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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갈 5:13~14)
-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시키셔서 우리는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율법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할례를 받고 다시 율법으로 돌아간다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구약 시대처럼 율법 전체를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면,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끊어지고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될 것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 이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다면,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인해 나타나는 믿음뿐입니다. 우리의 달려가는 믿음의 길을 누군가가 막아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한다면, 그런 유혹은 하나님이 아닌 어둠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성경은 우리에게, 적은 누룩이 반죽 전체에 퍼져서 부풀게 만든다는 경고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누룩은 어떤 것을 변화시키거나 부패시키고, 점진적인 작용을 통해서 전체를 변화시키기 위해 쓰이는 혼합물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데 사용하는 말입니다. 이 누룩은 천국 비유를 설명할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성경에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누룩 역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본질적인 사랑과 믿음이 아닌, 율법주의자들의 거짓된 종교심과 위선으로 가득한 실상을 숨긴 채 어두운 마음이 사방에 번지도록 하는 죄악성을 누룩에 비유한 것입니다. 성도와 교회 안에서 교회와 말씀의 순수성과 거룩함과 진실된 열심 위에 누룩과 같은 죄와 욕심이 사방으로 퍼져서 개인이나 온 성도들을 혼란하게 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을 것에 대해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즉 개인의 율법적인 성향과 회개되지 않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더럽고 추악한 인간의 정욕과 교만함이 묻어있는 교회와 개인의 빗나간 잘못된 전통을 가르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인 것이며 이는 세상이 좋아하는 일이 되는 것임을 성경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희생과 십자가 사랑이 아닌, 빗나간 종교성을 주장하는 이른바, 할례를 주장하면서 혼란만 일으키는 사람들은 할례의 대상이 되는 그 지체를 아주 잘라 버리기를 바란다고 성경은 강력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거세를 뜻하는 것으로, 차라리 연자맷돌을 매고 물속으로 빠지는 게 낫다는 표현과 동등한 내용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과 그 사랑에 누가 되고 역행하는 어둠의 마음이 되지 않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자유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자기의 욕망을 채우는 기회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겨야 합니다(13절). 성경의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고 말씀하신 한 가지 계명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14절).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우세함을 보이기 위해 서로를 해롭게 하는 마음이 아닌,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의 사랑으로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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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라’(갈 5: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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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오직 한 길’(요 14:6)
- 세상에 많은 길이 있으나 그 길이 모두 옳은 길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은 의의 길로 나아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죄인 된 백성을 구원하려고 찾아오셔서 만백성이 따라야 할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길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지만 쉽지 않은 좁은 길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는 신비한 길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르는 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없이는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탄의 종노릇하며 죽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길, 그들로 하여금 진리와 생명의 길을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수 있도록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멸망의 길과 생명의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명으로 이끄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길은 비좁아서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마 7: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곁길도 있습니다. 우리가 곁길로 가면 길 잃은 양떼처럼 방황하며, 쉬던 곳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나의 백성은 길 잃은 양 떼였다. 목자들이 그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여, 그들이 산 속에서 헤맸다. 양떼가 산과 언덕에서 방황하며, 쉬던 곳을 잊어버렸다.”(렘 50: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만 똑바로 바라보고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9:23) 그 길은 고난의 길이 아니라 영광의 길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귀는 아담을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과 단절되게 하였습니다. 아담은 진리와 생명의 길을 택하지 않고 거짓과 죽음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 타락 이후에 많은 사람이 생명의 길을 찾으려 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길을 제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노력은 헛수고였습니다.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 없이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 주님만이 진리와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녀들에게도 마땅히 걸어야 할 길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늙어도 그 길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걸어야 할 그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라. 그러면 늙어서도 그 길을 떠나지 않는다.”(잠 2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우선순위를 두는 가치관을 가져야 하며, 자꾸 세상을 돌아보면 안 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62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 농부는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면 밭이랑이 굽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세상 관심을 가지고 따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공의를 실행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9장을 보면, 베드로가 주님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는데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28-29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면서 보상을 기대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공로와 노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롬 3:22)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 그리고 나의 십자가의 길 뒤에는 부활이 있고, 하나님 나라의 영생이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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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오직 한 길’(요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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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시 112:1~6)
-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1-3절) 하나님 모시기를 진정으로 귀히 여기며 주님을 존중하고 두려워할 줄 알며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러한 마음과 자세로 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하나님을 자기 정욕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은 이런 두 부류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게 됩니다. 각자 자기를 중심으로 사는 경향이 많다 보니 세상살이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분명한 기준과 지침이 있으니 바로 성경,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가지고서도 신학적인 노선이 나뉘거나, 혹은 자기중심적인 해석이나 적용을 하는 위험도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환경과 마음 밭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 볼거리가 많고 할 거리가 많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뒷전으로 여기기 쉽지만,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삼고, 마음 판에 새기며, 그 말씀대로 적용하며 사는 일은 매우 귀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10월은 종교개혁이 진행되었던 달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 교회의 문에 면죄부 판매에 대한 95개조 반박문을 붙였습니다. 즉 개혁의 주된 배경이 된 것은, 교황청이 성 베드로 성당 건축 자금을 위해 면죄부(indulgentia)를 판매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면죄부 판매를 반재하고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문에 붙인 이 사건으로 인해 루터는 로마 교황권에 정면으로 도전한 인물로 주목받게 되었고, 교황인 레오 10세는 루터에게 칙서를 보내 이단 혐의를 경고했습니다. 루터는 보름스 회의에 소환됐지만, 자신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붙들려 있음을 선포했습니다. 결국 루터는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했고, 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무법자로 선포됩니다. 루터는 처형당할 위험에 처하자 약 10개월간에 걸쳐 이름도 가명을 사용한 채 한 성에 숨게 됩니다. 이 은신기간 동안 루터는 거기에서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게 됩니다. 복음증거와 진리의 선포를 위해 핍박받는 기간은 고통의 기간이지만, 이 기간이 중요한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시간이며, 개인적인 은신기간이고, 우리 삶의 미래를 준비하며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뤄나갈 중요한 시간인 것입니다. 루터는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읽고 이해해야 한다는 믿음으로 성경번역 작업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알 수 없는 말(라틴어)로 거행되는 장면을 보는 예배가 아니라, 민중의 언어인 독일어로 성경이 번역되어 민중들의 손에 하나님의 말씀이 쥐어지게 된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1절).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귀히 여기고 즐거워하며 지혜를 얻기 바라는 진정어린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의 자녀들은 땅에서 부강할 것이며, 정직한 자의 후손들이 복을 받으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의 집에는 부요와 재물이 있을 것이며 그의 의로운 행위는 영원히 남는다는 것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흑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비추시는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3-4절). 하나님 앞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남에게 아낌없이 은혜를 베풀며 꾸어주는 사람과 자기 일을 정직하게 수행하는 자에게는 모든 일이 잘 될 것임(5절)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한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며, 그러한 사람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6절).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며 주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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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시 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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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다윗의 선택’(삼하 24:18-21)
- 오르난은 아라우나의 또 다른 이름이며, 여부스 사람으로서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모리아 산에 타작마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르난의 타작마당은 일찍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린 모리아 산입니다. 그 땅은 하나님의 성전이 들어설 거룩한 장소로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대하 3:1) 본문을 보면,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아뢰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소서 하매 다윗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의 부하들이 자기를 향하여 건너옴을 보고 나가서 왕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이르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하니 다윗이 이르되 네게서 타작 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라 하는지라.”라고 다윗은 말하였습니다. 이 타작마당의 배경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다윗 왕이 인구 조사를 하고 나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어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삼하 24:10)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갓을 보내 세 가지 벌 중 하나를 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년 기근을 당하든지, 원수에게 쫓겨 3개월 동안 도망다니든지, 3일 동안 전염병을 당하든지 선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아뢰어 이르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은 왕이 왕의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은 왕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삼하 24:13)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윗이 갓의 말을 듣고 전염병을 택하자 이스라엘에 3일간 전염병을 내리셔서 7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삼하 24: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 후에 다윗은 갓의 지시에 순종하여 하나님께 제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고 아라우나로부터 타작마당을 샀습니다. 그러자 아라우나는 모든 것을 다윗에게 다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삼하 24:22-23) 그러나 다윗은 내가 값없이 얻은 것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않겠다며 은 오십 세겔을 주고 타작마당과 소를 샀습니다.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윗이 은 오십 세겔로 타작 마당과 소를 사고.”(삼하 24:24) 이 값은 금 600세겔에 해당됩니다.(대상 21:25) 다윗이 엄청난 금액을 주고 타작마당을 산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번제 드리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주님께 온 마음을 드렸습니다. 그렇게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산 다윗은 그곳에 하나님을 위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번제단에 불이 임하였고, 그 땅을 위한 회개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의 재앙이 그치도록 해주셨습니다.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삼하 24: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땅에서 하나님은 불로 현현하셨고, 다윗의 회개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에 내린 전염병을 그치게 하시고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천사에게 명하셔서, 그의 칼을 칼집에 다시 꽂게 하셨습니다.(대상 21:27) 다윗은 회개하는 왕이었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죄를 지적했을 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그 때에 다윗이 나단에게 자백하였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님은 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삼하 12:13)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바로 회개의 눈물입니다. 우리가 후회하면서 살면 과거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면서 살면 현재와 미래의 삶을 열어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으려면,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 앞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행 3: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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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다윗의 선택’(삼하 24: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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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소서’ (시 107:10~17)
-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10-11절) 밝고 환한 아이의 표정과 행동에 눈길이 가는 것은, 그런 모습이 아름답고 좋아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스럼없이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모습 속에는 자유로움과 행복함이 들어있어 보입니다. 이러한 자유로움과 기쁨이 성도 안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이러한 분위기와 환경이 갖춰진 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요? 우리가 살고있는 이 땅에서도 천국과 같은 분위기, 천국과 같은 환경을 닮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상살이를 오래 할수록 쓰디쓴 경험이 많이 쌓이게 됩니다. 야곱이 바로 왕 앞에서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창 47:8-9).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고난의 여정이었으며,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지난 2019년, 영국 런던 부근에서 냉동 컨테이너에 실린 트럭에 39구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집단사망 사건은 불법 이민을 시도하던 중 발생한 참사로, 사망자 전원이 베트남 사람으로 밝혀졌습니다. 사망자는 남성 31명, 여성 8명으로 모두 밀입국을 시도하던 중이었습니다. 냉동 컨테이너 내부 온도는 영하 25도 이하로, 최소 10시간 이상 밀폐된 채 갇혀 있다가 추위와 산소 부족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국은 영어 사용과 일자리 기회가 많아서 불법 이민의 주요 목적지로 꼽히는 곳입니다. 보다 나은 삶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다가 최고로 살기 좋다는 꿈의 나라로 향하기로 결정했을 그 젊은이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영국에서 일자리를 찾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영어도 좀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영국으로의 불법 이민을 위해 상당한 금액을 브로커에게 지불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 젊은이들은 어째서 목숨을 걸고 그러한 길을 택한 것일까요? 비록 적절치 못한 불법적인 방법이지만, 더 밝고 환한 인생, 자유롭고 풍성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자신들이 처해있는 험악한 상황과 험악한 세월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 땅에 더 이상 이런 슬픈 일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 이 세상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밝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빛이 비추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 빛은 예수님입니다. 사람이 어둡고 캄캄한 곳에서 살며, 고통과 쇠사슬에 매여서 사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가장 높으신 분의 뜻을 저버렸기 때문임을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해 줍니다. 그러므로 죄악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자기는 물론, 가족과 연결된 모든 죄악의 사슬이 끊어지도록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리고 고백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통해 우리를 낮추신 것을 깨닫고 속히 순전한 주님의 뜻을 사모하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시며 그 곤경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13절). 우리를 어둡고 캄캄한 데서 건져 주시고, 얽어맨 사슬을 끊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과 험악한 세월을 통과할 때, 온전히 하나님을 향해 외쳐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둠과 사망의 그늘에서 건져 주시며 새로운 소망의 빛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한없는 주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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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소서’ (시 10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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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세 가지 기도’(눅 11:2-4)
- 기도는 하나님과 성도 간의 대화이자 영적 교제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여”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그 이름 안에 모든 복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복음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거짓된 교리와 부정직한 생활을 물리쳐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는 세 가지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첫째,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일용할은 꼭 필요한 우리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새번역은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되어 있습니다. 양식을 위한 기도는 우리에게 필요한 육을 위한 기도이면서 우리 영의 양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육을 위한 양식도 필요하지만 영의 양식인 말씀을 먹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우리에게 매일 새롭게 주시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는 우리의 현실에서 무슨 의미인지 살펴봅니다. 1) 내일에 대한 염려를 잊고 오늘 하루의 삶을 감사하고 만족하라는 것입니다.(마 6:34) 내일은 주님의 것이기에 매일 하루의 삶이 곧 하나님의 은혜임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체적인 삶을 돌보신다는 것입니다. 이단 사상을 갖고 있던 영지주의자들은 영은 선한 것이고, 육은 악하고 무익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체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런 잘못된 사상을 바로잡아 물질을 얻기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3) 양식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용할 양식은 노력해서 정직하게 얻어야 합니다. 4) 육의 양식뿐만 아니라 영의 양식까지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하고, 직장도 있어야 합니다. 학교 등록금, 병원비, 사업, 취직 등을 위한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6) 매일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하루 먹을 양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생활할 때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셨는데, 하루분만 거두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루분의 만나를 거두었습니다. 욕심 많은 사람은 많이 거둬서 쌓아두고 먹으려고 했지만, 그 음식은 하루만 지나면 부패되어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출 16:15-20) 둘째, 우리 죄를 용서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고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행하신 용서를 배워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눅 23: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실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가족, 이웃, 민족 등 다른 사람의 죄도 같이 통감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란 사람이 하나님께 지고 있는 부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는 뜻은, 우리가 하나님께 빚지고 있는 모든 부채를 탕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빚진 죄인들입니다. 우리의 죄를 값없이 용서받아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셋째, 시험에 들지 말게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시험은 다양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항상 공격하며 넘어뜨립니다. 시험에는 test와 temptation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시험은 ‘유혹’입니다. 유혹은 상대방을 멸망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죄에 빠지게 하는 시험입니다. 즉 구원의 은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지요. 가룟 유다는 마귀의 유혹에 빠져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 13:2)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예수께서 장차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하며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씀하시며 물리치셨습니다.(마 16:21-23) 마귀는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도 유혹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을 철저하게 지키며,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마 2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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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세 가지 기도’(눅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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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 (시 127:1~5)
-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1절)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과 진정한 자유는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하면 즐겁고 기쁘고 평안이 와야 되는데, 실상은 그 반대인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사탕을 마구 먹으면 치아가 상하듯이, 원초적인 교훈이지만 어른들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 먹거나, 행동하게 되면 반드시 쓴잔을 마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악과 타락으로 내쫓긴 후의 세상은 문명과 기술이 발전하긴 했지만, 사람은 여전히 이 땅에서 수고로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으며, 죽기까지 모진 고통을 만나며 살게 됩니다. 창세기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에게 앞으로 임할 고난에 대해 말씀했는데, 그 말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 3:16-18) 그러므로 사람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자기가 작정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그 일을 허락하셨는지, 즉 하나님께서 작정하셨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주의 말씀을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들을 향해 그들은 더 이상 종이 아니고 친구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5)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나 계획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즉 믿음과 순종의 사람은 그의 기도가 공중을 맴도는 것이 아니고, 주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지나간 삶에서 어느 정도로 기도했는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기도 없이 집을 세우고, 기도 없이 결정하고, 기도 없이 돈을 쓰고, 기도 없이 계획을 세울 때가 너무나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보다는 광고나 소문을 듣고 그에 따라 살아갑니다. 기도보다는 사람의 말을 듣고 결정할 때도 많습니다. 혹은 결정을 위해 사람을 의지할 때도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환경을 중심으로 자기의 인생을 비교하거나 재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한 비교의식입니다. 심지어는 근면해서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는 사람일지라도 그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자기 욕심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는 헛되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비추어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헛된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정욕이 이끄는 대로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열심을 내다가 세상을 떠났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러한 삶을 여전히 유지하며 사는 경우도 많은 것입니다. 우리의 열심과 수고가 하나님의 뜻과 연결된 것이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열심과 수고가 어두운 곳, 땅속 같은 곳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살아생전에 하나님을 기뻐하고 경배하며, 주님의 뜻을 나의 소망과 소원으로 받아 수행하기를 소원해 봅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기간과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뜻을 따라 세워져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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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 (시 1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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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영생을 얻으려면’(마 19:16-22)
- 그리스도교는 영생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선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단순히 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생명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께 와서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질문하였습니다. 그는 영생을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이신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께서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17b절)라고 말씀하셨을 때 어느 계명인지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십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부자 청년은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20절)라고 말하였습니다. 부자 청년은 계명을 지킴으로써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예수께서는 영생을 얻는 길은 율법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는 순종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에서 보화가 주님을 따르는 자에게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영생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재물에 사로잡혀 있으면 주님을 따를 수 없고, 영생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라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앞서가시는 주님을 뒤따름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는 제자들이 결단한 것처럼 주저 없이 따라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막 1:17-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은 그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즉각 순종하고 따라야 합니다. 즉 율법을 지키더라도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르지 않으면 결코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 3: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선 십계명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영생에 이르는 데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온전하다’는 인격적인 온전함을 뜻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데’라는 뜻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단지 율법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르는 데 있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따르라”는 ‘함께 가다, 뒤따르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평생 예수와 함께 가며, 예수를 뒤따르며 닮아가는 참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얻으려면 “나를 따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부족한 자를 믿고 불러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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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영생을 얻으려면’(마 19: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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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바리새인 벗어나기’ (눅16:10-1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15절) 한 계단을 올라간 사람은 그 다음 계단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은 큰 것에도 충성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사람은 큰 것에도 불의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마음가짐 하나, 행동 하나 하나는 모두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행동이 모두 하나님의 순전한 것으로부터 나오는 마음과 행동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재물은, 하늘의 보화 즉 복음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것임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 안에는 재물의 가치를 너무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해서 그것을 의지하지 말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자리로 오면, 재물에 몰입하는 정도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두 주인’을 재물과 하나님으로 보고 있습니다. 과연 말씀대로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한쪽으로 심히 쏠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것은, 그것이 물질이라도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맡겨주신 모든 것을 정욕적이거나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바로 청지기적인 자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환경과 건강과 물질과 명예 등 모든 것을 활용하고 운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한 것임을 반드시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게 그리스도인다운 삶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서, 진리의 말씀이지만, 현실과 사뭇 동떨어져 있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 드문 현실에 살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돈을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귀히 여기는 사람은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일지라도, 그것이 재물에 대한 교훈일 때, 즉시 그 말씀을 듣고 속으로 비웃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이러한 동작을 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교인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자기 스스로를 옳다 여기는 마음은 자만함에서 교만함으로 이어지는 마음입니다. 잠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겸허와 겸손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옳게 여기거나 두 주인을 섬기려는 마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자세히 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높임 받음으로 하나님께 미움받게 된다는 말씀에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겸손함으로 살아가며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가치를 가장 귀하게 여기며 생활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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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바리새인 벗어나기’ (눅1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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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예수님의 치유 사역(눅 18:35-43)’
-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의 치유 사역 열여덟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 치유, 백부장 하인 치유, 두 눈먼 사람 치유, 손마른 자 치유, 간질병 환자 치유, 여리고 눈먼 사람 치유, 중풍병자 치유, 거라사 광인 치유, 회당장 딸 치유, 12년 된 혈루증 여인 치유,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 치유, 귀먹고 말더듬이 치유, 벳새다 눈먼 사람 치유, 귀신들린 아들 치유, 바디매오 치유, 안식일에 수종병 치유, 열 명 나병환자 치유, 38년 된 병자 치유입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여리고 가까이 이르셨을 때, 어떤 눈먼 사람이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외치면서 예수님을 뒤따라왔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라고 물으시자, 그는 “주님, 내가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눈을 떠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곧 보게 되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병고침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사람들의 불규칙적인 생활, 과식과 과로 등 무질서한 생활이 질병을 일으킵니다. 질병은 우리가 범하는 죄 때문에 오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시고 “보아라. 네가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 그리하여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생기지 않도록 하여라.”(요 5: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질병에서 벗어가는 길은 주님께 나아와 죄를 회개하면 됩니다. 회개는 이제부터는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통치를 받겠다고 결단하는 행위입니다. 회개하면 우리의 영혼육이 새로워지고, 편안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행 3:19) 모든 질병이 다 사람의 죄 때문에 온다고 할 수 없습니다. 죄와 상관없이 올 수도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 눈먼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드러내시려는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처럼 질병은 주님의 뜻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허용되기도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질병은 마귀의 억눌림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는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행 10: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도록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죄를 자기의 몸에 몸소 지시고서,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가 죄에는 죽고 의에는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매를 맞아 상함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습니다.(벧전 2:24) 그래서 우리가 질병으로 소망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질병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함께하시면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그 고통에서 건져주시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주님을 경외할 때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할 것이니 너희는 외양간에서 풀려 난 송아지처럼 뛰어다닐 것이다.”(말 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의로운 해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질병 중에도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병은 다 치유받을 수 있을까요? 주님은 모든 병을 고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뜻에 따라 치유를 허락하지 않으시기도 합니다.(고후 12:9) 그래서 질병 치유를 위한 기도가 생각대로 응답받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질병이 치유되지 않을 때 그 사람의 믿음이 부족하거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몸에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질병을 위해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기도는 응답받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바울에게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드러나고 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가시가 자기를 겸손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크게 기뻐하였습니다.(고후 12:7-10) 우리도 질병이 낫도록 간절히 기도했지만, 치유받지 못하더라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감사할 때 주님께서 가장 선하게 인도해 주실 줄 믿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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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예수님의 치유 사역(눅 18:35-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