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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독 사회와 한국교회의 치유 사역
    지금 우리사회에는 300만명 이상의 도박중독자, 250만명 이상의 알코올중독자, 190만명 이상의 쇼핑중독자, 50만명 이상의 마약중독자, 그 수를 알 수 없는 섹스중독자 …, 수백만 명에 이르는 스마트폰 중독 등 어림잡아 1200만명 이상의 중독자가 존재한다고 한다. 이는 전체 국민의 약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뿐 아니라 청장년 과반수가 일중독자라는 말도 있다. 지난 주 교계에는 이 중독사회에 대한 한국교회의 치유사역이 논의됐다. 글로벌디아코니아가 주도한 이 모임은 교회가 이들 중독자들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중독의 문제점을 공론화 하고 치유와 회복의 길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이다. 이 문제 역시 넓은 의미의 목회적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사실 우리사회에서 가장 심각히 대두되는 성범죄의 대부분은 성중독자에 의해 저질러진다. 성중독자는 성중독의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끝없이 성충동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 이런 사람들을 위한 성상담소는 여럿 있어도 치유와 회복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을 찾기는 어렵다. 교회가 관심가져야 할 부분이다.중독의 문제는 또 학대로 이어져 학대를 통해 가족에게 외상을 남긴다는 것이다. 가정폭력은 68%가 음주상태에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는 신체적, 정서적, 성적, 영적 확대가 수반된다.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정환경에서 자란 자녀들은 결국 자신도 그런 중독자로 성장해 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날 주최측은 “모든 중독은 개인의 질병이 아니고 3세대로 전수되는 ‘가족의 질병’이라”고 지적했다. 즉 중독의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그런데 모든 중독에 대한 확실한 치유와 회복은 말씀의 조명과 성령의 감화가 가장 효과적이다. 많은 알코올 중독자와 니코틴 중독자가 성령을 체험한 후에 자연스럽게 금주금연을 하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중독에 대한 교회의 관심과 사역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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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5-24
  • 정치인과 종교 의식
    우리 현대 대한민국 사회는 아직 특별한 주류종교가 없는 다종교 사회이다. 불교와 기독교가 비슷한 세를 갖고 있고, 천주교가 그 다음을 잇고 있다. 그래서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이 세 종교의 신도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들 종교의 전통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치인이 독실한 불자거나, 또는 독실한 기독자이거나 하면, 언론이 괜히 나서서 타종교 행사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나를 시시콜콜 판다.올 해도 지난 12일 석가탄신일에 기독자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사찰의 봉축 법요식에 참가해 합장하지 않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서 있었다고 하여, 이를 보고 불교식 예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솔직히 이런 비판은 좀 좀스러운데가 있다. 모든 종교에는 그 종교의 전통별 예법이 있다. 불교는 어디서나 두 손을 합장하고, 기독교는 양손을 가지런히 맞잡으며, 천주교는 성호를 긋는다. 어디서든 그것이 상대에 대한 그들 종교인의 예법이다. 타종교의 의식에 참여해 어설프게 몸에 익지도 않은 타종교 예법을 따라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일이다. 불자는 기독교 행사에서도 합장하는 것이 맞고, 기독자는 불교 행사에서라도 양손을 가지런히 맞잡고, 천주교인은 성호를 긋는 것이 예를 갖추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종교적 신념을 굳게 가진 정치인은 자신의 종교적 가치관을 정치에 투영해 사회를 바르게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옳다. 그것이 그가 종교를 가진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자신이 믿는 특정종교를 선전하는데 그의 정치적 역량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옳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불자는 불교의 가르침을, 기독자는 성경의 가르침을, 또 다른 종교인은 그 종교의 가르침을 자신의 정치활동을 통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이 그 정치인의 가치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다면 그가 믿는 신앙은 가짜이다. 모든 인간의 가치관은 그가 가진 종교의 가르침에 바탕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종교도 없는 사람은 또 다른 무종교 이념의 가치관을 갖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어떤 종교이든 정치인 본인의 종교적 신념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런 일로 종교적 논쟁은 백해무익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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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5-24
  • 정치인과 종교 의식
    우리 현대 대한민국 사회는 아직 특별한 주류종교가 없는 다종교 사회이다. 불교와 기독교가 비슷한 세를 갖고 있고, 천주교가 그 다음을 잇고 있다. 그래서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이 세 종교의 신도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들 종교의 전통행사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치인이 독실한 불자거나, 또는 독실한 기독자이거나 하면, 언론이 괜히 나서서 타종교 행사에서 어떤 태도를 취했나를 시시콜콜 판다.올 해도 지난 12일 석가탄신일에 기독자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사찰의 봉축 법요식에 참가해 합장하지 않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서 있었다고 하여, 이를 보고 불교식 예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솔직히 이런 비판은 좀 좀스러운데가 있다. 모든 종교에는 그 종교의 전통별 예법이 있다. 불교는 어디서나 두 손을 합장하고, 기독교는 양손을 가지런히 맞잡으며, 천주교는 성호를 긋는다. 어디서든 그것이 상대에 대한 그들 종교인의 예법이다. 타종교의 의식에 참여해 어설프게 몸에 익지도 않은 타종교 예법을 따라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한 일이다. 불자는 기독교 행사에서도 합장하는 것이 맞고, 기독자는 불교 행사에서라도 양손을 가지런히 맞잡고, 천주교인은 성호를 긋는 것이 예를 갖추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종교적 신념을 굳게 가진 정치인은 자신의 종교적 가치관을 정치에 투영해 사회를 바르게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옳다. 그것이 그가 종교를 가진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자신이 믿는 특정종교를 선전하는데 그의 정치적 역량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옳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불자는 불교의 가르침을, 기독자는 성경의 가르침을, 또 다른 종교인은 그 종교의 가르침을 자신의 정치활동을 통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이 그 정치인의 가치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다면 그가 믿는 신앙은 가짜이다. 모든 인간의 가치관은 그가 가진 종교의 가르침에 바탕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종교도 없는 사람은 또 다른 무종교 이념의 가치관을 갖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어떤 종교이든 정치인 본인의 종교적 신념은 존중되어야 한다. 이런 일로 종교적 논쟁은 백해무익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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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5-16
  • 이단대책 패러다임 바뀌어야
    기독교는 우주를 관통하는 진리를 포용하고 있어 다이나믹 하다. 그만큼 다양성의 종교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과 심판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를 고백하고 있다면 이는 모두 기독교이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우리의 형제요 자매로 봐도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신학이 보수화 되고 경직되어 근본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다양한 신앙운동을 ‘이단시’하여 배척하고, 끝내는 ‘사교’(邪敎)로 몰아 처단하는 풍토 때문이다. 이런 풍토에서는 신학의 진보나 새로운 신앙의 각성운동이 발을 붙일 수가 없다. 현재 한국의 각 교단 신학교의 교수들도 자신들이 공부한 신학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칫 이단 시비에 휘말리지 않을까 두려워서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교단신학교육은 대학에서 좋은 기초학문을 전공한 우수한 학생들을 불러 모아 16세기 칼빈주의나 17세기 개혁주의 또는 19세기 정통주의나 보수주의 신학을 앵무새처럼 외우고, 그거을 전달하게 하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의욕을 가지고 입학한 창의성을 가진 학생일지라도, 졸업 때에는 모두 그 교단의 교리, 그 교단의 제도만을 배워서 교문을 나서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가 배운 질서가 아니면 모두 ‘우리 교단과 다르다’며 다 비진리로 낙인 찍는다. 그래서 이단을 만들기도 한다.오늘날 한국교회의 이단 시비는 너무 가볍다. 이단 아닌 이단이 너무 남발된다는 말이다. 한국교회가 21세기 새시대를 이끌려면 이처럼 험악한 교계 풍토부터 바꾸어야 한다. 이단논쟁을 교회의 통일성과 정통성을 확인하는 신학논쟁으로 승화시키고, 오히려 거기에서 교리와 신학의 발전을 이끌어 내어야 한다. 정통주의와 색다른 신앙운동을 만나면, 그들이 가진 특징이 무엇인지부터 살피고, ‘나와 다른 것만을 찾으려 하지 말고 나와 같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형제를 이단시 하는 분열주의를 극복하고 연합과 일치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 가야 한다. 그래야만 진짜 이단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추진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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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5-10
  • 서울교회 불신자 ‘당회장 직무대행’ 등장
    서울 대치동에 있는 서울교회(담임목사 박노철)가 분쟁에 휩싸인 끝에, 법원이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전문지식이 없는 변호사를 ‘당회장 직무대행’으로 파송해 교회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이는 물론 교회분쟁을 노회나 교단이 스스로 수습하지 못하고 세속 법원에 판결을 의뢰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러나 재판부가 교회의 입장을 최소한이라도 살폈다면 전혀 기독교와 무관한 불신자 변호사를 지명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아마도 재판부는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해 법에 따라 판단만 할뿐, 그것이 기독교든 아니든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할지 모른다. 또한 이전에도 불신자 변호사가 분쟁이 생긴 교회의 당회장을 하면서 교회로부터 수백만원씩 월급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성경과 신앙에 의해 치리되는 교회의 당회장을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을 지명하는 것은 재판부가 비난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뿐만 아니라, 교회는 불교의 전통사찰이나, 유교의 향교와는 전혀 다르다. 불교는 ‘전통사찰보전법’과 유교는 ‘향교재산법’에 의해 관리됨으로, 분쟁이 생기면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 그것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진흥사찰의 보조. 관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비를 보조” 받을 뿐 아니라, 그 기관 자체가 국가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단 한 푼의 경비도 보조 받지 않는 순수한 자율단체이다. 당연히 신도들에 의해 자율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것이 종교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다. 따라서 교회에 분쟁이 생겨 법원에 그 판결을 의뢰했다 하더라도 국법에 의해 판단될 부분이 있고, 국법이 개입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는 것이다. 교회법에 의하면 “당회장은 지교회 시무목사가 된다. 당회장이 결원되었을 때에는 노회가 임시당회장을 파송하고, 기타 사정이 있을 때에는 당회장이 위임한 자 또는 당회원이 합의하여 청한 자로 당회장을 대리케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양쪽이 갈라져 다투고 있다 하더라도 어느 쪽이든 불신자를 당회장으로 파송해 달라고 지명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그런데 어찌해서 불신자 변호사가 당회장 직무대행이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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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5-10
  • 우리사회 좌경화, 한국교회가 막아야 한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종교개혁으로 신앙과 양심에 따라 탄생된 독일의 루터파 교회와 개혁파 교회의 약 80%가 나치를 지지했다. 그리하여 독일교회는 나치가 유럽을 전쟁터로 만들고, 유대인 6백만 명을 가스실에서 살해하는 동안 침묵했다. 그 시기 동쪽 한반도의 한국 기독교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적극 장려하고 솔선이행 했다. 그것을 반대하는 자는 누구나 이단이나 반역으로 몰려 처벌되었다. 독일교회나 한국교회의 이같은 태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백히 위배한 배신이요 반역이다.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가? 어쩌면 종교의 자유가 현저히 침해될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각급 종교집단들은 두고라도 한국교회조차 아무런 목소리가 없다. 좌파 정당과 문재인 정권이 노리는 것은 헌법을 개정해 사회주의를 만들자는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비판과 지적이 수없이 있는 데도 한국교회는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내어놓지 않고 있다. 교회 안에는 오히려 그들 좌파들을 편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결코 정치적인 문제를 말하는 것이 이니다.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위해 좌우파 간 싸운다고 치부하더라도, 교회는 종교의 자유와 선교의 자유가 침해되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유대인이 말살 당하고, 한국인이 집안의 전통인 성씨(性氏)마저 잃고 일제에 굴종한 것은 독일의 기독교와 한국의 기독교가 비판기능을 다하지 못한 탓이다. 기독교는 하늘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고, 땅위에 문제는 외면해도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땅위가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가 매일 ‘하나님의 나라가 곧 임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땅위의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전국에 6만 개 교회가 있고, 수십만에 이르는 목회자가 있으면 뭐하나. 이들이 다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徘)만 섬기는 자들”(롬 16:18)이 되고 만다면, 결국 교회도 망하고, 사회도 망하는 것이다.현재 우리사회에서 한국교회만큼 큰 영향을 끼치는 집단은 어디에도 없다. 이제 미친 짓거리를 하는 우리 정치권과 좌경화 되는 우리사회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세력은 한국교회 밖에 없다. 한국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9-04-26
  • 부활 신앙인의 삶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19, 20).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자 모두 도망갔던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를 만난 후, 그 사실을 증언하고 다니다가 유언비어 날조 혐의로 당국에 붙잡혀 심문을 받고, ‘말조심 하라’는 협박을 받은 후 훈방조치 되면서 당국자에게 한 말이다.예수 부활 이후 제자들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겁에 질려 도망다니던 제자들도 모두가 예수 부활의 증인으로 나선 것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이다. 이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예수님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선언한 에클레시아, 즉 교회이다.이후 그리스도의 교회는 유대교로부터 이단으로 몰리고, 로마로부터는 사회혼란 세력으로 몰려 심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키며 끝내 승리했다. 그러므로 교회는 순전히 예수 부활에 대한 증언공동체이다. 따라서 부활을 증언하지 아니하는 교회는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기독교가 다른 세속종교와 다른 점은 예수가 그리스도로 부활하여 땅에 자기 시신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유물론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다른 동물의 세계와 같이 생명이 있는 동안 세상에 살다가 죽으면 그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모든 사람은 예수의 재림과 함께 부활하여 영생한다고 믿는 것이다. 또한 영혼의 불멸설이든, 수면설이든, 마지막 때에 죽은 자의 부활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이 기독교만이 가진 인간관이다. 교회는 이런 소망을 전파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는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인답게 다른 세속적 삶을 사는 사람들과 달리 세상에 본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벧전 3:15)고 하신 밀씀을 청종해야 한다. 이것이 곧 부활신앙을 가진 전도인의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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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4-26
  • 내년 총선 부정선거 감시기구 만들어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내년 4월 총선에서 국회의원 300석 중 260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밝혔다. 집권 여당의 대표가 어떤 근거에서 내뱉은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는 부정선거를 하지 않고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더불어민주당은 20년 장기집권을 말하고 있는데, 지금 문정부가 하는 짓을 보면 부정선거를 해서라도 헌법을 바꾸려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든다. 정말 국민이 정신 차례야 할 때이다. 현 좌파정부는 대한민국의 번영을 가져온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무력화 시키고, 공산사회주의 통제경제체제를 이루어 북한과 손잡고 연방정부를 만들려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미 공산사회주의는 지난 세기 실험에서 패배하고 폐기된 체제이다. 공산사회주의로는 새로운 시대의 인민을 먹여살릴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므로 21대 총선은 결국 우리국민이 자유민주의를 지키며 계속 번영할 것인가, 아니면 공산사회주의를 용인하느냐 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는 심각한 선택이다. 따라서 내년 4월 총선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세력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보수당 편에 서야 하고, 공산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세력은 소위 진보당 편에 서면 된다.그런데 우리사회에서 공산사회주의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핵심적 세력은 한국교회이다. 물론 한국교회 안에도 좌파는 있다. 그러나 그들 좌파들도 우리사회가 공산주의로 가는 것은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대다수 한국 기독교인들은 공산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독재체제인 공산주의는 개인의 자유뿐 아니라 종교의 자유도 억압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이미 종교자유를 억압하는 북한 공산집단의 박해를 경험했다. 해방 후에 3.8 이북에 살던 교인들이 대거 남쪽으로 월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인권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취해야 할 입장은 분명하다. 총선에서 부정선거를 감시하고 보수우파의 승리를 이끌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교회가 나서서 조직적 부정선거 감시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 연지골
    • 사설
    2019-04-23
  • 통일시대, 한국기독교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한반도는 통일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은 일제로부터의 해방처럼 도둑같이 어느날 올 것이라 기대할 수는 없지만, 그 어느 때보다 통일이 가까이 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지금 이때 한국기독교는 통일한국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가? 한국교회는 통일을 달라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는 하는데, 막상 통일을 대비하는 선교적 비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통일이 되면 북녁땅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지금 한국교회의 교파주의 또는 교단주의를 그대로 이식해도 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된 통일국가에 걸맞는 ‘하나된 기독교’로 나갈 것인가 하는 논의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국교회의 분열은 통일한국에서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을 가지고 충분한 논의를 통해 무조건 먼저 모든 교단은 교파별로 통합하고, 전통별 교파는 그대로 인정하는 연합과 일치기구가 필요하다. 그 명칭을 ‘한국기독교’ 같은 것으로 내걸면 어떨까. 거기에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 교파별 전통은 그대로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교회들이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고, 가까이는 중국교회도 그렇게 운영되고 있다. 성경은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가르치는데, 교회가 진보니 보수니 하며 갈라져 있다는 것은 세상에서 ‘전투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니다. 교회가 세상을 이기려면 하나의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통일한국에서는 반드시 하나의 기독교 기구가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실 한국교회는 종교의 자유를 너무 이기주의적으로 방종하고 있다. 누구나 교단 간판을 내걸 수 있다하더러도 똑같은 정치체제, 똑같은 신앙고백, 똑같은 신학을 가지고 있으면서 200개, 300개 교단으로 갈라진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그래 놓고 교권집단을 만들어 교계에 군림할려는 짓을 하니 제대로 된 교회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말이다. 한국기독교는 연합과 일치를 통해 어떤 모양으로든 당장 통일한국을 준비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9-04-18
  •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기독교 신앙은 부활로 완성된다. 따라서 부활신앙이 없는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다. 사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사람들이 믿기 어려운 그리스도의 부활을 들고 나왔다. 그것은 예수님이 생전에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 29)는 말씀을 하셨고, 또 예수님이 실제로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제자들이 미혹한다고 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초기에 많은 박해를 받았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사상은 고대 종교사상에도 상징적이고, 은유적으로 있어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실제로 죽었다가 부활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전 15:20). 예수는 하나님의 품에 있던 독생자로서, 그 자체가 태초에 존재한 생명의 빛이었기 때문에 그 생명이 무던 속에서도 그대로 있어 썩지 않고 부활에 이른 것이다.그러면 죄로 인해 이미 ‘죽었다’고 선고를 받은 인간은 어떻게 부활할 수 있는가? 그것은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함이 없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잠자는 자는 천사장의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죽지않고 실아있던 사람들도 모두 변화하게 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 15:22-24).현대교회는 세속화로 인해 부활신앙이 약화되고 있다. 이럴 때일 수록 부활신앙을 돈독히 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9-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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