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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자화의 기쁨
    신약 성경 디모데 후서 1장을 보면 사도 바울께서 사랑하는 제자인 디모데를 향한 사랑의 마음이 녹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장 3-4절부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했다. 바울께서 제자인 디모데를 보면서 자신이 행했던 복음증거의 열매를 디모데를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것을 한마디로 표현한 성구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디모데는 바울이 제 2 차 전도여행 가운데 만난 사랑하는 제자 이다. 이후 디모데가 바울의 제자가 되어 에베소 교회에 부임하였지만 어린 나이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격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바울은 디모데 에게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없신여기지 못하게 하고...”(딤전 4:12)라고 쓰고 있다. 사실 디모데에게 바울은 격려가 필요 했다. 사실 격려란 우리 인간이 주고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가운데 하나라고 볼수 있다. 필자는 사도 바울과 디모데와의 관계 속에서 사역의 열매가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선생의 참다운 역할이 무엇인가를 거울을 보는 것 같이 비춰보곤 한다. 이미 교회연합신문에서 다루었듯이 한세대학에서의 교수사역은 정년식을 가졌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서 학생들을 계속 보기를 원하는 나에게 초빙교수라는 타이틀을 주어서 지속적으로 선교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시간들 속에서 과연 나는 바울처럼 디모데를 사랑하고, 그처럼 순순한 제자를 두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곤 한다. 바울은 다방면에서 제자인 디모데를 가르치고 있다. 디모데 전서 6장을 보면 몇 가지 교훈을 제자에게 주고 있다. 11절을 보면,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라고 기록 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것들”이라는 말씀에 주목해 보아야할 필요가 있다. “이것들”이란 6장 3절부터 10절에 나와 있는 교회생활과 신앙성장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통칭해서 말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통칭해 보면 교만과 탐욕 이다. 교만한자는,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해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6:4-5)”라고 말씀 하시고 계신다. 다음으로는 탐욕 이다.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잉태한즉 사망에 이르느니라”라고 욕심이 사망에 이른다는 것을 분명히 주장하고 있다. 인간은 타락한 이후 인간의 본성이 악하여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가져보고자 하는 욕망 이 생겼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간들이 탐욕을 물리쳐야 할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6:7)”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제자인 디모데를 향해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6:12)”라고 말하고 있다. 운동 경기하는 자도 금메달을 얻기 위해서는 싸움이 필요 하다. 자신과의 싸움, 상대 선수와의 싸움, 환경과의 싸움이다. 천국 가는 길 가운데 싸움이 없을 수는 없다. 오늘 바울은 이러한 싸움을 “선한 싸움”이라고 말씀 하시고 계신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고 물리치시는 싸움을 싸워 승리 하셨다.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이란 사실 아무것도 없다.마지막으로 바울의 교훈은 “영생을 취하라(6:12).”라고 말하고 있다. 영생은 예수 안에 있는 복음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사역과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하겠다. 기독교는 타종교와 다른 절대성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를 믿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사실 이다. 사실 타종교와 기독교를 비교해 보면, 윤리성 부분에서는 타종교 에도 얼마나 많은 사회적인 일들을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인간의 이성을 억제하여 자기완성에 이르는 극기 같은 훈련도 우리 보다는 훨씬 강할 수가 있다. 또한 삼강오륜이든지 장위유서 같은 삶의 질서를 근본으로 하는 종교가 사회적으로 훨씬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들 종교 속에는 영생이 없다. 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기 때문 이다. 이 복음의 진수를 디모데에게 전수 하였기에 바울은 로마의 참수터 에서 눈을 감으면서도 기쁨으로 지산에서의 사역을 마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09-18
  • 은퇴식 소회
    은퇴식을 흔히 retire라는 영어 표현을 쓴다. 사전적 의미로는 ‘맡은 바 직책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서 한가로이 지냄’으로 정의된다. 은퇴와 함께 다양한 면에서 압박과 심적 고통을 밀려 온 것도 사실이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더욱 걱정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다. 어느 포털 사전에 찾아보았더니 남편은퇴증후군이라는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은퇴남편증후군(RHS: Retired Husband Syndrome)은 ‘남편의 은퇴와 함께 아내의 스트레스 강도가 높아지면서 몸이 자주 아프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증상을 의미하는 신조어이다. 이들은 이 시기에 잦은 싸움으로 인해 황혼이혼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라고 나와 있다. 필자의 은퇴식도 공식적으로 2015년8월18일에 있었다. 그동안 학교에 몸담고 있어서 세상물정을 모르고 살았기에 둥지를 떠난다는 것이 새가 어미의 둥지를 떠나서 허허 벌판으로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참으로 귀한 직장에서 몸담았던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은퇴사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2003년부터 오늘까지 한세 공동체와 함께 할 수 있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이 시간들은 저에게는 참으로 과분한 은혜의 시간이었습니다. 먼저는 위로는 어머니 같은 총장님의 사랑과 배려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집에는 각종 주방기구들이 식탁위에 있어서 날마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제 밤에 잠잘 때에 사용한 배게도 총장님께서 건강을 위해서 챙겨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살림살이들을 보면서 어쩌면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 같은 포근함을 느꼈습니다. 또한 형제 같은 우의 속에 근무 할 수 있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에 기도를 모아 주시고, 기쁜 일이 있을 때 함께 즐거워 해 주셨던 모습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사랑을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자식 같은 제자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부자간의 관계란 부모가 부족해도 자식은 부모를 존경과 사랑으로 섬겨 줍니다. 많이 부족했지만 제자들은 저에게 아버지를 대하듯이 깊은 마음을 주셨습니다.결국 위로는 어머니와 같은 총장님의 보살핌, 수평적으로는 형제 같은 동료 교수님과 교직원 선생님, 그리고 아래로는 자식 같은 제자들과 함께 한 시간은 저의 인생 최대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하면서 퇴임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퇴임식을 마치고 점심시간 식탁에 둘러 않아서 들으니 한결 같이 멋있는 퇴임사를 했다고들 한다. 어떻게 그렇게 멋있는 말을 할 수 있느냐고 질문들도 들어왔다. 이는 평소에 생각했던 내용들이라고 말했다. 이래저래 은퇴는 색다른 의미가 있는 경우라고 생각되어진다. 하루 앞서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12층에서는 제자들이 마련한 은퇴식이 있었다. 평소에 학교에서 관심을 갖고 함께 선교를 이야기 했던 제자들 70여명이 모였다. 이 모임을 주선해 주신 분은 필자를 통해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의 베데스다대학교의 총장으로 취임한 정인욱 박사였다. 이 분은 비즈니스를 통해 재력을 쌓았고, 쉽지 않는 시간을 내어서 한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M.Div), 심학석사(Th.M), 철학박사(Ph.D)를 취득하고 미국 대학의 총장으로 취임하신 분이다. 애초에는 학교의 강의실에 모여서 간단한 다과와 함께 석별의 정을 나누고자 했던 의도와는 달리 규모와 장소가 한층 높아지게 되었다.은퇴란 retire라고 했다. 이는 타이어를 다시 갈아 끼우고 새롭게 길을 달리게 된다는 의미를 갖게 된다. 인생을 새롭게 개척할 기회가 주어진 것 같다. 한세대학에서는 총장님의 배려로 초빙교수로 다신 교단에 서게 되었다. 그 길이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학생들과 매일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 준비했던 세계다문화진흥원 사역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다문화 교육이 46차에 걸쳐서 800여명을 훈련 시켰다. 세계로평생교육원과 세계로원격평생교육원을 통해서 한국어교원 양성(3급)을 만들어 해외 선교에 필요한 수료증을 만들어 놓았다. 세계로미디어를 통해서 선교학관련 책들이 출간 되었고, 다문화선교론 출간을 예정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계로선교학교 운영이 기다리고 있다. 차근 차근 그동안 활동하지 못했던 분야를 찾아서 은퇴 이후의 삶을 설계하고 추진하고 싶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09-03
  • 구원의 축복은 선교의 열매
    신앙의 꽃을 무엇인가. 이는 구원의 축복을 받는 것이다. 즉 우리는 무엇 때문에 주일을 지키고,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헌신을 하고, 심지어 오지에 가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비행기 사고로 죽기까지 하는가? 이러한 문제는 결국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구원을 얻어 영원히 사는 영생의 길을 얻기 위함 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따라서 마태복음 16:26에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인간의 구원에 대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계신다.빌립보서 2장12절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사역과(2:5-11), 대속적인 사역의 결과를 통해서 인간이 이루어야할 자신들의 구원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바울은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논의 하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라고 언급하고 있다.감리교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John Wesley는 선제적 은총의 구원을 이야기 하면서 인간이 구원을 받는 과정 가운데 다음의 세가지 역할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첫째는, 구원을 사모하는 열심을 내라. 둘째는, 마음의 문을 여는데 있어서 분명한 결단을 하라. 셋째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자유 의지적 참여라고 말하고 있다.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사역은 인간을 구원 시키는 것이다. 선교지에서 사역을 가다보면 반드시 타종교와 부딪치게 된다.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구원의 문제로 나아가게 된다. 세상의 대부분의 종교들도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 사상이나, 적선을 통한 윤리사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본다. 따라서 좋은 일과 적선을 많이 해야 극락왕생 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사상적 주류가 급기야는 살생을 금지하고, 동물을 숭배하고, 자연을 숭배하는데 까지 이르기도 한다. 이슬람교에서는 다섯 가지의 계울(신앙고백, 적선, 매일 다섯 번의 기도, 금식, 순례)을 지킴으로 천국 간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자력 구원을 말하고 있으며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기독교의 신앙과 배치된다.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만약 범죄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이 없다면 인간은 여전히 죄 가운데서 구원의 감격이 없는 불안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구원 이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인간이 지은 죄 값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형장으로 보내서 피 값으로 인간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고 사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인간이란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구원의 방주에 믿음을 통해서 승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원을 얻기 위한 과정 속에 인간에게 선한 욕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인간이 선한 욕심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 이다. 그것은 구원이 인간에게 얼마나 필요 하느냐의 문제와 직결된다.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적어도 네 가지의 크나큰 은혜가 우리 속에 나타난다. 이는 사죄의 확신, 삶의 목적, 새로운 능력을 공급받는 것, 그리고 평안 이다. 인간은 평안을 소유함을 통해서 얻은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요한복음 14장 27에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원 하지도 말라”라고 말씀 하셨다. 사실 자고 깨고 나면 날마다 우리는 서건 사고를 접하게 된다. 여러 가지 사고를 보면서 우리는 심하게 낙심되기 쉽다. 그럴 때 마다 우리는 분명한 평안의 확신이 있어야 할 줄 믿는다.필자는 필리핀에서 선교사역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 국가는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어서 예수님에 대해서는 어려서부터 학습 받아 익히 알고 있다.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있다. “만약 당신이 지금 죽는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이다. 자신의 구원 문제를 철저하게 생각한 사람은 화신할 수 없다고 고백하면서 복음을 받아 드린다. 우리는 복음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하겠다. 그리고 생명의 복음으로 신앙생활을 활기차게 채워야 하겠다. 또한 주어진 기회를 통해서 선교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08-28
  • 선교를 위한 남은 자의 역할
    금년의 무더위는 지금까지의 상황과는 다른 것 같다. 연구실과 교회 그리고 편안히 쉬어야 할 곳인 집도 무더운 여름을 견디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보도에 의하면 섭시 45도로서 채감온도가 90도를 넘는다는 중동 지역의 이란과 이라크를 보면서 더워진 지구를 실감하게 된다. 급기야 세계의 최고 권력자인 오바바 미국 대통령과 반기문 UN 사무 총장이 회담을 통해서 기후 변화에 대해서 적극 대처하기로 했다는 뉴스도 보인다. 육신이 더위에 고통을 받을 때에 참고 견디면서 살아야 하는 것처럼 영적 세계도 끝까지 견뎌야 할 것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사상이 남은자의 역할이다. 이사야 10:20-23의 말씀은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배교의 위험 속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끊임없이 지키시고 유지하실 것이라는 남은 자의 역할에 관해서 말씀해 주시 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모두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절대적인 신앙에서 떠날지라도 남은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시는 말씀 입니다.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있어서도 순환적인 관계를 가졌던 것을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을 배반하고, 벌을 받고,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하시는 관계를 말한다. 이러한 때에 선지자들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도록 백성들에게 끊임없이 도전을 주었고, 배교의 위험을 공격 하였다.더 구체적으로 남은 자란 어떤 의미를 지닌 용어인가? 열왕기상 19:10에 의하면, 주의 선지 엘리야와 바알을 섬기는 이세벨과의 싸움에서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끓지 아니한 자 7천을 남겨두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만천하에 공포하게 됨을 볼 수 있다. 결국 구약성경을 통해서 남은 자들의 정의를 찾는다면, “남은 자들은 곧 끝까지 견디는 소수의 신실한 자들을 가르치며 이스라엘 중의 이스라엘인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에서의 남은 자란 혈통적인 의미에서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남은 자의 정의를 로마서 9:6에서 잘 말해주고 있는데, “은혜로 택함을 입은 자”가 곧 남은 자라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남은 자의 정의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역사에 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소수의 선택함을 받은 자들을 택하셨음을 보게 된다. 그러면 남은 자들의 역할은 무엇인가? 남은 자들의 역할은 열방에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뜻을 알려드리는 일을 위하여 직임을 받았다. 인간들은 가끔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숭배하는 경우를 수없이 많이 보게 된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우상을 섬기는 일에 극치를 보면, 금송아지 사건을 볼 수 있다. 출애굽 이후 광야생활 가운데 모세는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엘 갔고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 있을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면서 그것으로 신을 삼았다. 결국 그들은 심판을 받게 된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다.남은 자의 역할을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막중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에는 많은 어려움이 도래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남은자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남은 자를 통해본 이시대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영적으로는 침체된 한국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작업을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세속적인 일들 보다는 하나님의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신앙으로 패턴을 바꾸어야 하겠다. 또한 기독교인들로서 우리가 처한 사회적인 관심 상항에 대해서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하겠다. 즉 동성애 문제라든지, 남북의 문제라든지, 사회 윤리와 부의 재분배 문제등에대해서도 할 수 있으면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 되어야 하겠다.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영적 가계를 이어 오듯이, 이 시대를 통해서 선교의 역군으로 쓰임 받는 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08-14
  • 선교지의 한국어 교육
    선교지에서의 교육을 통한 선교 접촉점은 참으로 중요하다. 대부분의 선교사가 말씀 선포 이전에 접촉점을 갖게 되는데 피부와 언어가 현지 사람들과 다른 한국인 선교사는 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거부감을 완화하여 그들과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전략이 한국어의 가르침이다. 필자는 교수 생활을 하면서도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끊임없이 전략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들 요소들 가운데 하나가 평생교육원을 통한 한국어 교원 양성이다. 이는 국립국어원으로 부터 교원양성을 허가 받아서 교원들을 양성하는 기관이다. 이러한 기관을 만들어서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함께 좋은 교수와 일꾼들을 만나서 2013년부터 진행해 왔다. 최근에는 우리 평생교육원에서 교육 받은 두 사람의 선교사가 아프리카의 르완다 지역으로 파송되었다. 지난 7월 19일 두 분의 파송식이 수원명성교회에서 있었다. 그 분들에게 전달해야할 “한국어 3급 교원 교육 수료증‘을 갖고 참여하였다. 어떻게 보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도 있지만 기어이 떠나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우리 기관을 통해서 그들의 사역에 일조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생기는 순간이었다. 필자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을 선교지에 전략화 하기 위해 서둘렀던 이유는 경험에 의한 것이다. 과거 선교 단체에 근무하던 중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활동하기를 원했지만 언어를 배울 길이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중에 노량진에 소재한 SDA영어 학습당을 두드리게 되었다. 그들에게서 영어를 배우면서 언어가 선교의 접촉점을 갖는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이제 세계는 한국어를 신기하게 볼 뿐만이 아니라 배우기를 원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한류의 본질은 문화적 요소이다.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싶어 하고, 배우고 싶어 하고, 경험하고 싶은 것이 그들의 요구이다. 한류를 통해서 화면 속에서 한국을 이해하도록 했다면 이제는 교육을 통해서 배우게 해야 함과 아울러 직접 경험하게 만들어야 한다. 아래의 글은 몇 년 전 국내의 인터넷에 소개된 내용이다. 북동유럽 발트해 인구 320만 명의 나라 리투아니아에도 최근 한류를 한눈에 느낄 수 있는 행사가 열렸다. 빌뉴스대학교에서는 한국어 강좌를 수강하고 있는 학생들이 ‘한빌뉴스’(HANVilnius) 동아리를 결성해 한국 문화 배우기와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빌뉴스대학교는 1579년 설립된 동유럽에 설립된 유서 깊은 대학교 중 하나이다. 15년 전 부터 여러 해 동안 한국어 강좌가 열렸으나 한동안 중단되었다. 그런데 2010년 9월부터 주말학교 프로그램으로 한국어를 다시 가르치고 있다. 빌뉴스대학교는 향후 2-3년 내에 선택과목이 아니라 학사과정 프로그램으로 한국관련 학문이 자리잡길 기대하고 있다. 한국어 수강생들은 함께 정보를 공유하면서 한국을 더 많이 알고, 한국 문화를 익히고 이를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동아리를 결성했다. 최근에 동아리 결성식이 열린 빌뉴스대학교 동양학센터 강의실은 100여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태극기를 벽에 걸고, 또한 스크린에 띠우면서 열심히 준비했다. 창립 회원들은 리투아니아어와 직접 배운 한국어를 사용해 연극적 요소와 함께 다양한 한국 문화를 소개해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특히 스크린을 통해 한국의 대중 가수나 그룹이 등장할 때에는 사방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들 가수들의 실제 공연장에 온 열혈 지지자들을 보는 것 같았다. 함께 아리랑을 부르면서 행사를 마쳤는데 어느 한인회 모임에서보다 더 한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현재 인터넷을 통해 한국 드라마, 영화, 대중가요 등이 주로 리투아니아 젊은이들 사이에 널리 펴져 있다는 것을 실제로 체감할 수 있었다. 동아리 창립 회원이기도 한 리투아니아인 외교관은 한국 드라마는 짧고, 상황전개가 빠르며 서양과는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자막 없이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을 목표로 삼고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필자가 소개한 리투아니아에서의 한글 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의 기대심리를 선교전략으로 연결시켜야 하겠다.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연구원)
    • 칼럼
    • 선교
    2015-07-31
  • 카타콤에서의 주일 예배
    2015년 6월 28일의 주일은 필자에게 매우 의미 있는 날이다. 이 날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로마를 여행하고 있었다. 때 마침 주일날이라 예배를 기획했으나 호텔을 비롯한 여러 장소들이 제약을 받고 있어서 예배처가 마땅치 않았다. 현지 여행 관계자들과 논의 끝에 결국 섭외 된 곳이 카타콤 이었다. 즉 카타콤을 여행하는 동안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예배를 드리자는 것이었다. 카타콤은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안식처’란 뜻을 가지고 있는 카타콤베는 중세까지만 해도 지하묘지로서 알려진 것은 이 묘지뿐이었으나, 16세기에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가 발견되고부터는 모든 지하묘지를 카타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당시 로마의 가난했던 사람들은 가족을 위한 무덤을 땅 위에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돈이 가장 적게 드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이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자연적인 동굴을 이용해서 무덤을 만드는 것이었다. 필자가 탐방 한 곳은 싼 칼리스토 카타콤베(Catacombe di Callisto)였다. 이곳은 우리에게 잘 아려진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말했던 베드로 사도와 주님의 만난 곳을 기념하여 세워진 쿼바디스교회와는 1km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산 칼리스토의 지하 묘지는 로마의 지하 묘지중 최대로 제 1~4 세기동안 여기에 묻힌 기독교인만 50만명에 달한다. 19km나 되는 길이에 터널을 파고 토굴로 만들며 무덤에 홈을 만들어 그곳에 장사를 지냈다. 로마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대단했고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기까지 거의 300년 동안 박해는 끊이지 않았고 박해를 피해 지하로 피하게 되었다.싼 칼리스토 카타콤베(Catacombe di Callisto)는 지하 10~15m의 깊이에 대체로 폭 1m 미만, 높이 2m 정도의 통랑을 종횡으로 뚫어 계단을 만들어서 여러 층으로 이어져 있다. 구아피아 가도 부근에는 대소 25개의 카타콤베가 있고 지하통로의 길이를 합치면 500Km나 된다이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곳은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로서 5층으로 되어 있고, 지하통로의 길이는 20Km이다. 이곳에는 3세기의 교황의 유골이 모두 모셔져 있고, 음악의 수호성자 성체칠리아의 묘도 있다카타콤내의 여러 곳에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곳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증거들이 다양하게 나타나있다. 즉 물고기 그림은 익투스( 그리스어: ?χθ?? 이크투스)로서 성도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사용하여 커뮤니케이션을 하였다. 이 얼마나 크나큰 은혜인가? 초대교회의 신앙이 살아 움직이는 곳에서 주일을 맞이하여 순교와 선교적 열정으로 가득찬 카타콤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다니!. 필자는 시 113편을 중심으로 ‘찬양과 감사’라는 주제를 통해 설교를 하였다. 메시지의 내용은 이렇다. 오늘 시편의 기자도 우리 모든 성도들을 향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특히 시편 113편의 본문은 먼저 “할렐루야”로부터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끝을 맺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생활을 날마다 지속하는가? 하나님의 성호를 우리의 전심을 다하여 찬양해야 하지만, 우리의 이성이 그렇게 찬양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이 있다. 우리의 못난 체면이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우리의 어지러운 환경이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할 이유를 찾아야 하겠다. 하박국 선지자는 우리가 감사해야할 신앙을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7-18).카타콤 속에서의 예배는 성찬식과 함께 끝을 맺었다.“예배는 있으나 영성은 없고 인물은 있으나 인격은 없다. 건물은 있으나 교회는 없고 명성은 있으나 존경은 없다”고 말씀하신 김상복 교수님의 진단처럼 암울한 기독교의 현주소 속에서 카타콤의 신앙으로 회복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아무 흠도 없고 거룩거룩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했네” 찬송과 함께 예배를 마쳤다. 필자의 평생에 이러한 기회를 허락하신 주님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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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4
  •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궁전 속에 신앙 유산
    최근에 학생돌과 함께 크로아티아의 스플릿(Sprit)을 다녀오게 되었다. 스플릿(Split)이라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크로아티아의 수많은 휴양지(休養地) 중의 하나로 생각한다. ‘중부 달마치아(Dalmatia) 해안의 꽃’이라고 표현될 만큼 도시 전체가 고풍스럽고 예쁘며, 주변의 풍광 또한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스플릿은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로 달마티안 지방의 경제, 문화의 중심지다. 이곳도 긴 질곡의 세월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으며 1차 대전 후에는 문화, 언어가 다른 민족과 유고슬라비아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또한 90년대 독립을 위해 싸웠던 전쟁과 그 상흔은 아직까지도 도시 곳곳에 자욱하게 쌓여 있다. 그곳은 한국의 종편 TV에서 소개될 만큼 아름다운 도시였다.그러나 이곳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로마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는 옛 달마티아의 땅이다. 스플리트에는 유네스코(UNESCO) 지정 세계문화유산이자 유럽 전역에 퍼져 있는 로마유적 가운데 가장 보전상태가 뛰어나고 위엄이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디오클레시안 궁전이 있다. 이 궁전은 이곳 출신으로서 로마의 황제가 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정권을 자신의 두 심복들에게 이양하고 말년을 보냈던 장소였다.디오클레티아누스는 누구인가? 284년 로마의 황제로 즉위한 이래로 지속적으로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사람이다. 달마티아 지방의 비천한 집안 출신인 그는 군대에서만큼은 두각을 나타내었다. 로마 제국의 방어를 위해서 남달리 애쓰고 있던 그는 군사적 위기를 상당히 잘 극복해 나가기도 하였다. 로마 제국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해서 285년에 공동 황제를 임명하여 자신의 권력을 나누어 주었다.디오클레티아누스는 재위 기간 초기에는 자신이 부황제로 임명한 갈레라우스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전임 황제들이 가졌던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듯하였다. 그러나 재임 기간의 말년에는 기독교가 로마와 로마의 신들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군대에 복무중인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신들을 인정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신들을 모욕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궁정 내부에 있었던 로마 신들을 모시고 있는 사제들은 불경스러운 기독교인들 때문에 점성술의 효력이 발생하지 못한다는 견해를 황제에게 전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자신이 어떠한 노선을 취해야 할 것인가를 밀레투스에 있는 아폴로 신전에 신탁을 의뢰 했다. 돌아온 대답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게 되었다.디오클레티아누스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궁전과 군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퇴출되었다. 두 번째는 제국의 전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없애는 작업을 진행 하였다. 303년 2월부터는 더욱 무서운 속도를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게 되었다. 교회의 건물을 파괴 되었고, 거룩한 문서들은 몰수 되었다. 성직자들을 투옥되었고, 이교의 신전에 제사를 드리도록 강요 되었다. 일부 신자들은 순교를 감행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당했으며, 또한 신앙을 버렸다.기독교인들을 무섭게 박해하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말년을 보내기 위해서 새워진 성이 크로아티아의 스플릿(Sprit)에 세워진 디오클레시안 궁전이다. 이러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그곳을 방문하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역사는 흘러서 이렇게 무섭게 박해하던 황제의 궁은 쓸쓸한 초가집이 되었다. 그대신 그곳에 우뚝 서 있는 것은 성 도미니우스 대성당과 성 도미니크 수도원과 그레고리우스의 동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그렇게도 무섭게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던 호화로운 궁전은 역사 속에서 유물로만 남아있고, 심하게 박해 받던 신앙의 유물들을 지금까지 보존해 오면서 존경과 사랑 그리고 믿음을 유지하는 도구로 사용되어짐을 느겼다. 역사는 놀라운 것이다. 한때 그토록 무섭게 타올랐던 세상의 힘들은 종이장 처럼 바람에 말라갔지만 위대한 신앙의 유산은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꽃피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세계로선교학교(www.worldc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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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09
  • 가난한 대통령, 가난한 선교사
    세상의 모든 이론들과 직업들은 부의 창출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 이면서도 퇴임을 할 때에는 취임 때처럼 28년된 고물 자가용을 몰고 집으로 향하는 참으로 멋진 대통령이 있었다. 이는 우루과이 무히카 대통령 이다. 세계의 언론은 그 분의 아름다운 퇴임의 모습을 대서특필 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검소한 대통령’으로 불리던 호세 무히카 우루과이 이 1일 퇴임했다. 이날 무히카 대통령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1987년형 하늘색 폴크스바겐 비틀을 손수 몰고 대통령궁을 떠났다. 대통령에 당선됐던 5년 전에도 그는 이 차를 직접 몰고 출근했다. 거리엔 많은 시민들이 나와 “굿바이, 페페(할아버지)”를 외치며 떠나는 대통령을 배웅했다.무히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직원 42명이 관리해 오던 대통령 관저를 노숙인 쉼터로 개방하고 해변 휴양도시에 있던 대통령 별장을 팔아버렸다. 자신은 농가에서 직접 낡은 비틀을 몰고 출퇴근했다. 집엔 가정부도 없어 집수리와 가사노동을 직접 했다. 대통령이 된 뒤 달라진 것이라면 경호를 위해 경찰 2명이 인근에서 대기했다는 것뿐이었다.무히카 대통령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며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돈을 다 갖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자신의 인생관을 밝혔다. 자신의 검소함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세상이 제정신이 아니다. 내가 평범하게 산다고 놀라워하는데, 그런 관점이 오히려 걱정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국민은 그를 열렬하게 지지한다. 물러나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65%에 이른다. 당선 당시 지지율 52%를 뛰어넘는 수치다. 이런 지지율의 밑바탕엔 비단 그의 검소한 모습만 작용한 것이 아니다. 주말에 농사를 짓고, 태풍이 오면 동네 이웃의 집을 고쳐주기 위해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재임 기간 평균 5%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이 세상에는 또 하나의 가난한 자가 있다. 이들이 바로 선교사님이시다. 최근 필자에게 선교지에서 학교를 운영하면서 겪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편지로 써서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그동안 자세한 선교소식을 전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 전합니다. 말씀 드리고 싶었으나 말씀드릴 수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함께 8년 동안 일했던 빌리가 자신이 학교의 이사장이며, 교회의 담임 목사라고 하면서 구테타를 일으켰습니다. 제가 자신을 교회에서 나가게 하려고 했다고 오해하면서 말입니다. 학교의 이사들은 모두 빌리와 그의 아내, 성도들로 구성하였고, 성도중 한명도 빌리의 친척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의 이름만 빌려서 제가 모든 일들을 결정하고 학교의 운영도 하고 후원도 하였지만, 서류상으로는 빌리의 이름으로 되어 있어 학교의 소유권을 주장하면 저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 결과, 제가 지난 8년 동안 운영했던 학교를 빌리에게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지난 1월에 결정된 일입니다. 11월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긴장의 연속입니다. 빌리는 학교가 목적이 아니라, 학교의 이사임을 앞세워 학교 부지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저에게도 제가 교회를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다행히, 학교 부지는 종교법인으로 등록을 해 놓아서 학교 부지는 지킬 수 있었습니다. 선교사가 세운 학교가 빌리에 의해 배신을 당하며 학교 운영을 빼앗긴 사건에 대해 세상 사람들도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시장과 부시장, 시의원들이 나서 중재를 하였고, 빌리와 성도들의 사임을 받아 다시 학교의 운영권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학교는 선생님들의 보고에 따르면 2014-15년 학기에 500만원의 적자를 기록하였습니다. 선생님들 월급, 연금, 의료보험, 주택 부금등 체납된 금액입니다. 그리고, 빌리를 내어보내는데, 아무리 미워도 빈손으로 보낼 수는 없고, 500만원 정도는 합의금으로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아픔을 넘어 갈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알고 계신 다른 성도님들께 함께 벨학교의 소식을 나누어 주시며 선교의 동역자를 모아 주시면 더욱 더 감사하겠습니다. 4월 안에 약 1,000 만원의 선교 후원금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선교 현지에서는 날마다 지원금이 오도록 기도하고 있다. 필자도 후원금 1,000여만원이 당장 해결되어서 잘못된 욕심으로 인하여 선교사들의 피를 빨고 있는 현지인 손에서 학교를 되찾아 정상적인 선교사역을 이어 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특별 은혜를 주시도록 기도했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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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30
  • 메르스의 돌발 출현이 준 교훈
    대한민국은 중동에서 건너온 메르스 라는 질병에 의하여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중동을 여행한 한 사람의 감염이 나라를 온통 뒤집어 놓는 듯 한 기분이다. 대한민국의 국격은 심하게 떨어져서 경제 성장과 IT 그리고 한류와 같은 좋은 이미지들이 하루아침에 기피대상국으로 전락하였다.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되었는가? 이토록 처참하게 망가진 이유가 무엇인가?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같은 질문들이 울분과 함께 내면의 세계에서 소리치고 있다.여기에서 우리는 전문가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언론에 소개된 분석 기사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의 병원 내 대량 감염이 이어지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병원 간 정보교류가 원활하지 못한 점을 꼽는다. 만약 의료기관들이 환자의 메르스 접촉자 관련 정보를 조회해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일찍 가동됐다면, 건국대병원의 76번 환자와 감염 우려자들의 격리 조치는 보다 신속하게 이뤄졌을 것이다. 하지만 조회시스템은 6일 오후 10시 이후에야 가동되기 시작했다. 메르스 첫 환자가 발생한 지 17일 만이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3일 이르면 당일 중으로 의료진용 조회시스템을 가동시키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가동은 3일 이상 늦어졌다. 만약 이 시스템이 일찍 가동됐다면 삼성서울병원의 대량 감염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는 정부의 안이한 대책이었다. 언론을 살펴보면 주무 장관이 의료에 대해서는 무뢰한이라고 하는 평가가 있다. 따라서 보다 선제적인 대책을 통해서 방어에 나섰다면 이렇게 까지 처참한 과정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에 필자도 동의 한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의 ‘의료기관 정보마당’ 내에 메르스 대상자 조회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환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메르스 환자 접촉 여부와 격리유형(시설격리, 자가격리, 격리해제, 능동감시 등), 노출 의료기관, 최종 접촉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이 보다 빨리 운용되었다면 국민들의 불안도 빨리 해소 되었으리라 믿는다. 셋째는 의료진들의 사명감을 정부는 호소했어야 한다. 환자들과 대면하는 의료진의 노고와 전문성을 인정하고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시스템뿐만 아니라 의료진의 문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호흡기질환이 있는 환자의 경우 메르스로 의심하고 대응해야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내과 개원의는 “시스템 속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메르스 감염자의 경우는 의사의 문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하지만 실제 진료시간이 1∼2분에 지나지 않는 현실에서 이게 잘 이루어질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행 의료체계에서는 의료기관이 검색할 수 있는 환자 정보는 해당 기관의 진료기록뿐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조치다. 관리대상 목록에 올라가지 않으면 의사의 꼼꼼한 문진만이 메르스를 가려낼 수 있다.넷째는 병원의 관리체계 확충과 정부의 지원이다. 메르스에 감염되면 환자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중환자실의 경우 감염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병원에서는 중환자실 면회객 출입 때 이상증세를 묻지도 않는 등 메르스 발생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실정이다. 대전의 다른 병원 중환자실의 한 환자 가족은 “의학적으로 면회객을 제한하지 않아도 괜찮은지 알 수 없지만 환자 가족의 입장에서는 병원의 안전 불감증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필자의 자녀 가운데 한 아이가 약학대학을 다니고 있다. 때마침 서울에 속한 한 대학병원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출근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메르스의 공포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집의 일이 된 듯한 불안이 엄습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저녁 딸이이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학장이 카톡을 통해서 학생들의 건강을 염려함과 아울러 의료인으로서의 사명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용인즉 “이러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학생들을 의료인으로 부르신 사명을 잃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딸아이는 그 메시지를 가슴에 안고 메르스 속으로 뛰어 들어 갈 듯한 마음으로 충만 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세상은 우리 성도들의 기도와 위로를 원하고 있다. 우리의 자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활용해 주소서!”가 되어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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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9
  • 자살방지를 위한 교회의 역할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자살율은 OECD 국가 가운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망자 가운데 자살이 5% 정도를 차지하는 등 매우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와 노인 자살, 여성 자살, 연예인 자살의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최근에 서울 문일고 3학년학생이던 김태휘군은 목매 자살하려는 50대를 들어올려 구했다고 한다. 그는 5월 6일 오후 4시 40분경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다 금천구의 한 아파트 앞 정자에서 A 씨(55)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발견했다. 처음엔 몸이 불편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다가가서 보니 목에 끈을 묶고 자살을 시도한 직후였다. 당시 A 씨는 눈을 감고 몸을 움직이며 괴롭다는 듯 신음하고 있었다. 김 군은 얼른 A 씨의 몸을 들고 기도를 확보한 뒤 112에 신고했다. 송호림 서울 금천경찰서장은 “학생의 적극적인 대처로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며 11일 김 군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고 한다. 참으로 귀한 선행이라고 판단한다.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영향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정신병에 의한 것, 우울증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정신병을 낳게 한 것, 그 우울증을 낳게 한 것 가운데에는 사회의 영향이 일부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한국사회는 현대화 이후에 급속도로 발전해 오면서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심한 자기비애 같은 감정들을 경험하게 된다. 최근 케이블 TV의 EBS에서 방영한 남태평양 연안의 주민들에 대한 삶을 방영하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조그만 섬 속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몇가지 종류의 양식을 채집하고, 섬 주변의 바다에서 하루에 필요한 만큼의 고기를 잡아서 생활 하면서도 행복지수가 세계 최대라는 통계치를 본적이 있다. 우리는 소유에 기준을 두는 삶이 얼마나 인간의 삶의 질을 망가뜨리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겠다. 자살은 산업사회에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적인 풍요와 정치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오히려 자살율이 높고, 산업화가 덜 된 나라에서 자살율이 낮은 편이다. 산업화와 자살율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사회는 바로 경제적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제적 풍요로움을 따라가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 이유의 가장 높은 이유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 근거이다.그리고 자살율은 에밀 뒤르케임의 연구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집합의식이 높은 사회일수록, 또는 집합의식을 강조하는 종교일수록 자살율은 낮다. 집합의식과 자살율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뒤르케임은 집합의식이 낮은 사회에서 자살율이 높다고 하였지만 그러나 또한 사회에 의한 비합리적 집합적 강제가 높은 사회에서 자살율이 높다. 미모지상주의 사회일수록, 물가 수준이 높고 과시적 소비가 높은 사회일수록 자살율이 높다.한국사회의 자살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각종 사회 압력을 축소하거나 해체하여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주택 가격, 물가, 교육비용 등을 축소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하며,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집합적 강제력인 미모지상주의, 사회적 과시, 두주불사 등의 사회 압력 역시 축소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자살의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 일 수 도 있다. 최근 한 여학생은 자신의 진심을 몰라준다는 이유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다리 난간에 매달려 자살하려던 여고생이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여학생은 최근 친구와 다툰 후 사과를 했으나 친구가 사과를 받아 주지 않은 것에 속이 상해 투신자살까지 생각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까치발로 다가가서라도 인명을 구하겠다는 경찰관의 기지가 한 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조한 순간이다. 투신을 하려고 망설이는 잠시 동안 경찰관 두 명이 나타났고 한 명이 자살을 기도하는 여학생과 대화하며 시선을 돌린 사이 다른 경찰관이 반대편으로 돌아가 여학생을 재빨리 붙잡아 구조했다.한국 교회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공동체 의식을 높여야 하겠다. 즉 교회가 그동안 가졌던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바꾸어 나감으로서 성도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겠다.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다양한 시도들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상담이라든지, 복지사업 같은 것들을 통해서 참여자 모두는 자신을 오픈함으로서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산다는 의식을 갖도록 해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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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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