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에서 야훼하나님의 ‘열 마디 말씀(십계명)’을 살펴보자. 맨 처음 말씀을 순서대로 번역하면 ‘나는 야훼 너희 하나님이다, 너희를 이집트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낸(내었다),’이다. 우리말과 히브리말과의 어순차이가 다르다하더라도 자세히 보면, 이 열 마디의 말씀의 권위와 무게를 어디에 어떻게 두고 있음을 분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어법과 어순은 항시 예수님이 자신을 드러내실 때에나, 그의 사도들이 자신을 드러낼 때의 형식임을 알 수 있다. 이 열 마디 말씀은, 야훼 하나님께서 당신의 위엄하신 이름과 권능과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하셨음에 역사적 기반을 두고서 하시는 말씀이다.
여느 나라의 헌법을 보면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라고 된 국가들이 있으나, 유독 이스라엘 국가의 헌법 제1조는 야훼하나님에게 근거한다. 이스라엘의 헌법이 ‘종 되었던 이집트인의 땅에서, 야훼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된 백성임’에 근거한 것을 보아, 저들의 정체성이 오경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아래에서 선포되었고, 야훼하나님의 구체적인 역사적인 개입에 의해서 구원을 입어 형성된 백성에게 명령하신 말씀이다. 세계에 흩어져 유랑객이 되었던 이스라엘이 이천 년 만에 다시 팔레스타인에 건국된 것도 야훼하나님의 은총으로 형성되었음을 저들은 의심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 지상에서 가장 단단하게 결속된 국민을 찾는다면 바로 이들일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이, 평생토록 세계 각지에서 선포한 ‘하나님의 복음’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한 로마서에서도, 이 모세오경의 말씀의 형식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마서 1장 1절에서 17절에 이르는 문장 형식을 보면 세 가지 포고문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산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만주의 주로서 기름부음을 받으신, 만왕의 왕으로서 왕관을 쓰신, 이세상과 오는 세상의 주권자요 온 백성의 통치자이심을 알리는 포고문이다. 두 번째 포고는, 바로 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인 바울은, 이 ‘하나님의 복음’을 만 천하에 알림과, ‘믿어 순종케 하는’ 그리스도의 주권과 통치를 실천하기 위해 특별히 세움을 받은 전권대사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세 번째 선포는, 바울이 선포하는 이 ‘하나님의 복음’을 누구든지 믿으면, 유대인이든지 헬라인이든지 야만이든지 차별되지 않고 구원을 입어,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으로 하나님나라의 시민 됨을 선포한 것이다.
바울은 그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따로 세움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로마를 수차 방문하려고 노력하였지만 뜻을 이루질 못하자, 서신으로써 그의 로마 방문 목적을 알린다. 그의 사역과 신학이 총 정리된 로마 서신에는, 그가 평생 선포한 ‘하나님의 복음’이 명료하게 조목조목 기록되었다.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서 나무에 달림으로써 희생된 나사렛 예수의 피 값이, 저를 믿는 모든 자에게 죄를 없이하시고,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 그를 구주와 주로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의롭게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함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어떻게 헌신하고 거룩하게 응답해야 함을 구체적으로 명하였다.
모세 오경이 독립된 다섯 권이 아닌, 한권의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 드렸듯이, 이 말씀 안에는 창조와 타락과 회개와 구원과 윤리와 심판이 모두 녹아들어있다. 오경을 받아들이고,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와 이스라엘 시민이 된 개개인은 저마다 이 열 마디의 말씀을 모두 수용하는 시민이다. 이 열 마디 말씀이 오경 전체에 365개 소극적인 말씀과, 248개의 적극적인 말씀, 도합 613가지 말씀으로 세부화 되었으나, 이 모든 말씀들을 잘 숙지하고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다. 만일 이들이 야훼하나님의 구원과 명령의 말씀들을 수용하질 않는다면 팔레스타인에 들어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저들에게서 모세오경이 요구하는, 시민권자들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점을 찾아내려 한다 해도 쉽지 않은 것은 이 이유에서일 것이다.
구원론에 의해서만 형성된 집단들에게서 나타나는 부실함이란 사회적 책임감의 허술함에 있다. 구원 받았음에만 만족을 하고, 구원으로 인해서 새롭게 형성된 그리스도의 주권과 심판,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와, 하나님나라의 상속자로서의 책임과, 성령의 훈련에 대해서는 눈과 귀와 몸이 게을렀기 때문일 것이다. 식물인간처럼 된 상태에서 한국교회가 속히 벗어나려면 새로운 신학적 각성과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하나님나라의 시민권자로서 그 신분에 합당한 의무를 강력하게 명하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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