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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속주의의 도전에 맞선 교회
    21세기는 세속주의가 교회를 향해 가장 강력하게 도전하는 시대이다. 19세기는 신(神)에 맞서 공산주의라는 붉은 용이 교회를 삼키려다 실패한 세기였지만, 20세기는 ‘신 없는 세상’을 내세운 세속주의가 인권과 평등과 차별금지라는 이름으로 교회에 도전하고 있다. 그래서 동성애와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노리고, 근친과 프리섹스를 즐기는 ‘종교 없는 삶’이 현대인에게 솔깃하다. 우리사회도 요 몇년 사이에 종교인구보다 무종교층이 훨씬 많아졌다.2015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종교가 없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인구의 56.1%나 된다. 종교인구는 10년만에 9%나 감소했다. 그 수는 약 300만에 이른다. 무종교인구의 연령층도 1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젊은 층이 훨씬 많다. 이는 갈수록 종교인구가 줄어들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면 ‘신 없는 세상’ 또는 ‘종교 없는 삶’이 신 앞에 사는 삶이나 종교적 삶을 사는 것보다 행복한가? 이 물음에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그렇지 않다는 사람보다 더 많을까?종교를 믿는다 하더라도 인생의 갈등과 문제들은 여전히 대부분 그대로 남아있다. 교회 안에도 역시 불안전한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다. 그러나 종교는 사람들의 윤리와 도덕율을 제시하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판단하는 기준을 교훈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인생 문제에 답을 찾았고 또 무수한 영적 갈증을 해소해 왔다.그런데 21세기 현대인은 세속주의를 내세워 이를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21세기는 신 없는 삶, 종교 없는 세상을 찬양하며 무종교인으로 살기를 원하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신앞에 사는 것을 거부해 왔다. 성경은 그것이 곧 죄라고 말한다. 따라서 21세기는 교회가 가장 많은 세속적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는 그 어느 시대보다 영적 무장이 필요하다. 영적 능력 없이는 세상에서 ‘전투하는 교회’(에클레시아 밀리탄스)로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우리의 영원한 도성 새예루살렘은 세상에서 승리한 교회만이 들어가는 ‘승리자의 교회’(에클레시아 트람움판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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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10-19
  • 고소고발 공화국
    참으로 우리사회가 놀랍고 유치하다. 대한민국이 고소고발 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다. 청와대도 고발하고, 국무총리도 고발하고, 국회도 고발하고, 정부부처들도 고발하고, 시민단체들도 고발하고, 여차하면 고소고발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고소고발장을 내밀지 않는 국가기관이 거의 없다. 심지어 국가를 통치한다는 정부 여당도 고발장을 내민다.대관절 고소고발이 이렇게 난무하면 사법당국이 어떻게 이를 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우리사회는 부끄럽게도 아직 미성숙하여 평소에도 일본에 비해 10배가 넘는 고소고발건이 접수되는데, 이젠 권력기관들 마저 나서서 고소고발을 해대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마땅히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들조차 사법당국에 떠넘기는 꼴이다. 그러니 협치는 고사하고 정치도 실종되고 있다. 솔직히 이런 꼴을 보고있는 국민들은 속이 뒤집힌다. 윤리도덕이 제대로 된 사회는 개인간의 감정싸움도 웬만하면 술 한잔씩 하고 풀고 마는데, 소위 권부까지 나서서 비판여론을 틀어막기 위해 고소고발을 해대서야 되겠는가. 고소고발은 사랑과 용서를 입에 달고 사는 기독교계에서도 난무한다.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무시하는 사이비 신앙인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연합과 일치를 이룬다는 교계 연합단체들도 여차하면 고소고발하고, 심지어 목회자와 신도간에, 또 같은 교회 신도들 간에도 상대를 처벌해 달라고 고소고발 한다. 여기에 무슨 사랑과 용서가 있단 말인가. 사법당국에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설교자는 가짜이고, 같은 신도 간에 고소고발 하는 자는 교회에서 치리함이 마땅하다. 다툼이 있으면 마땅히 교회 앞에서 그 시시비비를 가리고 교회의 판단에 순복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좀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바다.어떤 경우에도 청와대와 정부는 비판자들이 좀 억지나 오해를 한다 해도 ‘해명’이나 ‘반박’으로 끝나야지, 고소고발장을 내미는 것은 보기 흉하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기관은 언제나 비판을 받기 마련이다. 그 비판이 싫으면 그 기관에서 떠나면 되고, 그들의 정당성은 역사가 평가할 일이다. 굳이 공직자가 ‘명예훼손’ 운운하며 고소장을 들고 다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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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10-19
  • 벙어리 개가 된 파수꾼들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 와서 삼키라 그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 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익만 도모하며...”(사 56:9-12).주전 7세기 유대사회 지도자들을 향해 벙어리 개라고 꾸짖은 이사야의 이 예언은 마치 요즘 우리사회를 향한 음성으로 들린다. 지금 우리사회는 국가의 파수꾼으로 세운 정치권도, 민족의 파수꾼으로 세운 종교계도 모두 벙어리 개가 되어가고 있다. 그나마 깨어있는 한 국회의원이 정부의 부정의혹을 제기했다 하여 논란이 되고 있을 뿐, 평양정상회담에서 논의된 안보문제에 대해 어느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는다. 특히 한국교회의 15만 여명에 이르는 설교자들이 아예 그 입이 틀어막혔는지 벙어리 개가 되었다. 이사야는 말한다. 짖지 않는 개라면 차라리 들의 짐승들, 삼림의 짐승들이 와서 삼켜버리라고.국회의원은 야당이든, 여당이든 청와대나 정부의 거수기가 아니고, 국가경영에 대한 파수꾼이다. 국가경영자들의 정책을 감시하고, 잘못된 정책은 비판하며 이를 바로 잡는 것이 목민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의 몫이다. 현대교회의 설교자도 마찬가지이다. 목회자는 자기네 교회당에 모여든 교인들의 영성만이 아니라, 이웃의 목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치리자나 정부의 잘못이나 권력의 부패에 대해서는 그것을 가감없이 지적해야 옳다. 목회자가 권력의 위협을 느껴 재갈이 물리면 임시적으로는 평안할 것 같지만, 결국 모두 망하는 길로 가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금은 좀 아프더라도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게 해야 한다.‘촛불’도 마찬가지이다. 저들의 말대로 ‘촛불혁명’으로 세운 정부라면 그 정부를 감시할 책임 역시 촛불에 있다. 지금 많은 국민이 정부의 급진적인 남북합의로, 이러다가 우리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해야 할 파수꾼의 역할도 ‘촛불’에 있다. 그런데 정치권도, 종교계도, 시민사회도 너무 잠잠한 것 같아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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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10-05
  • 한국교회 신사참배 80년 회개운동
    교계의 한 부흥운동 단체가 ‘한국교회일천만기도운동본부’를 만들고, 한국교회의 일제하 신사참배 80년 회개성회를 준비하고 있다. 1938년 9월 9일 장로교 제27회 총회가 태양신 천조대신을 섬기는 신사참배를 기독교 신앙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결의함으로써 한국교회 전체를 우상숭배에 빠뜨리는 죄악을 저질렀다. 감리교는 그 이전에 이미 신사참배를 행하고 있었다. 한국교회는 이 신사참배로 인해 해방 후 교단이 산산조각 나는 분열의 역사를 가져왔다.그런데 사실 신사참배 문제는 공교회가 저지른 심각한 배도(背道) 행위였으나 공교회적 회개나 신사참배 주동자들에 대한 책벌 없이 해방 후 열린 총회에서 제27회 총회의 결의를 무효화 한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곧이어 교단이 분열함으로써 어느 교단도 진정으로 그 책임을 통감하고 회개하는 교단이 없었다. 신사참배를 주동하고, 거기에 동조한 많은 사람들은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나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의 교권주의적 폭거에 의해 목사직을 잃거나 교회에서 쫓겨난 피해자들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 결국 역사가 되고 만 것이다.그런데 이번에 죄악을 저질러 한국교회를 만신창이로 만든 공교단이 아니라, 한 부흥단체가 나서서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결의를 회개하는 성회를 대대적으로 연다고 한다. 교회적으로, 사회적으로 잘못된 역사에 대해 회개운동을 벌이는 것은 기독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교회 신사참배 문제는 공교회가 저지른 죄악이다. 그 죄악에 대해 마땅히 공교회적으로 회개운동을 했어야 한다. 그래야만 역사적으로 그 기록이 남게 되고, 피해자에 대한 치유도 가능하다. 교계의 한 운동단체가 하는 회개운동은 결국 일과성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독일교회 역시 전쟁 중 80%가 나치의 어용교회인 ‘독일기독교도(DC)’였으나, 1934년 바르멘 신학선언과 전쟁 후 슈투트가르트 죄책고백을 통해 나치의 앞잡이들을 모두 교회에서 쫓아내고 새로운 교회로 나아갔다. 그것이 ‘독일복음주의교회(EKD)’이다. 그러나 우리는 단 한번도 신사참배죄에 대해 진정성을 담은 죄책고백이 없었다. 그러니 갈라진 교회의 회복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한국교회가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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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10-05
  • 한반도에서 통일 논의가 사라져 가고 있다
    한반도에 언제부터인지 ‘통일’이 사라져가고 있 다. 이것은 남북이 공히 같은 현상이다. 이번 남북의 정상회담에서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평화’와 ‘비핵화’만 난무할 뿐이다. 모두가 비핵화만 성사되면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의 체결이 논의되고, 평화협정이 논의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통일 없는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종전선언도 평화협정도 모두 통일을 목표로 가야 하는 수단일 뿐이다.지금 한국과 미국 정부의 북한 정책은 비핵화가 우선이다. 마치 북핵을 제거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양보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한다. 이는 남북 정상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한미 정부의 희망사항일 뿐, 중국이 북한을 감싸고 도는 한 북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북한을 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북한은 대북제재 완화와 한미연합훈련 중단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이대로는 결국 미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실패하고 말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국과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세계의 불행이다.차라리 미국은 이 기회에 유엔을 앞세워 한반도 통일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통일이 논의되면 비핵화도, 영구적 평화도 이루어갈 수 있다. 한반도에서 통일 없이는 비핵화도 평화선언도 모두 허구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핵은 언제든지 또 다시 만들 수 있고, 북한이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포기하지 않는 한 동아시아의 안보 역시 언제나 불안하다. 이 안보불안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한반도 통일이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미국도, 중국도 지금처럼 갈라놓고 있는 때보다 훨씬 이익이 많을 것이다. 안보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지금보다 더 큰 시장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그런데 남북정상회담에서도 통일은 사라지고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 두 나라가 평화롭게 교류하며 같이 잘 살자는 논의만 하고 끝난 것같아 안타깝다. 통일논의 없는 남북정상회담은 국민의 통일의지와 안보의식만 약화시킬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과 미국 그리고 유엔도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 통일에 논의 촛점을 모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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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9-21
  • 장로교 총회 이대론 안된다
    지난 두 주동안 수백 개의 장로교단의 총회가 전국에서 일제히 열렸다. 장로교회는 1년에 단 한번 총회를 열고 각 지역 노회에서 청원된 헌의안이나 제반 현안를 논의한다. 장로교는 기독교의 여타 다른 교파와 달리 각 노회에서 파송된 총대로 구성된 총회가, 정해진 기간에 회의를 끝내고 파회(破會)한 후에는 아무리 긴급한 사안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임시총회를 소집할 수 없다. 이 총회회의 기간에 논의되고 제기된 각종 현안을 통해 교단과 전국 교회가 나아갈 방향이 결정된다. 총회회의가 끝난 후 총회의 기능은 총회임원회가 관리하는 총회의 각 상비부로 넘어간다.오늘날 한국교회에는 10만명이 훨씬 넘는 목회자가 있고, 6만 개가 넘는 교회가 있다. 그러다보니 전국교회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이런 일들을 최종 마무리 하는 곳이 총회회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총회회의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총회회의를 보면 실망감이 많다. 대교단들은 지역적으로 패거리를 나누어 분쟁을 일삼고, 군소교단들은 누가 총회장이 되느냐에 온통 관심을 기울릴 뿐이다. 분열로 갈갈이 찢어진 한국교회의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지도자를 찾아볼 수 없다. 한국교회에는 훌륭한 교육을 받은 목회자나 신학자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이 왜 미래 한국교회를 위한 대안을 내어놓지를 못하는가?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지도자로는 어떤 집단도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지도자는 교단의 경직성을 지적하고, 전체 한국교회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에 나서야 한다.그것이 개교회의 성장보다 더 시급한 일임을 역설해야 한다.주후 4세기 이후 유럽사회에서 명실상부 기독교 국가로 자타가 공인해온 영국에서 교회가 사라져 가고 있다는 보고는 이미 익히 알려진 바다. 영국은 성공회와 침례교와 감리교와 구세군과 퀘이크의 고향이고, 청교도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낳은 위대한 전통을 가진 나라이다. 그럼에도 영국에서 교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이 놀라운 이야기야말로, 겨우 1세기반을 바라보는 미천한 기독교 역사에 지나지 않는 우리에겐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는 지금 당장 200년, 500년, 1000년의 미래 교회의 청사진을 내어놓아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8-09-21
  • 장로교 교단 통합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장로교 총회가 이달에 일제히 열린다. 규모가 큰 교단은 처리해야 할 회무가 산적해 4~5일 밤낮 회의를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교단도 있고, 또 어떤 교단은 하루 이틀 모여 임원개선으로 끝나는 교단도 있다. 현재 한국교회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간판을 단 교단만 약 300여 개에 이른다. 여기에는 교단의 간판만 있을 뿐 사실상 총회 자체는 없는 유명무실한 교단들도 있다. 그런데 왜 이런 교단간판을 유지하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1980년대 초 대한에수교장로회 총회는 불과 10여 개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신군부는 기독교 세력의 억제 차원에서 우후죽순 늘어나는 무인가 신학교 문제를 통제하려 했다. 이유는 온갖 비인가 학과들이 신학교라는 이름아래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착안한 정책이 1교단 1신학교 정책이었다. 그 당시 한국기독교 전체 교단이 40여 개였으므로 잘해야 50여 개 신학교를 인정하면 될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기독교가 신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교단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 결과 신학교를 운영하기 위해서 너도나도 교단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300개 교단으로 늘어나게 된 동기이다.이후 무인가 신학교 문제는 계속 교육부의 큰 골칫거리로 작용했다. 그로인해 많은 무인가 신학교 책임자들이 교육법 위반으로 고발을 당해 형사처벌을 받거나 벌금을 내는 처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교단직영신학교 운영자들이 오랜 법정투쟁을 통해 “교단의 지도자(목회자) 양성은 그 교단이 자유로이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다. 지금은 그 판결에 따라 각 교단에서 크게 부담없이 무인가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신학교 가운데 제대로 유지되는 신학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 신학교들은 커리큘럼도 없이 지역 목회자들의 특강형식으로 학기를 떼우고 졸업을 시킨다. 그러다보니 그런 신학교에서 배출되는 목회자의 지적 영적 수준을 인정하기가 매우 어렵게 된다. 따라서 진정으로 장로교 지도자들이 한국교회의 미래를 염려하고 사랑한다면 교단간판을 줄이고, 신학교도 줄여 제대로 된 총회와 신학교를 운영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8-09-14
  • 명성교회에 대한 진정서, 종교자유 침해 우려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공동대표 김동호 백종국 오세택)와 명성교회정상화위원회라는 조직이 지난 3일 서울지방검찰청에 서울 명일동 명성교회(담임목사 김하나) 비자금 및 비위사실을 조사하라며 진정서를 접수했다.이들은 명성교회가 “직계세습이 아니고는 덮을 수 없는 금전적 비리와 사회적 범죄의 그늘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며, ‘광성교회 수양관 부당거래 의혹’, ‘숭실사이버대학교 등 대교 재단 65억 지원 의혹’, ‘성남시청 공무원 인사개입 의혹’, ‘새노래명성교회 뒷산 구입에 관한 의혹’ 등 네 가지를 제기했다. 그리고 명성교회 내부고발자에 의한 증제도 함께 검찰에 제출했다고 한다.그런데 이들의 행위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내부고발자에 의한 증제란 것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단지 ‘의구심’과 ‘의혹’으로 교회운영에 검찰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 검찰이 이들의 진정을 받아들여 명성교회 사건에 개입하게 된다면 대한민국의 종교자유 침해에 아주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다.이들이 제기한 네 가지 의혹 중에 ‘성남시청 공무원 인사개입 의혹’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교회 본연의 고유 업무에 해당하는 활동으로 보인다. 교회는 필요에 따라 수양관이나 땅을 매입할 수 있고, 여유가 있으면 미션스쿨을 지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 어떻게 검찰이 조사해야 할 비위사실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비자금 운운하면서 교회를 조사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교인이나 목사가 아닐찌라도 지나친 일이 아닐 수 없다.종교 본연의 활동에 검찰권을 끌어들이려는 이들의 행동은 한국기독교, 나아가서 한국종교계 전체의 종교자유에 침해를 가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진정서는 당장 철회돼야 마땅하다. 정말 명성교회에 사회적 비리가 있다면 그 증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수사를 촉구함이 옳다. 이들의 ‘세습반대’ 활동의 일환으로 본심은 숨긴채 막연히 ‘의혹’이란 이름아래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행위는 위험한 짓이다.그래도 한국교계에서 엘리트연체 하는 이들의 행위가 자칫 교회의 선교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로 나아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 연지골
    • 사설
    2018-09-06
  • 교회가 적극적 자살방지 교육 실시하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 인간 목숨의 중요성을 이처럼 간곡하게 호소한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 사람의 목숨의 무게가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 우리나라에 자살이 너무 흔하다. 하루 평균 42명이 자살한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라고 한다. 어쩌다가 그토록 삶에 애착을 가지고 살아온 대한민국이 자살율 1위 국가로 변했는가.여기에는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전직 대법원장, 촉망받는 정치인, 유명 배우, 인기 탈렌트, 잘나가는 가수, 대기업 사장, 고위 공무원, 대학 교수, 현직 검사, 변호사, 교사, 학생, 군인, 경찰관, 소방관,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지위고하 남녀노소할 것없이 이 자살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다양한 삶의 상황이 이들을 자살로 내몰았겠지만, 우리사회에서 이들이 왜 자살했는지를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살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유서가 있는 자살이고, 다른 하나는 유서가 없는 자살이다. 유서가 있는 자살은 그래도 그 원인은 알 수 있지만, 유서가 없는 자살은 그 자살의 원인조차 알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울증’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의학계도 이 우울증의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살은 예방이 어렵다. 가족도, 형제도, 친구도 그 낌새를 알아채지 못한다.정부는 자살방지법을 만들고, 지자체들은 자살방지 단체들을 만들어 나름의 예방활동을 하고 있으나 자살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우리사회가 살기는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는데 왜 자살자는 늘어나는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자살의 원인이라는 우울증을 치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울증의 원인을 모르니 그 치료약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천하보다 귀한 인간의 생명을 설교하는 교회가 자살자의 장례나 치르며 죽어가는 자들을 그냥 쳐다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우울증의 원인이 머리에 산소공급 부족에 그 원인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교회가 이 자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자살방지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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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8-08-31
  • 사회적 이슈에 ‘통합측’ 목소리가 없다
    동성애와 차별금지법(NAP)을 비롯, 정부의 주도로 자칫 기독교 선교를 위축시킬 수 있는 각종 사회적 이슈가 제기되어 교회를 위협하고 있다. 이에 한기총을 비롯한 교계의 각급 운동단체들이 나서서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그 대처에는 역부족이다. 교계의 요구는 아예 무시당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교계가 무시당하는 데는 한국교회가 통일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갖는다는 한기총과 교회협은 사안마다 엇박자를 내고 있고, 소위 말끝마다 장자교단 운운하는 교단들은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않고 있다.특히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교단의 중심에 있다는 통합측은 한교총과 교회협의 뒤에 엉거주춤 서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지가 오래이다. 심지어 교단총회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가 동성에에 대해 이상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비등한 비판에도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하고 있고, NAP에 대해서도 가타부타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교회의 대표 교단행세는 하려 한다.사실 오늘날 다종교사회인 한국상황에서 기독교는 분명히 주류종교이다. 이는 신도의 숫자만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으로 볼 때도 그렇다는 말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그 사회적 가치관은 언제나 주류종교에서 나온다. 주류종교가 그 지도력을 잃고 사회적 가치관을 제공하지 못할 때는 그 종교는 오래지 않아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새로운 종교가 그 자리를 메꾸게 된다.그런데 교계를 대표한다는 교단들이 교계에서 자리를 놓고 교권다툼이나 벌이고, 개교회주의에 매몰되어 내교회만 편안하면 된다는 소인배적 군상들이 지도자 행세를 하고 있으니, 정부나 사회로부터 교계가 무시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에큐메니칼 정신을 잃은 통합측은 이제 교계 연합단체들로부터도 무시당하고 있다. 통합측은 전국의 8500여 교회에 많은 인재를 안고 있다. 그런데도 통합측이 어쩌다가 이렇게 나약한 교권 집단으로 전락해 가고 있는지 안타깝다. 사회적 문제에 대처하는 교단적 입장을 밝히는 통합측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 연지골
    • 사설
    2018-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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