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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소, 상소와 재판관할에 관한 소고(하)
    상소 당사자 아닌 외인 시벌령은 불법폭거재판국 비용 총회 부담 헌법규정 국이 짓밟아 (승전) 원판결이 없으니 총회가 접수하여 판결한 상소장은 상소장일 수가 없는데, 그래도 상소장이라고 우긴다면 속임수 상소장이요, 원판결이 없으니 상소기일(판결 후 10일 <권 제9장 제96조>) 자체가 있을 수 없거니와, 법은 판결 후 10일 이내에 “상소인은…상소통지서와 상소이유 설명서를 본회 서기(서기가 별세하였거나, 부재, 혹 시무하기 불능한 때에는 회장에게 제출한다)에게 제출할 것이요, 그 서기는 그 상소장과 안건에 관계되는 기록과 일체서류를 상회 다음정기회 개회 다음날 안에 상회서기에게 교부한다”(권 제9장 제 96조)고 하였으니, 상소 성립의 첫 단계가 ‘후 10일’ 이내에 상소인이 상소통지서와 상소이유 설명서를 본회서기에게 제출한 여부로 결정된다 하겠는데, 이 사건 상소인은 총회재판국이 판결문을 송달해 온 오늘에 이르기까지 본회 서기에게 상소통지서 등 상소관계 문서를 제출함이 없은즉 속임수 상소장에 따라 판결한 총회재판국은 그 속임수 상소마저 성립되지 아니한 상소를 판결함이 되었는데, 그래도 총회재판국 판결이라고 그 효력을 주장하겠는가?주문1: “김 씨의 ○○교회 위임목사직은 상실되었다” 폐당회 후 2년이 경과되었으면 위임해제가 되었다는 판단은 정당하다. 굳이 무슨 판결이 있어야 위임이 해제되는 것이 아니고 2년 경과와 동시에 자동 해제되는 것이니 말이다. 주문2:“2016년 11월 6일 ○○교회에서 가진 임직식은 무효다” 즉 이유 3이 밝힌 바대로 “위법한 당회에 의한 공동의회에서 결의된 임직…”이기 때문이라 함인데, 폐당회로 위임이 자동해제 된 후 노회가 그에게 당회장권을 주었다면 정당할 수 있으려니와, 그렇지 않다면 ○○교회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무임목사가 ○○교회의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장로와 권사를 선거하였으니, 공동의회 자체가 불법이므로 임직식을 거쳤다고 해서 합법화 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위에서도 언급한 바대로 순서 중 공포가 당회나 노회의 이름으로가 아니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공포(표준예식서 p.44 동 p.79)하였으니 교회정치 문답조례 323문답은 비록 노회를 속이고 받은 목사임직이라도 노회가 임직 하였으니 유효하다고 하고, 속인 일이 드러났으니 즉시 면직하는 것이 옳다”고 교훈한다.주문 3: “임직식(주일) 순서를 담당한 김○○, ○○진, 정○○, ○○철, ○○귀, ○○영, 류○○ 씨를 ○○노회는 적법하게 치리하고 2017년 9월 5일까지(필자 주:2017년 총회소집 일이 9월 18일이니 총회회집 이전이다) 총회로 보고하라”고 하였는데, 첫째 이 사건 총회재판국 판결은 9월 18일에 회집되는 제102회 총회에 보고하여 채택되기 이전인 예심판결이요 확정판결이 아닌데, 그래서 법은 “총회재판국의 판결은 총회가 채용할 때까지 당사자 쌍방을 구속할 뿐이다”(권 제13장 제138조)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예심판결의 집행을 하회에 명할 수가 있는가? 둘째로 하회의 명령을 발할 수 있는 명령권 행사의 주체는 상회이지 상회의 상비부나 어떤 위원회가 아니다(권 제4장 제19조) 그런즉 주문3에 임직식(주일) 순서를 담당한 김○○목사 등 목사 7인을 적법하게 치리하고 보고하라는 총회재판국의 명령판결은 권원 없는 자들의 권리행사이니 당연무효로 돌아가게 된다. 셋째로 상소란 상소인과 피상소인 간의 다툼인데 이 사건 상소장에 상소인은 ○○교회 시무집사이고, 피상소인은 ○○노회 김○○와 ○○진(동 노회의 노회장) 두분이니, 두분에게 대하여 “적법하게 치리하고… 보고하라”고 하였다면 일단 이연(理然)하다 하겠으나, 이 사건 상소와 무관한 다른 5인 목사까지 적법하게 치리하라 함은 법 밖의 일이라 할 것인즉, 역시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본다. 그리고 위 피상소인 두분도 성립되지 않은 상소판결이니 역시 무효이다.또 주문4: “재판비용은 피상소인이 부담하라”고 하였는데, 세상나라 재판에서는 패소자에게 재판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판결을 하고 있거니와, 교회헌법에 의한 재판에서는 “재판국 비용은 총회가 지불한다”(권 제13장 제142조)고 규정되어 있어 총회의 역대 판례에 재판비용 관계 판결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그런데 제94회 총회(2009년)에서 이른 바 상설재판국을 설치한다며, 헌법규정은 그냥 두고 총회규칙만 바꾸고, 제소자가 400만원과 함께 상소하는 경우 총회서기가 그 상소장을 접수하여 헌의부 실행위원회를 거쳐 총회재판국에 보내면 그것이 마치 헌법과 규칙대로 총회가 재판사건을 총회재판국에 위탁한 것처럼(권 제13장 제134조 2, 총회규칙 제3장 제8조 3의 14) 총회가 회집되기도 전 총회 모르게 판결한다며 그것을 상설재판국 운운하는데, 상설재판국이란 총회규칙(제3장 제8조 1의 14, 3의 14)대로 연조(年組)에 따라 항상 설치하는 재판국이란 뜻인데, 위와같이 상설재판국의 법의(法意)를 곡해하는 상황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찌되었든지 제소자에게서 400만원을 받고 있거니와 세상나라 재판에서와 같이 패소자에게 재판국 비용을 부담케 할 수 없음은 법은 이를 총회가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즉 “재판비용을 피상소인에게 부담하라”는 판결도 세상나라 재판이라면 옳다 하려니와, 교회재판에서는 불법무효일 수밖에 없게 된다. 주문 5:“위 사항을 이행치 않을 시 ○○노회의 모든 행정을 중지한다”고 하였는데, ○○노회의 행정은 바로 그 노회의 고유한 특권인데(정 제8장 제2조), 즉 침해를 받지 아니하며 어떤 방도로도 빼앗기지 않는 그 회민의 권리라고 해서 고유한 특권인데, 이 권한을 어떻게 중지 시키는가?적용법조문: “권 제99조, 2의 4, 동 제139조, 제60회 총회결의 제41, 63, 84회 총회결의에 의거…”라고 하였는데, 권 제99조 2의 4는 재판절차 규정이지 범행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규정이 아니며, 동 제139조도 재판국서기의 사무관계 규정이지 역시 범행의 성립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규정이 아니다. 다만 주일에 주일예배 외의 임직식이나 축하식 등은 다른 날에 함이 옳다는 취지의 총회결의를 적용법조문에 함께 게재하고 있는데, 그 취지는 이해할 수 있을지언정 엄격한 의미에서 총회결의가 법조문은 아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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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22
  • 학대를 받을수록(출 1:1-14)/ 이 선 규 목사
    출애굽기라는 책은 그 이름이 그 성격을 나타내 주고 있다. 엑소더스는 “떠남” 곧 탈출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그 백성의 탈출에서부터 시작한다. 탈출이 없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 역사는 성립되지 않는다 .제1의 탈출 이것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내려 간지 430년 만에 모세를 통한 역사적 탈출을 말하고, 제2의 탈출 복음적 탈출, 이것은 예수님의 초림으로 12사도들의 유대 종교에서부터 시작하여 1517년 루터의 종교 개혁을 탈출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을 복음적 탈출 이라고 할 수 있다.제3의 탈출, 이것은 마지막 때 두 증인을 통하여 창녀 바밸론 에서의 탈출을 의미한다(계 8:4).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에서 40년 연단을 받은 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신약교회가 물과 성령으로 중생한 후 광야 같은 세상에서 많은 시련과 연단을 거치는 경험을 이룬 후에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 땅에 이루어질 가나안에 들어가는 모형인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당한 모든 일들이 본보기가 되고 또 세상의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에게 훈계로 기록 되었다고 하였다(고전9:11).신앙은 끊임없는 탈출의 과정이다. 이제 우리는 출애굽기의 제1장에서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알아보는 동시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신약교회 마지막 시대의 7가지 동질성을 알아보고 제3의 탈출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출애굽기는 야곱과 함께 애굽에 내려간 이스라엘 아들들의 명단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6절).이름들은 이러하니 이것은 창세기의 연속 편으로 본서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여러 이름들을 나열하거나 어떤 독특한 족보를 제시하는 경우는 지금까지의 역사를 일단락 짓고 그 이름에 근거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됨을 시사해 준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은 야곱의 후손들에 의한 출애굽이라는 새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 나열된 명칭들은 나이나 출생 순서에 따라서 기록되지 않고 모계를 따라 정실 레아와 라헬의 아들들로부터 시작되어 그 여종 빌하 등의 이름이 차례대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본문은 야곱의 후손들에 의한 출애굽이라는 새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각자 자기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이 주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속담을 뒤 바꾸어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당신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시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무척이나 화를 낼 것이다.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가죽을 남기기 위해서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은가? 전도서 7:1은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 보다 낫다고 했다. 여기서 기름이라는 것은 향유로서 곧 값진 재산을 가리킨다.사람은 동물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 자기 이름을 남기게 마련이다. 이렇게 남긴 이름 가운데는 정말 흐뭇한 이름, 두고두고 기억하고 픈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있다.그런가하면 반대로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이름을 남기는 자도 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이름을 남길 것인가? 바울은 우리가 남길 수 있는 아름다운 이름의 내용들을 고린도후서 6장에서 이렇게 알려 주고 있다.“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거짓 없는 사랑, 이것이 바로 우리 크리스천 이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출애굽기 특강을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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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22
  • 고소, 상소와 재판관할에 관한 소고(중)
    원심판결 없는 상소사건은 속임수 상소사건총회는 고소 못받고 상소만 받는 최고치리회 (승전)어느 노회에서 접수가 거부된 집사의 고소장에 동일 노회에 속한 목사 7인이 피고가 되었는데, 내용인즉 폐당회 후 2년이 경과되어 위임이 자동해제되었는데도 그 목사가 공동의회를 소집하여 집사, 권사 등 직원을 선거하여 관계과정을 거쳐 어느 주일에 임직식을 거행하였는데, 그 노회 소속 목사 도합 7인이 예식순서를 맡아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고는 피고들을 시벌해 달라는 내용으로 고소장을 노회서기에게 제출하였더니, 그대로 반송되어 오매, 이번에는 노회가 고소장 접수를 거부한다는 뜻을 밝혀 성소장을 작성하여 400만원과 함께 총회본부에 제출하였더니, 엊그제 총회재판국에서 상소인인 그 집사와 피상소인인 목사 등에게 5개 주문 3개 적용법조문으로 된 판결문이 교부되었다고 한다.「주문」 1.김○○ 씨의 ○○교회 위임목사직은 상실되었다. 2. 연, 월, 일 ○○교회에서 가진 임직식은 무효다. 3. 임직식(주일) 순서를 담당한 ○○○ 등 7인을 ○○노회는 적법하게 처리하고 금년 9월 5일까지 총회로 보고하라. 4. 재판비용은 피상소인이 부담하라. 5.위 사항을 이행치 않을 시 노회의 모든 행정을 중지한다.「이유」: ○○교회 위임목사 ○○○씨는 폐당회 후 2년 이상 경과하였다. 2. 주일에 임직식을 할 수 없다는 총회결의(제 41, 63, 84회)를 위반하였다.「적용법조문」: 권 제99조 2의(4), 동 제139조, 제60회 총회결의 제41, 63, 84회 총회결의에 의거,먼저 이 사건이 총회가 접수하여 재판할 수 있는 상소건인지 여부를 먼저 본다. 첫째로 상소란 “…소송사건에 대하여 판결을 취소하거나 변경하고자 하면 상소하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없고…”(권 제9장 제94조) 라고 하였는데, 이 사건 관계노회에서는 부당한 고소로 여겨 고소장 접수를 거부한 적은 있으나, 판결한 일이 없었다고 하니, 총회가 접수하여 총회재판국이 판결한 이 사건은 상소건이 아니다. 취소하거나 변경할 원판결 자체가 없었으니 말이다. 둘째로 하회가 판결한 후 그 판결의 변경을 구하는 정당한 상소라고 가정해도 상소통지서, 상소장, 상소이유설명서를 상소기일(후 10일) 내에 하회서기에게 제출 하는 것이지(권 제9장 제96조) 총회에 바로 내는 것이 아닌데, 총회에는 제출하고 노회서기에게는 제출하지 않았으니 상소가 가능한 경우로 본다고 해도 상소가 성립된 것이 아니다. 노회서기에게 제출된 고소장은 부당한 것으로 여겨 반송한 적은 있으나 상소관계 문서는 노회서기에게도 제출한 일이 없으니 말이다. 셋째로 이 사건을 상소 아닌 고소건이라 가정해도 교인의 재판관할은 소속 지교회 당회이고, 목사의 재판관할은 소속노회이니, 교인을 피고로 한 고소는 소속당회에서 받아 재판하고, 목사를 피고로 한 고소는 소속노회에서 받아 재판하게 되니,(권 제4장 제19조) 총회가 교인관계 고소나 목사관계 고소를 직접 받는다면 관할위반이요 하회의 고유한 특권에 대한 침탈이 되므로 “총회는 직접 고소를 받을 수 없다. 총회에는 교인과 목사에 대한 원치리권이 없기 때문이다(정문 430 문답 참조). 넷째 그러면 총회는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는가? 아니다. 총회는 3심제도에 의한 최종심 치리회이니, 원치리권(즉 교인이나 목사를 직접 다스리는 치리권, 그것은 당회와 노회의 것이요 총회의 것이 아니니)이 없어 직접 고소를 접수하여 재판할 수는 없으나, 하급심 판결의 취소나 변경을 구하는 상소건(고소건이 아님)을 접수하여 판결로 사건을 종결하는 최종심 재판권이 있을 뿐이다.「필자의 소견」: 당회가 정단한 문서인데도 접수를 거부하면, 당회장과 시찰장이 경유했으면 (혹시 경유 거부를 당했으면 그 사유를 부전(附箋)하여) 노회서기에게 제출하면 부당한 내용이 아닌 이상 노회가 접수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노회가 정당한 문서에 대하여 접수를 거부하면 모두 총회가 받아 처결해야 한다고 했을 경우, 가령 어느교회에서 제출하는 장로선거청원서를 노회가 접수 거부하여 부전 붙여 총회에 내면 총회가 접수하여 총회가 지교회 장로선거청원건을 허락하겠는가? 목사위임청원을 노회가 접수 거부하여 부전을 붙여 총회에 내면 총회가 접수하여 지교회의 목사위임을 총회가 허락하겠는가? 만일 그럴 수가 있다고 하면 총회 100년 역사에 왜 총회가 지교회 장로선거를 허락하고 목사위임을 허락했다는 기록이 없는가? 그렇게 하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총회는 그런 불법처결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그러면 노회의 고소장 접수 거부로 사건이 끝나는가? 아니다. 문서를 접수하는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그 문서가 비록 고소장이라고 해도) 아직은 행정적인 결정이지 재판사건의 처결이 아니다. 법은 “…소원은 행정사건에 대하여 하회가 그 책임을 이행치 아니하거나, 위법한 행동이나 결정에 대하여 변경을 구하는 것이다. 폐회 후 그 회를 대리하는 재판국에서 결정한 행정사건에 대하여도 본회 결정에 대한 것 같이 상회에 소원할 수 있고…”(권 제9장 제84조)라고 하였으니, 접수를 거부한 행정처결의 변경을 구하는 소원장을 총회에 제출할 수 있고, 총회는 그 소원건을 심리하여 접수 거부가 정당하다고 소원을 기각할 수도 있고, 접수 거부 결정을 취소하고 접수하라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장로선거청원이나 목사위임청원은 물론, 접수 거부를 당한 목사관계 고소건도 불가불 노회가 접수하여 심리 판결하게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노회가 판결하기는커녕 고소장을 접수한 일도 없으니, 취소나 변경할 원판결이 없는데도 상소장을 받아 판결하였으니 불법이요, 상소기일 이내에 상소통지서와 상소이유설명서를 본회서기(서기 유고시는 회장)에게 제출하는 것으로 성립되는데(권 제9장 제96조) 본회 서기나 회장에게 상소관계 문서를 제출하지 않았으니, 결국 성립되지 아니한 상소를 받아 판결하였으니, 더 나아가 그 주문이나 판결 이유나 적용법조문을 살필 것도 없는 불법무효가 아니겠는가? 다만 꼭 한마디 첨언하고 싶은 것은 장로, 집사임직식이나 권사취임식에서의 공포가 당회나 노회의 이름으로가 아니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공포하노라”(표준예식서 p.44, 동 p.79) 하였으니, 정문 323 문답은 “비록 노회를 속인 장립이라도 노회가 장립 하였으니 유효하다고 하고, 그러나 즉시 면직하는 것이 옳다”고 한 교훈도 한 번 생각할 일이라고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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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5
  • 고소·상소와 재판관할에 관한 소고(상)
    총회가 고소 받아 처결한다는 오류규정 53년 방치인간적 약점 내포된 치리회 결의, 3심제의 바탕 합동측 총회헌법 정 제12장 (총회) 제4조(총회 직무)에 의하면 “총회는 소속교회 및 치리회의 모든 사무와, 그 연합관계를 총찰하며 하회에서 합법적으로 제출하는 헌의와 청원과 상고와 소원과 고소와 문의와 위탁판결을 접수하여 처리하고, 각 하회록을 검열하여 찬부(贊否)를 표하고 산하 각 교회 간에 서로 연락하며, 교통하며, 신뢰하게 한다”고 규정한다.그런데 같은 총회헌법 권 제4장 제19조에 의하면 목사에 관한 사건은 노회 직할에 속하고(필자 주: 목사의 재판관할은 목사 소속노회라는 뜻이다) 일반신도의 관한 사 건은 당회직할에 속하나(필자 주: 일반신도의 재판관할은 그 신도의 소속 당회라는 뜻이다) 상회가 하회에 명령하여(필자 주: 하회의 명령하는 일은 상회요, 상회의 위원회나 상회의 부서가 아니다) 처리하(라 자가 빠졌다)는 사건을 하회가 순종치 아니하거나, 부주의로 처결하지 아니하면 상회가 직접 처결권이 있다”고 규정한다.우선 헌법 조문부터 바로잡는다면 정 제12장 제4조 「총회의 직무」에 …하회에서 합법적으로 제출하는 헌의와 청원과 상고와 소원과 고소와 문의와 위탁판결을 접수하여 처리하고…”라고 하였는데, 이 조문에 「고소」가 들어 있는 것은 잘못이다. 총회는 원헌법으로 보아야 할 1922년<대정 11년> 11월 18일 발행 「조선예수교 장로회 헌법(정 제12장 4. 총회직무) 이래로 역대 총회록에 이 조문을 변경한 일이 없는데, 통합측이 갈린 후 1960년 12월 13일에 고신측과 합동하고 발행된 「신조, 정치 및 헌 법적 규칙」 (1964년 5월 15일 발행)에 「고소」가 들어갔고, 그 후 53년이 지난 오늘까지이 잘못이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권 제4장 제19조에서 “…상회가 하회에 명령하여 처리하는 사건…”은 사실상의 원 헌법인 1922년 판 헌법 이래로 “…상회가 하회에 명령하여 처리하라는 사건”이었는데, 1993년 판 헌법 이후 “…상회가 하회에 명령하여 처리하는 사건…”으로 “라”자가 빠졌으니, 벌써 24 년이 흘렀는데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 현행대로 “…상회가 하회에 명령하여 처리하는 사건…”이면 사건 처리의 주체가 상회가 되고, 원 규정대로 “…상회가 하회에 명령하여 처리하라는 사건…”이면 처리할 치리회가 상회의 명령을 받은 하회이니 이것이 옳은 것이란 말이다.이제 조문의 내용을 보면 첫째로 정 제12장 제4조에 “…하회에서 합법적으로 제출 하는 헌의와 청원과 상고와 소원과 고소와 문의와 위탁판결을 접수하여 처리하고…”라고 하여 총회가 고소를 접수하여 처결하게 되었는데, 역대 총회록을 다 뒤져도 이미 위에서 본 것처럼 총회의 직무에 고소를 접수하여 처결토록 하는 헌법을 개정한 적이 없으니 사실상 원헌법인 1922년 판 헌법(고소가 들어 있지 않다) 그대로가 옳고, 둘째로 법이 정한 재판관할이 일반신도는 그 신도가 소속 된 지교회 당회요, 목 사는 그 목사가 소속된 소속노회이다.(권 제4장 제19조). 바꾸어 말하면 일반신도를 피고로 하는 고소는 피고가 속한 소속지교회 당회에서만 접수하여 처결되고, 동등한 심급인 다른 당회들은 물론, 노회 총회도 일반신도 관계 고소를 접수하여 처결할 수 없음은 당회의 직무와 직권은 오직 소속 당회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권이기 때문이다(정 제8장 제2조 1.). 그리고 목사를 피고로 하는 목사관계 고소는 그 피고가 속한 소속 노회에서만 접수하여 처결되고, 하회인 당회들과 동등한 심급인 다른 노회들은 물론 상회인 총회도 목사를 피고로 하는 목사관계 고소를 접수하여 처결할 수 없음은 노회의 직무와 직권은 오직 소속 노회만 가지는 고유한 특권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장로회정치 체제가 당회, 노회, 대회, 총회 등 각급치리회의 직무와 직권을 고유한 특권이 되게 했다는 뜻은, 치리회마다 가지는 직무와 직권이 다른 아무 데에도 없게 했을 뿐 아니라, 하회 상회를 불구하고 다른 아무 회가 아무런 방도로도 이를 빼앗을 수 없고, 빼앗기지 않는 권세요, 관할범위 안에서는 마치 소왕국과 같아서 간섭이나 억압이나 침해를 받지 않는다는 뜻에서 고유한 특권이다.그러나 고유한 특권을 가지고 통치권을 행사하는 목사와 장로들이 인간적인 약점과 분리될 수 없으므로,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의 뜻을 판단함에 있어서 오실(誤失)을 면할 수가 없다는 입장에서는, 당회의 잘못은 노회가 바로잡고, 노회의 잘못은 총회가 바로잡게 하는 3심제도 원용이 불가피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각급치리회마다 소왕국 같아서 아무런 간섭없이 전권으로 일을 처결하나, 상회의 감독을 받는 일은 배제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이렇게 되니 최고치리회인 총회의 처결은 이땅 위에서는 상소나 소원이 불가능하니 결의마다 처결마다 확정이지만, 하회의 처결이나 하회의 결의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것을 소원이나 상소에 의해 뒤집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불안정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가 곧 상소, 소원의 기일이니, 법은 이를 하회 처결 후 10일 이내(권 제9장 제85조, 동 제96조)로 규정한다. 이 기일이 지나가면 하회인 당회나 노회의 처결이라도 마치 총회의 처결처럼 확정됨이니 후 10일 이후부터는 안정하게 된다.그러므로 당회는 일반신도를 피고로 하는 고소장을 받아 재판하는 1심 치리회요, 노회는 목사를 피고로 하는 고소장을 받아 재판하는 1심 치리회일 뿐 아니라, 당회의 일반신도관계 재판의 상소를 받아 재판하는 2심 치리회도 된다는 말이다.그리고 목사의 고소를 받아 재판한 노회재판(1심)과 일반신도를 재판한 당회재판의 상소를 받아 재판한 노회재판(2심)에서 판결 후 원고도 피고도 상소하지 아니하면 상소기일 만료와 함께 확정이니 사건의 종결이요, 전교회의 결정이 될 뿐 아니라(정 제8장 제2조 2)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역사화는 있어도 불안정은 더 없게 된다.그러나 총회가 재판관할권 규정(권 제4장 제19조)에 묶여 평신도는 물론 목사의 고소를 직접 받아 재판할 수는 없으나, 3심제도에 의한 상고심으로서의 재판권 행사는 온갖 재판사건을 종결하는 최종심 재판이다. 근간 어느 교회 집사가 목사를 피고로 한 고소장을 제출했는데, 노회에서 그냥 반송하니, 상소장으로 바꾸어 400만원과 함께 총회에 올렸더니 총회재판국에서 판결한 예심판결문이 교부되었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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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23
  • 2017 성탄절 메시지
    크리스천에게 있어 가장 기쁘고 즐거운 날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입니다. 그러나 성탄절을 맞이한 성도들의 얼굴을 보면 왜 그렇게 어둡고 우울해 보이는지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기쁜 날 우리의 얼굴과 마음도 활짝 펴져야 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서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되새겨 보고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Ⅰ. 예수님은 어떻게 오셨습니까?1. 우리 주님은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1) 성경의 예언대로 탄생하셨습니다.“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 1:25). 2) 성경의 예언대로 죽으셨습니다.“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3-12).“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마 27:35).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막 15:24~25).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눅 23:33).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요 19:18).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요 19:23). 2. 성경의 예언대로 부활하셨습니다.“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마 28:5~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 16:6).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눅 24:5~6).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는 말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요 20:13~18). 3. 성경의 예언대로 승천하셨습니다.“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막 16:19).“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눅 24:51). 4. 성경의 예언대로 심판 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그리 할 때에 숲 속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주께서 땅을 심판하러 오실 것임이로다”(대상 16:33).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히 10:37). 모든 것이 성경에 예언 되어 있고, 승천하심까지 이루어졌으며, 마지막 다시 오시는 일만 남아있습니다.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셨습니다. 낮고 천한 신분으로, 가난하고 병든 자, 죄인들을 구원하고자 말구유에서 탄생하셨습니다.“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눅 2:12). 예수님은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대로 처녀의 몸을 빌러 성령으로 나셨다믿는 자의 죄를 사하고 은혜로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Ⅱ.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무엇일까요?1. 대속물이 되어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죄 없으신 주님께서 우리들의 죄악 때문에 온갖 고난과 수치를 참으신 것입니다. 성도 된 우리들은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깊이 깨달아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닮아 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1) 예수를 닮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① 섬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눅 6:31) ② 남을 위해 희생하고 먼저 섬기는 자세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면 모든 언행이 아름답게 나타나 덕을 끼치는 법입니다.“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2)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예수님이 대속물이 되시려고 오셨기 때문에 우리 죄를 모두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처참하게 죽으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① 예수님 때문에 겪는 고난을 잘 참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직장이나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당하는 경우, 또한 가정에서도 교회에 나간다고 핍박을 당하는 등... 이러한 여러 고통들을 잘 참으면 하늘의 상급이 있습니다.② 남을 섬기는 자세로 맡겨준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입니다. 힘들다고 이 핑계 저 핑계 대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붙들고 기쁜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가 죽어야만 우리 모두가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사명이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외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입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요 19:30).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의 완성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충성하는 참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2. 죄인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1) 죄인 중에 괴수 같은 우리를 부르러 오셨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2) 삭개오처럼 탐관오리 같은 인생을 살아온 우리를 부르러 오셨습니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눅 19:7). 3) 아버지 품을 떠나 모든 것을 탕진해 버린 탕자 같은 우리를 부르러 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눅 15:22). 왜 죄인들을 불러 죄 사함을 주셨습니까? 그것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3). 영생이란, 말 그대로 영원히 사는 삶입니다. 복 중 최고의 복이 영생인 것입니다. 영생이 없는 자들이 소유한 것들은 천국 가는데 아무 쓸모가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형통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죄 때문에 죽어야 할 우리의 인생이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대신 죽어주심으로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롬 5:21)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믿을 때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3. 천국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눅 4:43). 복음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인데 이 뜻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이라는 말입니다.1)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2)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반드시 구원의 능력이 나타납니다.“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3)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반드시 구원의 복이 나타납니다.“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복음이 심령 속에 들어오면 오늘 죽어도 천국에 간다는 구원의 확신이 생기기 때문에 죽음과 환란의 고통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심령은 완전히 달라져 거듭나는 변화가 오게 되고 삶의 현장에 또한 물질, 명예, 권세, 자손, 건강, 직장 등등의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영육간이 강건해 지는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지식이나 이론으로 신앙생활하지 말고 말씀을 믿고 확신을 가지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4. 원수마귀를 추방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크리스천의 가장 큰 원수는 사탄 즉, 마귀입니다. 가난마귀, 질병마귀, 낙심마귀, 실패마귀, 불평마귀, 이간질마귀(성도와 주의 종, 부부, 형제지간, 성도와 성도사이를 이간질시킴), 불평마귀, 수근수근마귀 등등..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우리의 모든 영과 육의 삶을 파괴하려고 합니다. 성도는 이런 마귀의 간악한 계략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눅 10:19). 교회 안에도 Trouble Maker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무슨 일에든 부정적이고 불평불만을 일삼으며, 여론을 조작하여 주의 종을 대적하여 목회를 훼방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의 대부분은 자신이 잘 못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마귀의 도구가 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Peace Maker가 되어야 합니다. Peace Maker는 어떤 일이든 살리는 역사, 되는 역사를 이룹니다. Peace Maker가 되어야 기도가 상달되고 만사에 형통함이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주의 종의 목회에 도움을 주는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이 사랑하십니다. 내 안에 성령님과 마귀 중 어떤 힘이 존재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며 반성하여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마귀를 때려 부숴야 합니다.예수님은 말씀으로 원수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마 4:11). 그까짓 하찮은 물질 때문에, 권세와 명예 때문에 주님께 향한 소중한 믿음을 팔아 버리시겠습니까? 마귀를 때려부수고 늘 승리하는 삶을 사십시오.Ⅲ.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합니까?1. 예수님의 나심을 만방에 알려야 합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 백성 맞아라 온 교회여 다 일어나 다 찬양하여라. 찬송가 115장(통 115장)처럼 찬양하며 외쳐야 합니다. 주님의 탄생하심은 최고의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을 기쁘게 해야 되는 날이기에 크리스천으로서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의무가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Merry Christmas를 외치며 주님이 탄생하신 날임을 많은 이웃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2. 동방 박사들처럼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그 당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왕에게 바쳐지는 선물이었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만 왕의 왕으로 인정했고 때문에 경배를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박사들은 먼 거리를 찾아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페르시아에서 베들레헴까지는 1,400km(3500리)나 되는 먼 거리이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대면하기까지는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경배(예배)하기 위해 그들은 그 먼 거리를 찾아온 것입니다. 성도된 우리도 주님을 위해, 주님께 경배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온 정성을 다해서 아기 예수님을 경배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예수님을 공경하여, 드려지는 모든 예배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경배의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여 정성으로 준비된 예물을 예수님께 드려서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인도하심 속에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눅 12:34). 결론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대 제사상과 대 선지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감격스러운 탄생의 날이 우리들만의 축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의 가정뿐 아니라 소외되고 가난한 불쌍한 이웃들에게도 Merry Christmas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어느 곳 누구일지라도 그리스도의 탄생하심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다 알게 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리하여 전 인류가 주님께서 탄생하신 이 날에 기뻐 뛰며 축제를 벌일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이 일에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동참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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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22
  • 헌법규정의 자구 오실의 실상과 폐해(하)
    ‘재판회 합의석’을 ‘재판회합 의석’이라니 옳은가‘제명출교’가 ‘제명, 출교’로 된 오류 40년째 시행 <권징조례>에서제13조 “…조사 회보케 할 것이요 그 치리는 그 위원의 회보를 접수하여…” ⇒ “…그 치리회는…”이 맞다. 1930년 판에서의 오실이 87년이 지난 오늘까지 바로잡히지 않고 “치리회”를 “치리”라고 잇고 있다. 제20조 “치리회가 재판회를 회집하면…” ⇒ “…치리회가 재판회로 회집하면…”이 맞다. 치리권은 행정권과 재판권으로 대별하니, 치리회의 일반적인 회집은 행정회이고 재판권을 행사하기 위한 회집은 재판회이다. 더욱이 치리회가 회집하면 의당히 행정처결을 위한 회의이므로 「대한예수교장로회 ○○노회」요 ○○노회 행정회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치리회가 재판사건은 행정회를 재판회로 바꾸거나(흔히 치리회로 바꾼다는 표현을 하고 있으나, 치리회란 당회, 노회, 대회, 총회의 총칭이니, 치리회를 치리회로 바꾸는가?), 혹은 재판국에 맡겨 재판하는 방도 중에 택일해야 하니 “치리회가 재판 회로 회집하면이 맞다. 30년 판에서의 잘못이 87년이 지난 오늘에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제21조 “소환장은…개심하기 전에 의식송달(意識送達)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 의식송달(依式送達)”이 맞다. 1993년 판에서의 잘못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24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 잇고 있다. “의식송달(依式送達)이란” 법에 의해 송달한 증거, 즉 소환장을 본인에게 전달했다는 법적인 증거를 가리킴이니, 등기 혹은 배달증명 우편으로 송달해야 한다는 말이다.제27조 “…변호인 된 자는 그 재판 회합 의석에 참여하지 못한다…” ⇒ “그 재판회 합의석…”이 맞다. 60판 이래로 띄어쓰기가 잘못되었으니 57년 동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어구가 되어 내려오고 있다. “그 재판회 합의석(合議席)” 즉 심리절차가 끝나고 죄증설명서를 축조낭독하여 재판국원들이 유죄, 무죄를 거수로 판단하는 자리에 변호인은 참석하지 못한다는 규정이다. 법은 변호인뿐 아니라, 떳떳한 재판국원이라고 해도 지각이나 결석 등으로 전체 재판과정에 참석치 못한 국원도 원, 피고와 그 재판회원이 동의 승낙이 없으면 합의석에 참석하지 못한다(제 29조)고 규정하고 있다.제34조 “…그 패려함을 회개하고 당회에 복종하게 될 때까지 시벌할 것이다” ⇒ “…시벌하여야 한다”가 맞다. 본래 “할지니라”였는데(1922년 판에서 1930년 판까지) 1960년 판이 “…시벌할 것이다”로 잘못 옮겨졌는데, “할지니라”는 하여야 한다의 옛스런 표기이다. 즉 의무규정이다. 다른 데서도 여러 군데 발견된다.제35조 당회가 정하는 책벌은 “…수찬정지, 제명, 출교니, 출교는 종시…” ⇒ “수찬정지, 제명출교니…”가 맞다. 1922년 판은 그냥 출교였고, 1930년 판은 제명출교였는데, 이것이 1976년 판에서부터 「제명출교」가 「제명, 출교」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즉 「제명」벌이 생긴 것 같은데 그러면 시벌과 해벌을 규정한 예배모범 제16, 17장에도 「제명」이 있어야 하겠는데, 없는 것은 제명벌이 생긴 것이 아니란 실증이 된다. 온전한 칭호는 「제명출교」, 그 약칭(혹은 속칭)은 출교로 불리어진 데에서 하나의 벌 「제명출교」가 인쇄공 혹은 실무자의 실수로 「제명, 출교」를 만들었는데 40년이 넘도록 그대로 운영되고 있으니 한심스럽다면 지나치다 하겠는가?제52조 “만 1년간 유예를 지난 후 노회 관할에 그 목사가…” ⇒ “…노회관찰에…”가 맞다. 1922년 판과, 1930년 판에 이르기까지 “관찰”로 이어왔는데 1960년 판에서는 “…노회 시찰에…”로 바뀌었다가 1993년 판에서부터 “관할에”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목사 그만두겠다는 사표는 즉시 수리하는 것이 아니고, 만 1년간 유예기간을 지난 후에 노회 관찰(觀察)에 따라 수리 여부를 결정하라는 규정인데, 이 「관찰」(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는 뜻)이 어떻게 「시찰」(돌아다니며 실지 사정을 살핌의 뜻)이 되며, 「관할」(일정한 권한에 의해 통제하거나 지배함, 또는 그 미치는 범위를 가리킴이니 예컨대 교인 관할권은 소속당회에 있고, 목사 관할권은 소속노회에 있음과 같다는 뜻)이 되는가? 관찰(觀察)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다.제61조 “…필요한 사리만 나타내기 위하여 재판회의 특허를 얻는 것 밖에는…” ⇒ “…얻은 것 밖에는…”이 맞다. 1966년 판에서 “…얻는 것 밖에는”으로 된 오착이 51년을 잇고 있다.제63조 “…재판회가 필요로 인증할 때에는…” ⇒ “…인정할 때에는…”이 맞다. 1922년 판에서 “인정할 시에는”, 1903년 판 “인(認)할 시에는”, 1960년 판 인증할 시에는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인정(認定)이란 옳다고 믿고 정하는 것을 가리킴이요 인증(認證)은 문서, 행위가 정당한 절차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정해 증명함을 가리키는 말이다.“증인에게 문답을 일일이 기록하고 회석에서 낭독하여 증인의 확인날인을 받을 필요가 있는지 여부를 재판회가 생각하는 대로 하라는 규정에 인증(認證)이 왜 끼었는가? 57년을 방치하고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제2조 “진리를 보호하며 그리스도의 권병(權炳)과 존영을 견고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권병(權柄)과 존영을 견고하게 하며…”가 맞다. 1993년 판이 「권병(權柄)」을 「권병(權炳)」으로 잘못된 한자어가 24년이 지났는데도 바로잡히지 아니하고 그대로 잇고 있다. “그리스도의 권병(權柄)이란” 여기서는 사람의 생사화복을 임의로 좌우할 수 있는 권세를 가리킴이다. 그리고 「권병(權炳)」이란 우리말 사전은 물론 한자(漢字)사전에도 없는 말이다.끝으로 전래되는 속담에는 개꼬리 3년 묻어두어도 황모(족제비 꼬리의 긴 털을 가리킨다)가 되지 않는다는데, 어찌하여 교회헌법의 경우는 뚜렷한 잘못인데도 그냥 묵혀두면 정당한 법규처럼 둔갑하는가? 딱 한 가지만 말해보자. 교인의 이름을 지우는 행정적인 제명은 있어도(정 제9장 제5조 1, 권 제7장 제52) 시벌의 「제명」 벌은 없는데, 「제명출교」를 「제명, 출교」로 된 잘못이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제명 벌」을 받았는가? 헌법 책을 만드는 분이여! 더욱 조심하기를 바라며 붓을 놓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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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14
  • 헌법규정의 자구 오실의 실상과 폐해(상)
    의거한다는 “의한즉”이 “의지한즉”으로 58년 묵혀총회직무에 ‘고소’넣어 관할 어긴 규정 53년 방치우리나라에서 전래되는 속담 중에 “개꼬리 3년 묻어 두어도 황모(족제비 꼬리 털)가 되지 않는다”는 말은 개꼬리 털은 어디까지나 개꼬리 털 그대로이니, 오래 묻어두면 족제비 털이 되겠거니 하고 파묻어 두고 기다리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가리키는 말이다.그런데 우리교회의 헌법의 경우를 두고 보면 위의 속담이 잘못인 것처럼 여기는 생각이 든다. 헌법 규정을 신설하거나 개정할 때에는 분명한 오자(誤字)요 낙자(落字)요, 탈루(脫漏)였는데, 세월이 지나가도 그것을 찾아내어 바로잡지 아니하고, 오자, 낙자, 탈루를 그냥 두고 인용되는 일이 너무나도 많으니 하는 말이다. 필자가 헌법책을 뒤지면서 발견되었던 개꼬리 털이 족제비 털 대우를 받는 몇군데가 눈에 띄어 적어본다.<교회 정치에서>정 제3장 제 (2)전도인 “…그 구역 감독기간에 협의하여 보고한다. ⇒ ”협의하며“가맞다. 1958년 판부터의 오류가 현행판에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58년이 지나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제8장 제1조 “…성경교훈과 사도시대 교회의 행사(行事)의 의지한즉…” ⇒ “…사도시대 교회의 행사에 의한즉…”이 맞다. 1958년 판부터의 오류가 현행판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니, 58년이 지나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제10장 제9조 “노회는 예정한 날짜와 장소에 회집…” ⇒ 1930년 판 “노회는 예정한 일시(日時)와 처소에 회집…”이니, 일시(日時)를 즉 일자와 시간을 날짜라고만 했으니 시간이 빠졌다. “예정한 시일과 장소에…”가 맞다. 그리고 「일시(日時)」를 「시일(時日)」로 바꾼 것은 일시는 일시적으로, 혹은 한시 두시의 일시도 되기 때문이다. 1964년 판부터의 잘못이 지금까지 바로잡히지 않고 그대로 지나고 있으니 53년이 지나가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제11장 대회 「제 1조 조직」⇒ 「제1조 대회조직」이 맞다. 「당회조직」 「노회조직」 「총회조직」인데, 왜 대회만 그냥 「조직」인가? 대회제를 규정한 1964년 판에서의 태생적인 오류인데, 53년이 지나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또한 제10장(노회) 제4조(총대)와 제12장(총회) 제6조(총회의 회집)에 의하면 “총대는 서기가 천서를 호명한 후부터 회원권이 있다”고 규정되어 있는데 제11장(대회)에서는 총대의 서기호명 규정이 빠졌는데도 그냥 넘기고 있다. 시행이 유보되었서도 법은 바로잡혀야 하지 않겠는가?제12장 제3조 “총회가 예정한 날짜에…” ⇒ 총회가 예정한 일시(日時)에 <예정한 시일에>가 맞다. 1964년 판에서부터 날짜 즉 일(日)만 있고 시(時)가 빠졌으니 53년이 지났어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 이같은 오류는 다른 데서도 발견된다. 제12장 제4조(총회의 직무) “…하회에서 합법적으로 제출하는 헌의와 상고와 소원과 고소와 문의와 위탁판결을 접수하여 처리하고…” “고소”가 들어간 것은 잘못이다. 교인의 재판은 지교회 당회가 관할이고, 목사의 재판은 소속노회가 관할이니(권 제4장 제19조 참조) 총회는 교인의 고소나 목사의 고소를 직접 받지 못한다. 당회나 노회의 판 결이 판결 후 상소기일(후 10일) 이내에 상소되어 올라오지 않는 한 총회는 재판권을 행사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1964년 판에서 “고소”를 첨가하였으니 53년이 지나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 제12장 제5조 1. “…지교회와 노회의 오해와 부도덕한…” ⇒ “…지교회와 노회의 교리에 대한 오해와…”가 맞다. 1930년 판에서부터 “교리에 대한”이 누락되었으니 87 년이 지났어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제13장 제 3조(임직 순서) 5. “…이상 4와 5항은 취임서약이다” ⇒ “…위임서약이 다”가 맞다. 1993년 판이 위임을 취임으로 바꿨는데 장로, 집사, 목사 등 안수기도로 세우는 것은 임직(혹은 장립)이고, 임직(장립)된 직분자(장로, 집사, 목사)에게 교회의 직무를 맡기는 예식은 위임이다. 장로, 집사, 목사가 임직(장립)은 평생 한번 뿐이고 위임은 옮긴 교회에서 관계절차를 따라 다시 받게 되니 평생 한번인 임직(장립)과는 다르다.그런데 목사위임식은 당연히 여기면서도 장로, 집사는 위임이 아니고 취임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 헌법규정까지 망치고 있다. 1964년 판에서 신설 부가되었는데, 1993년 판에서 위임을 취임으로 바꾸어 놓았으니 24년이 지나도 바로잡히지 않고 있다.제15장 제12조 시무목사(임시목사)의 권한 “…노회의 결의로 당회장권을 줄 수 있 다” ⇒ “…노회의 결의로 당회권을 줄 수 있다”가 맞다. 1922년 판 헌법 이래로 “당회권을 줄 수 있다”로 규정되어 내려왔는데, 1958년 판부터 “…당회장권을 줄 수 있다”로 바뀌었는데, 그렇게 바꾸자는 개정안에 의한 개정이 아니고 인쇄실무를 맡은 이가 「당회장」에서「장」자가 빠진 것으로 알고 넣은 것으로 여겨진다.교회를 당회가 다스리는가? 당회장이 다스리는가? 치리회 회의정치 체제가 장로회 정치이니, “…정당한 사리와 성경교훈과 사도시대 교회의 행사에 의한즉 교회치리권은 개인에게 있지 않고, 당회 노회 대회 총회같은 치리회에 있다(행 15장 6절)” (제 8장 제1조)고 하였으니 교회는 당회장이 아니고 당회가 다스린다는 규정이다. 교회에 당회가 없다고 해도 당회가 다스려야 할 대상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임시목사(시무목사)에게 시무기간 동안 당회권을 줄 수 있도록 규정해 내려왔는데, 이것을 왜 당회장권을 줄 수 있다”고 바꿔 놓았는가?<헌법적 규칙>에서 제1조 미조직교회 신설립“…신봉하며 교회 신설(新說)을 원하는 때에는 ⇒ 신설(新設)이 맞다. 1993년 판 후인 2000년 판에서의 잘못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제3조 교인의 권리 1.“…순서를 따라 청원, 소원(所願), 상소할 권리가 있다” ⇒ “소원(訴願)”이 맞다. 1993년 판에서의 잘못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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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08
  • 교회세습과 교회의 정의/이 은 재 목사
    jtbc는 1980년 군사 독제시절 언론 통폐합정책으로 국가 권력에 의하여 통폐합된 TBC동양방송의 정통성을 대주주인 중앙미디어네트워크에서 이어받아 2011년 설립한 민영방송이다. 그래서 jtbc는 민주와 자유를 침해하는 권력의 독재와 국가의 폭력에 강력하게 항거하며 민영방송의 보도가 국영방송 KBS를 압도하는 시청률로 국민으로부터 신임을 받는 방송사가 되었다. jtbc는 과거에 군사독제와 국가폭력에 의하여 처참하게 짓밟힌 TBC 동양방송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방송사이기에 민주주의와 자유가치를 어느 누구보다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명성교회와 관련한 보도에서 교회세습이라는 단어를 표현함으로서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는 자유와 정의를 판단함에 있어서 혼란함과 동시에 교회의 주체가 되는 교인의 결정과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하는 보도에 의하여 자신들의 담임목사를 선택한 교회의 구성원 당사자들은 가슴아파하고 있다. 정신적인 가치를 지닌 교회가 세속에서 존재한다 할지라도 교회의 본질은 세속의 물질에 있지 않고 정신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세계에 존재하는 교회를 세속의 관점에서만 평가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에는 사유기업과 같이 가족이 기업의 경영권을 이어받는 세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시대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을 이끌어가는 임무는 레위지파가 감당했으며, 최고의 권위를 지닌 대제사장과 성전봉사의 직무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전통을 지니고 있었다. 기독교는 이것을 세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는 유대교나 기독교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며, 종교는 세속에서 말하는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아닌 단체나 방송사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모르고 세속적인 기준으로만 세습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본인 스스로가 나와 다른 타인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정신을 크게 폄하하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은 구성원의 결정을 최고의 가치로 존중해 주어야 한다. 명성교회의 공동회의 의결을 거친 구성원의 결정에 대하여 외부로부터 어떠한 강제나 억압이 존재하고 그들의 선택을 비난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 정신과 자유를 침해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총회의 법이 명성교회의 구성원들의 결정을 강제하거나 억압한다면,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사리판단이 가능한 명성교회 구성원들이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서 다수의 선택으로 결정한 후임자가 비록 선임자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구성원이 원하는 선택에 상회인 총회가 반발하는 것도, 그 것을 세습이라고 말하는 것도, 총회의 헌법이 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망각하고 교권의 권위로 억압하고 지배하며 군림한다면 그것은 민주와 자유를 억압하는 중세시대 종교재판의 태도를 답습하려는 것이다. 기독교는 자신들의 담임목사를 교인 다수에 의하여 선택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와 자유의 정신이 기초적이며 합리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정신적인 공유 집단인 기독교를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나, 북한 정권에서나 사용하는 세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기독교를 마치 기업처럼 평가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들이 혈통에 의해 세습을 한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의 기업세습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기업의 세습경영이 합리적이며 정당을 가지고 있지만, 기업의 운영에 있어서 가장 안정적이기 때문에 다수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외국과 다르게 기업의 세습이 혈통으로 이어지는 행위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못하면서 교회의 혈통승계를 비난하는 이유는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인가.명성교회는 민주적이며 구성원들의 양심의 자유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이것은 노회나 총회가 간섭할 수 없는 교회의 정의에 해당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총회의 구성원들 스스로가 대형교회를 권력을 지닌 이익집단과 기업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문제인 것이다. 총회의 구성원이면 누구나 담임목사로 선출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혈통은 안 된다는 법을 만들어 놓은 것은 성경으로도, 보편적 민주주의와 자유의 원칙을 총회가 스스로 위법한 것이다. 명성교회는 자신들의 지도자 선택함에 있어서 타인의 억압이나 간섭 없이 자신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만든 교회의 법에 의하여 담임목사를 선택한 것이다. 교회 구성원들에 의한 공동회의 결정은 민주주의와 결사의 자유가 존중받은 교회의 정의(正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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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08
  • 총회사면위원회의 사면신청 공고를 보고
    ‘사면’인가 ‘해벌’인가? 용어선택의 착오인가시벌권·해벌권은 동일치리회의 고유한 특권 우리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헌법 규정에 따라 범죄한 자를 재판하여 시벌(권계, 견책, 정직, 면직, 수찬정지, 제명출교)하고, 회개하는 여부를 가려 해벌하는 규정에 따라 해벌해 왔다. (권 제5장 제35조, 동 제6장 제41조, 예배모범 제16장, 동 제17장).그런데 합동측 총회는 평양, 삼산, 서전주 등 세노회의 헌의를 따라 총회에 「사면위원회」를 설치키로 가결하고 (2016년 제101회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 p.100) 지난 3월 13일자로 「총회사면위원회 사면접수 공고」가 기관지 기독신문(2017. 3. 28. 화요일 2면)에 보도되었으니 이것이 웬 일인가? “총회는 대한예수교 장로회의 모든 지교회 및 치리회의 최고회니, 그 명칭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라 한다”(정 제12장 제1조) 고 규정한 바대로 최고치리회인 것은 확실하지만, 같은 헌법이 규정한대로 “교회 각 치리회에 등급은 있으나, 각 회원은 목사와 장로 뿐이므로 각회가 다 노회적 성질이 있으며, 같은 자격으로 조직한 것이므로 같은 권리가 있으나, 그 치리의 범위는 교회헌법에 규정하였다…”(정 제8장 제2조)고 하였고, 권 제4장 제19조는 “목사에 관한 사건은 노회 직할에 속하고, 일반 신도에 관한 사건은 당회 직할에 속한다…”(정 제9장 제5조, 동 제10장 제6조 참조)고 하였고, 그리고 이 권하는 제각기 소속치리회의 고유한 특권이니, 결국 총회에는 하회가 잘못 처결하여 소원이나 상소되어 올라온 경우 외에는 교인도 목사도 직접 다스릴 권한(즉 시벌하거나 해벌 할 권한)이 없게 된다. “총회에 어떤 원치리권이 있느냐?” “상고를 받지 아니한 이상 교회와 목사에 대한 원치리권이 없다(Presbyterian Digest pp.127, 277 본서 438~440 문답 참조) (정문: 430 문답).둘째로 시벌(권계, 견책, 정직, 면직, 수찬정지, 제명출교) 하려면 반드시 재판해야 하고(정문: 243문: 전 문답의 처벌을 받을 자가 누구냐? 답: 정식 재판에서 범죄한 증거가 나타나 유죄판결을 받은 자이다. 소환 없이는 혹은 재판 없이는 이런 처벌을 할 수 없다<Presbyterian Digest p.501>. 범죄자가 재판하기 전에 자복하면 그 재판을 간단히 할 수는 있으나 재판을 불필요하다고 할 수 없고<권 제7장 제48조>, 그 범죄한 형편과 모든 사실을 기록해 두어야 한다<본서 187 문답 참조>) 해벌하려고 하면 시벌 치리회(즉 당회 혹은 노회)의 결의에 의하여 그로 본 치리회 앞에서나, 교회 공석에서 자복하게 해야 한다(예배모범 제 17장 2 정문: 188 문답)고 규정한다. A교회에서 범죄하여 시벌했으면 A교회에서의 자복과 회개가 옳겠느냐? 그의 범행을 모르는 B교회나 노회 총회에서의 자복과 회개가 옳겠는가?“해벌은 시벌한 원치리회의 권고와 허락이 없는 이상 다른 치리회가 행할 수 없다( 예배모범 제 17장 7, 본서 230문답 참조, 역자 주: 각 당회에서 처벌된 교우가 이사할 때에 천서 중에 책벌까지 기록함은 이후 회개하면 책벌 푸는 권한까지 허락하는 줄로 인정함 1909년 제 3회 총회록 p.25)…” (정문 187문답 ③)는 규정이 안 보이는가? 직접 시벌도 못하는 총회가 사면(해벌?)까지 하겠다니 총회는 초법적인 기관인가 ?셋째로 총회에서 행하겠다는 공고가 해벌하겠다는 말인가? 죄를 사면하겠다는 말인가? 해벌이라고 하면 시벌치리회인 당회 혹은 노회가 행할 고유한 특권인데,(예배모범 제7장 7) 교인과 목사에 대한 원치리권이 없어 직접 시벌도 해벌도 못하는 총회가 웬 참견인가? 공고 그대로 사면이 맞는가? 공고 제 3조 (목적) “본회의 목적은 주님의 용서와 관용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하여 과거, 교리나 권징, 또는 역사적 오류가 분명한 판단으로 인하여 징계를 받은 자들을 사면하고 과거사를 정리하여 새출발하게 함으로 교회의 머리되신 구주의 권고와 은총의 원리를 살리는데 있다”고 하였으니, 「해벌」이 아니고 「사면」이 확실하다 하겠는데, 국가의 사면법까지 들먹이는데 사면이란 국가 원수의 특권으로서, 형의 선고의 효과의 전부 또는 일부를 소멸시키거나, 형의 선고를 받지 않은 자에 대하여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것이니, 군주의 은전권의 유물이며, 사법권의 독립에 대한 예외적 현상의 하나…“(신법률학사전)라고 하였으니, 국가 원수에게 사면권이 있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홀로 사면권을 행사하면 사법권 남용이 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법무부장관의 상신에 의하도록 한 것처럼, 총회장은 사면위원회의 상신에 따라 사면하도록 하겠다면서 총회 사면의 법적인 근거로 ”① 본회는 정치 제12장 제5조 1항에 근거하여 헌법의 해벌이 관용과 회복의 정신으로 볼 때 사면을 포함한다고 본다“(제 조 사면근거)고 하였는데, 1919년 제8회 총회가 채택한 헌법을 해석하는 유일한 공인참고서인 교회정치문답조례 428 문답(총회발행 완역본은 468문과 475문)에 기록된 11가지 총회권한에 사면권이 없으니 웬일인가? 만국장로교회의 통상적인 총회권한 규정이 잘못인가? 아니면 사면위원회가 교회헌법규정에 기초를 둔 합헌적인 기구라고 내세우기 위해서 교회헌법을 억지로 인용함인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에 대하여 이렇게 교훈한다. 즉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느니라” (히 9: 22).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히 10:10, 14, 18). 그리고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성취하신 구원을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적용시키시는 역사도 오직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시니, 죄시함을 받아 구원 얻는 일은 성부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 성자 하나님의 십자가 대속, 성령 하나님의 적용시키시는 역사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이 합동측 장로교회의 신앙적 입장으로 여겨지는데(박형룡: 교의신학 5권 p.23 참조), 구교는 교회를 구원의 보고(寶庫)요 은혜의 분배소라며, 교황이나 추기경, 주교, 신부 등이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사면한다. 그리고 고해성사 등 성사는 교황, 추기경, 주교, 신부만 집전할 수 있으므로 결국 저들이 없으면, 그래서 성사가 없으면 죄 사면도 없게 된다. 총회사면위원회의 가는 길이 어디인가? 어느 것을 닮겠는가? 왜 그러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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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25
  • 힌두권 지역의 반 개종법에 대한 신중한 대처 필요성 대두 /김 한 성 교수
    최근 서남 아세아에서 기독교 선교는 새로운 도전을 직면하고 있다. 서남아세아에서 타종교를 비방하거나 타종교로 개종하는 것을 형법으로 금하는 조치들이 잇달아 취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치는 최근에 갑자기 벌어진 일이 아니고 역사가 오래되었고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 더욱 우려스럽다. 따라서 네팔, 인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에서 사역하는 한국인 타문화권 사역자들과 한국교회는 이전 보다 더욱 신중한 사역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기독교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네팔에서, 타종교 비방과 개종을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형법이 지난 8월 국회의 의결을 거쳐 지난 10월 16일 대통령이 서명하였고 서명일로부터 90일 뒤에 발효된다. 지난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70개국의 회원을 두고 있는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위한 국회의원 국제 연합의 대표들이 네팔을 방문하여 대통령을 만나 이 법의 서명을 보류할 것과 네팔 헌법 26장 3절의 개종을 처벌하는 내용을 삭제할 것을 요청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이러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 그 충격은 더욱 크다. 현재, 인도의 29개 주 중에서 구자라트, 마디아 프라데시, 아루나찰 프라데시, 오릿사, 차티스가르, 히마찰 프라데시 등 6개 주가 &#56194;&#56404;종교의 자유법&#56194;&#56405;이라고 부르는 반 개종법을 시행하고 있다. 불교 국가인 스리랑카도 2004년에 이른바 반 개종법을 제정하였으나, 대법원이 법안의 일부 내용이 반 헌법적이라고 결정한 뒤에 지금까지 보류 중이다. 부탄과 미얀마도 개종과 관련하여 유사한 법령을 가지고 있다. 무슬림 인구가 절대 다수인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그 규모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신성모독을 처벌하는 법안이 있다. 힌두교인들의 개종을 법률로 막으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1930년대부터 일부 왕국들은 개종을 막기 위한 법령을 시행했다. 독립 이후에, 인도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개종과 관련된 법률을 제정하려는 시도가 구체적으로 두 번 있었으나, 이것들이 하원의 반대와 법무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네팔도 과거에 절대 힌두 왕정 시절에 개종을 처벌하는 법안을 시행했었다. 각 나라와 주 정부의 반 개종법들은 세부 사항과 형량에서 약간의 차이들이 있을 뿐, 종교적 정서를 거스리는 것에 대한 처벌과 강제적 혹은 기만적 방법을 통한 개종을 처벌하는 내용은 대부분 유사하다. 파키스탄에서는 신성 모독죄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처벌을 받았다. 한편, 인도에서 반 개종법을 통해 처벌받은 사람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네팔에서는 이 법령이 최근에 발효되었기에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법령들은 기독교인들의 심리를 충분히 위축시킬 수 있으며, 과격한 힌두교인들이나 불교인들이 교회와 기독교인들을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실제로 반 개종법들이 시행되는 인도의 주들에서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공격이 늘었다는 보고가 있다. 반 개종법의 배경에는 서남 아세아인들의 변화에 대한 반감, 외세에 대한 경계심 뿐 아니라 교회의 가시적 전도 활동, 기독교인의 증가, 개종 후 친인척과 이웃 사이의 관계 변화에 대한 불만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한국교회와 선교사들은 선교사역의 개선을 위해 연구하는 것이 요청된다. 한국 선교계는 이전보다 더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현지화된 신앙생활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법적 시비에 걸리지 않도록 기독 학생을 위한 장학금 혹은 기독교인을 위한 생활 개선 사업들을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고, 상대 종교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기보다는 기독교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전도 방법을 더욱 개발해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예배당 건축이나 물질 지원과 같은 가시적 선교를 지양해야 한다. 왜냐하면 재정 지원은 선교사들의 좋은 의도와 달리, 현지인들을 돈으로 사서 개종시킨다는 누명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반 개종법에 보다 적극적인 대처 방법도 개발해야 한다. 선교사들은 공동으로 사법 소위원회를 구성해서 미리 변호비용을 마련하고 현지인 자문 변호사를 위촉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평소에 종교와 상관없이 지역사회 봉사를 하고 지역사회 유지와 교류하는 것이 예방적 차원에서 유익할 수 있다. 한편, 한국교회는 한국 주재 서남아세아 국가들의 대사들에게 반 개종법의 반 인권성을 강조하며 철폐를 요청하는 운동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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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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