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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08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새로운 비전 가운데, 새로운 계획을 구상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며 새 출발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연말이 되면 우리는 모든 일이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고 주저앉아 자책할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일이 해마다 반복되면 우리는 연말연시가 두렵기까지 한다.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파요 오메가라고 하신 말씀을 한번 되새겨 보면 마음이 놓인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시작과 끝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시작하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시며 역사의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섭리하시고 주관하신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잠언 기자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하나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다.”(16:9) 라고 말하고, “사람이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어도 결국 성취되는 것은 여호와의 뜻이다.” (19:21)라고 가르친다. 시편기자도 “여호와께서 사람의 발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즐거워하신다. 비록 그가 넘어져도 엎어지지 않을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를 붙드시기 때문이다.”(시 37: 23-24)라고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일을 계획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하던 일을 계속 하나님께 맡기며 사는 믿음과 지혜가 더 필요하다. 무슨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눈에 띄는 결과를 얻고자 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속사람이 성숙하도록 힘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점에서 우리의 스승이다.바울은 예수님을 아는 것을 그의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하여 자기에게 유익한 모든 것을 쓰레기처럼 버렸다고 했다. 빌립보서 3:8의 “내 주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말은 헬라어 성경에서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지식”이라고 읽고 있다. 대개의 영역본들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것”(knowing Christ Jesus my Lord)라고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한글 역본들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명사, “그노시스”와 그의 동사형 “기노스코”(알다)를 이중으로 번역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라고 번역하는 것보다는 “그리스도의 지식”이라고 하거나 영역본에서 처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그 의미가 다르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란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대한 지식이란 의미이다.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 탄생, 생애, 죽음 그리고 부활과 같은 사실에 대하여 아는 바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바는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여기서 헬라어로 “기노스코” 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알다”(know)라는 의미이다.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이성적이고 지적인 이해(intelligent comprehension)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서로 친하다” (be acquaintance with), “동침하다”(have sexual relation)는 의미이다. 히브리어로는 “야다”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헬라어와 같은 의미이다. 창세기 3:1에 아담과 하와가 동침했다고 했을 때 “알다”는 의미의 “야다”라는 말을 쓰고 있으며, 마태복음 1:25에 요셉이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그 여자와 동침하지 않았다고 했을 때도 “동침하다”는 말로“기노스코”라는 말을 쓰고 있다. 말하자면 히브리어나 헬라어나 다같이 “안다”는 말을 쓰고 있는 데 이들은 관계어이다. 사람 사이의 가장 밀접한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부부 간의 성관계를 두고 사용하는 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지식이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바울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관계성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그러한 관계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값있는, 고상한 일이라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것을 위하여 힘써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과연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을 견고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어떠한 삶을 살았는가?첫째, 그는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그에게 유익한 것을 버렸다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내민 손을 붙잡기 위하여 다른 것은 다 놓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 것이다. 그의 가치관이 분명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그의 전 생애를 다 바쳐 따르고, 배우고, 추구해야 할 최고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밭일을 하다가 보화를 발견한 어느 품팔이군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일이 있다. 밭갈이를 하다가 보화를 발견한 그 사람은 그것을 흙으로 덮어놓고 가서 자기 집을 팔아 그 밭을 통째로 사서, 결국 그 밭에 감춰진 보화를 자기 소유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 비유는 사실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바울은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내민 손을 놓지 않고 붙잡는 것을 그는 가장 고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점에 대해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항상 관계성 문제를 강조하시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안에, 나는 너희 안에,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안에” 있으라는 말씀은 (요한 15:7; 17:21) 예수님과의 뗄려야 뗄 수 없는 성령을 통한 밀접한 연합관계를 나타내는 신비의 말씀이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씀은 언약적 관계성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 세상 사람들은 두 진영으로 나뉜다. 아담과의 연대성 안에 있는 옛 사람과 새 아담과의 연대성 안에 있는 새 사람이다. 새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아담과 그의 연대성 안에 있는 사람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아담과 함께 죄와 죽음의 저주 아래 있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새아담과 그의 연대성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죽음과 부활로 아담의 죄 값을 치르고, 새로 지으신 새 하늘과 새 땅의 백성을 말한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아담에게 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새 아담에 붙은 사람이 있다. 우리 신자들은 믿음으로 새 아담, 그리스도에게 붙은 사람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새 왕국의 백성이 된 자이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백성이 되었다. 따라서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아담 안에 있는 사람은 죄와 죽음에 이르는 역사의 열차를 탄 사람이나 새 아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이르는 생명 열차를 탄 사람이다. 내가 어느 열차에 몸을 실려 있는가 하는 문제는 바로 정체성 문제이다. 소속이 불분명한 사람은 예수께 속한 사람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립이란 없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 로마 시민권을 버렸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로서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의 동족과 더불어 “노예”의 길을 택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기를 바란 것이다. 셋째, 바을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산 사람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 얻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닮아 가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라면 자기가 모든 것을 다 해보려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간 것이다. 심지어 그리스도께서 죽고 부활하셨으니 자기도 죽고 부활해 보고 싶다는 욕심과 목표를 가지고 산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바쳤다. 따라서 바울은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자기도 죽고 부활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본 받는 삶” (Imitator of Christ)을 살기 위해서 발버둥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이라면 자기도 해보고 싶었다. 이것이 그의 인생철학이었다. 그리스도께서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가르치셨으니 자기도 영적으로 무지한 자들을 가르치고, 죄인들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셨으니 자기도 십자가를 지고 그의 고난의 길을 걸어보겠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온 세계를 떠돌며 굶주리고, 병마에 시달리며,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죄수가 되어 순교했다. 그리스도의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는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셨다. 자기의 생명을 바쳐 죄인들의 생명을 살리셨다. 바울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 선이라고 하셨다. 바울도 예수님을 본받아 선을 행하려고 했다는 것이다(막 3:4).결론적으로 우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알기 위하여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지식,” 곧 “그리스도와의 관계성”을 더 견고히 하고, 그리스도를 더 알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 그것이 가장 고상하고, 참되고, 선하며,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일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예수께서 생명을 살리는 선한 일을 하셨다. 우리도 생명을 살리시는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 힘쓰고, 생명을 살리시는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지식은 바로 생명을 살리는 지식이다. 어떤 업적을 이루는 것보다 생명을 바쳐 생명을 살리시는 예수님을 더 넓고 더 깊이 알기 위해 힘쓰는 한해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 해설/기획
    • 손석태
    2019-01-18
  • 학술/ 한복협 1월 월례회 ‘한국교회 처음 사랑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본고는 지난 1월 11일 서울 종교교회에서 열린 한복협 1월 월례회에서 이덕주 교수가 발제한 ‘“허물어라, 세우리라”-한국교회 개혁의 과제와 전망’을 일부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한국교회, 이대로 좋은가?” “기독교가 ‘개독교’로 불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성장이 멈추고, 젊은이들이 떠나가는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잇단 실수와 추문으로 목회자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진 한국교회에 과연 희망은 있는가?”한국교회사를 공부하는 나의 고민과 관심은 한국교회가 처한 오늘의 위기 상황을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오늘 이 시대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한국 교회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과연 한국교회는 오늘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할 만한 능력이 있는지. 이런 고민과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것이 요즘 나의 학문적 관심과 주제가 되었다. 종교개혁 전야한국교회사를 공부하다보니 주변으로부터, 특히 외국 신학자들로부터 “한국교회의 폭발적 성장과 부흥의 비결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급속한 성장을 이룩한 결과로서 부작용과 문제는 없는가?”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이런 질문에 대해 나는 “압축 고도성장의 결과요 그 후유증이다.”라고 대답한다. 근현대 한국사회가 ‘압축 고도성장’(compressive rapid growth)의 경제부흥을 이룩하였듯, 한국교회도 한 세기 조금 넘는 짧은 역사에 서구 기독교 2천년 역사를 압축 경험하였다. 사도시대 기독교회가 수난과 박해의 역사로 시작되었듯이 한국교회는 복음 선교가 시작되면서부터 극심한 수난과 박해를 체험하였고 일제강점기와 전쟁 시기에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박해를 견뎌낸 서방교회가 부흥과 성장, 선교의 역사를 일궈냈듯이 한국교회도 ‘선교 기적’이라 불릴 정도의 폭발적인 부흥과 성장을 이룩하였으며 오늘날 인구대비로 선교사를 가장 많이 보내는 선교국가가 되었다. 그 외에 종교 재판과 교회 분열, 정통과 이단의 역사,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 건축, 수도원과 사회구제, 십자군 같은 공세적 전도활동과 해외선교, 교회와 세속 권력 사이의 갈등과 타협 등등..... 서구 기독교 2천년 역사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건들을 한국교회는 120년만에 체험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아직 체험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종교개혁’(reformation)이다. 한국교회는 진정한 의미에서 ‘뿌리 채 뒤집혀’ 체질적으로 새롭게 된다는 의미에서 종교개혁을 아직 체험하지 못했다. 물론 그동안 한국교회 안에 종교개혁에 대한 설교나 강연, 책이나 논문이 없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많았다. 문제는 말과 주장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이론이 아닌 행동으로, 주장이 아닌 실천으로, 형식적 집회가 아니라 영적 체험으로 전개되는 종교개혁 체험이 아직 없었다. 번영의 신학에서 십자가 신학으로그렇다고 무너지는 교회의 혼돈 상황을 바라보며 분노하고 실망만 할 것인가? 그럴 수는 없다. 무너지는 교회에 대하여 분노하고 질책하면서 동시에 세워질 교회에 대한 희망을 선포해야 한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그러했고 신약의 사도와 제자들이 그러했으며 기독교와 인류 역사에서 교회가 타락하고 몰락할 때마나 나타난 종교개혁자들이 그러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다. 기독교 역사에 등장한 개혁자들의 신학사상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십자가 은총’이다.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로마가톨릭교회를 세우면서 내걸었던 ‘하나님의 도성’ 신학이 어거스틴의 ‘십자가 은총’에서 출발하였음은 물론이고 중세 클루니수도원 개혁운동의 신학적 배경이 되었던 버나드와 안셀무스, 프란체스코의 신학과 수도생활도 십자가의 은총과 겸비, 그 실천이었다. 그리고 중세를 끝장 낸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의 신학도 십자가 구속의 은총을 재발견한 것에서 비롯되었다.이처럼 교회가 타락하고 몰락할 때마다 ‘십자가’가 재등장하였다. 교회의 근거이자 존재 이유인 ‘십자가’를 재발견한 개혁자들의 메시지와 실천을 통해 교회는 다시 세워지는 역사를 반복하였다. 부자와 권력자를 위해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빌어주는 ‘번영의 신학’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신학이라면 자발적 청빈과 순결, 고난과 희생을 실천하는 ‘십자가 신학’은 교회를 세우는 신학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어느 신학에 집중하고 있는가? 가진 자에게 편안한 교회인가? 가난한 자에게 희망을, 갇히고 억눌린 자에게 자유와 해방을 안겨주는 그런 교회인가? 한 세기 전, 처음 기독교 복음이 이 땅에 들어왔을 때 교회는 가난하고 억눌리고 소외되었던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안겨주는, 말 그대로 ‘복음’(glad tiding)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가 바뀌었다. 강단의 메시지도 바뀌었다. 십자가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축복이 차지했다. 결국 오늘 붕괴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가 다시 세워진다면 그것은 십자가 신앙에서 출발해야 한다. 쳐다보는 십자가, 걸고 다니는 십자가 말고 지고 가는 십자가를 체험하는 신앙이다. 그리하여 십자가 은총에 근거하여 무너지는 교회에 대해 경고하고 세워지는 교회를 기대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시작해야 한다.한국교회의 개혁 징조독일 종교개혁의 시발점이요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비텐베르크와 보름스를 다녀온 후 한국교회 현실을 다시 살펴보았다. 누가 뭐라 해도 내 눈에는 ‘종교개혁 전야’의 무너지는 교회 모습이자 현상이었다. 특히 내가 속한 감리교단이 5년 넘게 감독회장 선거 문제로 내홍을 빚으며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음은 실로 부끄럽고 암담할 뿐이다. 그저 “공허하고 혼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렇다고 좌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무너지는 교회 저 편에서 새로운 교회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교회사를 다시 읽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한국교회 1백년 역사 속에 적지 않은 ‘개혁의 촛불’들이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난 교리와 제도를 앞세우며 진리와 진실을 외면하였던 한국교회에 대하여 “아니오.” 외치다가 기득권, 교권주의 세력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 받고 제도권교회 밖으로 쫓겨났다. 바로 한국교회의 후스였고 사보나롤라였으며 위클리프였고 발도였다.한국교회 희망의 근거그러했다. 한국교회 종교개혁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한국교회 역사 속에 후스도 있었고 위클리프도 있었다. 사보나롤라도 있었고 발도도 있었다. 이제 루터만 나오면 된다. 작은 촛불들이 모여 거대한 횃불을 만들 때다. 골방에서 드리던 은밀한 기도가 교회의 비리와 부정을 고발하는 <95개조 반박문>을 성전 문에 붙이는 망치소리로 바뀔 때다. 무너지는 교회의 굉음 대신 세워지는 교회의 망치소리가 들릴 때다. 교회의 잘못된 관행과 습관에 대하여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아니오.” 할 수 있는 ‘작은 루터’들이 나올 때다. 나는 이 글을 “오늘 한국교회에 희망은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였다. 이런 질문과 고민을 안고 성경과 기독교 역사를 읽고 한국교회사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희망은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성경과 기독교 역사 속에서 5백년 주기로 반복되는 ‘무너지는 교회’와 ‘세워지는 교회’의 교차 패턴에서 이제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와 함께 무너지면서 세워지는 교회의 과도기를 맞고 있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무너지는 교회를 보고 절망하거나 분노하기보다 세워지는 교회에 희망을 품고 기대할 것이다. 언뜻 보면 눈앞에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과 물질적 세속화로 무너지는 교회의 실망스런 모습이 판을 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노인들만 남은 시골 작은 교회에서, 사회적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소외된 지역에서, 견디기 힘든 열악한 목회와 선교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예수 진리’만 붙잡고 매일매일 공급되는 하늘의 만나로 얻은 감동과 감격으로 사역하고 있는 ‘작은 예수’ 목회자들이 있기에 그들로 인해 세워지는 교회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는 처음 세워질 때부터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의 조직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우신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교회였다. 가끔 사람(목회자와 교인)이 교회의 주인인 것처럼 착각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있기는 해도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교회는 영원하다. 그러하기에 설혹 사람의 실수와 잘못으로 교회가 훼손되고 오염될지라도 아주 멸망시키기보다 심판하신(무너뜨린) 후 구원하시는(세우시는) 은총의 하나님인 것을 믿는다. 그런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믿기에 무너지는 교회 현실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세워지는 교회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무너뜨리는 것이 우리 몫이라면 세우는 것은 주님 몫이다. 이런 믿음 안에서 혼돈과 공허, 무질서와 절망에 사로잡힌 오늘 한국교회의 허상을 철저하게 허물고 신령과 진정의 새로운 교회로 다시 세우시는 창조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해설/기획
    • 학술
    2019-01-17
  • 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107
    우리는 이 주제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기 전에 “선자자”가 뭐하는 사람인지 그 정의부터 알아야 할 것 같다. 선지자의 히브리어 “나비”라는 말은 사전에 여러 가지로 정의하고 있지만 성경에서 가장 적절한 의미는 “하나님의 대언자”(The Spokesman of God)라고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대신 전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선택하여 그의 말씀을 선지자의 입에 넣어주어 그것을 그의 백성들에게 전하게 하신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선지자를 “여호와의 입”()이라고 부른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계획이나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백성들을 가르치고 재판하는 일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입으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특별한 행동으로 나타내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선지자가 하는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 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 가운데 적용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선지자들이 예언한다고 하니까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말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미래 일만 말씀하시고 전하라고 하시지 않는다. 현제 일어난 일도 말씀하시고, 과거에 있었던 일도 말씀하신다. 따라서 선지자를 단순하게 예언자라고 말하는 것은 선지자의 하는 일을 너무 축소시키고 제한하여 본래의 의미와 맞지도 않다. 그러나 적절한 번역이 없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쓰고 있는 “선지자”라고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예언자”라는 말은 옳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시 아담을 그의 선지자로 세우셨다. 아담을 그의 대리 통치자로 세우시고 그의 창조물을 다스리도록 임무를 주셨다. 따라서 아담은 하나님과 서로 교통하고, 이것을 그의 피조물에게 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주심으로 그가 만든 세계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창조의 질서를 계시하고 알려 주셨다. 선지자는 여호와의 입의 역할만 해야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거나 자기의 생각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그러나 아담이 뱀이 찾아와서 그를 유혹할 때, 그를 꾸짖었야 할 자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뱀의 수사적인 말에 말려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결국은 따 먹었다. 잘못된 적용을 한 것이다. 아담은 여기서 선지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잘못된 선지 활동을 하고 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타락하게 된 것이다. 아담의 타락과 더뷸어 그는 선지자로서의 말씀의 대언, 말씀의 해석, 말씀의 적용과 교육 등의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더 이상 바르게 할 수가 없게 되었다. 타락한 선지자가 된 것이다. 결국 그와 언약적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을 죄와 죽음에 이르게 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대리통치자의 일을 온전하게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인간은 아담과 더불어 타락한 선지자가 된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대언해야 할 사명과 특권을 받았지만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길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고 불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고 대언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선지자, 아담에게 죽음의 저주와 심판을 내리셨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본래 사량하셨기 때문에 살리기 위한 계획을 세우신다. 아담을 대신하여 새 아담을 세우시고, 그 새 아담을 새로운 선지자로 사용하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하여 타락한 인간들을 구원하고, 말씀을 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려고 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고, 그로 말미암아 타락이 들어왔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말씀을 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고자 한 것이다. 마치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한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함께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는 것이다(사 11:9). 이것이 하나님의 종말의 꿈이고 비전이다. 말씀이 넘치는 세상을 만드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선지자가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노아를 선지자로 쓰셨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그들을 유혹했던 마귀를 짓밟을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고, 노아에게는 구원의 방주와 더불어 셈의 후손 가운데 그가 거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최초로 선지자라고 부르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내를 빼앗은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셔서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이니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면 네가 살 것이나, 만일 네가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들은 모두 반드시 죽을 줄 알아라.”(창 20;7) 고 경고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처음 부르실 때 그를 통하여 세상 만민들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창세기 18:18-19에서는 그를 선택하신 목적을 말씀하시는 데, 아브라함이 그의 후손들에게 여호와의 도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도록 하고, 이 땅에 공의와 정의가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여호와의 도를 가르치는 일이 바로 선지자의 할 일이다.민수기 11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나 2년여 세월이 지나, 약속의 땅에 가나안을 향하여 갈 때, 이집트에서 먹던 고기와 보양식과 양념식을 먹고 싶다고 울고, 이들을 보고 있던 지도자, 곧 선지자로서 절망과 좌절을 느낀 모세는 더 이상 이 백성을 책임질 수 없다고 선지자요 지도자로서의 책임과 직무에 대한 사임을 청하고 차라리 자기를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청하는 일이 생겼다. 이들은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그리워하고 그때가 행복했었다고 말한다. 과거의 피눈물을 흘리던 노예생활을 미화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자기 땅에서, 자기 손으로 농사짓고, 자기 양식을 먹을 수 있는 꿈을 버린 자들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그들은 400년 동안의 노예근성이 뼛속까지 찌든 백성이 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강란 훈련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장로 70명을 불러 모세에게 주셨던 똑같은 영을 주셔서 예언을 하게 하신다. 이들을 선지자로 세워 모세의 동역자로 주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명기 18:18에서는 모세가 그의 후계자를 세워달라고 청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데, 이는 선지자인 메시야, 그리고 계속 백성들을 지도할 하나님의 입, 선지자를 세울 선지자 제도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요엘서에는 아예 종말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선지자로 세우실 것임을 약속하신다.신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선지자를 보내신다. 말씀을 통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자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신 것이다. 그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을 때 위로부터 성령도 받았다.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인증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복음 사업을 시작하시며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들에게 자유를, 맹인들에게 다시 보게 됨을 선포하고, 억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며,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눅 4:18-19)예수께서는 그가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이심을 사람들에게 밝히셨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고(눅4:31-32),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고(눅 4:31-37), 각색의 병을 고치셨다(38-41). 그래서 사람들은 그분의 말씀에 대한 권위에 놀랐으며, 심지어 악령들을 꾸짖으시자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마가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예수께서 안식일에 곧바로 회당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다.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 에 놀랐으니 이는 그분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를 가지신 분답게 그들을 가르치셨 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막 1:21-22)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 그의 말씀의 권위, 영적 능력에 압도되고 놀랐다. 그래서 예수께서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이를 살리셨을 때, “사람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하기를 ‘우리 가운데 위대한 선지자가 나타나셨다.’하며 또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돌아보셨다.”라고 말하고, 이 일이 온 유대와 그 모든 주변에 퍼져 나갔다고 했다. 이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위대한 선지자로 인식한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선지자로 오셔서 우선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으로부터 말씀사역을 시작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해석해주고, 또한 가르치고 훈련시키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복음사역은 선지자로서의 사역이고, 선지자를 훈련시키고 양육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한 알의 밀알이 되셨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선지자로 임명하시고, 오순절에 하나님의 성령세례를 통하여 새언약의 선지자로 세우셨다. 우리는 물세례를 통하여 성령 세례를 받으며, 성령세례를 통하여 선지자의 직분을 위임받았다.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대로 온 세상에 다니며 예수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명을 받는 것이다. 만일에 예수님의 선지자적 사명이 없었다면 우리 죄인들은 자신들이 왜 죄인인지도 알지 못했을 것이고, 구원에 이르는 길도 몰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말의 비전,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충만한 세상은 예수께서 세우신 제자들의 선지 활동을 통하여 이루실 일이다. 성탄절을 맞으며 우리는 선지자적 사명을 새롭게 다짐하고 행해야 한다. 선지자로 오신 새 아담, 예수님의 동역자로서 선지자적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고, 이 세상을 선지자로 살아야 할 것이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과거도 잊고, 미래도 볼 줄을 모르는 소경이 되어 죄악의 낙을 사모하고 사는 어리석은 백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성탄절을 맞으며 이 시대를 깨우는 선지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 해설/기획
    • 손석태
    2019-01-04
  • 특별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㉚ 사회활동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우려들이 팽배해 있다.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가장 원시적인 대답으로. 김남식 박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특별기획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고 한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리는 이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바울은 우리의 처지에 대해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하였다.신학에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두 나라’에 속함을 해석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와 땅의 나라이다. 이것은 이분법(二分法)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소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강조한다.문제의 탐색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여야 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보다 세상에 함몰되는 경향이 많다.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며 이 사회에 대해 선포와 섬김의 사역을 감당하며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우리는 ‘사회참여’라고 하기도 하고 ‘섬김사역’이라고도 한다. 사례의 탐구하나님 나라와 땅의 나라, 즉 ‘두 나라’에 살고 있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활동 혹은 사회봉사를 어떻게 하여야 할까? 상황과 사안의 특성에 따라 할까? 상황과 사안의 특성에 따라 여러 가지 답이 나올 수 있다. 대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는 부산 새생명교회 문동현 목사에게서 들어본다.김남식(이하 김): 교회와 지역사회의 가교 역할을 위해 수고가 많은 줄 안다. 우리 교회가 사회 속에 존재하기에 사회를 외면하고 존립할 수 없다. 우리가 건전한 대사회적 활동을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문동현(이하 문): 교회는 하나님께 속해 있지만 주님 다시 오시는 날까지 이 세상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사회와 등지고 살 수 없기에 바른 소통이 필요하다. 우리 교회들이 이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 스스로 돌아보고 궁극적으로 선교적 차원에서 소통해야 한다.김: 교회가 사회적 활동을 할 때의 기본자세가 어떤 것이라고 보는가?문: 여러 가지 상황이 있으나 먼저 정체성의 정립이다. 교회는 교회이지 사회봉사단체는 아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잃으면 교회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또 선교적 자세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궁극적 목적은 복음선교이기에 사회활동은 이를 위해 하나의 통로로 사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섬김의 자세가 필요하다. 이웃을 위해 섬김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재정적 투입이 지혜롭게 이루어져야 한다.김: 일부 목회자들이 조직을 만들어 정치적으로 어느 한 편을 지지하는 선언을 하는 것을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보았다. 이것을 어떻게 보는가?문: 옳지 못한 일이다. 개인적으로 누구를 지지할 수 있고 또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목사’의 직책으로 단체 행동을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목사들이 무리를 지어 선거캠프에 기웃거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김: 넓게 살펴보면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 정당이 시도되었다가 실패하였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정체성이 없고 대표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재현될 것으로 본다. 어떻게 대응할까?문: 목사들이 기독교 정당 운동에 나서는 것은 반대한다. 어떤 이들은 네덜란드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를 예로 들지만 전연 다른 여건이다. 신실한 그리스도인 정치인들을 육성하여 이들이 정치영역에서 일하게 해야 한다. 목사가 일반 정치를 하려면 목사직을 내려놓고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교회는 교회이고 목사는 목사이다.’김: 이러한 행동들이 기독교의 신뢰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아닌가 여겨진다. 여기에 대한 바른 대응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가 바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어려움이 올 수 있다.문: 한겨레신문이 제기한 ‘가짜뉴스’ 논란으로 교회가 시끄럽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한국사회의 시선은 냉담하기만 하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2017년 발표한 대국민 신로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기독교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은 51.2%, ‘신뢰 한다’고 답한 사람이 20.2%로 나타났다.낮은 신뢰도는 기독교 신자 감소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예장 합동측은 2014년 272만 1,427명에서 2017년까지 약 3만 2천 명이 감소했고, 예장 통합측은 2014년 281만 574명에서 2017년까지 약 9만 명이 감소했다. 기장 역시 한해에만 약 6만 명이 감소하는 등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다.이렇듯 공적 신뢰를 잃고 위기에 직면한 한국교회에 대해 사회로 나아가 소통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열린 성결교회 목회페스티벌에서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는 “한국교회의 모습은 우리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라기보다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비치고 있다. 교회는 지역 사회와 소통하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있는 공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며, “사회에 복음을 선포하고 정의에 어긋나는 질서를 바로잡으며 고통에 처한 이웃을 돕기 위해서는 교회를 넘어 지역공동체와 발맞추어야 한다고 밝힌 것을 주목해야 한다.김: 교회의 사회적 기능은 교회가 사회에 무언가 줄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한국교회 역사를 보면 3.1운동 때는 민족의 독립을, 6.25 한국전쟁 때는 생존의 문제를, 80년대에는 민주화 등, 긍정적 삶을 추구하여 교회로 모여들었다.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졌고 또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문: 우리는 성경의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 사도들이 ‘은과 금은 없어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사역하였듯이 우리는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순수한 복음을 선포하고 섬김의 사역을 해야 한다.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고 섬김 사역으로 이 세상에 소망을 주어야 한다.기본에의 회귀우리 주변에는 사회활동을 하는 수많은 기독교 단체들이 있다. 각자의 소임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이 기관들은 친정부, 반정부가 목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해야 한다.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는 섬김을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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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03
  • 각 기관 신년메세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 이성희 목사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온 누리에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사회 곳곳에 임하는 한해를 위해 한국교회 역시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올해는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해 말 우리 사회의 도처에서 쌓여온 안전상의 문제점이 여과 없이 드러났고, 슬프게도 적지 않은 분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특히 안전하지 않은 직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험의 외주화의 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더 이상 젊은이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명을 값싸게 매긴 탐욕에 의해 쓰러져가는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2018년 우리사회 내 불평등과 폭력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청년은 실업 해결, 청소년은 참정권, 다양한 소수자들은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요구했고, 여성들은 ‘미투운동’을 통해 우리사회의 불평등과 폭력을 고발했습니다. 올해에는 불평등과 폭력의 관행들이 사라져 모두가 조금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2018년을 돌아보면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던 한반도에 하나님의 때가 찾아왔노라 고백하게 됩니다. 교회협이 이번 회기 주제로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라”를 정한 것은 특히 남북 간 화해 분위기를 환영하면서 실질적인 평화의 길로 나아갈 것을 다짐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올해에도 더욱 굳건히 평화의 길을 계속 걸어야겠습니다.■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엄기호 목사2019년 새로운 소망의 한해를 맞이하면서 6만여 한국교회와 1,200만 성도, 대한민국 국민과 온 세계 위에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와 평강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지난 한 해 사회적으로는 남북 관계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연초에는 극한 대립상황으로 치닫던 것이, 올림픽을 계기로 변화가 일어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관계 향상 및 대화국면으로 전환되고 다양한 채널을 통한 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앞으로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등의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이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과거를 통해서 배우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푯대를 세우고 끊임없이 달려갔던 바울과 같이, 새로운 곳을 향해서 전진할 때 변화가 일어나고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해 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과정 중에 발생하는 고난과 시련 때문에 나아가기를 두려워한다면, 과거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019년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창립한지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동안 요동치는 세파 속에서도 말씀 위에 굳게 서서 공의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이제는 다가올 30년을 준비하고 계획하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고 하신 말씀과 같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30년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될 것입니다.■한국기독교연합 대표회장 권태진 목사주님은 새해를 맞은 우리 모두가 죄에서 떠나 말씀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사에 기록한 유례없는 부흥, 성장기에 이어 연단기에 접어든 지금은 더욱 겸허하게 자신과 이웃, 나라와 민족을 돌아보며 복음 사역을 충실히 감당해야 할 때입니다.한국교회는 이 나라와 민족에 하나님의 공의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행동하면서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이 보여주신 희생과 섬김의 낮은 자세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웃의 상처를 보듬고 압제당하는 약자들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나아가 남과 북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하나가 됨으로써 하루속히 자유 평화 통일을 이루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2019년 새해는 한국교회가 본질을 회복하는 원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사명, 곧 교회 일치와 연합을 통한 교회의 하나됨과, 민족복음화의 사명,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섬김을 다하기 위해 더욱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는 말씀에 의지해 한국교회가 분열의 상처를 극복하고 화합과 연합, 통합을 이루고 동질, 동행, 동거로 이어져 주님의 몸된 교회가 하나가 되는 날까지 우리의 희생과 헌신이 결코 중단되어서도, 낙심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한국교회총연합 공동대표회장 이승희 박종철 김성복 목사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대한민국과 한국교회 위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를 맞아서 한국교회총연합과 29개 회원교단은 한국교회가 계속 개혁되고, 영적으로 계속 부흥하여 교회와 민족의 희망이 될 것을 다짐하면서, 새해가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해’, ‘민족 통합과 사회통합을 이루는 해’ ‘기억할 것을 기념하는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새해 우리는 생명으로 충만한 세상을 꿈꾸며 사람이 살만한 세상, 젊은이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결혼과 가정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같은 그릇된 이념에 따른 전제에서 출발한 정책들에 대응하여 교회부터 결혼과 출산장려운동을 전개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민족통합, 사회통합의 길을 열어야 합니다. 분단과 대결을 통해 살아온 70년을 반성하고, 화해와 교류를 통해 공존과 평화의 길,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우리는 100년 전 국권을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흘린 선현들의 피와 땀을 기억해야 합니다.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도 평화와 공영을 부르짖으며 초개같이 버린 애국정신을 기념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3.1운동 100주년 기념대회를 진행하며, 온 교회가 함께 감사하고 기념할 것입니다. 특히 나라 사랑하는 정신과 민족과 이웃과 함께 하는 소중한 가치를 세워갈 것입니다. ■한군구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송태섭 목사2019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는 보다 더 밝은 시대를 맞이하고자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를 지내오면서 힘든 과정을 이어오는 역사였습니다. 근대에 와서도 일제 강점기, 6.25 한국전쟁, 극한 가난, 정치적 혼란 등 고단한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그런 중에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힘이 되었고 희망이 되었습니다. 한국장로교회는 2019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나라에 힘과 희망이 되는 신앙을 굳게 하면서 우리의 이웃에게 저 북녘 동포들에게도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힘과 희망을 전하는 2019 새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가정은 약하고 어릴수록 관심과 보호를 받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보다 많은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문명의 발달로 편리한 것들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늘진 곳에서 고독하고 소외된 고통 중에 있는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어려운 이웃에게 예수님의 사랑의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관심과 실천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권위는 소중하나 권위로 남에게 부담이 되는 권위주의는 배격하여야 합니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사랑으로 작고 힘없는 막내들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가정과 같은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정서영 목사지난 한 해는 이 민족은 남북 관계에 큰 소망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대립상황으로 치닫던 것이,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이어지고 다양한 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이에 한국교회와 750만 디아스포라 한인교포와 한인교회는 실질적인 북한의 비핵화 조치및 진전이 이루어지고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교회를 향한 사회의 비판적인 시각이 많은 때에 이로 인한 복음적 나눔과 소통마저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의 희망이었던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받고 외면당하는 것은 교회의 거룩함과 소명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삼일절 100주년이 되는 새해에는 지난 날 이 민족의 독립과 변화를 위하여 외쳤던 부르짖음과 움직임으로 이 시대를 향한 선지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한국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2019년은 교회가 영적 지도력을 회복하고, 윤리 도덕적으로도 성경적 기준의 삶으로 회복될 때 교회가 가장 교회다워지고,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2019년 한 해는 "열어보지 않은 선물"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희망의 선물, 사랑의 선물입니다. 뚜껑이 열리면 무엇이 있을지, 어떤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미래가 좋은 이유는 그것이 하루 하루씩 다가오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새해에는 사랑과 기쁨의 좋은 선물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 해설/기획
    • 특집
    2019-01-03
  • 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106
    요한복음 2장에 보면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의 혼인집에 가셔서,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여자”라고 부르신다. 혹자는 이것이 당대의 풍습으로는 존칭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예수께서 이 상황에서 그의 육신의 어머니를 굳이 존칭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의도적으로 “여자”라고 부르신 것 같다. 예수께서는 이 혼인 잔치 집에서 자신이 물을 포도주로 만든 창조주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실 뿐만 아니라, 신랑이 그의 결혼 잔치를 베풀고 축하객들에게 포도주를 접대하는 고대 근동 사회의 풍습에서와 같이 포도주를 내심으로 신랑의 역할을 하고 계심을 보여준다. 그래서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능력을 가진 신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포도주를 내는 신랑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들의 신랑이요 자기들이 그의 신부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 신적-신랑 (Divine Bridegroom)이 예수님 자기 자신임을 이 혼인 잔치에서 암시적으로 보여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보통 육신의 어머니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타락하게 한 뱀에게 저주를 퍼부으시며, ”그(여자)의 씨“라는 말을 언급하신다. 히브리어 성경은 “그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보다는 “그 (여자)의 씨“자르아카()”라고 쓰고 있다. 거의 모든 영역본에서는 “자식”이나 “후손”이라는 의미의 offspring을 쓰고 있으나 KJV 이나 NAS에서는 “씨”(seed)라고 번역하고 있다. 의미상으로 씨라고 이해해야 옳을 것 같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그의 어머니를 “여자”라고 부를 때는 바로 창세기에서 그 “씨”를 잉태한 그 여자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위로는 하나님-사람-만물의 위계 질서가 있는 세계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어 그가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그를 대신하여 다스리시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대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왕으로 세우신 것이다. 이러한 질서 체계는 계약 혹은 언약을 통하여 법적 구속력을 가지며, 왕과 백성 사이에는 대왕이신 하나님 앞에서 언약적 연대성을 갖는다. 왕의 대왕에 대한 충성심 여하에 따라 신민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아담이 대왕이신 하나님께 충성하며 순종하면 왕 자신을 물론 그의 수하에 있는 모든 신민들이 평안을 누리지만, 반역을 하거나 불순종할 때는 왕은 반역의 형벌을 받게 되며, 왕과 언약적 연대성 하에 있는 모든 신민들은 왕과 함께 진멸당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담 한 사람의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아담은 물론 아담의 언약적 연대성 하에 있는 모는 인간들과 자연 만물이 아담과 함께 죄인이 되어 아담과 함께 분순종의 반역에 대한 형벌, 곧 죽음을 당하게 된 것이다. 바로 원죄이다. 인간의 원죄는 우리 각 사람이 다 아담과의 연대성 안에 있어서 아담과 함께 죄를 짓고 아담과 함께 형벌을 초래한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5장 12절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 어 왔으며, 그리하여 사망이 모든 사람들에게 이르렀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죄를지었기 때문이다.”(롬 5:12)그러나 만물을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시며, 안식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쁨의 대상이 되었던 그의 창조물을 모두 진멸시키기에는 이들을 너무나 사랑하셨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구원계획을 세우신다. 그것은 “새 아담”을 창조하시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기 때문에 새 아담 한 사람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시려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 점에 대하여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자들에게도 사망이 다스렸으니, 아담은 오실 분의 모형이었다.”(롬 5:14) 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아담은 모형(type)이고, 오실 분 곧 그리스도는 실형 (antitype)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모형이라는 말은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고, 또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인이 되는 연대성의 원리를 가르키는 말이다. 그렇다면 아담을 대신한 새 아담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몇 가지 조건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새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여자의 씨(후손)”여야 한다.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 아니고, 여자에게 낳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새 아담은 신적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라야 할 것이다. 뱀은 단순한 들짐승이 아니다. 사단의 사주를 받아 여자를 유혹한 영적 존재이다. 육을 가진 인간이 영적 존재를 대항할 수 없다. 따라서 새 아담은 사단 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더 능력 있고, 권세가 있는 영적 존재여야 한다. 셋째로 그는 아담의 죄를 대속하여 죽고 부활해야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반역자, 아담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가죽으로 만든 수의를 입히셨다. 아담과 그의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사형 언도를 받고 그 집행을 기다리는 자들이다. 이들을 사면하고 살리기 위해서는 죄 값을 치러야 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창 2:16-17; 3:19; 롬 6:23). 그런데 문제는 이 세상에는 어느 누구도 사람이든 짐승이든 아담의 죄를 대속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아담의 연대성 아래에 있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인이 남의 죄를 대속할 수 없다. 따라서 새 아담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자여야 한다. 그리고 그가 아담의 죄를 지고 대신 죽고, 하나님께서 그의 속죄를 만족하게 여기신다면 그는 이제 죄와 죽음의 굴레를 벗어났기 때문에 살아나야 한다. 따라서 새 아담의 속죄에 따른 부활은 곧 아담과 그의 연대성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새 아담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은 모든 아담과 그의 연대성 아래에 있는 피조물을 살리고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새 아담은 신인적인 존재(Divine-Human Being)로서 아담의 죄 값을 치르고 부활해야 하는 자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어디 있는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적 지혜로 성령을 통하여 그의 아들을 처녀의 몸을 빌려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보내시려는 계획을 세우신 것이다(사 7:14). 그렇다면 그는 우리 인간들과 전혀 다른 보통생육법으로 낳은 자가 아니고 성령을 통하여 낳은 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새 아담은 신-인적인 존재(Divine -Human Being)이아야 하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이 비밀을 알리시고 갈릴리 나사렛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이 계획을 실행하신다.“천사가 그 여자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성령께서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덮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거룩한 아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눅 1:35)바울도 이 하나님의 비밀을 “때가 찾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셨으니 이는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신분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다”고 가르친다(갈 4:5-6). 요한은 이를 가리켜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한다. 성육신하셨다는 것이다 (incarnation). 이어서 선지자 세례 요한은 그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곧 자신을 세상 죄인들의 속죄제물로 바칠 것이라고 가르친다(요한 1:29). 새 아담은 부모를 통해서 이 땅에 온 것이 아니고 성자께서 성령으로 처녀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오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세상의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새 아담”, 곧 “마귀의 머리를 짓밟을 여자의 씨” 임을 염두에 두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성경에서 언급한 대로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씨를 잉태할 분으로 지칭하여, “여자여!”라고 불렀을 것이다.바울은 아담과 새 아담의 모형(type)과 실형(antitype)의 원리를 말하며, 아담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사람의 범죄로,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다스렸다면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더욱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으로 다스릴 것이다. 그러므로 한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롬 5:17-18). 한 사람의 범죄와 한 사람의 의로운 행동이 우리의 죽음과 생명을 갈라놓았다. 우리 인간은 항상 아담의 범죄만 탓하고 하나님의 불공평하신 처사만 불평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정죄하신 똑같은 원리로 우리 죄인들을 살리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는 일이 없지만 그리스도 한 사람 때문에 우리를 죄와 죽음의 멍에에서 해방시키신 것이다. 값없이 사면되고, 저 죽음의 감옥에서 석방된 것이다. 이것을 은혜요 의의 선물이라고 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죄 값을 치르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면 우리는 새 생명을 얻을 수가 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하는 신앙고백을 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 아담의 연대성 안으로 받아주시는 것이다.우리는 성탄절을 맞으며, 내가 왜 죄인인가? 예수께서 누구이시며,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 영광 버리시고 이 땅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성육신(Incanation)과 낮아지심(Humiliation)의 의미를 알고 되새겨 보야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아담 안에서 아니라, 새 아담,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으로서 살아야 한다.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이 말씀이야 말로 깊고 깊은 하나님의 지혜요 섭리이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낮아져서 이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예수께서는 이 모형의 비밀을 우리에게 열어주실 것이다. 그러나 교만한자에게는 항상 하나님의 신비는 닫혀있기 마련이다. 예수님은 새 아담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자 사람인 여자의 씨이다. 그는 우리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하여 육신의 몸을 입고, 우리에게 다가오신 새 아담이시다.
    • 해설/기획
    • 손석태
    2018-12-24
  • 2018년 교계 10대뉴스
    1. 남북·북미 정상회담 잇단 개최일촉즉발 위기일발로 치닫던 한반도가 올 한 해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1차례의 북미정상회담으로 따뜻한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4월 27일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1차 남북정상회담을 시작으로, 5월 26일에는 북측 통일각에서 2차 정상회담이 진행됐으며,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북한 평양에서 제3차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의 평화적 화합을 약속하며, 통일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여기에 또 지난 6월 12일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싱가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돼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앞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이날 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며, 비핵화에 대한 단계적 시행을 약속했다. 한반도의 운명을 뒤바꿀 남북·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교계의 환영과 찬사는 당연했다. 무엇보다 지난 수년간 전 세계를 불안에 떨게 만든 한반도 전쟁 위협과 냉전이 평화와 화해무드로 전향된 것에 대해 일제히 환영의 뜻을 보내며, 남북의 평화적 화합이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에 평화를 선물해 줄 것을 기대했다.2. 대법원,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대법원이 지난 11월 1일 종교 등 자신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것이 정당하다고 인정하며, 지난 14년간 병역거부자를 처벌해 온 판례를 스스로 뒤집었다. 특히 대법원은 병역거부자들이 주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인정해주며, 이에 대한 사회와 교계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했다. 국민의 4대 의무에도 포함되어 있는 병역에 대해 ‘양심’을 이유로 거부하는 것이 인정됨은 추후 심각한 불평등을 초래함은 물론이고, 병역 기피의 또다른 방편이 되어 다발적인 병역거부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먼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엄기호 목사)은 이 판결에 대해 “법의 잣대가 소위 ‘마음대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심각한 판결”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에게나 부과된 국방의 의무를, 개인적인 이유로 거부할 수 있도록 하여 법원 스스로 법질서를 무너뜨린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면서 앞으로의 파장을 우려했다. 3. 한기연-한교총 통합 완전 무산올해 말 통합총회를 예고했던 한국기독교연합(대표회장 이동석 목사)과 한국교회총연합(공동대표회장 전계헌 등)가 결국 또다시 통합에 실패했다. 양 단체는 11월 16일 통합총회를 개최키로 합의했지만, 별 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한 채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앞서 8월 17일 기자회견에서 양 단체 통합위원장이 금번 통합을 워낙 호언장담했던 터라, 한국교회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었지만, 역시나 하는 실망을 맛보게 됐다. 특히 당시 기자회견에서 한교총 통합위원장인 신상범 목사가 “이대로 통합에 또 실패할 시, 세상은 우리를 양치기 소년으로 볼 것이다”며 통합을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를 전했는데, 결과적으로 한국교회가 ‘양치기 소년’이라는 것을 확인한 꼴만 됐다.금번 통합 무산은 그 어느때보다 한국교회에 미칠 부작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교계 통합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4. 흩어졌던 대신의 형제들 ‘다시 한 자리에’예장 대신측의 흩어진 형제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2015년 백석측과의 통합으로 인해 갈라졌던 대신의 형제들은 올해 총회에서 ‘대신’의 이름 아래 다시 함께 했다. 대신측은 지난 9월 10일부터 12일까지 경기도 기흥 골드훼미리콘도에서 제53회 총회를 열고, 대신 교단의 완전한 재건을 알렸다. ‘통합합류와 함께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대신총회’라는 주제에서 드러나듯 이번 총회는 오랜 만에 다시 한 자리에 함께 한 형제들의 우애깊은 축제였다. 금번 통합으로 대신측은 교세를 1300여교회로 회복했다. 신임 총회장 안태준 목사는 목회 중심 총회, 노회 중심 총회로의 변화를 강조하며 최선을 다해 총회 발전 방안을 강구하는 총회장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안 목사는 “그간 대신은 한국교회에서 정통 장로교단으로서의 위치를 굳게 지켜왔지만, 지난 분열로, 성도들에게 큰 실망을 드렸다”면서 “분열에 대한 깊은 반성과 이에 대한 사과를 전하며, 앞으로 한국교회의 대형 교단과 소형교단의 가교 역할을 성실히 감당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5. 기하성 여의도-서대문 ‘통합’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여의도순복음측(총회장 이영훈 목사)과 서대문측(총회장 정동균 목사)이 통합총회를 열고, 기하성 대통합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양 교단은 지난 11월 20일 서울 여의도동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각각 임시총회를 통해 통합을 결의하고, 곧바로 통합총회를 열어 통합을 선포했다.양 교단은 이날 대표총회장으로 선출된 이영훈 목사를 중심으로, 교단 통합 뿐 아니라 교계 통합을 위해서도 적극 헌신하겠다는 각오다. 물론 기하성은 양 교단 외에도 신수동측과 광화문측 등이 아직 건재하고 나아가 예하성도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직 대통합의 첫 발을 내딛은 것 뿐이지만, 지난 수년 간 분열만 반복했던 기하성에 재통합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받고 있다.대표총회장 이영훈 목사는 이날 인사말을 통해 분단 73년만에 남북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이때, 한국교회와 기하성 교단이 하나됨의 대열에 함께해야 한다는 책임을 강조했다.하지만 이번 통합에 대해 기하성 신수동측, 광화문측 등은 연금, 재단, 순총학원 등의 문제를 거론하며, 통합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6. 명성교회 판결 ‘재심’ 논란명성교회 목회 세습을 두고, 교계 뿐 아니라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린 한해였다. 아들 김하나 목사에 담임 자리를 승계한 김삼환 목사를 두고, 사회적인 비난이 쏟아졌고, 이는 곧 총회 재판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애초 총회재판국은 명성교회의 김하나 목사 청빙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이후 봇물같이 쏟아진 사회적 비난에 결국 지난 9월 총회에서 총대들은 재판국의 판결을 뒤집었다. 그리고 현재 총회재판국은 재심을 수용해 새롭게 재판을 준비 중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명성교회 문제에 대해 총회재판국이 판단을 내렸다는 부분이다. 명성교회 목회세습이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은 분명히 있을 수 있지만, 교회 최고 권위를 가진 총회재판국이 판결을 했다면 그 판결이 다른 재판에 의해 뒤집어질 때까지는 그 판결을 따라야 함이 옳다. 하지만 이후 일반 언론까지 가세해 총회재판국의 판결을 비난했고, 9월 총회에서 명성교회 문제를 상세히 다루는 듯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총회는 총회재판국의 판결을 재판없이 뒤집었다. 마치 손바닥을 뒤집듯 너무도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7. 법원, CBS 허위 ‘미투’ 보도에 5000만원 배상 징계법원이 CBS의 허위 ‘미투’ 보도에 5000만원 배상이라는 매우 강력한 징계를 내렸다. 법원은 조희완 목사(마산산창교회)가 여성 A씨를 성폭행했다는 CBS의 수차례에 걸친 보도에 대해 ‘허위’임을 확인하며, 5000만원 배상과 함께 조 목사와 관련한 동영상 및 기사를 모두 삭제할 것을 명령했다. 또한 본 사건과 관련한 내용의 방송을 보도할 경우 1회당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간접강제도 추가했다. 이번 판결이 여타 언론의 허위 보도 관련 사건과 가장 구분되는 점은 5000만원에 이르는 배상금과 1000만원에 이르는 간접강제 금액이다. 더구나 본 금액은 조 목사측이 요구한 주요 청구가 그대로 인용된 것으로 이런 판결이 나온 이면에는 CBS가 A씨의 주장이 허위라는 기존 사법부 판결을 인지했었음에도 이를 묵과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A씨는 지난해 조 목사가 제기한 ‘명예훼손,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법률위반’ 사건(2017고정 1114)의 판결로 벌금 200만원을 받았으며, 이후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8.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국무회의 통과한국교회가 성평등이 아닌 ‘양성 평등’을 골자로 한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NAP)의 폐기를 위해 혈서까지 쓰며 반발했지만 결국 지난 8월 7일 국무회의에서 법무부의 NAP 보고가 그대로 받아들여졌다. 이로써 향후 NAP는 대통령의 훈령으로 공포되며, 이후 각 부처와 기관들이 그에 맞는 행동을 이행해야 한다. 이에 지난 8월 27일 한기총, 한기연, 한국교회교단장회의, 한장총, 한국교회언론회, 한국교회공동정책연대 등 교계 연합기구들과 전국17개광역시기독교연합회, 평신도세계협의회 등이 하나로 뭉쳐 ‘국민기만 인권정책 비상대책위원회’(이하 국인위)를 출범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이날 출범식에는 교계 단체 외에도,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 동성애동성혼합법화반대교수연합, 동성애대책위원회,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 한국성과학연구협회 등 시민단체들이 대거 참여했다. 국인위는 총 500여 단체가 함께 참여했다고 밝혔다. 9. 고법 파기환송, “오정현 목사 위임목사 자격 없어”법원이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에 위임목사 자격이 없다는 최종 판결을 내리며, 교계가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고등법원 민사 37부는 지난 12월 5일 “오정현 목사에 대해 위임목사 자격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대법원의 파기환송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이번 판결은 총회와 노회에서 인정한 목사직을 사회법에서 뒤집을 수 있다는 판례가 된 것으로, 향후 교회 권위의 추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앞서 대법원은 지난 4월 12일 오정현 목사의 총신대 신대원 편입과정을 ‘편목편입’이 아닌 ‘일반편입’으로 보고 오 목사가 합동측 목사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즉 미국장로교단(PCA)의 목사, 합동측 강도사임은 인정하지만, 합동측에서 목사고시와 목사안수를 받지 않았기에, 합동측의 목사라 할 수 없다는 판결이다.하지만 법원의 판결에 대해 교회가 속한 동서울노회는 교회법과 목사 임직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반발하고 있다. 10. ‘한국교회일천만기도대성회’ 개최한국교회가 일제시대 일본군의 총칼에 굴복해 신사참배를 결의했던 불의했던 과거를 다시 한 번 회개하고, 민족과 국민을 위한 공공의 교회로 다시 한번 우뚝 설 것을 다짐했다.교계 주요 교단 및 단체들은 지난 10월 28일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한국교회일천만기도대성회(대표대회장 엄기호, 유중현, 이동석, 전계현, 전명구. 정서영, 최기학)를 개최하고, 신사참배의 죄를 국민들 앞에 공개적으로 회개했다.이날 운집한 인원은 주최측 추산 3만여명으로, 이들은 행사 내내 통렬한 회개와 반성으로 뉘우침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모임에 100여개의 교단과 70여개의 기관이 참여했다고 밝힌 주최측은 이번 회개 성회를 통해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연합과 일치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대회장 윤보환 감독은 신사참배를 회개하며 회개와 치유, 그리고 회복과 부흥을 결단하는 통성기도의 시간을 인도하였고, 뜨겁게 회개하며 기도했다.
    • 해설/기획
    • 특집
    2018-12-24
  • 2018 교계일지
    01/05 한기연 대표회장 이동석 목사 취임감사예배01/05 제5회 한국교회 원로목회자의 날 개최01/11 고법, 사랑의교회 관련 서초구 도로점용허가 처분 취소 판결01/12 순복음부평교회, ‘사위 세습’ 논란에 철회 결정01/12 예성, 김원교 전 총회장 성결대 이사장행 논란01/12 한국기독언론협회 방담회01/14 성락교회 김성현 목사 ‘감독보’ 재임명01/16 예장총연, 대표회장 이광용 목사 취임감사에배 거행01/19 법원, 기감 전명구 감독회장 선거 무효 판결01/21 한기총 대표회장 후보 엄기호·김노아 확정 전광훈 탈락01/21 기감 하늘나루교회, 하나님의교회에 교회매각 사건 알려져01/29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 무산02/01 전광훈 목사, 김창수·최성규 목사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제기02/08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 관련 공개토론회, ‘논란’ 증폭02/08 제31회 기독교문화대상 시상식 개최02/08 구대신 목회자들, 대신교단복원위원회 구성02/11 신간 ‘다락방 전도운동 30년과 한국교회’ 발간02/12 김노아 목사, 엄기호 목사에 대한 후보자격 효력정지가처분 제기02/14 대한신대 기자회견, 대신 유지재단 외 4인 대여금 청구소송 기각02/20 예장합동 한성노회 사태, 점점 커져02/23 한국기독교성령문화센터 기공예배02/27 한기총 제24대 대표회장 엄기호 목사 당선03/05 교회협, ‘88선언’ 30주년 국제협의회 개최03/06 부활절연합예배 기자회견 개최03/08 제50회 국가조찬기도회 개최03/13 통합 총회재판국, 서울동남노회선거 무효 판결03/15 예장총연, 종교개혁 500주년 후속‘ 성경공개강좌’ 개최03/15 산창교회 조희완 목사 허위 ‘미투’ 폭로 주장03/19 한장총 ‘제1회 장로교세계선교사대회’ 개최03/23 고법, 김기동 목사 감독직무정지 가처분 인용04/01 부활절연합예배, 연세대·남산공원 등지에서 열려04/02 한국YWCA, 한국여성지도자상 곽배희·서지현 선정04/03 한기총-한교총 통합합의서 등장 논란04/08 ‘C&MA’ 얼라이언스 한국총회 설립04/09 교육부, 총신대 김영우 총장 파면 조치04/09 백석 경남노회, 조희완 목사 제명 결의04/12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조지 오글 목사 위문04/16 세계산업선교회, 제21차 세계산업인대회 성료04/23 기윤실, 미투와 기독교 세미나04/23 한·일·재일교회 이주민선교 ‘공동선언’ 발표04/27 제1차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선언 발표05/10 한기총 소속 교단장협, 한기총-한교총 통합 불가 성명05/10 한목협, 한기총·한기연·한교총 통합 촉구 성명05/15 통합 총회재판국, 이만규 재판국장 사임05/16 여의도순복음교회, 창립60주년 기념행사 실시05/18 5.18민주화운동 38주년 기념예배05/24 한교총 목회자축구대회 개최05/25 법원, CBS 조희완 목사 보도 ‘즉각 삭제’ 명령05/28 제11회 국제이주자선교포럼 개최05/28 미래목회포럼 ‘4차 산업혁명’ 세미나05/30 필리핀 백영모 선교사 폭발물 소지 혐의 구금05/31 교계, ‘동성애·동성혼’ 법제화 반대 06/01 늦봄 문익환 탄생 100주년 기념예배06/10 한기총 금권선거 의혹 ‘녹취록’ 등장06/12 싱가포르서 북미정상회담 개최06/15 고법, 대신-백석 교단통합 ‘무효’ 재확인06/17 한국교회 ‘첫 공식주일예배’ 133주년 기념예배06/18 KWMA, 2018 세계선교대회 및 7차 선교전략회의 개최06/19 교계, 성폭행 피해자 지원 위한 ‘기독교 위드유 센터’ 설립06/23 한국구세군, 개전 110주년 기념예배07/07 한기총, 경기도 청평 신천지 기념관 저지 나서07/14 한국교회, 2018동성애퀴어축제 ‘맞불’ 집회 개최07/15 헌재 ‘대체복무제’ 헌법불합치 판결07/16 백석 내 대신 통합파, 대신측 제50회 총회 재개최 결의07/20 한교총 임시총회 열고, 법인설립 결의07/27 한기총, 제3차 신천지 대책 세미나 울산서 개최08/06 중앙총회 제49회 총회, 불법 논란 ‘분열’08/07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국무회의 통과08/07 통합 총회 재판국,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청빙 ‘적법’ 판결08/13 2018 그리스도의교회 전국대회 개최08/17 한기연-한교총 통합 선언08/23 한기총, 개혁총연 이은재 목사 제명 결의08/26 한기총·한기연·한교총·한장총 등 공동성명서 발표08/28 백석측 내홍 심각, 구 개혁측 반발 입장문 발표08/27 대신(통합)측, 백석측과 결별선언 수호측과 제53회 총회 개최키로08/27 교계, NAP 반발 비상대책위 출범09/08 인천퀴어축제 강행에 교계 시민 단체 반발09/10 예장통합 제104회 총회, 명성교회 ‘재심’ 결의09/10 통합·백석대신, 기장 임보라 목사 이단성 결의09/10 예장합동 제1094회 총회, 총신대 조사처리위 구성키로09/10 기침, “김성로 목사 이단 아니다” 확인09/10 대신(백석), 총회 열고 교단명 ‘백석대신’ 변경09/10 대신 총회 이탈 인원 대거 복귀, 재건 천명09/11 종교문제대책전략연구소, 전능신교 고발 세미나09/16 남대문교회, 제1회 알렌기념상 박형우 교수 수상09/16 기감, 감독회장직무대행 선출 불발09/27 한겨례 ‘가짜뉴스’ 보도에 교계 발끈09/30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신임 총회장 정인찬 목사 취임10/02 백영모 선교사 126일 만에 ‘석방’10/11 한국사회발전연구원, 한국교회 하나됨을 위한 토론회 개최10/13 여의도순복음교회, 500교회 개척10/16 성락교회 파면 30인, 목회자 지위 회복10/18 제18회 군선교 신학심포지엄 개최10/18 교회협, 여순항쟁 특별법 제정 촉구10/28 전명구 목사, 기감 감독회장 복귀10/28 한국교회일천만기도대성회 개최10/28 연세대 탈기독교화 우려, 기장 사외 이사 임기 종료11/01 대법원,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11/01 법원, CBS 허위 미투 ‘5000만원’ 배상 판결11/03 한국CCC 60주년, 나사렛형제들 50주년 감사예배 거행11/04 한장총, 제10회 장로교의 날 개최11/09 그루밍 반박 새소망교회 청년들 기자회견 자처11/12 한국교회법학회, 교회법·세무 아카데미 개최 11/15 교회협 이성희 목사 회장 취임11/16 한기연-한교총 통합 완전 무산11/20 기하성 여의도-서대문 ‘통합총회’ 개최11/22 한기총, 비리퇴출 본격 나서11/22 애향숙, 용문산기도원 학술세미나 개최11/26 합동 서인천노회, 그루밍 K목사 사직 및 교회 탈퇴11/30 한장총, 신임 대표회장 송태섭 목사 선출11/30 한국교회남북교류협력단 ‘정책 토론회’ 개최12/03 중앙총회 양측 각각 수련회 열고 세력 과시12/04 통합측 총회재판국 명성교회 ‘재심’키로12/04 한기연 제8회 총회 신임 권태진 대표회장 선출12/05 고법 파기환송, “오정현 목사 위임 자격 없어”12/06 한교총 제2회 총회 개최12/06 제31회 NCCK 인권상 서지현 검사, 사토 노부유키 선생 수상12/07 한국기독언론협회, 신임회장 문병원 국장 선출12/10 한기연, 전 기무사령관 자살 유감 성명 12/20 한기총, 한국교회의 밤 개최12/22 연무대군인교회, 새 예배당 봉헌06/26 익스플로2018 제주선교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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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24
  • 특별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㉙ 주초 문제
    오늘의 한국교회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우려들이 팽배해 있다. 이런 위기에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으나 가장 원시적인 대답으로. 김남식 박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를 특별기획으로 싣는다. (편집자 주)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술과 담배를 금하는 전통을 세워 나갔다. 이것은 초기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한국사회의 실정을 돌아보니 술과 담배로 인한 폐해가 너무 컸기에 절제 차원에서 이런 교육을 시켜 한국교회의 전통으로 삼았다. 이 선교사들 거의가 보수적 신앙을 가지고 있고 청교도적 신앙과 생활을 하였기에 그들의 신앙생활을 한국교회에 적용시켜 나갔다.그래서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예수 믿는 사람은 금주 금연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것이 한국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의 탐색근래에 와서 한국교회의 ‘금주 금연’ 전통이 무너져 가고 있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공개적으로 주초(酒草)를 하는 이들이 있고 심지어는 목회자들 가운데도 많이 나타나는 실정이다.이런 경향은 진보적 신학 경향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고 있으며, 젊은 세대들에 확산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사례의 탐구전에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주초는 엄격히 금하였으나 지금은 허용 내지 묵인의 경향들을 보이고 있다. 이런 현상을 그대로 두고 보아야 하는가? 광명에 있는 삼일교회 황용모 목사에게 듣는다.김남식(이하 김): 다루기에 민감한 문제이지만 오늘날 한국교회가 주초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황용모(이하 황): 일괄적으로 규정하기 어렵지만 많이 변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으로 금주 금연을 당현한 것으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이런 전통이 무너져 가고 있다. 개인의 신앙적 차이는 있을 것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윤리가 정립되어야 한다고 본다.김: 주초 허용을 주장하는 이들 중에는 주초를 성경이 금한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이 정한 하나의 규범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른바 ‘양심의 자유’를 논하고 있다.황: 주초를 해도 되느냐 안 되느냐 라는 논란이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죄라고 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인이 피해야 할 삶의 윤리로 본다. ‘양심의 자유’ 운운하는 것은 자기 행동의 합리화를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김: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용서함을 받고 자유를 얻었으니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주초 문제를 금하는 것은 율법주의라고 한다.황: 율법폐기론자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바 있다. 주초 문제는 율법적 계율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나 그리스도인의 생활 윤리로 보고 실천하는 것이 좋다.김: 옛날 한국교회는 절제운동을 전개하였다. 찬송가에도 ‘금주가’가 있었다. ‘아 보지도 마라 그 술’이라는 가사였다. 그러나 근래에 와서 금주 금연과 관련해서 이런 절제운동이 사라지고 있다.황: 그리스도인의 생활 윤리로서 절제가 있었고, 이웃을 구제하고 선교사업을 후원하였다. 지금은 번영신학과 천민자본주의로 인해 이런 원리는 사라지고 거론조차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김: 병원 의사 가운데 ‘금연운동’을 펴고 있는 분을 보았다. 담배가 주는 피해를 강조하고 금연을 권하고 있다. 사실 흡연으로 인한 폐해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심각하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듯하다.황: 술과 담배의 폐해는 신앙적 측면을 떠나서도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건강의 문제이다. 판매되는 담배갑에 흡연으로 인해 생기는 질병의 사진을 실어 경고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술이 사람의 건강에 주는 피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또 다른 하나는 술과 담배로 인한 경제적 피해 또한 심각하다. 흔히들 술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또 다른 하나의 문제는 청소년들의 교육문제이다. 주초를 하는 연령이 낮아지고, 남녀의 구분이 없어져 가고 있어 당황스러운 현실이다.김: 그러면 우리 교회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시하고 우리와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황: 뚜렷한 방안을 세우기에 어려움이 있다.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을 찾아보자. 첫째, 교회와 가정에서 부모가 금주 금연의 본을 보이고, 그 자녀들을 바로 가르쳐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윤리로서 교훈해야 한다. 목회자들이 이 문제를 설교에서 거론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것을 외면 혹은 회피하고 있다. 둘째, 절제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풍요로운 시대에 살기에 절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데 절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미덕이다. 우리 교회와 가정이 실천해야 한다. 셋째, 미디어의 순화가 필요하다. 영화나 TV 또 광고 등에 술이나 담배를 미화시키는 장면들을 본다. 이것이 시청자 특히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힘을 모아 이것을 막고 정부의 정책에 반영하게 해야 한다.김: 주초 문제의 담을 헐러버린 것은 교회의 세속화의 한 양상으로 본다. 우리는 이것을 극복하고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해야 한다.황: 교회들에 스며온 세속주의는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파괴시키고 있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그러기에 성경의 가르침대로 가르치고, 믿고, 살아야 한다.김: 주초를 반대하면 ‘율법주의자’로 매도 당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는 기독교 세계관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 술과 담배가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가?황: 세속주의가 만연해도 우리는 성경의 원리대로 믿고 이것을 우리의 삶에 실천해야 한다. 술과 담배 문제도 여기에 해당한다. 우리 모두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기본에의 회귀어느 신학대학의 총장 취임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행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데 ‘목사로 보이는 사람’ 6~7명이 둥근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물고 있었다.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이 당황해졌다. 율법주의자의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그 학교에서 비판하는 ‘보수 꼴통’ 때문일까?주초 문제는 개인의 양심 문제를 넘어 사회윤리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절제된 삶을 살아야 한다. 개인의 양심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이것에는 사회적 책임이 수반된다. 그리스도인의 몸은 성령의 전인데 그 몸을 정결하고 깨끗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사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 해설/기획
    • 특별기획
    2018-12-21
  • 2018 성탄절 메시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이홍정 목사2018년은 분단과 냉전, 혐오와 차별의 어둠을 밝히는 평화의 빛에 대한 갈망이 그 어느 때보다 깊은 해였습니다. 다사다망(多事多忙), 고목사회(枯木死灰), 노이무공(勞而無功), 각자도생(各自圖生)은 열심히 살아온 대한민국이 뽑은 2018년의 사자성어들입니다. 평화의 빛과 상관없어 보이는 이 어둡고 허무한 시대의 묘사들 앞에서, 우리는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과 눈물을 먼저 만납니다. 우리는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평화의 빛의 도래가, 이 땅의 사회적 약자들의 삶 가운데 현존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사건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바라봅니다.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어온 한반도 70년 역사의 어둠을 밝힌 평화의 빛은, 분단과 냉전을 화해와 상생으로 전환하는 평화공존의 길을 비추고 있습니다. 평화 없는 어두운 역사의 시간을 뚫고 평화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님을 따라 우리의 시간의 한계를 넘어 주님의 평화를 노래해야 합니다. “정의가 꽃피는 그의 날에 저 달이 다 닳도록 평화 넘치리라.”라는 시편 기자의 노래처럼, 주님의 정의로운 평화를 노래해야 합니다. ‘어둠 속을 헤매거나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에게 빛’은 기적이며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이 땅에 평화를 시작할 기적의 사건이며 생명의 근원입니다. 사랑과 평화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빛이, 한반도와 고통당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추이므로, “평화스런 보금자리에서, 고요한 분위기에서 마음 놓고”(사 32:18) 함께 사는 행복한 새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기 바랍니다.■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엄기호 목사거룩한 성탄을 맞아 온 인류의 빛과 소망이 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대한민국의 교회와 사회, 국민들과 북한의 동포들, 그리고 온 세계 위에 충만하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인간과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그 사랑을 통해서 영생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하늘 보좌에서 내려와 낮고 낮은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막힌 담을 허무시려고 모든 멸시와 천대를 온전히 감당하셨으며, 주님의 십자가 핏빛 사랑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케 될 수 있었습니다.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모습은 온유와 겸손이며, 섬김과 낮아짐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길을 따라오라 하셨습니다. 성탄을 맞아 예수님께서 보이신 십자가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며,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그 아들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깊이 되새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모습을 온전히 닮아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를 소망합니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나신 기쁘고 복 된 날, 이 기쁜 소식을 만방에 전하며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 돌립시다. 할렐루야.■한국기독교연합 대표회장 권태진 목사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복된 성탄절에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성탄절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절기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날입니다. 어두운 이 땅에 빛으로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 우리는 그분으로 인해 구원을 받습니다.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오직 사랑의 동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낮고 천한 베들레헴의 한 말구유에 태어나심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은 결코 인간에게 내린 징계가 아니며, 하나님의 자녀된 백성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예수님은 이 땅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셨으나 가장 위대한 분인 것처럼, 오늘날 한국교회는 많은 사람에게 질시와 냉대를 받아도 의를 위한 박해라면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연단을 받고 있는 한국교회는 기도의 열정과 첫사랑을 회복해서 말구유에 오신 예수님을 온전히 닮아가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금번 성탄절이 우리의 따뜻한 손길과 위로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에게 진정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절기가 되기를 바라며, 가난하고 병들고 억압받는 이웃들과, 특히 자유와 인권을 박탈당하고 기아에 신음하는 북한 동포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은총과 평강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또한 전쟁과 테러, 반인륜적 폭력, 기근과 병마에 시달리는 지구촌에 주님의 ‘살롬’이 임하기를 바라며, 특별히 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65년, 아직도 분단 상태에 있는 한반도에 핵무기가 사라지고 진정한 자유 평화 통일의 날이 속히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이승희 박종철 김성복 목사2018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기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대한민국과 한국교회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북녘 땅 동포들과 전세계 한인동포들에게도 구세주 탄생의 기쁜 소식이 함께 전하여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사회는 부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경쟁으로 인간성 상실의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가난한 이들은 상대적인 빈곤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은 인간성 회복의 참된 길입니다. 성탄의 기쁨을 통하여 이 땅에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리기를 기원합니다. 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이 이 땅 한반도에 충만하게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2018년 한반도는 대결과 분단과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교류와 협력을 통한 평화 공존의 시대를 꿈꾸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평화통일을 이루기까지 우리는 끝까지 인내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성탄의 기쁨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이 땅에 충만하게 임하기를 소망하며, 한반도의 통일과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계속 기도할 것입니다. 2019년을 향하는 성탄절에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복음으로 한국사회에 빛을 밝히십시다. 직장을 잃은 이들, 인생의 목표를 찾는 이들에게 성탄의 은총을 나누어 줍시다. 이 땅에 거하는 이방 나그네들과 고향을 떠나 정착한 새터민들을 섬기십니다. N포시대에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다음 세대를 품어 안읍시다. 죄인을 부르러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읍시다.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 병들고 지친 이들, 인생의 무게에 눌린 이들을 치유하고 위로하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갑시다. ■한군장로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송태섭 목사2018년 성탄의 기쁨을 온 누리에 전합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기독교 최대의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입니다. 금년은 이 성탄의 복을 한국 장로교회가 의미 있게 누릴 뿐 아니라 이 시대의 희망과 사회의 등불이 되는 역할을 새기는 성탄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동방에서 박사들이 특별한 별을 보고 따라가 마침내 죄와 죽음과 저주의 어두움을 몰아내는 참 빛이신 아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어두움을 이기는 것은 빛 밖에는 없습니다. 죄와 죽음과 저주의 흑암을 몰아내는 분은 빛이신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이번 성탄절은 진리의 빛을 밝혀 우리 사회 곳곳의 어두움을 몰아내는 밝은 시대를 만들어 나갑시다.한반도 평화는 우리의 위중한 과제입니다. 북한의 핵이 폐기되고 이 땅에 전쟁이 없어야 합니다. 또한 경제문제와 인구절벽시대에 대한 위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이 때에 한국교회가 하나가 되고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우리 한국장로교회는 이번 성탄절을 기쁘게 맞이하며 이런 어두움을 밝히는 이 시대의 희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떡을 나누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을 본받아 우리도 나눔실천운동을 전개하여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의 기쁨이 우리 이웃들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수고하는 목회자들, 전 세계에 복음들고 나가있는 선교사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이 시간에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용사들에게 특별히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세계한국인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정서영 목사자기 백성을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대한민국과 북한 동포들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750만 디아스포라 형제들과 온 인류 위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성경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던 때를 '헤롯왕 때'(마2:1) 라고 말했듯이 가장 불행하고 어두운 때였지만 어쩌면 가장 필요한 때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시대와 사람을 탓할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교회와 우리를 여기에 두심은 분명한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018년도 성탄절을 맞아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참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하신 아들을 내어주신 그 사랑을 깊이 새기며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드러내길 원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성탄) 하심은 신이 사람이 되는 낮아지심의 희생이었으며, 온유와 겸손의 섬김이었습니다. 낮은 곳에 임하신 섬기는 성탄의 능력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불의와 불법을 걷어내고 정의와 평화, 자유와 질서를 세상 가운데 심어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 모든 인류에게 희망이 되기를 대한민국 국민과, 750만 디아스포라와, 세계한국인기독교회와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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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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