피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 하게 된다. 둘째는, 십자가는 하나님의 신실을 경험하는 기회와 미래에 대한 소망을 준다. 셋째는, 십자가는 우리의 인내와 순종을 훈련시킨다. 칼빈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주신 인내력과 지조를 밖으로 드러냄으로써 그들의 인내를 시험 하신다(창 22:1,12; 벧전 1:7)고 말한다. 모든 일에 하늘 아버지께 순종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면, 우리는 백방으로 이 순조의 습관을 우리에게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처사를 결코 거부해서는 안 된다. 넷째는, 십자가는 약이며, 아버지께서 주시는 징벌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끌려 그의 인자하심을 감사하며 사랑하게 되는 것이 당연하나 우리는 반대로 악의를 품고서 하나님의 관대한 사랑을 받고도 계속해서 타락한다. 따라서 성도가 충동으로 날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징벌을 내려서 억제시킬 필요가 있다. 다섯째, 십자가 밑에서 고통당하는 성도는 하나님 안에서 위로를 받게 된다.개혁신학자인 칼빈 목사님께서 주장하신 고난에 대한 해석은 성도는 고난이 왔을 때에 축복의 기회로 활용하는 침착한 마음과 지혜가 필요함을 말씀하고 있다. 십자가의 길은 성도에게 유익으로 주는 변장된 축복이다. 성도가 십자가를 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 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의와 공평이요,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기를 하나님은 지극히 원하신다는 사실이다.선교적인 삶이란 항상 고난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불충분은 물론 가정 속에서 직장 속에서 그리고 넓게는 사회 속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음을 직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좌절을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이 존재하는 한 좌절과 고난은 기차의 레일과 같이 늘상 있는 것이다. 우리가 고난을 멀리하는 시간은 모든 생명의 세포가 활동을 중지한 죽음일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세포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고난이야 말로 선교적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친하게 지내야 할 친구라고 본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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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15-12-11
  • 장로 대통령의 죽음이 남긴 교훈
    이 땅의 민주화의 거목으로 사셨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바울사도는 말씀하였지만 그분의 빈자리가 크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특히 장로 대통령으로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믿음의 정치를 기대하게 만든 장본이기 때문이다. 2015년 11월 22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김영삼 장로님의 생애를 조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그는 1927년 태어난 김영삼은 멸치잡이 어장을 소유한 부친을 둔 덕분에 생활의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6.25 전쟁이 끝난 후 정계에 입문한 그는 자유당 공천을 받아 만25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비록 그는 자유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의 3선 제한철폐에 반대하고 탈당하고 민주당에 입당해 정치 생활을 이어갔다. 5.16 쿠데타 이후 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고, 출소 후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다가 질산 테러 사건을 겪기도 했다. 당시는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국내적으로 수없이 많은 박해를 받았다. 특히 박정희 정권에서는 YH 사건으로 김영삼의 존재가 정권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 경호권 발동으로 수백 명의 무술경위를 출동시켜 놓고 국회 별실에서 김영삼의 국회의원직 제명안을 10여 분 만에 변칙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 사건으로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고, 부마민주항쟁을 촉발하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급작스러운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이후 여당인 민주공화당과 야당인 신민당이 직선제 개헌에 합의했지만 12.12 군사반란으로 전두환이 정권을 잡아 민주화의 길은 다시 멀어졌다. 전두환 정권은 김대중에게는 사형을 선고했고, 김종필은 보안사령부에 감금시켰으며, 김영삼은 가택 연금 조치를 취하며 민주화 세력을 억압하였다. 그러나 김영삼은 단식투쟁을 벌이는 등 정권에 굴하지 않았고, 결국 오랜 민주화 운동 끝에 1987년 6.29 선언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으나 제13대 대선에서 김대중과 단일화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군사정권의 후신인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민주화 운동의 두 거목이 후보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충격은 컸다. 그리고 당시 극도의 여소야대 구도에 힘겨워했던 노태우 정권은 김영삼과 김종필에게 손을 내밀었고, 이는 3당 합당이라는 우리나라 정치사의 크나 큰 대사건으로 이어졌다.3당 합당으로 거대 정당의 힘을 얻은 김영삼은 다음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와 또 다시 맞붙어 42%의 지지를 받으며, 33.8% 지지에 그친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은 군사정권을 종식시킨다는 의미로 정부의 명칭을 ‘문민정부’로 지었으며, 재임 초기 명성에 걸맞은 행보를 계속했다. 그는 군대 내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청하면서 군사정권이 다시 들어서는 싹을 잘라 버렸다. 박정희 대통령이 키웠고, 전두환과 노태우 2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하나회는 하룻밤 새에 김영삼 대통령의 발 빠른 행보로 소멸하게 됐다. 사람은 누구든지 공과가 있다. 그는 군사 정권과 손을 잡아 대통령이 된 것은 비판 받을 부분이지만, 자신이 대통령이 된 이후, 하나회를 숙청하고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등 역사바로잡기 운동을 하면서 민주주의를 다지는데 큰 공을 세웠다.또한, 금융실명제를 실시하면서 검은 돈의 유통을 막아 경제민주화의 토석을 다졌으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 규명,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지방자치제도 실시 등의 업적으로 여론조사 공식 지지율 90%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청춘을 바쳤으며, 대통령에 당선되고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김영삼 대통령이지만, 대통령 당선을 위해 군사정권과 손을 잡은 ‘3당 합당’과 국민들을 고난에 빠뜨린 ‘IMF 사태’는 그의 그림자다.최근 우리는 현대사에 기독교가 끼친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시기에 장로님으로서 우리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긴 김영삼 대통령의 리더십이 더욱 그리워진다. 아쉽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도해 본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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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15-12-04
  • 프랑스의 비극과 비대칭 전선
    통계에 의하면 2012년 이슬람 관련 테러그룹에 의한 총 테러 건수는 2,800건에 사망자가 17,725명이며 부상자는 15,708명이다. 이 중에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저질른 테러 건수는 155건이고 사망자 수는 848명, 부상자는 1,638명이다. 이슬람에 의한 테러는 해가 거듭할수록 증대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1월 13일 프랑스 파리를 강타한 동시 다발 IS의 테러는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IS는 이번 테러 공격으로 거대 국제행사를 앞둔 프랑스의 안보 역량과 테러 경비태세에 대한 의문이 일도록 하는 효과를 낳았다. 올랑드 대통령은 15일 터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취소했다. 이처럼 세계 지도자들에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엄청난 범죄를 저질럿다. 세계는 한목소리로 IS를 규탄하고 있으며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두 정상인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IS의 퇴치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대항 하자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번 파리의 총기 만행을 일으킨 세력들을 추적한 결과 주동자 8명 중 3명이 벨기에 출신으로 드러나면서 왜 벨기에가 유럽 테러리스트들의 온상이 됐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일보에 의하면 ‘유럽 언론들은 우선 벨기에가 유럽에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일찍부터 허용된 나라인 점을 지적하고 있다. 벨기에는 이미 1970년대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요청으로 ‘과격한 사상’인 이슬람 근본주의를 설파할 설교자들의 입국을 허용했다. 이슬람 초기 사회를 본받자는 취지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 등이 신봉하는 사상이고, 이교도를 몰아내기 위한 성전(聖戰)을 정당화하고 있다. 다분히 벨기에의 이슬람교도들이 근본주의를 접하기 쉬운 환경이고, 또 이들이 과격화되는 원인으로 꼽힌다.‘고 언급하였다. 프랑스의 비극은 우리에게 IS가 가진 전쟁 형태를 짚어보게 만들고 있다. 전호진은 이를 비대칭 전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과거의 전쟁은 군인대 군인, 국가와 국가 그리고 전쟁터가 존재했다. 그러나 비대칭 전쟁은 적군과 아군이 싸우는데 따른 이념, 전선, 군대, 전략등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IS가 시도하고 있는 서방과의 전쟁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첫째는 IS의 전쟁 목적은 자기 나라와 자기 부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초자연적인 전쟁으로서 알라의 세계를 위하여, 알라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인다. 이로 보건데 테러를 통한 전쟁의 목적은 정치적 요인이 아니라 종교 이념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은 IS의 전쟁 목적에 반하여 서방의 방어적 전선은 미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함이나, 프랑스나 러시아의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둘째는 IS와 같은 테러 전쟁에 개입하는 나라들이 빨리 전쟁을 종식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들 테러리스트들은 무한정으로 끝까지 싸워서 끝장을 보기를 원한다. 이와 같은 전략으로 말미암아 서방 나라들은 국내의 여론과 정치적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도중에 전선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세 번째는 서방의 군대는 정규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IS와 같은 테러리스트들은 민간이 투사들이다. 그들은 테러 훈련은 받았으나 군번도 없다. 그리고 전쟁을 수행하다가 죽으면 보상도 없다. 다만 죽으면 이슬람 교리에 의해서 72명의 미인들이 천국에서 그들을 환영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네 번째는 테러리스트 전쟁에 참여한 서방의 군대들은 테러리스트를 색출하거나 체포하여 사살한다. 이에 반하여 IS 같은 테러리스트들은 군인과 민간인을 무참히 학살한다. 다섯 번째는 테러리스트들은 자기 나라 국기가 없다. IS같은 집단도 자기 나름대로 만든 국기를 상징적으로 들고 있을 뿐이다. IS는 코란을 기초로 한 이념을 상징화 한 깃발을 들고 있을 뿐이다. 반명 테러전에 참여한 서방 군인들은 자신의 국가 상징물인 국기가 어깨에 걸려 있다. 결국 프랑스의 비극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다문화정책일 것이다. 온정주의로 대별된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주목된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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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15-11-20
  • 은퇴가 없는 선교
    은퇴(Retirement)란 의미는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낸 것으로 정의 될 수 있다. 이는 생산활동은 중지했지만 지속적으로 소비는 하고 있는 삶의 형태로, 단순히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의미하는 ‘퇴직’과는 차이가 있다”라고 사전에 나와 있다. 필자에게도 은퇴가 찾아왔고, 지난 8월 31일로 대학에서의 정년 교수직을 마감했다. 은퇴를 앞두고 있는 나에게 걱정들을 많이 해 주었던 동료들과 제자들을 보면서 의기소침한 나날을 보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들을 불식시킬 수 있었던 것은 평소 갖고 있는 선교관이었다. 즉 “선교에 은퇴가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결론은 선교에는 결코 은퇴가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학교에서 초빙교수로 재임용이 되어 지속적으로 학생들과 만나게 되었다. 또한 자유함을 얻은 관계로 다양한 학교에 출강하면서 각기 다른 목소리들을 청취하게 되었다. 어쩌면 출강 시간이 늘어남에서 오는 일정으로 무척 바빠진 느낌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평소에 가졌던 선교의 이론들을 전략화 하기 위해서 지난 10월 31일(토)에는 “재한 이주민 사회통합진흥원”이라는 기관을 창립하여 사단법인화 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교의 특성인 역동적인 삶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 칼럼을 집필하기 위해서 은퇴에 관한 자료들을 찾던 중에 매우 긍정적인 글을 발견하였다. 학교에서 퇴직을 하고 한국해외자원봉사단으로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 가서 자신이 갖고 있는 달란트를 봉사의 도구로 활용하는 글을 보았다. 이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십니까? 퇴직후 1년 산에도 다니고, 국내 및 해외여행도하며 보내다가 에볼라가 창궐할 때 코이카 해외봉사단 단원 선발에 응시하고, 5주간 국내교육도 마치고, 작년12월 중순 탄자니아로 파견되어 현지어 교육받고 중등학교에서 화학선생으로 제3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힘든 과정을 만날 때마다 긍정의 마인드로 기도와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겨내고 있습니다. 전하기 어려운 교육환경이지만 검은 얼굴에 맑은 눈동자를 볼 때마다 힘을 얻습니다.1960년대 미국의 평화봉사단이 한국에서 활동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서 제가 그 자리에 서서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습니다.?지난 6월 5일 우리의 여름방학에 해당하는 방학에 들어갔습니다. 한 달 간의 방학동안 탄자니아 문화를 이해하고 현지어 실습도 할겸, 여행도 해보았습니다. 어제 학교에 갔다 오면서 왠지 글을 쓰고 싶어서 소식 전합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가 일을 할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립니다. 대한민국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나의 재능을 새로운 세상에서 나누고 있습니다. 몇 일 전 한국에서 가져 와서 사용하다 고장난 믹서를 고치러 다니면서 우리의70년대 모습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마치 타임 머신타고 과거로의 여행처럼 말입니다. 퇴직 후의 새로운 세상으로 ‘코이카 해외봉사’를 검색해 보세요. 또 다른 세상이 있습니다.“위에 언급한 글에서 “대한민국에서 유통 기간이 지난 재능을 새로운 세상에서 나누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음이 감동을 주고 있다. 인간의 보편적인 삶도 이토록 쓰임새가 많음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평생을 살아가야할 우리에게 과연 은퇴란 있는가에 대해서 되묻고 싶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달려갈 길을 에베소 장로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하였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면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라고 했다. 은퇴란 영어로 Retirement이다. 즉 타이어를 다시 끼우고 미지의 새로운 길을 달려 나가는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대학에서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달려 보지 못했던 길을 달려보고 싶다. 첫째는 세계로선교학교를 통해서 한국교회에서는 선교의 동력을 회복하고, 세계의 선교 현장에서는 효과적인 선교의 열매를 맺어가게 만들고 싶다. 둘째는 사단법인화된 “재한 이주민 사회통합진흥원”과 “세계다문화진흥원”을 통해서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을 선교적 차원에서 사역할 수 있는 기관으로 육성하고 싶다. 세 번째는 국내외 사역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는 한국어 교원 수료증을 세계로원격평생교육원을 통해서 제공하고 싶다. 글을 보신 독자님들께서 이제 타이어를 갈아 끼운 저를 위해 새로운 일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실 것을 부탁하고 싶다.www.worldcan.co.kr(세게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11-13
  • 헐버트 선교사의 한국사랑
    한국선교 수용사에 나타난 헐버트는 위대한 인물이다. 일부 학계에서 초기 선교사들의 공헌을 폄하하는 운동들이 있는 것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마저도 느껴진다. 우리는 역사를 직시해야 하겠다. 조선의 패망과 한국의 건립 시기에 외국 선교사인 헐버트가 있었다. 헐버트는 1863년 1월 26일 미국 버몬트 주 뉴헤이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미들베리대학의 총장이었던 칼빈 헐버트 목사였으며 어머니는 다트머스 대학의 창립자 엘리저 윌록의 외증손녀인 매리 우드워드다. 1884년,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하고, 그 해에 유니언 신학교에 들어가서 2년간 수학하였다. 1886년(조선 고종 23년)에 길모어, 벙커등과 함께 조선에서 육영공원에 교사를 파견해달라는 요청으로 조선에 들어와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교사직으로 영어를 가르쳤다. 그는 자비로 한글 개인교사를 고용하여 한글을 배워 3년만에 한글로 책을 저술할 정도의 실력을 갖게 되었다. 그는 육영공원에서 근무하면서 제중원 학당에서도 학생을 가르쳤는데, 1888년 3월경부터 하루 2시간씩 제중원 학당에서 교육을 담당하였다. 1888년 9월 미국에 일시귀국하여 메이 한나와 결혼하여 함께 조선으로 돌아왔다. 헐버트는 1891년 최초의 순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저술해 육영공원 교재로 사용하였다. 육영공원에서 교직으로 근무했을때 헐버트는 외국 서적의 번역 작업과 외국에 대한 한국 홍보 활동을 벌여 많은 서적과 기사를 번역, 저술했다. 1896년에는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아리랑을 처음으로 채보하였다. 그러던 중, 조선 정부에서 재정상의 이유로 육영공원을 축소 운영하게되자, 헐버트는 1891년에 교사직을 사임하고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헐버트는 1891년 여름 당나귀를 타고 아펜젤러, 모펫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여 평양 근교의 석탄 광산의 실태를 파악하였다. 아펜젤러와 모펫은 선교 정보를 얻기 위하여 동행하였다. 1893년에 헐버트는 미국 감리교회의 선교사 자격으로 다시 조선에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는 감리교 출판부인 삼문출판사의 책임을 맡았으며, 배재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한성부에 오기 전 미국의 한 출판사에서 출판에 대한 교육을 받고 왔으며 신시내티에서 신식 인쇄기를 들여왔다. 삼문출판사는 그가 부임한 지 1년이 안 되어 전도지와 종교 서적 1백만여 면을 인쇄하여 경영을 자급자족할 수준에 이르렀다. 1895년 2년간 휴간했던 영문 월간지 '한국소식'을 다시 발행하였고, 최초의 영문 소설 한국어 번역판인 천로역정을 출판하였다. 그해 8월에는 한글 로마자 표기법을 고안하기도 하였다. 1897년 5월 조선정부와 고용계약을 맺고 학생수 50명이 되는 한성사범학교의 책임자가 되었으며, 관립영어학교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1900년부터 1905년 고종의 특사로 미국에 방문하기 전까지 현 경기고등학교의 전신 관립중학교의 교사로 재직하였으며 일본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다양한 사회활동을 전개하였다. 1901년부터 영문 월간지 'Korea Review'를 발행하였다. 헐버트 부인도 이화학당에서 음악을 가르쳤으며 외국인 자녀들을 자신의 집에서 가르쳤다. 그녀는 또한 제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기도 하였다. 그는 현 동대문교회인 볼드윈 교회를 맡아 담임목회를 하였다. 이때 외국 서적의 번역 작업과 외국에 대한 한국 홍보 활동을 벌여 많은 서적과 기사를 번역, 저술했다. 한국의 역사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1908년에는 관립중학교의 제자 오성근과 함께 '대한역사'라는 한글 역사 교과서를 출판하였다. 헐버트는 고종 황제의 최측근 보필 역할 및 자문 역할을 하여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의 외교 및 대화 창구 역할을 해왔다. 고종 황제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은 외국인이었고, 한국의 분리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하였으며, 1907년 헤이그 비밀밀사에 적극 지원하여 밀사활동을 하였다. 1919년 3.1운동을 지지했다. 그는 영어뿐만 아니라 한국어도 매우 유창하게 하였다. 1948년 대한민국이 수립된 이듬해인 1949년 42년 만에 방한하였다. 방한 이후 1주일 후에 헐버트는 병사하여 8월 11일에 최초의 외국인 사회장으로 영결식을 거행하였고 오늘날 양화진(楊花津)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헐버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한민국으로 떠나며 언론에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땅에 묻히기를 원하노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필자가 그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제자의 논문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헐버트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요즈음처럼 국정교과서로 인해서 갈등히 심할수록 선교사님들의 한국 사랑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10-27
  • 오포세대와 선교
    21세기가 되면서 가장 무섭게 변화된 사회상은 N세대의 등장이다. 서울신학대학 외래교수인 전석재 박사는 한국의 N세대(Net Generation)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N 세대란 1990년 후반에 등장한 용어로 컴퓨터 정보 통신의 발달과 함께 자라고, 네트워크(Network)를 자유롭게 다루며, 그 속에서 생활하는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한편 10대 후반과 20대 중반으로 진입하는 N세대(Net Generation)를 뜻하기도 한다. 이들은 힙합을 즐기고, 전자메일을 띄우며, 직접대화 보다는 온라인 안에서 네트워크를 즐긴다. 자기가 선호하는 일을 하고,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갈고 닦으며,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다. 스마트폰의 활용을 즐기며, 개성 있게 살면 성공한다고 믿는 다. 항상 색다른 것과 변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N세대는 상상력과 창의력, 예술성과 문화적 감성들을 과학 기술 세계와 접목시키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N세대는 포스트모던의 영향으로 다양한 가치와 감성을 중요시하며, 소비문화 속에서 그들의 삶의 방식과 가치를 결정하고, 변화와 개성을 중요시 하고, 새로운 디지털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특별히 스마트폰 문화 안에서 SNS 같은 커뮤니케이션을 이용하여 서로의 관계를 만들어 가고, 정보를 수집하며, 공동체를 형성함으로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또한 N세대들은 자기의 당면한 문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데, 이성문제, 가족간의 관계, 술, 담배 문제보다 미래에 대한 계획, 직업의 선택, 그리고 입시문제가 그들에게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이러한 N 세대에게도 엄청난 문제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른바 ‘오포’이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이른바 ‘삼포세대’는 옛말이 되었다. 지금은 이에 더 붙혀서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하는 ‘오포세대’가 증가하고 있다. 경향신문 이호준 기자에 의하면 ‘2030세대’(20대와 30대를 아우르는 말) 2명 중 1명은 다섯 가지 중 하나 이상을 포기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취업포털 사람인(人)은 2030세대 2880명을 대상으로 ‘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내 집 마련 중 포기한 것이 있는가’라고 물은 결과 1660명(57.6%)이 ‘있다’는 답을 했다고 3일 밝혔다.N 세대는 바로 미래의 한국사회를 떠밭치는 세대이다. 어쩌면 기둥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집단이다. 이러한 집단이 ‘5포’를 통해서 활기찬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슬픈 현실이 되었다.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치권과 정부에서 수없이 다양한 대책을 내어 놓는 모습도 보인다. 대통령은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기금도 출연하였다. 사회 지도층들도 뒤질세라 이러한 기금 운동에 참여하는 모습도 보인다. 다만 이러한 운동이 일시적인 윈도우 정책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선교적인 차원에서 교회가 이러한 N 세대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서둘러야 하겠다. 한국교회는 다양한 측면에서 사회의 아픈 구석을 치유해 왔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의 공산운동을 가르쳐 주고 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초대교회가 성도들 간에 어떠한 일을 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위기 속에서 다섯가지를 포기하고 살겠다고 한 우리 N세대의 문화, 가치, 생활양식을 이해하며, 관계전도를 해야 하겠다. N세대의 문화, 가치, 문제, 갈등,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고통을 방치하는 교회가 되지 않아야 하겠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삶의 문제, 스타일, 문화, 갈등, 그리고 진로를 인정받고 싶고, 이해해 주기를 원하며, 대화하기를 원한다. 우리 기독교인의 도전은 성경의 절대적 가치를 변화하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비신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성육신적 사역을 하느냐? 바로 이것이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오늘날 N 세대들은 다섯가지를 포기하는 자포자기의 상태에 있다. 그들에게 찬송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하는 한국교회가 되었으면 한다.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10-17
  • 세계화속의 선교
    선교학자들이 모인 이과수 대회에서 알렉스 아라우조는 “세계화와 복음전도”라는 타이틀을 통해서 글을 발표 하였다. 대부분의 남미 신학자들이 그렇듯이 세계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뉴앙스로 논리를 전개하였다. 그분이 써놓은 글을 가지고 최근에 박사과정 수업에서 논제로 삼기로 하였다. 세계화의 진행과정이 그렇듯이 긍정적인 마음들과 부정적인 말들이 동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화에 대한 다양한 글들이 있지만 국내의 한 포털 사이트에 소개된 글이 간편하면서도 잘 다듬어진 이론이라고 판단되어 인용하고자 한다. 세계화라는 개념은 1970년대 이후에 활발히 쓰이기 시작했다.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세계화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들이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세계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정치, 문화 세 수준에서 동시적으로 그리고 상호연관을 이루면서 진행되어 왔다.세계화의 중심에는 경제적인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경제적 수준에서 세계화는 교역·투자·통신 등이 확대되어 국가 간 상호의존이 증대하고 지구적으로 다자간의 협의·조정·협력 등이 강화되는 현상을 뜻한다. 경제의 세계화는 오늘날 세계화를 추동하는 기본 동력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제의 세계화 경향은 최근 더욱 두드러졌는데, 세계무역의 완전자유화를 주장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초국적기업(MNCs)의 활동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여기서 전후 세계화를 주도한 주체로서 초국적기업의 활동은 생산부문을 지구적으로 재배치하는 신국제분업을 통해 기존 국경의 의미를 축소시켜 왔다.세계화의 또 다른 요소는 문화적 괌계 속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뉴스뿐만 아니라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대중음악, 전신 및 통신 프로그램 역시 이제는 전 세계 국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세계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생산, 분배, 소비의 지구적 체제는 현대적인 문화 및 생활양식을 지구적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선진국에의 문화적 종속을 심화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낳고 있다.이러한 문화의 세계화 가운데 특기할 만한 것은 미국화(Americanization) 경향이다. 오늘날 어느 나라이건 헐리우드(Hollywood) 영화와 팝 음악, 그리고 디즈니랜드(Disney land)로 대표되는 미국식 대중문화와 생활양식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져 왔다. 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이러한 문화적 재구조화는 그 어떤 서구의 정책 및 기술보다도 일상적·문화적 삶과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화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한국사회에서 세계화는 경제와 문화, 그리고 정치 영역에서 다각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먼저 경제 영역에서의 세계화는 1990년대부터 무한경쟁과 국가경쟁력을 부각시킴으로써 한국경제의 탈국가화를 가져 왔으며, 특히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미국식 기업운영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해 왔다. 이러한 경제적 세계화는 외환위기를 단시간 내에 극복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지만, 동시에 고용, 소득, 소비에서의 사회 양극화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아 왔다.문화 영역에서의 세계화는 미국화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는 물질문화에서 정신문화에 이르기까지 미국식 가치와 생활양식의 영향이 증가해 왔으며, 특히 1990년대 이후 이러한 경향은 크게 강화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식 생활양식에 맞서 민족주의 내지 민족문화의 중요성이 강조되기도 했지만, 미국문화로 대표되는 서구 문화는 여전히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이러한 세계화의 추세에 대해서 교회는 어떻게 대항을 해야 하는가? 알렉스 아라우조는 “교회가 어떻게 세계화를 대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잘못된 것을 언급하였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교회에 대항하는 것이 세계화 이다. 결국 우리는 이세상의 패턴을 판단해야 하며, 세상의 패턴에 관한 선한 것과 선하지 않는 것을 성령의 권고 아래서 결정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라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세계화를 보면서 긍정적인 요소도 물론 내재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세속적이고 상실된 인간성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세계화 속에서 유혹 당하고 협박 하는 압력을 거부 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10-10
  • 복음의 중심인 그리스도
    선교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소개이다. 사실 그리스도교 전파자의 과제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남에게 소개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일은 분명히 사도들이 지배적인 관심사였고, 이러한 관심은 사도행전 첫 머리에 기록되어 있는 설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파하도록 부르심을 입은 바로 그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유명한 학자인 위버는 이에 대해서 세가지 그리스도가 우리세계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즉 그리스도(Fale Christs), 왜곡된 그리스도(Distorted Christs), 그리고 성서적 그리스도(Biblical Christs)이다.첫째는 거짓된 그리스도(Fale Christs)이다. 그리스도에 관한 잘못된 견해는 그를 너무 인간화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신적인 예수를 가지지 못하게 하거나 그를 너무 신격화함으로써 더 이상 인간 예수를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예수를 “그냥 선한 사람”(Just a good man)이라고 보는 자유의적 견해는 분명히 전자의 범주에 빠지는 것이다. 이 견해는 19세기의 역사적 예수에 관한 탐구에서 유래되었다. 이 탐구는 예수의 복음(Gospel of Jesus)과 예수에 관한 복음(Gospel about Jesus)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가정 하에 행해진 것이었다. 예수에 관한 복음은 초기 자유주의자들이 말했듯이 제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복음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하나의 신으로, 형이상학적 피조물, 초자연적 실재로 만들었다. 두 번째는 왜곡된 그리스도(Distorted Christs)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문화의 수효만큼이나 많은 사고의 관점들이 있겠지만 그 중 세 가지를 언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그것은 서양의 그리스도와 동양의 그리스도, 그리고 제3세계의 그리스도가 있다.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백인이고, 앵글로색슨족이며, 중산층에 속하는 그리스도는 논리적이고 교양 있고 세련되고 예의바른 누구나 좋아하는 대중 예수이다. 동방에서는 다소 신비적이고 사적인 이미지를 따라 빚어진 그리스도 상을 가지고 있다. 이 예수는 경험에서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분으로서 그는 동정녀의 팔에 안긴 아기이거나 교회의 성상과 벽화에 그려져 있는 만물의 심판주이시다. 예수와 가까이 하려는 사람들은 특히 고행과 금욕적인 생활의 실천으로 예수님께 다가간다.제3세계의 그리스도는 혁명가로 나타난다. 그는 헤진 옷을 입고 있으며 가난한 자와 동일시된다. 그는 피킷을 들고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선동하거나 게릴라 단원을 지휘하기도 한다. 그가 어디 있든지 그는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과 모든 비참함에서 해방을 위해서 투쟁하는 한가운데 서 있다.세 번째는 성서적 그리스도(Biblical Christs)이다. 교회의 과제가 성서적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성서적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현재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간과되기 쉬운 두 가지 성서적 그리스도 상에 국한시키려 한다. 그것은 제2아담과 우주적 그리스도 이미지이다. 제 2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 이미지는 신약성서의 여러 구절들에서 발견되는데 가장 현저한 것을 로마서 5:12-21에 나타나 있다. 그는 그가 하나님과의 연합 안에서 그리고 창조질서 안에서 누리던 현실에서부터 분리되고 소외되어 땅 위에 있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에서서 멀어지게 된 것은 인간이 선택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구원은 또 하나의 인간 즉 하나님께로 향해 감으로써 삶과 창조질서를 재생시키려는 또 하나의 인간의 선택이라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이 인간이 바로 그의 성육신과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제 1아담이 행한 것을 뒤엎고 인간과 피조물을 회복시키는 신인, 곧 그리스도이시다. 제 2아담인 그리스도는 그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을 통해서 인간과 피조물을 그 두 번째 사다리로 끌어올려 만물을 새롭게 만든다. 제 2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 이미지는 바로 그가 고쳐서 행했다는 것이다. 우주적 그리스도는 제 2아담으로서의 그리스도 이미지와 그 안에서 모든 것을 다시 반복한다는 개념에 빠질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사도시대에 예수관의 명백한 기초가 되는 그리스도에 관한 믿음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창세기 1:26에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예수인 제 2아담을 완전한 하나님의 이미지 즉 완벽하고 완성된 인간이다. 이 예수를 복음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www.world.ac.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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