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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삼권분립(三權分立)은 국가의 기본이다’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국정감사를 통하여 조희대 대법원장을 증인석에 출석시킨 가운데 회의를 진행하였다. 이 자리에서 조 대법원장은 ‘재판 사항에 대해 법관을 증언대에 세운다면 법관들이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 위축되고 외부의 눈치를 보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현 여당이 조 대법원장을 국회 증인석에 세워 그야말로 ‘망신주기’를 하려는 것은 지난 2022년 대선에서 당시 이재명 후보가 ‘공직선거법’에 기소가 된 것을, 대법원에서 지난 5월 1일 고법의 판결이 잘못되었음을 확인한 ‘파기 환송’을 결정한 때문이다. 이 사건은 2022년 9월에 기소가 되었다. 그리고 2024년 11월 15일 1심에서는 ‘일부 무죄’를 선고했고, 2심에서는 2025년 3월 26일에 ‘전부 무죄’가 선고되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2025년 5월 1일 ‘유죄 추정’의 ‘파기 환송’을 한 것이다. 보통 ‘선거법 위반’은 ‘6•3•3원칙’을 지킨다. 즉 기소에서 1심까지 6개월, 2심까지 3개월, 그리고 3심까지 3개월로 재판을 끝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이 이렇듯 ‘6•3•3원칙’을 제대로 지켰다면, 결말이 나는데 2023년 8월까지 마쳤어야 했다. 그런데 재판을 질질 끌다가 2024년 말부터 신속하게 처리하려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재판 결과에 대하여 입법부가 사법부를 ‘사법개혁’의 대상으로 삼아 대법원장을 국회로 불러다 정치적 압력을 넣는 것은, 삼권분립의 요체인 사법부를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라며 깔보는 것으로 국민들은 느낀다. 그러나 삼권(三權)은 어떤 것이 세고, 혹은 약하고의 순서가 없다(사법부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하여도, 법관들은 고도의 법률 지식과 그와 함께 법률 적용에 대한 훈련이 요구되는데, 국민들이 투표로 선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법원장은 국정감사에 나와 인사말만 하고 퇴장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리고 답변은 법원행정처장이 해 왔다.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으로, 사법부에 대한 예우도 있지만, 그보다도 국가의 ‘삼권분립’을 해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국회가 대법원에서 판사가 헌법과 법률과 양심적 법리를 따라 판결한 것을 가지고, 따져,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한다면, 모든 법관들의 판결은 부정될 수 있다. 그럼, 누가 국가기관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사법부를 흔든다고 사법개혁이 되는 것이 아니고, 사법부의 수장을 망신 주어 내쫓으려고 한다고, 사법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과거 2018년 현 정권이 권력을 가진 집권 여당일 때, 당시 김명수 대법원장을 국정감사장에 내세워야 한다는 일부 야당 의원의 주장에 대하여 삼권분립을 이유로 반대하여 사법부를 옹호한 정당이 누구인가? 지금 정권을 잡은 세력들은 걸핏하면, ‘무슨 개혁, 무슨 개혁’을 주장하는데, 이것이 정말 국민과 국가를 위한 개혁일까? 어느 언론인은 ‘집권 세력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일구는 데 얼마나 기여했을까. 집권층이 비난하는 이승만의 건국과 호국 및 교육입국, 박정희의 산업화와 자주국방이 없었다면, 식민지 피지배국에서 유일하게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한다. 사법부의 핵심인 일선 법관들은 상당히 외부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법관들에게 ‘특정 사건에 대하여 외부적 압력을 받은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47.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14일부터 24일까지 10일간 전국의 법관 69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내용이다. 이때의 조사에 의하면, 법관들의 85%는 그 ‘부적절한 외부 압력을 국회로 보고 있다’고 한다. 또 외부 압력을 넘어 협박이나 위협을 받은 경우도 26.7%나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법부를 지켜주는 것은 오히려 정치권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국회가 사법부의 법관들에게 압력을 넣는 것도 모자라서, 아예 대법원장을 증인석에 앉혀 법률적 판단에 대하여 시비를 한다면 그것이 사법개혁의 올바른 방향인가를 묻고 싶다. 오늘의 이런 문제에 대하여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원로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국내 정치는 어떠한가? 대한민국 정치에서 보기 어려운 반(反)자유, 역(逆)민주의 수준 낮은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의 국회가 국민을 대표한다고 믿는 이는 드물다. 국회는 본래의 주어진 기능을 민주당에 빼앗겼고, 민주당은 잘못된 운동권 세력과 스스로를 개혁의 딸이라 지칭하는 집단에 실권을 내주었다’고 개탄하고 있다. 국회나 행정부는 우리 국민들이 직법 선출한 권력이다. 그렇다면 현재 막강한 힘을 가진 권력들은 그들을 뽑은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연지골
    • 토요시평
    2025-10-14
  • [토요시평] 목회자 구속은 한국교회의 문제다
    지난 8일 부산의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에 대하여 부산지방법원 엄 모 영장 전담 부장 판사는 ‘도망의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선거법 위반 등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발부하여, 현직 목회자를 구속하였다. 이에 대하여 법조계에서도 ‘종교인을 무리하게 구속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정치적인 이유로 교회와 종교 지도자를 탄압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손현보 목사가 ‘세이브코리아’를 이끌며, 윤 전 대통령의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하고, 교육감 후보자와 대담한 것을 유튜브에 올린 것은 맞지만, 이것을 ‘괘씸죄’로 여겨, ‘도주로 간주하며’ 현직 목회자를 구속한 것이라는 견해들이 많다. 이에 대하여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손현보 목사의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은 국가를 위한 것으로, 성직자는 국가와 권세를 가진 권력자들이 잘못할 때, 얼마든지 신앙과 양심의 소리를 낼 수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랬고, 역사 가운데 선각자들이 바르고 옳은 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종교 지도자의 외침은 정치인들의 정치적 손익계산과는 사뭇 다르다. 오로지 국가의 안위와 발전과 안정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발로(撥路)이다. 현재 사법부는 삼권분립의 해체 수준을 당하고 있다. 그만큼 사법부가 법률 적용과 ‘법치주의’를 제대로 견지하지 못하고, 정치권에 휘둘려 온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정치권이 사법부를 함부로 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사법부는 왜 목회자는 감옥에 가두면서, 권력자들에 대한 재판은 중단하고 있는가? 누구는 법 위에 서 있고, 누구는 법 아래 두는 것인가? 한국 기독교계는 이번 사건을 ‘정치 운운’으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분명한 종교와 표현과 양심에 대한 탄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직 목회자도 현행법에 저촉을 받아야 되는 것은 맞지만, 손현보 목사는 얼마든지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나 판결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교회 현직 목회자를 도망갈 수 있다는 추측으로 구속하는 것은 종교와 양심에 대하여 재갈을 물리며, 자신들이 지향하는 권력의 세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신(人身)구속으로 고통을 준다는 사인이며, 증거로 본다. 여기에 침묵한다면,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와 공정에 대하여 입을 닫아야 할 것이다. 우리 기독교는 복음 전래 이후 140년 동안 오직 ‘애국의 종교’였으며, 근현대사에서 이 나라 발전의 기틀이었고, 근간이었다. 학교, 병원, 복지시설, 인권, 생명 사랑, 남녀평등, 평화, 자유민주주의가 형성되는데 대단한 동력(動力)이 되었다. 따라서 권력에 의하여 종교 탄압을 받는 것을 방관하지 말고, 이 땅에 양심 세력, 하나님에 의한 통치와 질서가 세워지는 것에 협력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누가 바르고, 옳고 정확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어쩌면 기독교가 우리 사회를 떠받드는 마지막 보루(堡壘)가 되고 있지 않은가! 이번 사건은 단순히 어느 지방 목회자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선거법 위반 사건’이 아니라, 언제라도 권력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무릎을 꿇리려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방치하면, 다음은 내 차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성직자들은 불의와 부정과 부패와 독재에 대하여 못 본 척, 못 들은 척할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몰지각한 목자들을 꾸짖고 계신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사56:10)라고 책망하신다. 지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세상의 권력자들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마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공법(公法)을 외쳐야 한다. 정부와 사법 당국은 과도하게 목회자를 인신 구속한 것을 사과하고, 속히 석방시키며, 다시는 이런 일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유념하기 바란다.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제대로 지키고,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사회였다면, 굳이 목사들이 나서서 이 나라의 정치 상황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자들은 양심 세력의 목소리를 부당하게 억압하려 하지 말고, 그 소리를 진심으로 들어 주기 바란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제2, 제3, 그리고 수많은 손현보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 연지골
    • 토요시평
    2025-10-13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언행에 품위있는 지도자가 그립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최근에 새로운 인물들이 국가의 공직자로서, 지도자가 되겠다고 국민들 앞에 노출이 되고 있다. 그들 가운데 과거에 자신이 행동하고 했던 말들이 드러나면서, 그들의 품위와 인격이 알려진다. 듣는 사람들은 ‘정말 그런 말을 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의 내용들도 있다. 그중에 부총리급인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과거에 했던 말은 소름이 끼친다. 그는 전교조 출신 교사였는데,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에 참여하여 ‘잘 가라 병XX’이라고 했단다. 그해는 붉은 원숭이해라고 하여, 병신년(丙申年)이었는데, 그가 쓴 말은 그 해가 잘 가라고 했을까?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운동이 열린 세종문화예술회관에 딸과 사위와 함께 나왔다며, ‘박근혜를 구속하라’는 손팻말을 든 사진까지 SNS에 올렸었다. 그리고 201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격 사건을 맞아 ‘탕탕절’이라고 썼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그런 표현을 굳이 쓰고 싶었을까? 그리고 2021년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자녀 입시 비리 수사를 두고 ‘검찰의 칼춤’이라고 표현했다. 이때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실망하고, 심지어 같은 정치적인 성향을 가졌던 사람들도 여기에 분노하여, 떠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를 동조하다니. 또 수행 여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3년 6개월 실형을 받은 전 지사에 대해서는 ‘사법 살인’이란 취지의 글을 올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진보는 인권을 중요시한다면서, 이렇듯 피해를 당한 여성에게 두 번 고통을 주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과연 교육부 수장이 될 자격이 있나? 그런가 하면 고용노동부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은 주적이 아니라는 통일부장관의 발언에 동의한다고 하였다. 그는 민주노총에서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사람으로, 2011년 북한의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조문을 가기 위해 방북 신청을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으로 전사한 우리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는 갈 계획이 없었다고 한다. 고위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과거 막말 행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사혁신처장의 막말들은 압권이다. 그는 유튜브와 SNS를 통하여 여러 정치인과 정당, 고령자, 장애인, 여성에 대한 막말을 서슴없이 해왔는데, 그가 사용한 말들은 옮기기조차 어렵다. 그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험한 ‘말 폭탄’을 사용해 온 사람이다. 또 엊그제는 국민들의 거센 반발과 비난 속에, 자녀의 입시 비리 등의 문제로 지난해 12월에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받고 감옥에 들어갔다, 형기(刑期)를 반도 못 채우고 나온 전 법무부장관이 서울 강남의 비싼 고기집에서 식사를 하고, 된장국만 사진에 올려, 처음에는 사람들이 소박한 식사를 했다고 생각하다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의 ‘위선적 행동’에 분노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도자의 삶은 그의 언행심사(言行心思)를 통하여 다 드러난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한 말들이 기록이나 영상으로 잘 남지 않았기 때문에 상세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요즘은 자신의 생각과 말을 자랑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스스로 SNS에 퍼트렸던 것들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삽시간에 공개되고 잘못된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그들이 일반인이 아닌, 고위 공직자라는 것이다. 과거 자신의 부끄러운 말들이 알려지고, 그것이 품위를 지키는 말들이 아니라면, 어떻게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공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또 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되는가? 성경은 말씀한다.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잠언13장 3절)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잠언18장 7절)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도 ‘입과 혀라는 것은 화와 근심의 문이요, 몸을 죽이는 도끼와 같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모로코 속담에는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고 했다. 말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그의 인격을 나타낸다. 말과 행동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과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면, 그를 과연 지도자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바르고 품위있는 인격을 갖춘 지도자들이 그리운 시대가 되었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5-08-27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대통령에게 손해 배상을 받는다?’
    최근에 1심 재판부에서는 전 대통령에게 정신적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들에게 1인당 10만원 씩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전 대통령에게 손해 배상을 인정한 첫 사례로, 이런 일들은 앞으로 어떤 형태로 변형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단독의 이 모 부장판사는 국민 104명이 윤 전 대통령을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각각 10만원 씩과 지연손해금까지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당초 이번 소송은 현재 채 상병 특검의 특검보를 맡은 이 모 변호사가 지난해 12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하여 소송 참여자를 모집하면서 시작이 되었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이 변호사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의힘 의원 105명에 대한 항의 표시로, 소송 참여자를 105명으로 한정하여, 처음에는 주변의 지인들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불특정 다수까지도 포함했다고 한다. 이런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또 다른 쪽에서 비슷한 소송을 준비하는 김 모 변호사는 이번에는 1만명 가량이 참여하는 2차 손해 배상 청구를 할 것이라고 예고하였다. 그는 전 윤 대통령에 대하여 형사책임뿐만 아니라, 물질적 손해 배상까지도 엄중히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란다. 사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소송은 지난 2017년에도 있었는데,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하여 4,000명이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하여 자신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 배상 소송을 진행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었다. 우리 사회는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이 종종 벌어지는 것을 목격한다. 이런 현상들이 바람직한 것인지, 혹은 지나친 것인지 여러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타인으로 인하여 입는 정신적 피해는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을까? 정말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면, 물질로 배상이 끝나면 되는 것인가? 손해 배상을 청구하여 막상 돈을 받는다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쓰게 될까? 그리고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에 의한 손해 배상은 얼마나 될까? 국민들이 모두 손해를 입었다고 전직 대통령에게 소송을 건다면 그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인들 가운데 특히 대통령을 지낸 분들 가운데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만 국민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줬을까? 대통령을 지낸 분들이 모두 국민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면 배상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또 지금도 대통령을 지냈거나, 현직에 있는 분은 나중에 과연 자유로울까? 우리 국민들은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국민들이 선택하여 대통령을 뽑아놓고 그분들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한다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대통령은 누가 있을까? 이런 판결을 해야 하는 법관이나 재판부는 언제나 동일한 잣대로 재판을 할까? 우리나라는 ‘법치주의국가’라고 하는데, 과연 법이 제대로 지켜주고 있으며,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줄까? 비록 현행법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용하는 국민들은 과연 현명한 사람들일까? 아니면 더욱 경직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전 대통령에 소송을 걸어 배상을 받는다 하여도 그것이 그리도 통쾌하고 즐거운 일일까? 또 법원은 계속하여 이번처럼 전 대통령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에서 원고들의 편을 들어주게 될까? 별별 생각들이 다 든다. 우리 사회에는 각계의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영적,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하는 종교 지도자가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외로 크다고 본다. 과거 역사와 현재 전 세계 여러 나라를 보아도, 정치 지도자 한 사람으로 인하여 국가의 흥망이 좌우된 사례는 많다. 그래서 그들은 국민적 심판과 역사적 단죄를 받은 경우들이 많다. 정치 지도자에 대한 잘•잘못은 여러 기준과 판단 근거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정치를 성숙하고, 현명하고, 협치와 상생을 통한 잘하는 정치로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치를 보면 답답함이 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지금은 별로 힘도 없고 권력도 미미한 정치인에게 쏟아붓는 비난과 모욕보다는, 실제로 큰 권력을 가진 세력에 대한 감시가 우선이 아닐까! 선진국의 대통령들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국가의 일에 대하여 서로 협력하고, 중요한 행사에는 한 자리에 모여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럽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감옥’ 아니면 ‘원수지간’이 된다. 정말 우리나라는 선진 국가들처럼 할 수 없나? 국민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는 없는가?
    • 연지골
    • 토요시평
    2025-08-07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사법부(司法府)가 정치부(政治部) 인가?’
    우리나라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국가이다. 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국가에는 ‘삼권분립’이 되어 있다. 즉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가 있고, 입법부의 기능인 국회가 있고, 대법원을 비롯한 사법부가 있다. 이러한 체제는 서로의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여 국가 기관의 어느 일방에서 권력 남용과 부패를 막으려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작동되면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를 견지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세력에 의하여 일그러진 모습으로 전체주의나 독재주의로 갈 수 있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런 사례들이 있었고, 현재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이 목격된다. 우리나라는 이달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받았고, 다른 여러 가지 혐의로 재판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공직자선거법’ 파기환송심을 비롯하여, 배임과 뇌물 등에 대한 여러 건의 재판들이 무기한 중단되었다. 이는 헌법 제84조를 적용하여 사법부가 재판을 전면적으로 중단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연루된 사람들은 이미 여럿이 법의 심판을 받았거나 재판이 정리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재판에서 범죄 혐의 액수만도 5,000억 원이 넘는다. 일반인들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범죄 혐의이다. 또 일반인들은 법망에서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사건들이다. 그렇다면 헌법 제84조는 제대로 적용된 것인가? 이 조항을 보면, ‘대통령은 내란 혹은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대통령은 아직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당장 ‘탄핵’을 당할 일이 없는 것은 맞다. 그러나 같은 헌법인 제68조 제2항에 보면, ‘대통령이 궐위(闕位)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으로 놓고 볼 때,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판결이 궐위의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여러 가지의 범죄 혐의가 있었고, 그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계속되는 것이 맞지 않는가? 헌법 제11조 제1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도 법을 가장 중시하고 엄정하게 집행해야 하는 사법부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일방적으로 한쪽의 헌법 조항만을 들어서, 기약 없이 중대한 범죄 혐의를 심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헌법 정신과 국민들의 법 감정에 맞는 것인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과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들은 지역 주민들이 직접 선출한다(비례 대표는 제외) 그러나 사법부를 구성하는 법관들은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법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소양과 경험과 양심과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자리를 선출직으로 뽑을 수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진정 살아 있다면, 당연히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있었던 중대한 범죄 혐의에 대하여 판결을 내리는 것이, 헌법에서 말하는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명백히 실현하는 것이 되지 않는가? 현 대통령도 과거에 전임 대통령에 대하여, ‘대통령도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것인가? 만약에 대통령에 대한 범죄 혐의가 재판을 통하여 사라진다면(혐의를 벗는다면) 오히려 떳떳한 대통령으로 국정에 임하지 않을까? 물론 대통령 임기 가운데 재판이 진행되면, 직무 수행과 국정 안정과 대외적 위신을 생각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되기 전에 가진 범죄 혐의가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국민적 혼란과 국가적 위신을 추락시키는 상황에는 사법부의 책임이 크다.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아주 중요한 권력 기관인 사법부가 ‘법치주의’를 지키려는 의지를 정말로 보여주어야 한다. 사법부(司法府)는 행정부(行政府)의 정치부(政治部)가 아니다. 이런 사법부를 향하여 새로운 정부에서는 대법관을 30명에서 100명까지 대대적으로 늘려,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법부로 뜯어고치려고 한다. 사법부 독립에 대한 의지는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보다 국토가 훨씬 크고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에서도 대법관은 9명, 영국은 12명, 일본은 15명뿐이다. 이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대법관 숫자를 많이 두지 않는 것은, 법의 체계를 꿋꿋이 세우고, 국민들 사이에 소송이 남발하여 그 비용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사법부, 그 위상을 깊이 생각하고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함을 증명해야 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5-06-25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이기는 야구와 지는 정치’
    최근에 프로야구에서 한화이글스가 12연승을 달리며, 리그 1위까지 올라갔다. 지난 4월 초까지만 해도 리그에서 꼴찌를 면하지 못하던 한화가 이처럼 가파른 상승세를 달리며, 지지 않고 이기는 야구를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흥분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수년 사이에 한화는 별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팀이었다. 그래서 경기에서 져도 한화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지 않았고, 이기면 잘했다고 칭찬을 하였다. 정말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 팀보다도 응원전에 있어서는 수위(首位)를 차지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하위권에서 맴도는 이 팀을 좋아하겠는가? 야구는 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민이나 지역 출신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한화 팬들은 한화의 잘하는 경기를 간절하게 기다렸을 것이다. 한화가 12연승을 기록한 것이 지난 1992년 이후 무려 33년 만의 일이라고 하니, 한화 팬들은 얼마나 한화의 연승(連勝)하는 것을 보고 기뻤겠는가? 어떻게 꼴찌하던 팀이 한달 사이에 승리를 쓸어 담으며, 전체 10팀 가운데 1위를 할 수 있었는가? 한화가 이처럼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뭔가? 한 마디로 지지 않는 야구를 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찌 되었든 꼴찌팀 한화가 1등을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야구가 저런 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국민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는 어떤가? 미안하지만 등위(等位)로 따진다면 최하위와 같지 않은가? 왜 그럼 일개 스포츠 분야는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데, 정치는 늘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까? 나름대로 야구와 정치를 비교해 보았다. 첫째, 실력의 문제이다. 야구는 실력을 겨루는 경기이다. 실력이 안 되면 당연히 상대편에게 질 수밖에 없다. 몰론 스포츠에서도 감독의 용인술(用人術)이 있고, 대진운도 있고, 선수들이 부상이 없어, 가용할 인적 자원에서도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실력이다. 한화에는 선발 투수진이 강하다고 한다. 야구는 9회까지 공격과 수비를 하는데, 그때 선발 투수가 7회(7이닝)까지 자책점 3점 이하로 막아주는 것을, 퀄리스스타트플러스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한화는 리그팀들 가운데 1위이다. 또 상대편 선수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탈 3진을 뺏는 평균이 게임당 9.43개로 전체 1위라고 한다. 여기에 타자들의 활약이 있기에 이기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국가를 위하고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주변 강대국들에게 지지 않는 정치를 하고 있나? 둘째, 룰(규정)을 따라야 한다. 아무리 실력 있고 뛰어난 선수라도 야구의 규정을 어기면 탈락이다. 이를테면 스트라이크 세 개를 판정받은 선수가 아니라고 우기며, 경기를 방해하고, 이를 판정한 심판을 폭행하고 거부하면 안 된다. 만약 경기장에 이런 선수가 있다면, 그는 선수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치를 보면, 선수 위치에 있어야 할 사람이 감독과 코치와 심판을 무시하고, 심판의 적법한 판정에 대해서도 협박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러니 국민들이 정치에 염증을 낸다. 자신들이 힘이 있다고 규정을 안 지키는데, 국민들이 이것을 따르고 용납하겠는가? 셋째, 지는 것도 경기이다. 사람들은 이기는 것만 경기로 보지 않는다. 비록 한 때는 경기를 하기만 하면 지던 팀이 어느 날 지지 않고 이기는 경기를 하는 것은, 그 동안 지는 경기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신인들을 영입하고, 그들의 실력이 자랄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어느 팀에나 쇠락(衰落)이 있다. 그때는 질 수밖에 없다. 지는 팀들이 있어, 이기는 팀들이 빛이 나는 것이다. 그럼 진 팀은 새롭게 팀을 정비하고 가다듬어 이기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치를 보면, 이기는 것만 생각하고, 지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책과 비전을 마련해야 하는데, 당장 이기는 것만 바라보고 꼼수도 서슴지 않는다고 본다. 국가의 정체성도 지키지 못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국민들을 위하여 정치를 한다는 것이 가당한 것인가? 야구와 정치가 직접적인 연관은 없겠지만, 이기고 지는 것의 원리는 비슷하다고 본다. 오직 이기기 위하여 반칙과 힘으로 밀어붙이는 경기를 취한다면, 그것은 관중이며, 주권자인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것이다. 국민들은 지더라도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사람은 응원하지만, 완력과 거짓과 권모술수로 국민들을 지배하려는 지도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실력과 누구보다도 먼저 준법을 하고, 지는 것에 자기 통찰과 이기는 것에 겸손한 지도자를 원한다. 야구 경기는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여 관중들의 즐거움을 더하지만, 정치 지도자는 지는 일을 하면서도 계속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매우 경계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5-05-27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초대 교황이 베드로일까?’
    로마 가톨릭의 수장인 프란치스코(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교황이 지난달 21일 서거하였다(가톨릭은 선종:善終-善生福終: 선하게 살다 복되게 죽었다는 것) 이분은 2013년에 교황에 즉위하여 12년간 가톨릭을 이끌어왔다. 이분에 대하여 가톨릭에서 평가하기로는 서민의 교황, 빈자의 성자, 낮은 곳에 임했던 지도자로 부른다. 이분은 2014년 8월 한국에도 왔었는데, 광화문에서 124위의 시복미사를 집전하였다. 그의 평소 메시지는 약자의 편에 서는 것,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생명은 신성하다는 것,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 전쟁을 멈춰야 한다는 것 등을 강조하였다. 종교인으로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유독 동성애에 대해서는 관대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2013년 해외 순방 길에서 동성애 의혹이 있는 사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내가 누굴 판단하겠는가?’라고 답했다. 그리고 2018년에는 스페인 출신 남성 동성애자에게 ‘하느님은 너를 만드셨고, 그분은 너를 사랑한다’고 했다. 2013년에는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사제들에게 낙태한 여성을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리고 2023년에는 스페인의 가톨릭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성전환자들도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였다. 또한 2014년에는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에 참석하여 우주 기원의 가설인 ‘빅뱅 이론’을 긍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교황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그런가? 이런 모습이나 발언은 성경적 가치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월 26일 교황의 장례식에는 150개국에서 정상들이 참석하고, 수십만 명의 조문객이 모였다니, 교황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가톨릭의 상징적인 인물에 의하여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은 초대 교황을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베드로로 본다. 교황의 직함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로마 교구의 교구장,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보편 교회의 최고 사제, 서방 교회의 총주교, 바티칸 시국(市國)의 국가 원수 등이다. 그중에 베드로의 후계자로 권위를 인정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로마의 네로 황제 시대에 십자가에서 순교를 당하였다. 전승(傳承)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형을 당하면서,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질 수 없다며 거꾸로 매달렸다고 한다. 사실 로마 교황은 엄청난 명예와 권력을 가진다. 4세기에 로마 콘스탄티우스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國敎)가 되기 전까지 얼마나 심한 박해와 순교가 있었는가? 로마에서는 로마 황제들에 의하여 10번에 걸친 순교의 피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로마 국교가 된 이후 가톨릭은 타락과 암흑시대를 맞이한다. 5세기에 교황을 지낸 레오 1세(440~461년)는 ‘교황은 베드로와 동일시될 수 있는 존재이며, 교황 수위권(首位權)과 교회의 사법권을 주장하였다. 그는 엄청난 명성과 권력을 얻었다. 그래서 그를 ‘대교황’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 사람들로부터 같은 별칭을 들은 그레고리오 1세(590~604년)는 자신을 수도사로 여기고, 자신을 ‘신의 종복들 중의 종복’으로 여기는 겸손을 보였다. 교황의 어두운 역사는 상당히 많다. 영국의 작가이며 역사가인 존 줄리어스 노리치(John Julius Norwich)가 쓴 ‘교황 연대기’에 보면, 역대 교황들의 어둡고 침침한 부분들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필자는 수년 전에 바티칸-시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베드로 대성당은 그 규모나 장식들이 대단하다. 넓은 광장과 광장을 둘러선 회랑(回廊)에 서 있는 인물 동상들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성당 입구에는 베드로의 동상이 있는데, 사람들이 소원을 품으면서 발을 얼마나 많이 문질렀는지 신발 한 짝은 거의 닳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엄청난 성당을 면죄부(免罪符)를 팔아서 지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또 베드로 대성당의 부속 성당이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이뤄지는 시스티나 성당에는 역대 교황들이 모아 놓았다는 수많은 형상물들이 가득 차 있었다. 종교와 권력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되어야 한다. 로마 가톨릭은 교황이 황제를 압도하는 시대도 있었고, 황제에게 굴복하는 시대도 있었다. 우리는 베드로와 동일시하는 권력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에 주목해야 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5-05-03
  • [토요시평] 기독교는 참된 의(義)를 알고 있는가?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결의되어, 현재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벌써 4개월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국정은 마비되고, 야당의 끊임없는 중요 인사들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도 탄핵소추에서 벗어난 국무총리이며 대통령 권한 대행에 대하여 다시 탄핵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말 국민들은 지긋지긋하고, 우리나라 정치가 이런 정도로 타락하고 후진성을 가졌나 의심할 정도이다. 또 그런 가운데 지난 26일 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선고가 나왔는데, 1심에서는 심각한 범죄적 판결을 내린 것에 반하여, 2심에서는 전면적인 ‘무죄’가 나왔다. 1심 판결을 2심에서 뒤집을 확률은 1.7%로 매우 낮다고 한다. 이를 두고 외국인들은 ‘한국을 이해할 수 없는 나라’로 평가한다. 외신 기자가 한국 정치 상황을 보도했더니, 본국 독자가 ‘이게 말이 되느냐 기자가 사실관계도 이해 못하고 기사를 쓴 것 아니냐’며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도 정치인들의 발언이 ‘표현의 자유’를 넘는 것인데, 이를 법원이 용납했다고 평가한다. 이번 판결은 법리(法理)와 논리(論理)와 상식(常識)조차 무너진 것으로, 우리나라는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체제와 진영 싸움에 깊이 빠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럼, 우리는 도대체 누구를 믿고, 누구를 의지하고, 어떤 기준을 따라야 하는가? 입법부도 사법부도 헌법재판소도 언론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국민들은 그래도 법관들의 양심을 믿고 기대했는데, 이미 몇 건의 유력 정치인의 재판을 보았고, 헌재에서 탄핵소추안 재판을 보았는데, 법관들은 일사분란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편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무서운 일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양심(良心)을 가진 세력들의 활동과, 법을 공정하고 정의롭게, 그리고 약자 편에 서 있어야 마땅한 법관들인데, 그들마저 ‘우리법연구회’니 ‘국제법연구회’니하면서, 법률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하기 어렵다. 물론, 법관 중에는 법적인 양심과 법리를 따라, 약자를 보호하는 법적 해석을, 강자에게는 보다 엄격한 법의 잣대로 판단하는 충실한 법관들도 있다고 본다. 자, 그런 가운데 우리 기독교는 어떨까? 대통령 계엄 선포와 탄핵을 당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성명서를 낸 것은 지난해 12월 6일, A신학대 교수 21명이 낸 ‘시국선언문’이 있다. 여기에는 ‘국민의 기본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 ‘국민을 두려움과 혼란에 빠트리는 행위’ ‘평화를 짓밟는 행위’로 규정하여, 국회는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하라고 촉구한다. 그래서인가? 지난 3월 7일 ‘00대 정상화를 위한 복음주의 학생연합’이 대통령 탄핵 반대와 학내 좌경화를 우려하는 대자보를 붙이자 3분 만에 학교 직원들이 떼어갔다고 한다. 탄핵은 지지하고 탄핵반대는 인정이 안 되는 구조인가? 그리고 지난해 12월 13일 B신학대학교 64명의 교수들도 ‘시국선언문’을 냈다. 이들은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헌정 질서를 부정하는 정변’이라고 하고, ‘반헌법적, 반역사적, 반신앙적 폭거’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내란 행위를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그리스도인이 없기를 바란다’고 하고, 12월 12일 대통령이 계엄의 불가피성을 설명한 것을 ‘궤변이며, 반국가적 선동 행위’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즉각 탄핵 결정을 하라고 촉구한다. 그런가 하면 지난 2월 20일 C교단의 목사, 장로 1,650명은 자기 교단의 ‘000 목사를 징계하라’는 성명서를 낸다. 000 목사는 ‘예배 강단을 정치 선동의 장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4월 중 봄 정기 노회에서 000 목사에 대한 ‘징계 헌의안’이 상정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미 000 목사에 대한 것은 지난 2월 16일 부산교회개혁연대측이 징계를 촉구하는 성명서가 나온 뒤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는 참된 의(義)를 알고 있는가? 편향적, 선택적, 폐쇄적, 일방통행식의(義)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누구에게는 엄격하게 의의 잣대를 들이대지만, 다른 쪽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인가? 처음에는 국민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할 수밖에 없던 이유에 대하여 깊이 있게 경청하고 고려해 보았는가?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고, 거대한 정치 권력에 의하여 떠밀려 가는 방향이 맞기는 한 것인가? 이대로 간다면 ‘대한민국호’는 안전한가? 한국교회언론회가 지난 2월 26일 여론조사 기관을 통하여 ‘탄핵정국 속 국민들의 심리’를 조사하였다.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사회에 위험한 존재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4.1%가 ‘그렇다’고 답했다. 갈등 상황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도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해서는 79.2%가 ‘그렇다’고 하였다.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우리는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독교 지도자들이 일방적, 선동적, 선결적 선언을 하면서, 다른 의견은 무시하는 태도는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의 기준’을 제대로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따르는 기독교가 한쪽 눈을 감고, 정치적, 이념적, 정파적, 비양심적 논리에 파묻힌다는 것이 과연 ‘의’가 될 수 있는가?
    • 연지골
    • 토요시평
    2025-04-09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사법부에 카르텔이라니, 말이 되나?’
    우리는 평소에 경찰, 법원, 검찰의 국가 조직에 별 관심이 없다. 말 그대로 죄를 짓거나 어떤 범죄적 혐의나 행위가 있을 때, 관련되는 곳이다. 더군다나 헌법재판소는 더욱 관심이 가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최근에 가장 관심을 받는 곳이 헌법재판소이다. 대통령의 탄핵 문제에 있어, 최종적으로 헌법적 판단을 할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국민들이 헌법재판소의 헌법 재판관들의 면면에 대하여 좔좔 외울 정도가 되었다.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존함은 모르는 사람들도 헌법 재판관 8명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다. 또 재판관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치적 성향과 그들의 판사활동 궤적(軌跡)을 훤히 알게 되었다. 헌법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에서 눈에 띄는 것이 ‘우리법연구회’(이하 우리법)와 ‘국제인권법연구회’(이하 인권법)이다. 이는 국민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조직에 들어갔던 판사들이 상당수 정치적인 편향성을 가졌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다. 그런 조직 속에서 활동했던 인사들 가운데, 이번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을 살펴보자. 오동운 공수처장은 인권법 출신이다. 또 공수처가 요청한 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의 이순형 판사는 우리법 출신이다. 그리고 탄핵 심판을 맡은 헌법 재판관 가운데 문형배 권한 대행은 우리법 회장 출신이다. 그리고 이미선 재판관은 인권법 출신이다. 정계선 재판관은 우리법과 인권법 모두에서 활동하였다. 또 야당의 국회 탄핵소추단의 박범계, 최기상 의원도 모두 우리법 출신이다. 그리고 민주당의 추천으로 헌재 재판관이 되려는 마은혁도 우리법 출신이다. 또한 서울서부지법의 영장 전담 판사도 아니면서, 당직 판사로 대통령에 대하여 15자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차은경 판사도 우리법 출신이다. 뿐만이 아니다. 최근에 송철호 전 울산시장과 황운하 의원에게 선거법과 관련하여, 1심에서는 두 사람이 각각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2심에서는 ‘유죄 의심이 가지만 직접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내린 2심의 주심 판사도 인권법 출신이다. 그리고 당초 1심을 맡았던 김미리 판사는 계속 재판을 지연하므로, 결국 3년 10개월 만에 1심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인데, 그도 우리법 출신이다. 이러니 국민들은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법부 내 사조직 판사들의 이런 행태를 보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다. 그래서 카르텔(Kartell)를 형성했다고 비난한다. 이 말은, ‘동일 업종의 기업들이 이윤의 증대를 노리고 자유 경쟁을 피하기 위한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되는 시장 독점의 연합 형태’라고 정의한다. 판사들은 기본적으로 ‘법’과 ‘양심’에 충실하게 판결해야 한다. 이때 양심은 개인의 정치적 편향이나 주관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특정 세력을 변호하고 감싸기 위해서 법을 악용하거나 구부러진 잣대로 적용한다면, 이것은 국가와 국민들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이 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공산 국가에서도 법정도 있고, 판사도 있고, 검사도 있고, 변호사도 있다. 그러나 그들을 결코 양심적이고 법에 충실한 ‘법조인’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공산당과 자기들이 받드는 수령(首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군대 내 사조직으로 알려져 크게 비난과 심판을 받은 조직이 있었다. ‘하나회’였다. 그런데 군부 독재 시대도 아닌, 현재에 사법부 내에서 권력을 독점하는 사조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나? 우리법연구회는 1989년 만들어져서 후에 호남계 법조인, 운동권 법조인들이 중심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조직은 2018년 해체될 때까지 140여 명의 회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우리법 출신이 많이 기용되었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박시환 대법관, 강금실 법무부장관, 김종훈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이 있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표적인데, 그는 우리법 초대 회장 출신으로, 그가 대법원장이 된 후 우리법 출신들을 집중적으로 핵심 요직과 수뇌부에 승진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박범계 법무부장관, 이용구 차관도 같은 우리법 출신이다. 그리고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몫으로 향판(鄕判) 출신인 문형배를 인사청문회 당시 횡령 의혹과 정치적 편향성 등의 문제점이 있었으나, 끝내 헌법 재판관으로 세운 것이다. 그가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으로 이번 대통령 탄핵 사건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후에 생긴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의 법관은 40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체 법관 3,000여 명 가운데 우리법과 인권법 판사들의 비율이 얼마나 높은가? 이런 조직에 들어간 판사들이라고 무조건 정치적 편향성을 가졌다고 의심해야 하나? 물론 100% 다는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언론 보도에 의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 같은 의견을 낸 경우가 90%까지 이른다는 분석이 있다. 이런 현상을 어찌 가벼운 문제로 보겠는가? 책임과 파급력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모든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그야말로 판사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움직이는 법원으로 상징되는데 이런 사조직 활동과 편향성을 갖게 된다면, 이는 국민들이 인정할 수 없다. 국민들의 결집된 힘으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사법부 내에 모든 사조직은 없어져야 한다. 카르텔을 해체해야 한다. 온 국민들이 이런 올바르지 못한 법관들을 위하여 비싼 세금을 내서 그들을 예우하고, 그런 사람들에 의한 부당한 법의 지배를 받는다면, 이를 용납할 수 있나?
    • 연지골
    • 토요시평
    2025-02-24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진보계 미국 대통령의 한계’
    지난해 12월 29일 미국의 전직 지미 카터 대통령이 100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1977년 1월부터 1981년 1월까지 4년간 미국의 제39대 대통령을 지냈다. 지미 카터가 대통령에 당선된 1976년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베트남전의 장기화로 미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컸던 때이다. 이로 인하여 그는 변변한 미국 중앙 정치의 경험도 별로 없는 가운데, 조지아주 주지사를 지낸 것만으로 명함을 내밀어 대통령에 당선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의 정치 공약은 놀랍게도 ‘절대 거짓말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이것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어 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는 만만치 않았다. 중동의 오일쇼크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이란의 이슬람 혁명 세력이 미국 대사관을 점령하여 52명을 인질로 444일간 억류한 사태는 미국민들의 자존심을 구기는, 치욕적이고 굴욕적인 사건이었다. 그래서 지미 카터는 재선에 실패하고, ‘강한 미국’을 내세운 로널드 레이건에게 다음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다. 지미 카터는 현직에 있을 때, 아주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은 대통령이다. 그는 57세에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자기 땅콩 농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을 지낸 경력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민주주의, 인권, 평화, 기아 퇴치라는 미국 진보계 민주당이 주창하는 것들에 헌신하였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40년 이상을 이런 일에 몰두하였다. 그는 퇴임 후, 저소득층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해 주는 ‘해비타트 운동’을 이끌어서 전세계 14개국에서 4,447채의 주택을 만들거나 수리하는 일을 하였다. 또 분쟁 지역의 외교에서 막후 협상을 벌여 해결사 및 중재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는 북한, 수단, 아이티, 세르비아, 보스니아 등을 누볐다. 그래서 지미 카터를 ‘사태를 해결한다’는 의미로 ‘미스터 픽스 잇’(Mr.Fix. it)이라고 불렀다. 그로 인하여 2002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런데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한국과는 그리 친밀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지미 카터 대통령 당시 한국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있었다. 지미 카터는 1977년 대통령에 취임 하자 마자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한다’고 밝혔다. 당시 참모인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안보담당 보좌관은 신중론을 폈지만, 카터는 한국의 유신체제와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내려놓지 않았다. 이 문제로 양국은 심각한 갈등이 생겼었다. 그런데 지미 카터 대통령은 한국보다는 북한의 김일성에게 더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1994년 6월 1차 북핵 위기가 있을 때, 카터는 당시 클린턴 행정부와 협의도 없이, 김일성의 초청을 받아들여 평양을 방문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카터는 김일성과 대동강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였다. 즉 ‘미국이 대북 제재를 중단하면 북한도 핵개발을 동결하겠다’는 주장을 폈다. 그때까지 강경했던 클린턴 행정부도 어쩔 수 없이 ‘제네바 합의’를 하게 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때 카터의 역할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개발하여 사실상 보유하는 나라로 만들어 준 셈이 되고 말았다. 또 카터는 2010년 천안함 폭침이 북한에 의하여 발생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없이, 북한이 원하는 6자회담 개최에 대한 것을, 북한의 입장대로 뉴욕타임스에 기고하였다. 그리고 2011년에도 북한을 방문하고 나서 한국에 들어왔을 때도, 북한 인권 문제에 간섭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대하여 식량 지원 중단한 것을 ‘인권침해’로 비난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2014년 카터가 설립한 ‘카터센터’에서는 당시 내란 음모와 선동 협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판결을 우려한다고 논평하였다. 그는 평화나 인권을 말하면서도, 이를 악용하여 독재를 벌이는 자들에게는 관대하므로, 그들이 평화와 인권 뒤에서 벌이는 허위와 위선을 간파하지 못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아야 했다. 지미 카터는 100세까지 장수하였다. 그의 부고(訃告) 기사는 이미 오래전에 쓰여졌다고 한다. 뉴욕타임스가 내보낸 지미 카터의 부고 기사는 지난 2017년 사망한 로이 리드 기자가 쓴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부고 기사도 지난해 사망한 에드워드 월시 기자가 작성해 놓은 것이다. 영국 가디언지의 부고 기사도 이미 2021년에 사망한 해럴드 잭슨 기자의 글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놀랍다. 그러나 미국 정치에서 진보 대통령이 가졌던 인식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공산주의 북한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자유민주주의 한국에 대해서는 왜 그리 박정(薄情) 했을까?
    • 연지골
    • 토요시평
    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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