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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전도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해야 한다
    한국 기독교는 1884년 복음전도가 시작된지 130여년 만에 국민의 20%가 넘는 그리스도인을 얻었다. 개인전도, 대중전도, 교육선교, 의료선교, 학원선교, 군선교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전도 열심에 기인한 결과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도해야 할 대상은 아직도 4000만명이나 남아 있다. 그런데도 언제부터인가 이 전도열심이 식어져 가고 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인류의 구세주라고 전파하는 것이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에는 그 열심이 식어지고, 우리가 이단이라고 부르는 집단들만 나서서 전도에 열중한다. 저들은 도무지 기본상식만 가져도 빠지지 않을 저급한 교리와 성경해석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런 유혹에 넘어지는 기성교인들이 많다. 이는 전도가 아니라 범죄이다. 사도 바울은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라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롬 15:20)라고 했다. 하물며 이미 복음을 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형제들을 미혹해 자기패를 만들고자 하는 전도방법이야 말로 남의 터를 점유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만희의 신천지 장막성전, 안상홍의 하나님의교회, 여호와의증인 등 수많은 이단집단들이 이미 복음을 받은 기성교인들을 꼬드긴다. 그러나 이만희의 신천지는 하나님의 아들 중보자 그리스도 외에 또 다른 중보자를 가진 교주우상주의 집단이고, 안상홍 하나님의교회는 기독교와는 교리가 전혀 다른 다신교 집단이며, 미국에서 건너온 여호와의증인은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관을 부정하는 타종교이다. 이들의 성경해석을 조금만 유의하고 살펴보면 보편적 기독교와는 다른 집단임을 당장 알아 볼 수 있다.문제는 한국교회가 성공주의와 기복주의에 빠져 교인들에게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10년, 20년 교회에 다닌 사람들도 성경의 기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에는 난해구절들이 여러 곳 있지만 성경의 기본을 제대로 알게 되면 그 난해 구절들도 이해하게 된다. 그런데 미혹하는 집단들은 성경의 난해구절들을 자기네 교리에 꿰맞춰 해석하는 것이다. 주님으로 부터 책망받을 범죄이다. 누구나 복음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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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1-31
  • 어떤 사회로 통일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매년 새해가 되면 올 해는 남북 문제가 어떻게 풀릴 것인가에 촉각을 세운다. 올 해도 문재인 대통령은 새해 신년사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를 희망하고 있지만, 유엔의 대북 제재와 북미 대화의 교착상태에서 오히려 남북 관계의 후퇴가 염려된다. 우리의 간절한 염원이 더 멀어져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언제나 우리는 남북의 통일을 염원한다. 그런데 ‘우리의 통일'은 어떤 통일이어야 하는가? 첫째, 1945년 해방과 함께 각기 나뉘어진 남·북은 분단 70여년만에, 경제는 자유민주의와 시장경제체제인 자본주의 사회를 택한 남한이 1인당 국민소득이 31,431불 시대에 이르는 동안, 인민민주주의(공산주의)와 국가경제체제인 사회주의를 택한 북한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74불에 지나지 않아 무려 30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인민을 잘 먹고 잘 살게 하겠다며 민족 분단을 감수하면서까지 도입한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가 과연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보다 인민을 잘 먹고 잘 살게 하고 있는가? 둘째, 국민의 삶의 질에 있어서,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사는가의 문제이다. 북한사회가 남한보다 더 많은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있다면, 왜 3만명이 넘는 북한 주민이 죽음을 무릎쓰고 ‘인민의 낙원'을 탈출해 남한으로 오는가. 이는 두말할 필요없이, 인민이 먹고 사는 문제와 누리고 사는 문제에 있어 남한의 자본주의가 북한의 사회주의보다 우세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셋째, 개인의 인권 문제에 있어서, 현재 남한과 북한 어느 쪽이 인권을 더 중요시 하는가. 탈북민들은 북한에는 개인의 인권 보장은 고사하고, 아예 인권이란 말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 목소리로 증언한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통일은 어떤 체제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미 국민이 먹고 사는 문제와 삶의 질의 문제에 있어서 북한의 사회주의보다는 남한의 자본주의가 훨씬 우월하다는 것이 증명된 마당에 아직도 북한의 사회주의를 두둔하는 세력이 있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통일은 우리 민족의 후세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을 택하는 것이 옳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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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1-17
  • 교회여, 목회자 양육에 투자하라
    가톨릭교회는 “주교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고 말한다. 주교가 사제를 양육하고 교구를 세우며 양떼를 모우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목사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 목사가 양떼를 모으고 말씀으로 양육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사명을 받아 목회자로 세움을 받은 목사가 중요하다. 어떤 공동체든 지도자가 없으면 그 공동체는 흩어지게 된다. 특히 교회는 훈련받은 지도자가 없으면 믿는 도리를 오해하여 미신에 빠지게 된다. 목회자의 양육이 교회의 존폐를 가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목회자 양육은 교회가 교육도, 투자도 직접 감당해야 하는 중대한 선교사역이다. 가톨릭교회는 목회자사제 양육에 있어 그 교육에 필요한 경비를 가족이나 개인에게 일체 지우지 않는다. 전액 소속 교구와 출신 교회가 장학금으로 부담한다. 그런데 기독교는 신학교 수업료부터 목사안수에 드는 경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족이나 개인에게 부담시킨다. 몰론 이는 교파마다, 각 지역 교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단 한 푼의 돈도 투자하지 않고 다 양육된 목회자를 월급 몇 푼 주고 일꾼으로 데려다 부려 먹는 것이다. 그러면서 ‘목사의 사명감’ 운운하며 희생을 강요한다. 이런 목회자 양육 시스템으론 좋은 일꾼을 양육하기 어렵다. 요즘 한국교회의 신학대학들도 등록금을 마치 사립대학 수준으로 받고 있다. 가난한 신학생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겁다. 신학교는 그 경영을 교단과 개교회들의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신학생에게는 부담을 지우지 말아야 한다. 일생을 그리스도와 교회를 위해 일할 지도자를 양육하면서 경제적 부담까지 지우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그러다보니 신학교를 마치고 나면 빚을 지게 되고, 그 빚으로 인해 돈이 한 푼이라도 더 생기는 임지를 찾게 된다. 이는 참된 목자를 양육하는 태도가 아니다.성경에 자비량하고 군대에 나가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군인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탄과 싸우는 교회가 일꾼을 양육하면서 ‘훈련은 네 돈으로 받아라. 훈련에 합격하면 밥은 먹여주겠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로 지도자를 양육하는 것은 옳지 않다. 대교단들부터 신학교 운영시스템을 바꾸어라. 오래지 않아 신학 지망생자도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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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1-17
  • 일제 왜색종교 경계
    현재 우리사회에는 일본의 왜색종교가 시민사회를 깊이 파고 들고 있다. 일련정종, 입정교성회 등 일본불교 계열의 종파뿐 아니라, 천리교와 선린교, 세계구세교, 세계메시아교 등 왜색종교들이 우리사회를 파고 들어 상당한 교세를 늘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남묘호렝게교(南無妙法蓮華經)’로 알려진 일련정종과 19세기 일본 나까야마 미끼에 의해 창교된 천리교는 일제의 조선 식민지 침탈에 앞장 섰고, 2차 대전 당시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하고, 신시참배를 장려했을 뿐 아니라, 일제의 전쟁승리를 위해 총력을 다한 집단이다. 특히 이들은 우리 민족정신을 파괴시키고, 태양신 천황 숭배에 굴복시키려는 데 앞장 섰던 종교집단들이다. 그런데도 해방 후 단 한 차례도 그 잘못을 반성하거나 우리에게 사과한 일 없이, 지금도 버젓이 우리사회에 ‘동방요배’를 강요하는 일제 종교를 퍼뜨리고 있다. 우리 민족정신을 파괴하는데 앞장 서고, 한민족의 독립운동을 훼방해 온 일제종교가 아무런 제재도 없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문화원’이란 이름으로 곳곳에 건물을 짓고 종교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민족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다. 심지어 수년전 서울시는 이런 집단에 법인설립허가를 해 주기도 했다. 이는 정부의 문화정책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대한민국은 물론 종교의 자유가 있다. 누구나 종교신앙에 있어 표현의 자유와 포교의 자유를 갖는다. 그러나 우리 민족정신을 파괴하거나 좀 먹는 종교는 그것이 세계적 클래식종교라 할지라도 우리사회에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종교에 차별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민족자존을 위한 국민의 정신교육 차원에서 계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뿐만 아니라, 이들 일제종교들은 명목상 한국인을 교단본부의 책임자들로 세우고, 교단은 일본인들이 뒤에서 직접운영하며 부동산을 늘리고 있다. 교당이나 지역본부라는 이름으로 전국 곳곳에 매입되는 그 부동산 구입비는 모두 한국 신도들에게서 거둔 돈이다. 그러나 종교단체 이름으로 부동산을 매입하거나 건립함으로 세제혜택도 받고 있다. 정부 관련부처가 심각히 들여다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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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1-06
  • 닮은 꼴,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법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법이 정당의 난립을 부추겨 우리 정당사에 그 유래가 없는 해괴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어쩌면 정당이 100여 개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나는 것이 있다. 한국기독교의 교단 난립이 그것이다. 80년대 초 신군부는 무인가로 운영되는 한국교회 신학교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땐 교파나 교단을 통틀어서 34개 정도가 있었고, 그들 교파나 교단들은 모두 목회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를 운영했다. 그런데 그 신학교들 가운데 대학인가를 받은 학교는 10여 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무인가였다. 교육당국이 이들 무인가 신학교를 어떻게 양성화 할 것인가를 논의하다가 교계의 어떤 인사로부터 1교단 1신학교 정책을 건의받았다. 자격을 갖춘 1교단에 한해 1개 대학을 인가하자는 것이었다.그런데 곧바로 문제가 드러났다. 1교단 1신학교 정책이 발표되자, 우후죽순 교단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 때부터 교단운영에서 좀 소외된 목사들이 10여명씩 다방이나 커피솝에 모여 앉아 교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전국 곳곳에서 20~30여평 되는 건물을 임대해 대한예수교장로회 00교회 개척간판을 내걸며 그 옆에 00총회본부, 00총회신학교 간판이 같은 날 나란히 내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교단간판이 이제는 300여 개가 휠씬 넘고 있다. 1교단 1신학교 정책 입안자들은 헌법상 종교자유에 의해 교단설립을 막을 법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번에 통과된 연동형 비례대표 선거법이 이것과 꼭 닮아 있다.정의당을 비롯한 여당의 2중대들이 공수처법을 원하는 민주당을 압박해 무리수를 두면서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비례대표 선거법을 만든 데까지는 성공했다. 21대 총선을 이 선거법대로 치루면 자신들의 의석이 상당수 늘어날 것이라고 들떠 있었다. 거기에 비례대표에서 한두 석이라도 얻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우후죽순 군소정당들이 생겨나고 있다. 거기에다가 야당에서 ‘비례한국당’을 만들겠다고 하니 닭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다. 정부의 정책이나 국가근간을 이루는 법을 조령모개(朝令暮改)로 만드니 이런 꼴이 벌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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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1-06
  • 정통교리 잘 모르는 목사들 많다
    한국기독교에는 6만여개의 교회와 약 17만에 이르는 목회자가 있다. 또 60여개에 이르는 신학대학이 있고, 300여개의 군소 교단신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서 매년 6~7천여명의 목회자가 배출된다. 그런데 한국교회에는 이들과 별개로 전혀 정통적 신학훈련을 받지 않은 채 목사로 안수받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그들도 맘만 먹으면 개척교회 간판을 달고 기성교회 행세를 한다. 문제는 그들 가운데 보편적 기독교와 다른 이단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 목사는 조그만 소그룹에서 강의시간을 통해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디에서 얻어들은 지식인지 알 수 없지만, 성경의 예수는 다윗의 혈통(롬 1:3) 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마 1:1), 즉 다윗의 ‘씨’로 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기독교는 성령에 의해 마리아에게 처녀 탄생했다고 허황된 것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그야말로 명백한 이단설임에도, 마치 자신이 성경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원어를 섞어가면서 설명했다. 이런 유형의 목사가 한국교회에는 더러 돌아다닌다. 그래도 한국교회는 이런 사람의 주장을 막을 길이 없다. 제 멋대로 교단을 만들어 자신도 교단소속 목사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한국교회에는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별종이 많이 나타났다. 통일교, 천부교, 장막성전, 영생교, 신천지, 하나님의교회를 비롯, 분리파가 수도없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도 매일 몇 개씩 늘어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이유는 정통교회의 분열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런데도 정통교회는 교단을 통한 교권주의만 관심을 가질 뿐, 교계의 이런 문제를 정화하려는 노력에는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미래의 한국교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이단연구나, 이단정죄만로는 막기가 어렵다. 따라서 교단의 통합이 중요하다. 아예 이단운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막을 수가 없다하더라도, 잘 몰라서 그런 주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정통교회가 바로 가르치면 된다. 이왕에 한국교회에서 목회를 하려면 보편적 역사적 교회가 가르쳐온 바른 신학, 바른 신앙을 전파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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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12-20
  • 한국의 사회주의화 우려를 극복하는 길
    현재 한국사회를 극단적 변화로 이끌고 있는 이기주의적 집단은 세 가지이다. 교육계는 전교조이고, 노동계는 민노총이며, 지역은 전라도이다. 전교조는 좌파적 교육이념을 선전하는 교육계의 첨병이고, 민노총은 좌파이념에 바탕한 노동운동을 이끌고 있으며, 전라도는 첨예한 좌파적 정치적 지역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총선이나 대선을 통해 드러난 결과로 볼 때, 이들을 음양으로 지지하는 세력은 전체 국민의 약 40%에 이른다. 좌파를 대변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이 41.08%이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는 대체로 이들의 좌파적 이념을 북한 공산주의 집단과 연계하여 위험하게 보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반대한다. 북한이 한국사회를 공산화 하려는 ‘적화통일’ 정책을 내세우지 않는다면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 공산당은 남한의 적화통일 규약을 그댜로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야욕이 수정되었다면 오히려 한국교회가 나서서 이같은 사회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옳다. 그것이 우리사회를 초일류국가로 이끌고자 하는 기독교 정신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현상은 이대로 가면 나라가 온통 사회주의화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거리로 나서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오늘날 한국사회 종교적 지역분포는 ‘동불서기’(東佛西基) 현상이다. 동쪽은 불교가, 서쪽은 기독교가 우세하다는 뜻이다. 경상도가 겨유 10% 내외의 복음화를 이루고 있는 반면, 전라도는 35% 내외의 복음화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교권(敎權)의 명령체계를 따르는 가톨릭이나 정교회가 아닌, 모두 개혁주의 신교이다. 개혁주의 교회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바탕한 교회이다. 이 교회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뒷받침해 왔다. 그런 교회가 사회주의화를 동의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전라도 지역의 교회들이 좌파적 정치이념을 따르는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이끌어 한다. 언제 어디서나 교회는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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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12-20
  • 전광훈 목사의 망발
    요즘 광화문과 청와대 앞에서 기독교 우파 집회를 이끌고 있는 전광훈 목사가 지난 10월 청와대 앞 집회에서 하나님을 향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신성모독을 저질렀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런데도 교계에서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언론에 고발하거나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최근 JTBC가 그 사실을 폭로해 교계에 알려져 우리를 경악케 한다. 한기총 대표회장까지 맡고 있는 전 목사가 어떤 의도에서 그 같은 망발을 늘어놓았는지 알 수 없으나, 목사 이전에 기독교인으로서도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망언을 내뱉은 것이다. 전 목사는 이날 세상이 “전광훈 목사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어, 나 하나님 보좌를 꽉 잡고 살아. 꽉 잡고.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하나님 까불면 내게 죽어.”라고 했다. 아니, 대관절 이게 무슨 망발인가.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까불면 내게 죽어”라니, 이게 과연 목사가 할 수 있는 말인가? 전 목사가 평소에도 그 말이 좀 거칠다는 평을 듣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성모독이 분명하다. 자신에게 국민적 인기가 좀 쏠린다 싶으니까 정신이 홱가닥 돌았나, 아니면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교주가 되어 하나님과 경쟁하려 하는 것인가? 전언에 의하면 자신이 하나님과 가까이 있다는 의미에서 ‘어리광(어린양)’을 지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리광(어린양)이라도 용납될 수 없는 말이고, 농담이라도 용납될 수 없는 말이다. 어떻게 기독교인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목사라는 사람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한기총 대표회장이란 사람이 ‘하나님, 하나님 까불면 내게 죽어’라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이후 그 같은 엄청난 신성모독에 대해 전 목사가 회개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따라서 전 목사는 이후에도 그런 류의 신성모독적 망발을 쏟아낼 가능성이 있다. 재발방지를 위한 교계적 대책이 필요하다.그러므로 이 문제는 한국교회가 미친자(者) 헛소리 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 책임있는 교계 단체나 기관에서 전 목사에게 회개와 재발방지를 경고해야 한다. 아무리 교계가 X판이 되어도 이건 아니다.
    • 연지골
    • 사설
    2019-12-13
  • 예장통합 장신대, 동성애 강연 책임 물어야
    예장통합측의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최근 동성애 옹호 강연이 총회 결의를 역행하고 일부 재학생들에게 ‘비밀 강연’이 이루어졌음이 밝혀져 또 한번 교계를 놀라게 만들고 있다. 강연자는 허호익 대전신학대학교 은퇴교수로 통합측 소속 목사이다. 허 교수는 지난 봄에 ‘동성애는 죄인가’라는 동성애 옹호 책자도 발간해 한국 교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문제는 통합측 총회가 제102회부터 104회까지 3회에 걸쳐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결의를 했고, 103회 총회는 동성애 신학으로 불리는 '퀴어신학'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장신대가 2018년 5월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사건’에 이어서 이번에 또다시 동성애 강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103회 총회는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동성애자와 동성애를 지지·옹호하는 자는 교회의 직원 및 신학대학 교직원이 될 수 없다”고 결의하고 있다. 그리고 통합측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의 학칙에도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는 입학을 불허한다”는 내용을 반영토록 했다. 그런데 총회의 이 결의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교단 목회자가 될 신학생들을 상대로 동성애 강연을 한 것이다. 성경은 동성애를 타락한 성문화로서 심각한 사회악임을 규정한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갈지니라”(레 20:13). 동성애는 인류의 성적 타락으로 생겨난 죄악이다. 그래서 사람들 속에 잠재해 있다가 사회질서가 문란해지고, 사회악이 만연하게 되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게 된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도 결코 바뀔 수 없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성경에서 명백히 죄악이라고 선언한 동성애를 언필칭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수와 소명을 받았다는 신학생들이 그것을 옹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도전이다. 총회와 신학교 당국은 반드시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9-12-06
  • 교계 연합단체들 너무 늙어가고 있다
    우리사회 고령화 현상이 교계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교회 연합단체 자체가 너무 많이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각종 연합단체 행사에 나가보면 젊은 목회자나 평신도 대표들은 찾아보기 어렵고, 거의 모두가 60대 이상의 노년층이거나 아예 은퇴한 인사들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경우도 많다. 더구나 여성들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이대로 가면 수년 내 교계의 많은 연합단체들은 유명무실한 허명뿐인 기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런 현상은 초교파 평신도단체들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개교회에 청장년층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직 장로나 안수집사들 중에 4,50대가 많이 있다. 선배들이 이들을 발굴하여 연합운동에 천거하고 참여시켜야 한다. 그들이 경험이 적고 좀 서툴더라도 왠만하면 그들에게 각부서나 임원자리를 주고 은퇴자들은 뒤에서 자문역을 감당함이 옳은 일이다. 그래야 다음세대가 이어져 지도력의 공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세대 문제는 개교회의 청소년 문제만이 결코 아니다. 연합단체들도 다음세데를 걱정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지금 교계에서 내노라하는 목회자나 평신도 지도자들은 그들이 교계에 얼굴을 내민 때가 대체로 4, 50대였다. 그들의 활동기간이 바로 한국교회 연합운동이 왕성하던 시기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미 70이 훌쩍 넘어 대부분 교회를 은퇴하고 이제는 교계의 연합단체 행사에 간혹 얼굴을 내미는 것으로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그런 단체가 창의적인 활동이 어럽다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이런 현상은 교단이 장로나 안수집사를 40대로 연령을 올리면서 개교회가 늙은데도 원인이 있다. 이젠 개교회 장로는 40대도 찾아보기 어렵다. 보통 5, 60대에 이르러 장로가 되는데 그러면 시무장로를 20년도 채우지 못하고 은퇴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교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너무 짧은 것이다.오늘날 세계는 3,40대가 총리도 되고 장관도 되는 시대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오히려 젊은 세대를 교회에서 외면하는 꼴이 되어 교계의 연합단체들도 제대로 된 리더를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교계의 연합단체를 운영하는 선배들이 과감히 문을 열고 각 교단에서 후배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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