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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자유를 위협하지 말라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20조 1항의 종교 자유의 선언은 우리 국민의 가장 중요한 기본권이다. 근래에 이 기본권을 위협하는 기막힌 일이 종교계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신천지측은 기독계의 한 인사가 개종교육을 하고 있다며 청와대에 개종교육 목사를 처벌해 달라는 청원을 하고 있고, 또 기독교측 일부에서는 신천지는 반사회적 종교단체라며 이단방지법을 만들어 단속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건 양측이 모두 대한민국의 헌법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종교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는 행위이다. 본질적으로 종교자유가 있는 사회에서 어떤 경우에도 종교를 규제하는 법을 만들 수는 없다. 더욱이 법은 종교에 있어서 어떤 것이 정통이고, 어떤 것이 비정통인지도 모른다. “법은 이단을 모른다”는 것이 종교자유를 인정하고,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 모든 근대국가의 기본원리이다. 정통과 비정통은 종교 내부의 문제이지 결코 법의 문제가 아니다. 법이 종교의 정통과 비정통을 판단하기 시작하면 그 종교는 자유를 잃게 된다. 마녀사냥을 하던 중세가 그 대표적인 예다. 개종교육과 관련하여 우리 대법원도 판례를 남긴 사건이 있다. 이는 이단집단에 빠진 특정인을 개종시킨다는 문제였는데,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신앙의 자유는 헌법에서 인간의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것으로서 원고가 믿는 것 역시 신앙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할 것이므로 이러한 원고의 신앙을 개종시키려 하는 행위는 그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다”고 판단해 개종교육은 인권침해로 보았다. 종교자유가 있는 사회에서 개종교육은 있을 수 없다.그런데 문제는 섹트 집단의 종교적 폐쇄성이다. 폐쇄적 집단은 자칫 반사회적 행동을 드러낼 수가 있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그럴 것이다’라고 단정하는 것 역시 옳지 않은 일이다. 그동안 우리사회에서도 종교적 폐쇄 집단들이 남긴 휴유증이 깊다. 그럴지라도 그 집단에서 반사회적 반국가적 행위가 있기 전에는 법이 규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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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2-09
  • 한기총 선관위 ‘돈선거’ 조사하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최성규 목사)는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교계기자들과 한기총 대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24대 대표회장 선거 무제한 공개토론회’를 가졌다. 한기총은 지난달 30일 정기총회를 열고 제24대 대표회장 선거를 치루려다가 하루 전날(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51민사부로부터 ‘대표회장 선거실시 금지’가처분을 받아 선거가 무산되었다. 이날 공개토론회는 선관위가 충분한 토론을 통해 원만한 길을 찾겠다는 취지로 열린 모임이다.그런데 이날 배포된 문건 가운데 지난 1월 제24대 대표회장 후보에 출마했다가 후보자격을 박탈당한 전광훈 목사(청교도영성훈련원장)의 기자회견문이 첨부돼 있었다. 전 목사는 이 기자회견문을 통해 한기총 선거와 관련하여 “몇명의 목사들의 범죄행위와 천만원 이상의 돈을 주고 받은 사람들이 있다”고 폭로해 이목을 끌었다. 전 목사는 “그들의 사역과 선거 진행에 관한 물증과 현장 증거들을 이미 확보하였고 조만간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하여 조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1989년 창립 이래 한국교회의 보수진영을 대변해온 한기총이 분열하고 망가진 배경에 ‘돈선거’가 있다. 제법 덩치가 큰 교회를 깔고 앉아 가진 것이 돈밖에 없는 목사들이 교계지도자 행세를 하기 위해 한기총 대표회장을 노리고 돈을 뿌리기 시작한 것이 오늘의 한기총을 바닥까지 추락시킨 원인이다. 그런데 이번에 또 몇 천만원씩 돈을 주고 받은 물증을 확보하고 있다는 전 목사의 주장은 실로 교계를 당혹케 하기에 충분하다. 이는 한기총 선관위가 당장 조사위를 구성해 이 사실을 폭로한 전 목사를 어떤 모양으로든 불러 조사하고, 그것이 그 명단을 확보해 한기총 차원에서 검찰에 고발해야 옳다. 만약에 전 목사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 또한 전 목사를 한기총의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함이 마땅하다. 언필칭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와 관련하여 표를 매수하기 위해 돈이 거래되었다면 이는 한국교회를 더립힌 심각한 범죄이다.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그래야만 돈 몇푼 잡았다고 교계에서 지도자 행세를 하려는 사람들의 타락한 행태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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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2-07
  • 대한민국을 망친 것은 ‘보수 우파’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좌·우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보수 우파 정부가 저질러온 ‘적폐’ 청산을 내세워 우파 정권 담당자들을 무더기로 기소하고, 우파는 진보 좌파가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며 ‘척결 대상’이라고 아우성을 친다.탄핵으로 실패한 박근혜 정부 실세들은 아예 줄줄이 감방에다가 귀양살이를 보내고, 민주적 절차에 의해 국민의 다수가 뽑은 대통령까지 감옥에 쳐넣고 있다. 마치 조선이 망한 왕조 시대 당쟁을 보는 것 같아 국민은 불안하다.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현상은 진보 좌파들의 힘이나 승리에서 온 것이 아니다. 보수 우파들끼리 제 잘났다고 으시대다 ‘촛불’에 당한 것이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진보 좌파는 그 물때를 만났을 뿐이다.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돼 감방에 갇히고, 한때 정부를 이끌던 친박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되어 수모를 당하는 이 사태는 보수 우파 안에서 생긴 일이지 진보 좌파가 만든 일이 아니다. 즉 보수 우파의 자업자득이다. 그 불행의 씨앗은 이명박과 박근혜가 18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놓고 다툰 파벌싸움에서 싹텄다. 그리고 친박은 5년 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자, 제일 먼저 한나라당 내 이명박 세력부터 제거하려 나섰다. 박근혜 정부는 4대강, 해외자원개발 등 이명박 정부가 5년동안 추진해온 정책들과 이명박 정부의 실세들을 낱낱이 뒤졌다. 그 앙금은 여당 내에 그대로 남아 부메랑이 되어 ‘친박’(親朴)에게로 돌아간 것이다. 거기에 이파(李派)들이 자신들도 결국 죽는 줄을 모르고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는데 가담함으로써 오늘의 좌파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지금 국회는 우파가 과반이 넘는데도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있다. 우파가 갈라졌기 때문이다. 교육현장도 수준이 모자라는 좌파 교육감들이 얼마나 무모한 실험을 하고 있나? 좌파 교육감들은 대부분 30%대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파 후보가 난립했기 때문이다. 보수 우파는 다 죽는 줄 알면서도 타협하거나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놓고 이제와서 국민들을 향해 우파가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고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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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2-03
  • 사회적 갈등 통합에 종교계 적극 나서야
    오늘날 우리사회는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이념간 첨예한 갈등을 안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불안하고 불행감을 느낀다. 특히 소위 최순실 국정농단과 촛불집회로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고 끝내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간 정치적 이념 대립은 그 도를 서로를 저주하는 수준이다. 진보는 보수를 향해 ‘궤멸’시키고, 보수는 진보를 향해 ‘친북좌빨 타도 대상’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우리사회 전반의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데는 그 능력이 미흡하다. 그러므로 여기에 종교의 역할이 필요하다.우리사회는 종교인구가 전체 인구의 60%를 넘는다. 그 중에 다수가 클래식 종교에 속한 신도들이다. 따라서 정치가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갈등과 분쟁을 종교가 조정하고 통합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종교계는 그런 능력을 발휘하기는 커녕 자기 스스로 정치권 아래에 있는 것처럼 처신한다. 이는 정치적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굳어진 오래된 종교계의 관행이다. 이제는 척결되어야 할 우리사회의 또 하나의 ‘적폐’이다.헌법상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다고 하여 ‘정치는 정치이고, 종교는 종교이다’라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종교가 정치 아래 있거나, 정치에 종교가 간여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고, 이 둘이 서로 필요할 때 사회발전을 위해 조언하고 대화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정치도, 종교도 자유민주주의 시민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하는데 있다.우리는 흔히 독일사회의 성공적 통합을 말한다. 독일은 루터파 교회가 중심이 된 사회이지만, 여기에는 개혁교회도 있고, 자유교회도 있고, 천주교회도 있다. 그리고 종교계는 기독교협의회와 같은 ‘예카테’라는 연합단체를 중심으로 정치권에 조언한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정치권 인사들이 연중 일회용 행사로 종교단체를 찾거나, 청와대로 종교계 대표자들을 초청해 대통령과 식사자리를 한번 갖는 것으로 정치권이 종교계와 대화했다고 여긴다. 이런 식의 대화로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정치권이 종교계를 사회적 갈등의 대화창구로 여겨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가 종교의 우위에 있다는 생각은 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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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2-03
  • 기독교 신앙과 기복주의
    세상에 종교는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와 같은 유일신 종교로서 인격신의 은총을 체험하는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적으로 가정사가 만사형통하고 무병장수 하는 다신교적 기복주의 종교이다. 기복주의는 자신이 믿는 어떤 신들에게 재물, 부귀, 출세를 위하여 빌고, 병을 고치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한 다양한 행위를 한다. 이러한 기복행위는 소시민들의 현실적 삶의 구체적인 조건들 가운데 결여된 부분을 충족시키려는데 있다. 기복행위는 그 욕망이 충족되면 행복해진다. 따라서 기복행위는 언제나 현세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태도를 갖는다. 그러나 인간의 욕망은 일시적으로는 정신적 만족감을 충족시킬 수 있으나 언제나 완전히 충족된 상태에서 살 수는 없으므로 기복으로는 언제까지나 불안과 혼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평생을 기복행위로 보낸 사람이 죽을 때까지 정신적인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불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기복행위가 기독교 신앙과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을 받은 것처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도 예수가 가르친 진리를 깨달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은 현세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고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친 것이 바로 그것이다.이것이 기복행위와 기독교 신앙의 차이이다.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신앙적 차이를 깨달을 때, 비로소 삶의 현장에서 갖게되는 여러가지 세속적 욕망을 억제하고 인생의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된다. 즉 그의 삶에 기독교적 가치관이 확립되는 것이다. 기독교적 가치관이 확립된 사람은 인간 삶의 현장을 보는 시각이 다르다. 그는 현세적 삶의 의미를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고 절망하지 않고 고난 속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다. 주께 그의 삶의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이다. 또 성경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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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1-22
  • 그래도 희망은 교회에 있다
    지금 한국교회는 우리사회로부터 전 세기에 비해 많은 신뢰를 잃었다. 그것은 교회의 급성장과 목회자들의 과욕이 낳은 결과이다. 세련되지 못한 목회자의 교권행위로 인한 개교회의 분쟁, 목사와 장로 간의 갈등, 대형교회의 목회세습 등, 교회 내외에서 교회 본연에서 일탈한 사건들을 보면서 교인들은 실망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은 보수하면서도 주일날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는 노미날리티, 즉 일명 ‘가나안교인’이 많이 늘어나기도 했다.그럼에도 지금 우리사회가 희망을 걸 곳은 교회밖에 없다. 우리사회에서 정기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집단이 교회이다. 매주 줄잡아 약 400만명 이상이 예배에 참여한다. 그리고 오늘도 전국 6만 교회 강단에서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증언한다. 거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그 말씀은 곧 사람들의 희망이다.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드러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 13).여기에 교회의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까지도 찔러 쪼개 가치관을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킨다. 전국의 6만 교회에서 설교자가 말씀을 바로 증거하고, 1천만 성도들이 그 말씀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사회는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있다. 우리가 그래도 희망은 교회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정치인들이 법을 만들고 집권자가 그 법을 집행함으로 법치주의를 실현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회구성원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고는 정직한 사회가 실현되기는 어렵다. 인간은 그 속에 이기적 욕망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지금 한국사회에서 주류종교는 기독교이다. 비록 교회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사회를 변화시키고 구원할 주체는 한국교회 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회가 사회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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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1-22
  • 사회를 향한 교회의 신뢰회복이 우선 과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는 2017년 한 해를 무언가 의미있는 자세로 맞는 듯 하더니, 구호만 요란했을뿐 아무것도 시작해 보지도 못한 채 한 해를 보냈다. 오히려 한국교회는 2017년에도 교계의 분열만 초래했다. 교계는 지도자들의 오만과 단견으로 분열하기는 쉬어도 한번 분열한 교회가 다시 통합하기는 매우 어렵다. 한기총과 한교연의 통합을 추진하던 교단장회의가 끝내 한교총이란 제3의 기구로 드러난 것만 보아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500년 전 타락한 교권주의에 매몰된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복음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며 수백만명의 희생을 딛고 얻어낸 개혁신앙이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그 옛날 타락한 가톨릭의 신앙을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대로는 우리교회가 사회를 구원하는 민족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지난 수년간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많은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교회지도자들의 과도한 세속적 욕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새해부터 시행되는 종교인 과세도 그 근원을 따라가보면 수천 수천명씩 모아놓고 성공적 목회를 했다며 교회를 멋대로 운영해온 그 잘난 목회자들의 행태에 있다. 따라서 종교인 과세는 한동안 정부와 교계 간에 상당한 분쟁을 야기할 것이다. 더욱이 ‘종교활동비’라는 목회활동비에 대한 과세 문제는 뜨거운 감자이다. 왜냐하면 목회활동비는 목회자의 개인소득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목회활동비는 비록 목회자가 임의로 집행할 수는 있지만 엄연히 교회의 공적활동에 쓰이는 선교비이다. 만에 하나 어떤 이유로든 세무당국이 선교비에 대해 세무조사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대한민국의 종교의 자유는 형편없이 위축될 것임은 명확관화 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 이른 이유가 교회가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은 데서 온 것이다.그러므로 새 해에는 그동안 교회가 사회로부터 잃은 신뢰를 회복해 지금의 혼란한 사회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작금 한국사회는 교회의 신뢰회복 밖에 기댈 데가 없다. 그것은 오로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교회는 거기에서부터 사회를 향한 지도력이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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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1-05
  • 기독교인의 종말론적 삶
    기독교인의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말론이다. 종말론은 기독교인의 삶의 모든 가치관의 표준이다. 기독교에서 종말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의 성육신과 함께 시작된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세상 속에 들어온 것이다. 따라서 이 종말은 모든 역사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시작인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예수의 재림과 함께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종말을 사는 기독교인들은 삶의 표준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있는 것이다.언젠가 내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라는 종말론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한 치의 거짓도 숨길 수 없다. 여기에 기독교인의 종말론적 삶의 윤리가 터잡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 즉 계명을 따라 사는 삶이다. 하나님의 계명이 무엇인가? 거짓말 하지 않고, 남을 해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닌가.성경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가르친다. 우리 한국의 1천만 기독교인들이 이 십계명에서 가르치는 윤리를 실천하려는 의지만 가져도 우리사회는 하루 아침에 달라질 수 있다. 교회의 개혁은 무슨 거창한 일을 벌이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십계명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삶을 사는 것이 곧 교회의 개혁인 것이다.그것은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말하고, 모함하고, 무고할 수 없다. 지금 한국교회에는 거짓말과 모함과 무고가 난무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타락했다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처럼 새벽기도 잘하고, 성경 많이 읽고, 헌금 많이 하고, 예배당 많이 짓고, 집회마다 가득가득 모이는 교회가 또 어디 있는가. 그런데도 한국교회가 타락했다고 비판받는다. 바로 그 이유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종말론적 삶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23, 24). 아멘.
    • 연지골
    • 사설
    2018-01-05
  • 종교활동비
    정부가 내년부터 시행코자 하는 종교인 과세에서 정부와 종교단체 간에 심각한 분쟁이 예고되고 있다. 종교계와 정부 간에 합의를 본 종교인 과세 관련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이낙연 총리의 재검토 지시에 따라 폐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당초 종교계와 정부 간에 합의를 본 종교인소득 과세의 대상은 매월 월급처럼 교회로부터 받는 ‘사례비’(생활비)에 한정하고, 규모가 큰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사용하는 ‘목회활동비’(종교할동비)는 비과세 항목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이러한 안이 입법예고된 이후 시민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종교단체가 종교인 사례비를 줄이고 종교활동비를 늘리려는 ‘꼼수’라며, 시행령에 종교활동비 상한선을 정하고 종교활동비 내역에 대한 증빙자료를 세무서에 신고해 세무조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정부를 압박한 탓이다.기독교의 경우, 목회활동비는 대교회 혹은 대형교회에서의 문제이다. 사실상 선교비나 구제비로 지출되는 목회활동비는 교회가 회계년도에 미리 교회에 보고된 범위에서 담임목사가 임의로 지출하고 차후에 회계처리하는 돈이다. 그러나 이것을 목회자가 가족이나 사생활 등에 사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사정을 모르는 외부 사람들의 눈에는 이 돈이 마치 국정원 특수활동비처럼 목회자가 마음대로 남용하는 것처럼 여기는 데서 나온 오해이다.사실 정부는 건국 이후 최초로 종교인 과세를 시행하면서 욕심을 너무 많이 내고 있다. 처음에 종교계와 정부 간에 합의한대로 과세 대상을 종교인에게 지급되는 사례비(월급)로 한정하는 것이 옳다.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계에 세금을 부과하려다가 부작용이 일어난 예가 수없이 있었다. 종교계는 신도들의 한푼 두푼 모은 헌금으로 유지되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마치 종교계가 지하경제의 온산인양 증빙자료를 세무서에 신고하고 수틀리면 세무조사를 받게 하면, 과연 종교인 과세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종교인들도 소득이 있다면 세금을 내는 것이 옳다. 교회의 경우 80년대 이후 목회자들이 무슨 월급쟁이마냥 월급과 보너스까지 받아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과도한 목사 은퇴비도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연지골
    • 사설
    2017-12-23
  • 아! 예루살렘
    2017년 올 성탄절은 그 어느 때보다 흉흉한 소식이 많이 들리는 한 해가 될 듯하다.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국가의 유일 수도로 선언했기 때문이다. 동예루살렘을 팔레스타인 수도라고 주장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범이슬람기구는 트럼프의 결정을 반대하고 있다. 자칫 성지를 두고 테러와 분쟁이 깊어져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과는 달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린 곳이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의 선동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총독 빌라도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해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하자,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했다. 그때에는 주님의 말씀대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눅 23:34)이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쫓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이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2:25, 26)고 엄중히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을 성지로 부르는 종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이다. 이 셋은 모두 아브라함의 유일신 사상을 따른다. 예루살렘은 아브라함이 일찍이 이삭을 제단에 바치기 위해 찾아간 모리아 땅이고, 다윗이 성전을 세우기 위해 구별한 곳이며, 그 아들 솔로몬이 아리우나의 타작마당에 성전을 세운 곳이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이 스룹바벨 성전을 지은 곳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곳 예루살렘에서 세상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리셨다.그런데 왜 거룩한 성지에 평화가 없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배반한 자들에 대한 심판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회복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가 차고, 온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을 얻을 때에 완성될 것이다(롬 11:25, 26)
    • 연지골
    • 사설
    2017-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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