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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들의 재산 기부 일어나야
    지난 주, 어릴 때 가난하여 초등학교도 못다닌 부부가 평생을 과일장사를 하여 절약해 모은 400억원의 재산을 고려대학교 법인 고려중앙학원에 기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들 부부는 청량리 무허가 판자촌에 살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과일을 팔겠다’는 신념으로 새벽 1시에 리어카를 끌고 시장에 나가 과일을 떼다 팔았다고 한다. 그들이 억척같이 저축한 끝에 1976년 처음으로 청량리에 상가건물을 산 것이 계기가 되어 거액을 모을 수 있었다. 김영석(91세) 양영애(83세) 씨 부부가 그들이다. 그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지만 아들들과는 의논하지 않은채 큰 아들이 졸업한 고려대에 재산을 기부했다고 한다.이 보도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도전을 던지고 있다. 사실 중세 기독교인들은 죽음을 앞두고 그 재산을 교회나 수도원에 기증하는 것을 좋아했다. 대신 교회나 수도원은 그들의 장례를 극진히 치루어주었다. 지금 유럽의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교회와 수도원은 그렇게해서 생겨난 것들이다. 그후 근대에 이르러서는 학교를 세우고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기부했다.그런데 한국교회는 그 역사가 아직 미천하긴하지만, 기독교인들의 기부문화가 사회를 선도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헌금은 열심히 한다. 한국교회의 헌금 수준은 세계교회가 놀랄만 하다. 그러나 장로도, 집사도, 권사도 열심히 노력해 모은 재산을 평소에는 하나님이 ‘축복’해서 얻은 재물이라고 감사하다가 고스란히 그 자식들에게 상속하고 떠난다. 교회나 신학교에 기부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잘났다’는 목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기부는 커녕 은퇴하면서 교회돈을 챙겨갈려고 눈이 벌건 자들도 있다.천주교는 ‘주교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고 말한다. 주교가 사제를 양육하고, 파송하여 교회를 세우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목사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 목사가 말씀을 가르치고 교인들을 양육하여 교회를 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를 양육하는 신학교가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자신이 섬기는 개교회를 넘어 신학교의 육성을 위해 재산을 기부하는 일이 많이 일어나야 한다. 근래 한국교회의 각급 신학교 운영이 매우 어렵다. 이럴 때 신학교들을 위한 기독교인들의 과감한 기부운동이 널리 퍼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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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09
  •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일 대법관 13명 중 9대 4로 소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아직 대체복무제가 시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방법으로 정한 집총이나 군사훈련을 거부하겠다는 상황에서 이들에게 형사처벌로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것은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거나 본질적으로 위협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우리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자들은 거의 모두가 여호와의증인 신도들이다. 이들은 그들의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다.여호와의증인은 세상을 ‘여호와의 조직’과 ‘사탄의 조직’으로 나눈다. 자신들의 왕국회관만이 진정한 여호와의 조직이고, 세상 나라(국가)들은 사탄의 조직으로 본다. 따라서, 여호와의증인은 세상 나라라는 사탄의 조직에 복무할 수 없다는 것이 병역거부의 본질이다. 양심적이니, 평화주의니 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위한 변명일 뿐이다.여호와의증인은 미국 뉴욕 부르클린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통치체’의 지시를 받는다. 각 나라에 있는 지부통치체는 이 세계통치체의 지시에 따라 일률적으로 행동하는 가장 무서운 반사회성 종교집단이다. 그런데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 반사회성 종교집단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앞으로 상당한 사회적 갈등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사실 그들은 기독교가 아닌데도, 기독교의 성경까지도 자기네 교리에 맞추어 번역해 사용한다. 그것이 ‘신세계역’이다. 여호와의증인은 세뇌집단임으로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더욱이 그들은 기성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전도한다. 그래서 여호와의증인 약 90%가 기성교회에서 넘어간 사람들이다. 일단 한번 빠진 후에는 설득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가정에서 여호와의증인을 반대하는 부부간이나 부모 자식간에 심각한 갈등에 빠진다. 이런 종교집단이 이번에 양심의 자유라는 명분아래 병역기피가 정당화 되었으니 앞으로 우리사회에서 이들 종교집단의 포교행위 자체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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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1-09
  • 예장통합측의 임보라 목사 이단정죄의 문제점
    지난 9월 예장통합측 제103회 총회가 같은 에큐메니칼 진영인 기장 소속의 임보라 목사(여, 섬돌향린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임 목사가 “하나님도 여성성”을 가졌다고 주장하고, “동성결혼을 축복하고 기도해 주었다”는 등의 이유로, “임보라 씨는 목사라기보다는 기독교 신앙과 별 상관없는 인본주의적이고 박애주의적인 일반 인권운동가의 시각을 가지고 활동하는 자로 사료된다”며, “비성경적이며 이단성이 매우 높다”고 정죄했다.임 목사의 주장이 한국교회의 신학적 신앙적 정서와 괴리가 있는 것은 맞지만, 이야말로 임보라 목사의 이같은 주장은 신학적 토론의 주제로 보인다. 그러나 예장통합측은 이단 사이비대책위원회의 보고서 한 장으로 기장 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한 것이다. 기장은 1953년 예장으로부터 분열한 교단이지만, 예장통합측과는 같은 에큐미니칼 노선을 유지하고 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회원교단이며, 통합측과 함께 WCC 회원교단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에큐메니칼 교단끼리 단 한번의 신학적 토론이나 교단간 협의도 없이 그 교단소속 목사를 단지 ‘연구’라는 이름으로 이단으로 정죄할 수 있는 것인지? 기장 자체에서 이단성 문제가 제기되었다면 몰라도 소속교단에서는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는데, 제3의 교단이 나서서 정통교단의 목사를 일방적으로 이단정죄를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예장통합측은 그동안 만만해 보이는 타교단 목사들을 수없이 이단정죄를 해 왔다. 그러나 이번 임 목사 사건은 문제가 다르다. 예장통합측은 한국교회 에큐메니칼 기관에 기장과 나란히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NCCK뿐 아니라, 대한기독교서회, CBS, 성서공회 등 곳곳에서 두 교단간 삐걱거릴 소지가 있어 보인다.지금 NCCK의 경우는 총무는 예장통합측 목사이지만, 사실상 기장이 주도하고 있다고 봄이 옳다. 그런데 예장통합측의 이번 임 목사 정죄는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기장이 무시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봐야 한다. 기장은 이미 통합측을 향해 “기장 소속교회 목회자를 문제시하면서도 그 모든 절차를 무시해버린 처사는 단지 한 개인을 정죄한 것에 그치지 않고 본 교단의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한 무도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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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26
  • 종교개혁 501주년
    이달 30일은 중세 종교개혁 501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런데 지난해 떠들석하게 종교개혁 500주년을 부르짖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에 대한 관심이 퇴조되고 있는 듯하다. 10월이면 그래도 각급 신학교나 연구기관 등에서 종교개혁을 주제로 세미나 등을 활발히 추진해 왔는데, 올해에는 교계의 관심을 끌만한 행사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사실 마틴 루터로부터 촉발한 종교개혁의 덕을 가장 많이 본 교파는 ‘루터파’와 ‘개혁파’이다. 루터파는 독일과 북유럽 등에 널리 퍼져있고, 개혁파는 유럽과 아메리카 등에 널리 퍼져있다. 특히 한국기독교는 개혁파가 약 70%를 점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입만 열면 ‘개혁주의’나 ‘개혁신학’을 들먹인다. 심지어 ‘개혁’이란 간판을 단 교단도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종교개혁의 달에 전 교회적으로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교단은 찾아보기 어렵다.종교개혁이 신앙적 ‘정통성’을 되찾는 일이었다면, 그 개혁을 기념하는 일은 그 정통에 대한 ‘전통성’을 이어가는 일이다. 왜냐면 개혁주의 교회에서 종교개혁이란 중세에 그 개혁이 끝난 것이 아니고, 역사 속에서 계속 ‘개혁하는 교회’를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혁이 멈추면 그 전통도 끝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혁교회는 끝임 없이 교회개혁을 말해야 한다. 입으로만 아니라 ‘신행’(信行)을 똑같이 삶의 현장에서 드러내어야 한다. 신행이란 우리의 신앙과 행위를 말한다. 신(信)은 무엇을 믿는가 하는 바른 교리를 말하는 것이고, 행(行)은 그 믿음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사는가 하는 삶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이고, ‘그리스도의 편지’(고후 3:3)이다.역사적 기독교는 교회론에서 지상의 ‘전투하는 교회’와 천상의 ‘승리자의 교회’로 나누어 불렀다. 지상의 전투하는 교회에서 믿음에 실패한 사람은 천상의 승리자의 교회에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상의 전투하는 교회는 누구와 싸우는가. 공중권세 잡은 사탄과 싸우며, 아직도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문화와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과 벗하여 세속적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그것이 종교개혁의 기본정신이다. 다시 한번 한국교회가 종교개혁 501주년을 맞아 경성(警醒)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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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26
  •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제40회 ACTS 선교대회 개최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는 오는 24, 25일 ACTS 양평캠퍼스에서 제40회 선교대회를 개최된다. 이번 제40회 선교대회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Here am I. Send me!”라는 주제로 KWMA 사무총장인 조용중 선교사(Dr.Yong Joong Cho)가 말씀을 선포한다. ACTS 선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사전 신청을 해야 하며 접수 및 문의는 선교실로 하면 된다. <문의 031-770-78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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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9
  • 세속주의의 도전에 맞선 교회
    21세기는 세속주의가 교회를 향해 가장 강력하게 도전하는 시대이다. 19세기는 신(神)에 맞서 공산주의라는 붉은 용이 교회를 삼키려다 실패한 세기였지만, 20세기는 ‘신 없는 세상’을 내세운 세속주의가 인권과 평등과 차별금지라는 이름으로 교회에 도전하고 있다. 그래서 동성애와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노리고, 근친과 프리섹스를 즐기는 ‘종교 없는 삶’이 현대인에게 솔깃하다. 우리사회도 요 몇년 사이에 종교인구보다 무종교층이 훨씬 많아졌다.2015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종교가 없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인구의 56.1%나 된다. 종교인구는 10년만에 9%나 감소했다. 그 수는 약 300만에 이른다. 무종교인구의 연령층도 1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젊은 층이 훨씬 많다. 이는 갈수록 종교인구가 줄어들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면 ‘신 없는 세상’ 또는 ‘종교 없는 삶’이 신 앞에 사는 삶이나 종교적 삶을 사는 것보다 행복한가? 이 물음에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사람보다 더 많을까?종교를 믿는다 하더라도 인생의 갈등과 문제들은 여전히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다. 교회 안에도 역시 불안전한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다. 그러나 종교는 사람들의 윤리와 도덕율을 제시하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판단하는 기준을 교훈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인생 문제에 답을 찾았고 또 무수한 영적 갈증을 해소해 왔다.그런데 21세기 현대인은 세속주의를 내세워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는 신 없는 삶, 종교 없는 세상을 찬양하며 무종교인으로 살기를 원하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신앞에 사는 것을 거부해 왔다. 성경은 그것이 곧 죄라고 말한다. 따라서 21세기는 교회가 가장 많은 세속적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 영적 무장이 필요하다. 영적 능력 없이는 세상에서 ‘전투하는 교회’(에클레시아 밀리탄스)로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우리의 영원한 도성 새예루살렘은 세상에서 승리한 교회만이 들어가는 ‘승리자의 교회’(에클레시아 트람움판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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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9
  • 고소고발 공화국
    참으로 우리사회가 놀랍고 유치하다. 대한민국이 고소고발 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다. 청와대도 고발하고, 국무총리도 고발하고, 국회도 고발하고, 정부부처들도 고발하고, 시민단체들도 고발하고, 여차하면 고소고발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고소고발장을 내밀지 않는 국가기관이 거의 없다. 심지어 국가를 통치한다는 정부 여당도 고발장을 내민다.대관절 고소고발이 이렇게 난무하면 사법당국이 어떻게 이를 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우리사회는 부끄럽게도 아직 미성숙하여 평소에도 일본에 비해 10배가 넘는 고소고발건이 접수되는데, 이젠 권력기관들 마저 나서서 고소고발을 해대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마땅히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들조차 사법당국에 떠넘기는 꼴이다. 그러니 협치는 고사하고 정치도 실종되고 있다. 솔직히 이런 꼴을 보고있는 국민들은 속이 뒤집힌다. 윤리도덕이 제대로 된 사회는 개인간의 감정싸움도 웬만하면 술 한잔씩 하고 풀고 마는데, 소위 권부까지 나서서 비판여론을 틀어막기 위해 고소고발을 해대서야 되겠는가. 고소고발은 사랑과 용서를 입에 달고 사는 기독교계에서도 난무한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무시하는 사이비 신앙인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연합과 일치를 이룬다는 교계 연합단체들도 여차하면 고소고발하고, 심지어 목회자와 신도간에, 또 같은 교회 신도들 간에도 상대를 처벌해 달라고 고소고발 한다. 여기에 무슨 사랑과 용서가 있단 말인가. 사법당국에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설교자는 가짜이고, 같은 신도 간에 고소고발 하는 자는 교회에서 치리함이 마땅하다. 다툼이 있으면 마땅히 교회 앞에서 그 시시비비를 가리고 교회의 판단에 순복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좀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바다.어떤 경우에도 청와대와 정부는 비판자들이 좀 억지나 오해를 한다 해도 ‘해명’이나 ‘반박’으로 끝나야지, 고소고발장을 내미는 것은 보기 흉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기관은 언제나 비판을 받기 마련이다. 그 비판이 싫으면 그 기관에서 떠나면 되고, 그들의 정당성은 역사가 평가할 일이다. 굳이 공직자가 ‘명예훼손’ 운운하며 고소장을 들고 다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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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9
  • 벙어리 개가 된 파수꾼들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 와서 삼키라 그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 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익만 도모하며...”(사 56:9-12).주전 7세기 유대사회 지도자들을 향해 벙어리 개라고 꾸짖은 이사야의 이 예언은 마치 요즘 우리사회를 향한 음성으로 들린다. 지금 우리사회는 국가의 파수꾼으로 세운 정치권도, 민족의 파수꾼으로 세운 종교계도 모두 벙어리 개가 되어가고 있다. 그나마 깨어있는 한 국회의원이 정부의 부정의혹을 제기했다 하여 논란이 되고 있을 뿐, 평양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안보문제에 대해 어느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교회의 15만 여명에 이르는 설교자들이 아예 그 입이 틀어막혔는지 벙어리 개가 되었다. 이사야는 말한다. 짖지 않는 개라면 차라리 들의 짐승들, 삼림의 짐승들이 와서 삼켜버리라고.국회의원은 야당이든, 여당이든 청와대나 정부의 거수기가 아니고, 국가경영에 대한 파수꾼이다. 국가경영자들의 정책을 감시하고, 잘못된 정책은 비판하며 이를 바로 잡는 것이 목민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의 몫이다. 현대교회의 설교자도 마찬가지이다. 목회자는 자기네 교회당에 모여든 교인들의 영성만이 아니라, 이웃의 목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치리자나 정부의 잘못이나 권력의 부패에 대해서는 그것을 가감없이 지적해야 옳다. 목회자가 권력의 위협을 느껴 재갈이 물리면 임시적으로는 평안할 것 같지만, 결국 모두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금은 좀 아프더라도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게 해야 한다.‘촛불’도 마찬가지이다. 저들의 말대로 ‘촛불혁명’으로 세운 정부라면 그 정부를 감시할 책임 역시 촛불에 있다. 지금 많은 국민이 정부의 급진적인 남북합의로, 이러다가 우리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해야 할 파수꾼의 역할도 ‘촛불’에 있다. 그런데 정치권도, 종교계도, 시민사회도 너무 잠잠한 것 같아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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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05
  • 한국교회 신사참배 80년 회개운동
    교계의 한 부흥운동 단체가 ‘한국교회일천만기도운동본부’를 만들고, 한국교회의 일제하 신사참배 80년 회개성회를 준비하고 있다. 1938년 9월 9일 장로교 제27회 총회가 태양신 천조대신을 섬기는 신사참배를 기독교 신앙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결의함으로써 한국교회 전체를 우상숭배에 빠뜨리는 죄악을 저질렀다. 감리교는 그 이전에 이미 신사참배를 행하고 있었다. 한국교회는 이 신사참배로 인해 해방 후 교단이 산산조각 나는 분열의 역사를 가져왔다.그런데 사실 신사참배 문제는 공교회가 저지른 심각한 배도(背道) 행위였으나 공교회적 회개나 신사참배 주동자들에 대한 책벌 없이 해방 후 열린 총회에서 제27회 총회의 결의를 무효화 한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곧이어 교단이 분열함으로써 어느 교단도 진정으로 그 책임을 통감하고 회개하는 교단이 없었다. 신사참배를 주동하고, 거기에 동조한 많은 사람들은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교권주의적 폭거에 의해 목사직을 잃거나 교회에서 쫓겨난 피해자들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 결국 역사가 되고 만 것이다.그런데 이번에 죄악을 저질러 한국교회를 만신창이로 만든 공교단이 아니라, 한 부흥단체가 나서서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결의를 회개하는 성회를 대대적으로 연다고 한다. 교회적으로, 사회적으로 잘못된 역사에 대해 회개운동을 벌이는 것은 기독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교회 신사참배 문제는 공교회가 저지른 죄악이다. 그 죄악에 대해 마땅히 공교회적으로 회개운동을 했어야 한다. 그래야만 역사적으로 그 기록이 남게 되고, 피해자에 대한 치유도 가능하다. 교계의 한 운동단체가 하는 회개운동은 결국 일과성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독일교회 역시 전쟁 중 80%가 나치의 어용교회인 ‘독일기독교도(DC)’였으나, 1934년 바르멘 신학선언과 전쟁 후 슈투트가르트 죄책고백을 통해 나치의 앞잡이들을 모두 교회에서 쫓아내고 새로운 교회로 나아갔다. 그것이 ‘독일복음주의교회(EKD)’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 한번도 신사참배죄에 대해 진정성을 담은 죄책고백이 없었다. 그러니 갈라진 교회의 회복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한국교회가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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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05
  • 한반도에서 통일 논의가 사라져 가고 있다
    한반도에 언제부터인지 ‘통일’이 사라져가고 있 다. 이것은 남북이 공히 같은 현상이다. 이번 남북의 정상회담에서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평화’와 ‘비핵화’만 난무할 뿐이다. 모두가 비핵화만 성사되면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의 체결이 논의되고, 평화협정이 논의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통일 없는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종전선언도 평화협정도 모두 통일을 목표로 가야 하는 수단일 뿐이다.지금 한국과 미국 정부의 북한 정책은 비핵화가 우선이다. 마치 북핵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양보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이는 남북 정상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한미 정부의 희망사항일 뿐, 중국이 북한을 감싸고 도는 한 북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북한을 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북한은 대북제재 완화와 한미연합훈련 중단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대로는 결국 미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실패하고 말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국과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의 불행이다.차라리 미국은 이 기회에 유엔을 앞세워 한반도 통일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통일이 논의되면 비핵화도, 영구적 평화도 이루어갈 수 있다. 한반도에서 통일 없이는 비핵화도 평화선언도 모두 허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핵은 언제든지 또 다시 만들 수 있고, 북한이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동아시아의 안보 역시 언제나 불안하다. 이 안보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한반도 통일이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미국도, 중국도 지금처럼 갈라놓고 있는 때보다 훨씬 이익이 많을 것이다. 안보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지금보다 더 큰 시장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그런데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통일은 사라지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 두 나라가 평화롭게 교류하며 같이 잘 살자는 논의만 하고 끝난 것같아 안타깝다. 통일논의 없는 남북정상회담은 국민의 통일의지와 안보의식만 약화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과 미국 그리고 유엔도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 통일에 논의 촛점을 모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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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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