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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혜를 기억하며 살자!
    필자가 근무한 대학의 조그만 소로(小路)에 벚꽃이 만발하더니 몇 일이 지나자 꽃은 사라지고 새싹들만 가득한 시간이 되었다. 때 마침 중간고사 기간이어서 강의가 없기 때문에 모처럼 한가히 전자 신문을 보던 중에 참으로 놀라운 기사를 접했다. 이는 삼대를 거쳐서 한국을 섬기고 있는 찰스 B 모펫의 가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찰리의 할아버지는 새뮤얼 A 모펫(한국 이름 마포삼열·1864∼1939) 목사다. 26세이던 1890년 내한 후 평양에 1000여 개의 교회를 세운 ‘한국 교회의 아버지’다. 자신이 설립한 평양신학교, 숭실전문학교, 숭의여학교에 대해 일제가 신사참배를 요구하자 자진 폐교했고 이 때문에 미국으로 추방돼 1939년 세상을 떴다. 이 학교들은 훗날 서울에서 장로회신학대, 숭실대, 숭의여대 등으로 재건됐다. 찰리의 삼촌은 고 새뮤얼 H 모펫(한국 이름 마삼락·1916∼2015) 초대 장신대 총장이다.찰리의 아버지 하워드 F 모펫(한국 이름 마포화열·1917∼2013) 씨는 사역지인 대구에서 나환자들의 머리카락을 눈썹에 이식해 새 삶의 희망을 주었다. 한국 땅에서 45년간 의료 선교사로 헌신하며 계명대 동산의료원을 일궜다.중국에 살던 찰스 씨는 선교사 가족이라는 이유로 1948년 공산당으로부터 쫓겨나 서울 조선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대구로 내려가 살았다. 찰스 씨는 1960년대부터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고 1981년 신혼여행으로 한 달간 한국을 여행하며 모펫가(家)의 발자취를 찾아다녔다. 6·25전쟁시에 수많은 고아, 환자들과 함께 자란 찰스 씨는 조애나 씨와 약혼 때부터 한국인 아이들을 입양한다는 뜻을 모았다. 그렇게 한국인 아들 한 명과 딸 둘을 키웠다. 30세 로라, 27세 대니얼, 19세 줄리아다. 이러한 가족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서 서울 중구 소파로 숭의마펫기념교회에서 헌당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업적을 남긴 가족이다.이제 챨스 씨는 한국인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했다고 한다. “한국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에 유리합니다. 힘든 시절을 겪은 후 놀랍게 성장했기 때문에 넓은 이해심으로 도울 수 있잖아요. 이젠 세계가 한국을 필요로 합니다. 한국이 사랑을 베풀 차례이자 기회입니다.” 챨스씨의 이러한 제안은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 된다. 경우는 다르지만 챨스 싸와는 대조된 사건이 우리의 정치사에 돌출되었다. 최근에 국정을 책임진 국무총리께서 아쉽게도 자신의 직임을 포기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장 아쉬운 것은 사건에 연루된 지인과는 별로 관계가 없었다는 단절의 주장이 국민들로 하여금 신뢰할 수 없는 분으로 낙인찍힌 사건이 아닌가 보여 진다. 소식통에 의하면 죽음을 선택한 분과 수 십 차례 통화한 내용을 확인 했다고 한다. 이로 보건데 모르는 사이가 아니라 자신의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서 당사자와는 관계 였다고 주장한듯하다.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국민의 눈에는 의리가 없는 인간으로 비쳐지게 만들었고, 심지어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어준 지역구 주민조차도 냉담한 반응을 불러 오게 만든 듯하다. 우리는 언제 부터인가 이 땅위에서 어렵게 선교활동을 하면서 우리 민족을 섬겼던 선교사님들의 은혜를 잊어버릴 때가 많다. 서울의 합정동에 위치한 외국인 묘역의 대부분은 한국 초기의 선교사님들의 무덤이다. 그들은 이름도 잘 모르는 이 땅을 찾아와 생명을 담보로 선교사역을 감당하다가 순교를 하신분이 많다. 이들 가운데에는 미처 피지도 못하고 질병으로 인해 유명을 달리한 선교사의 자녀도 부지기수 이다. 우리는 이들의 은혜를 잊으면 안된다. 언제 부터인가 기독사학에서 예배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들려졌다. 서구의 선교 정책에 의해서 학교를 건립하여 교육에 힘썼다. 천자문 교육이 전부 였을 때에 영어와 문리학, 수학과 과학을 가르침으로 우리의 눈과 머리를 현대에 진입시켰다. 이러한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배은망덕한 민족이 아니기를 기도한다.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야 하겠다. 성경에는 형제를 위하여 물 한잔을 주는 것도 잊지 않겠다는 구절이 나와 있다. 사회가 각박해져 가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동료를 누르고 올라타야 자신의 출세 한다는 풍토 속에서 진정 성경이 말한 진리 속에 자신을 투영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바로 그것이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 아니겠는가.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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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28
  • 유일신 사상의 충돌
    21세기의 가장 골치 아픈 종교 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일 것이다. 왜냐 하면 두 종교 모두 유일신 사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십계명을 통해서 “나 이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라고 명령하고 있으며, 이슬람교도 “알라 이외에는 다른 신은 없다”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중간기 유대인의 디아스포라 현장 속에서도 이러한 유일신 사상은 나타나고 있다. 특히 헬라 문화 속에서 신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과 함께 종교성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았다. 희랍의 신화와 로마의 문화가 말해 주듯이 당시의 로마세계는 다신교의 소굴이었다. 헬라인들은 30,000여개에 달하는 신(神)들을 섬겼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정욕적인 신들로서 그들의 신전에는 공적인 매음행위가 공공연히 행해졌던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사실 유일신 사상은 선교의 확산에 너무나 중요하여 결코 타협이 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헬라 철학 속에 있는 신들이 지고한 위치에 있어서 사변의 대상이 되는 신이고, 샤머니즘과 자연종교 속에서의 우상숭배의 대상이 된 신들은 부도덕의 상징이 되었다면, 유일하시고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유대인들의 신관 이야말로 탐구적인 헬라세계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 하였으리라 여겨진다. 허버트 케인은 말하기를 이 당시에 유대인들이 전파 하였던 신은“유일하신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 내재하면서도 초월적인 하나님, 권능이 있으시면서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죄를 벌하시고 덕을 상주시는 하나님”으로 증거 하였다고 말했다. 이러한 유일신 사상은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드리는 예배의식 속에서도 나타나 있다. 즉, 그들은 에배 때마다 가장먼저 외치기를 “들으라, 이스라엘아, 우리 주 하나님은 한분이신 주님 이십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너의 모든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을 사랑 하여야 한다(신 6:4-5).” 이와 같은 고백이 있는 후 찬양의 기도를 통해서도 그들의 유일신이시며,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찬양 하였다. 찬양의 기도는 크게 세 가지 중심 구분(Three Benediktion)으로 되어있다. 당신은 찬양 받으실 주 우리 하나님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크고 강하시며 두려운 하나님, 지존하신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자, 우리의 방패 이시며 우리 선조들의 보호자, 모든 종족 가운데서 우리의 신뢰자가 되십니다. 아브라함의 보호자가 되신 당신은 찬양을 받으실 지어다(1 Benediktion). 당신은 용사 이십니다. 높은 자와 강한 자를 낮추시고, 권력자를 심판하시며 영원히 살아 계셔서 죽은 자를 일으키시며, 바람을 불게 하시고 이슬을 내리게 하시며, 살아있는 사람들을 먹이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십니다. 한 순간에도 우리에게 도움을 베푸십니다.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주님, 당신은 찬양을 받으실 지어다(2 Benediktion). 당신은 거룩하시고 당신의 이름은 두려우며 당신 외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주 거룩하신 하나님, 당신은 찬양을 받으실 지어다(3 Beneiktion)사도 바울의 선교 시대 때에도 유대교 속에서 그들이 간직한 신관은 부도덕과 비인격적인 신들과는 비교될 수 없었다. 사실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에는 어떠한 현실성도 없으며 모든 것은 마귀의 장난으로 보았다(고전 8:4, 10:20, 계 9:20-21). 오직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신 이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되는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성경의 하나님의 이름이 낭독 될 때는 “야훼” 대신에 “주”라고 부르기 까지 하였다. 이토록 철저한 신관을 가진 유대인의 종교 앞에서 이방인들이 간직한 신은 무력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방인들이 회당에 가입하여 참되시고 인격적이신 전능하신 유일한 하나님을 만났을 때에 그들 모두는 “아멘”으로 화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중간시대에 흩어진 유대인들의 종교생활 속에 나타난 유일하신 하나님을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마침내 “하나님을 경외 하는자들(God-fearers)”이 되었고, 후일 바울이 증거한 메시야 사상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해 주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유일신 사상들은 오늘까지 기독교의 정체성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이 신앙의 기조라고 생각하는 유일신론과 상충되면서 극한투쟁로 점철된다. 신앙이 혼합되어 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신학이 더욱 귀하게 여겨진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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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15
  • 네팔의 아픔
    네팔의 아픔은 지진과 함께 시작하였다. 필리핀에서 사역하던 중에 지진을 경험한 필자는 7.8에 이르는 강도 높은 지진 소식을 듣고 친구인 네팔선교사인 미국인 세섬스 가족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 세섬스 가족이 사역한 곳은 많은 수도인 카투만두에 비해서 피해가 약하고 주변의 몇 건물과 몇 사람의 인명 피해만 있었지 자신들은 안전 하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순간 감사와 함께 네팔이 안정되기를 기도했다. 네팔은 비교적 작은 국가이나 인도와의 국경지대에 펼쳐져 있는 습지와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경계에 있는 히말라야 등 고산지대에는 세계적으로도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곳이 많다. 국경 지대에는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8000m 급의 높은 봉우리를 포함한 히말라야가 존재한다. 따라서 고산 기후를 가지고 있다. 한편, 인도와의 국경 지역은 “타라이” “테라이” 또는 “마데스”라고 하는 고온다습한 평원 지대가 있다.네팔의 면적은 14만 7,181㎢이고, 인구는 약 3,098만 6,975명(2014년 현재)이다. 수도는 카트만두이다. 히말라야 산맥 남쪽 비탈면에 있다. 주민은 몽골 계와 인도 아리아 계가 많다. 대부분 힌두교·불교·이슬람 교를 믿는다. 쌀·옥수수·밀 따위가 나고, 목축업이 성하다. 히말라야 등반의 근거지로서 관광 산업도 활발하다.가난하지만 항상 평온을 유지하던 땅인 네팔이 지진으로 말미암아 희생된 수자가 8,000여명에 육박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있다. 어쩌면 참으로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 그러나 그곳을 취재하고 있는 한국인 기자들의 리포트에 의하면 “기다려달라” 한마디에 몰려든 주민들 질서를 지킬 뿐만 아니라, 거리엔 무장강도 같은 폭도는 없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세계 각국에서 온 봉사자들은 “이정도로 선할 줄은” 몰랐다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한다. 그동안 네팔 정부가 손을 놓다시피한 카트만두 외곽 시골마을에도 하나둘 구호품이 전달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일 세계적인 기독교 구호단체인 ‘기아대책’은 이번 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신두팔촉(Shindupalchowk)의 바레가웅 마을을 찾아 주민 750여명에게 쌀과 천막 등을 지원했다. 마을 사람들은 식량과 천막을 실은 트럭에 앞다퉈 몰려들다가도, “물품은 충분하니 기다려라” 한마디에 다시 물러섰다. 산 정상에 있는 이 마을 주민들은 5일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15년째 네팔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광진(45) 기아대책 봉사단원은 “네팔 사람들이 순박하긴 하지만, 이처럼 약탈이나 폭력 행위가 없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마을 누구도 도덕 교육을 받지 않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는 마을 안에 한 명도 없다.조선일보 기자의 리포트는 그곳 소식을 잘 전해 주고 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네팔 청년들은 취재진과 구호단체의 가이드를 자청했다. 기자의 취재를 돕느라 며칠간 동행한 네팔 청년 아윱씨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그의 지인에게 물었더니, “이번 지진으로 벽에 금이 간 집을 고치러 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너진 자신의 집을 돌보다 말고, 자국의 상황을 외신(外信)에 알리기 위해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는 “늦게까지 돌아다녀서 미안하다”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It’s my duty(이건 나의 의무다).” 지진 발생 열흘째인 4일 밤, 카트만두 남쪽 바이시파티(Bhaisepati) 지역의 한 사거리에선 촛불이 타올랐다. 행인들은 초에 불을 붙이고 10분 정도 묵묵히 땅을 내려보다 각자의 갈 길로 갔다. 절망에서 추모로 분위기가 변하고 있지만, ‘선한 네팔인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수도 카트만두를 벗어나면 아직 구호는커녕 시신 수습도 이뤄지지 않은 지역이 많고, 네팔이 자랑하는 주요 관광유산이 무너져 경제 역시 10년 이상 후퇴했다. 지난해 네팔의 1인당 GDP는 699달러로 한국의 40분의 1에 불과하다. 기적의 생환(生還)도 이어졌다. AFP는 지진 발생 8일째인 2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80㎞ 떨어진 누와콧 지역에서 올해 101세인 푼추 타망씨가 구조됐다고 3일 밝혔다. 구조대는 무너진 타망씨의 자택 잔해 속에서 경미한 부상만 입은 채 갇혀 있던 타망씨를 발견, 헬리콥터로 인근 병원에 이송했다고 한다. 네팔에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도해 본다. 특히 유학시절 함께 공부하여 지금은 현지 교회 지도자가 된 푸라카쉬 쉬바와 친구이며 동료선교사인 허인석, 강대권 가족도 평안하기를 기도하면서 글을 마친다.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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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15-05-08
  • 선교를 위한 종교 연구의 필요성
    우리는 선교에 열심과 기도를 내고 있다. 이에 반해서 선교를 위한 연구는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은 선교를 위한 종교 연구의 필요성에 대해서 기술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비교종교에 대해서 살펴보자. 비교종교란 엄격한 의미에서 종교 그 자체의 본질과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구 방법이자 종교현상에 대한 접근 양식이다. 한편 아무리 잘 연구된 비교 종교적 결과물이라도 그 결과가 공정하고 객관적이며 자신들에 대해 올바르게 서술되었다고 받아드리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자신의 종교적 사고의 틀에서 타종교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교종교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각 종교에 대한 선입관을 버리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비교종교학의 중심과제이다. 이는 먼저는 종교혼합주의(Syncretism)를 들 수 있다. ‘종교혼합주의’란 신학자들에게서는 부정적인 의미와 연관 되어있다. ‘종교혼합주의’는 헬라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교리와 종교들의 혼합으로서 혼합된 종교를 만드는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면 기독교가 타문화 속에 들어가면서 기독교의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는 상태의 적용을 토착화라고 하며, 기독교의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나타나는 것을 종교혼합주의라고 본다. 기독교혼합주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여러 신적인 존재 가운데 하나이며, 따라서 인간은 영지적인 방법으로 신적인 빛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순수한 인간으로서 이상적인 인간, 위대한 마술가 혹은 혁명가로서 이 땅위에서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서 투쟁한 선한 모든 사람의 지도자였다고 주장하는 경우이다. 이와 같은 후자의 경우를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모든 종교의 일치”를 위한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기독교계에서 긍정적인 의미의 종교혼합을 찾으려는 시도가 순더마이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두 가지의 개념으로 종교혼합주의를 구분한다. 먼저는 공생적 종교혼합주의이다. 이는 삶의 저변에 깔려있는 전통적인 종교와 이 후에 이차적으로 들어온 종교가 서로 수직적인 관계로 만나는 형태이다. 이와 같은 경우는 이중구조를 갖게 되며 전통사회의 사회성과 종교성이 서로 구분된다. 다음은 합성적 혼합주의 이다. 이는 비슷한 종교가 서로 수평적으로 만나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태국의 불교는 힌두교와, 신비종교인 뉴 에이지와 종교들의 조화, 통일교 같은 부류이다. 순더마이어는 공생적 혼합주의를 토착화의 한 형태로 보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육체적인 폭력을 동원한 강압선교는 문제점이 있다고 보프는 주장한다. 세 번째는 다른 신앙인들과의 대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 대화는 두 가지 상반된 의견이 존재한다. 먼저는 타종교 포괄주의 이다. 타종교에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화를 하여야 한다는 견해. 다음은 타종교 배타주의 이다. 타종교는 근본적으로 사탄의 작품이므로 철저히 이들을 배격하고 대화를 거부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네 번째는 복음과 비기독교 신앙과의 연속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핸드릭 크래머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성경적 계시의 성격을 이해하는 핵심적 열쇠이며, 하나님의 계시 활동의 초점이 그리스도 인격 안에 나타난다고 보았다. 이러한 기독론 중심의 계시관은 비기독교 신앙과의 연속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면서도 크래머는 복음은 인간들을 도구로 하여 전달하기 때문에 교리적 이라기보다는 기능적이어야 한다고 주장 하였다. 그는 종교가 인간의 사색과 사상, 철학, 견해, 경험의 산물 이라고 보았다. 이에 반하여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하는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것이기 때문에 타종교와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를 비판하는 학자들은 창조적 관계구조를 통한 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창조적 관계구조란 세속적인 문화 가운데에도 하나님의 활동은 제한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결국 한국교회는 선교에 있어서 실제적임 면과 함께 선교의 원리에 따른 이론을 충실하게 닦아 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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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15-04-23
  • 싱가포르 지도자 리콴유
    필자는 몇 년 전 싱가포르를 방문한 적이 있다. 작은 도시 국가인 그곳은 시내의 모든 시설들이 조밀 조밀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동양의 나폴리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선교팀을 안내한 가이더를 통해서 싱가포르를 만들었던 리콴유 수상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그 때의 기억으로는 지도자로서 참으로 멋진 분이라고 판단되었다.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건물 하나하나를 계획에 의해서 설계하고 건축할 만큼 세밀한 정책이 부럽기도 하였다. 특히 건물의 모양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도록 지어진 소방서는 명물이었다. 이처럼 멋있는 도시국가를 만들고 통치하신 분이 3월 23일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람의 운명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 있지만 지도력의 빈곤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지상에 큰 별을 잃어버린 느낌이다. 리콴유 전 수상에 대해서 조선일보 닷 컴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리콴유는 영국 식민 시절인 1923년 9월 16일 부유한 중국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혁명가 쑨원·중국 지도자 덩샤오핑 등과 같은 객가인(客家人·중국 북부에서 남부·동남아로 이주한 한족) 출신이다. 1941년 12월 들이닥친 일본군에 동족 수천명이 살상 당하자 리콴유는 ‘생존이 우선’이라는 신념을 굳혔다. 통치 이념이자 신념인 ‘실용주의’의 싹이 튼 것이다. 그는 고향을 짓밟은 일본군에 대해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먹고살아야 한다’며 마음을 다잡고 1942년 일본어 강좌를 수강했다고 한다. 그러나 1945년 8월 일본이 패퇴한 뒤에도 혼란이 가시지 않자 심란한 마음으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빛(光)과 영리함(耀)이라는 의미가 깃든 이름을 얻은 소년은 명문 래플스 대학에 수석 입학했다.런던 정경대·케임브리지대에서 학과 수석을 놓치지 않았던 1950년 귀국해 노동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차세대 정치인’으로 부각됐고, 1954년 실용주의 정당 ‘인민행동당’의 창립을 이끌며 사무총장에 올랐다. 5년 뒤 1959년 총선에서 인민행동당은 51석 중 43석을 휩쓸며 압승했고, 서른여섯 살 리콴유는 싱가포르 첫 총리가 됐다. 서른여섯 살이던 1959년 자치령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한 리콴유는 손수 빗자루로 거리를 쓸고, 손으로 바닷가 쓰레기를 주우며 범국민적 청결 캠페인을 시작했다. 거리의 쓰레기만이 아니었다. 리콴유는 1960년 부패방지법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며 부패 근절에 나섰다. 솔선수범하는 지도자를 국민이 따르면서, 오늘날 싱가포르 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이미지인 ‘청결’과 ‘청렴’이 완성돼 갔다. 1965년 8월 9일, 말레이연방에서 축출되다시피 독립한 싱가포르의 앞날은 암담했다. 정정이 불안하고 가난한 섬은 곧 주변국에 흡수될 거라는 관측이 대세였다. 그러나 반세기 뒤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은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가 넘는 아시아 최고의 부국이자 세계적인 물류·금융·비즈니스 중심지다.리콴유는 산업 분야에선 완벽한 자유를 부여했다. 해상 물류의 요충지라는 지정학적 이점을 극대화시켜 외국에 문호를 활짝 열었다. 다국적기업의 사업자 민원 처리 속도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세계 기업을 빨아들이기 위해 낮은 법인세율(17%)을 정착시켰고 양도소득세, 상속세는 아예 없다. 이런 개방적인 경제정책 덕에 1만여 외국 기업과 세계 유수 은행 200여곳이 둥지를 틀었다.“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현실 안주”라며 국민을 독려해온 그는 31년 통치를 마감하고 1990년 퇴임한 뒤에도 국민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정부 운영은 오케스트라 지휘와 같다. 유능한 팀 없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며 ‘악기’가 되어준 각료와 국민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나 63년을 함께 산 반려자 콰걱추 여사와 2010년 사별한 뒤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혼수상태의 부인 옆을 떠나지 않고 극진히 병간호를 해온 만큼 사별의 충격은 컸고, 5년 뒤 천상에서 재회하게 됐다. 이처럼 멋있는 지도자 밑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오늘날 세계에서 일등국민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필자가 유학시절에 만났던 싱가포르 사람들은 같은 동양계 이면서도 성품과 매너가 참으로 정직하였다. 이러한 국민성을 길러 준 귀한 분이 타계 하였다는 소식에 진한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 지도자가 우리 국가도 통치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도 진정 민중들로부터 존경 받을 수 있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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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09
  •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선교의 책임
    필자는 오늘 선교신학적인 차원에서 글을 엮고자 한다. 구약 성경 속에 선교가 있느냐의 문제는 항상 선교신학자들 속에서도 논쟁이 되어왔다. 한마디로 정의 한다면 선교가 “존재 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구약의 선교는 하나님께서 인간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백성들을 선택하심으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은 열방 가운데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직무를 맡기기 위하여 선택하셨다. 선택의 교리는 기독교 역사에서 무척 중요한 이슈를 만들기도 하였다. 오늘날까지 칼빈주의자들과 알미니안 주의자들 사이에 지속적인 교리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선택(elect)이란 선택하다(choose)라는 말과 동의어이며 성경에서는 이 말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행동을 말하며 그 행위의 결과로 사람의 위치가 바뀐 것을 말한다.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선택하심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협력적인 관점에서 부르셨으며 또한 이러한 부르심을 통하여 전체 백성과 언약을 맺었음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아브라함(창 12)을 선택하심은 이스라엘 백성(신 7:6-8)을 택하심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그의 행위이심을 알 수 있다.선교신학자 브라우가 말한데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의 대상 이라기 보다는, 선택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직무를 수행해야 할 주체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하나님에 의한 주권적 선택은 부르심과 보내심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사실 아브라함을 택할 즈음의 당시에는 참되고 의롭게 살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는 멜기세덱이나 욥과 같은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인간적인 모순이 많고 우상을 섬기는 집안 출신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은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총이며 하나님의 세계인류를 향한 선교계획속의 한가운데서 새로운 한 민족을 창조하셨음을 볼 수 있다.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심은 기능적인 측면에서 다음의 세 가지를 살펴 볼 수 있다. 첫째는 이스라엘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수령하고 보존 할 사명을 부여 받았다(히 1:1-3). 둘째는 이스라엘은 “구속자”가 인류역사의 흐름 속으로 들어오는 통로를 담당하는 사명을 부여 받았다(마 1:1, 창 49:10, 롬 1:3). 셋째는 이스라엘은 열국 중에서 하나님의 종(사 44:1-2)과 증인(사 43:10)으로서의 사명을 부여받았다. 이상의 위에서 언급한 기능적 측면이란 직무를 감당하기 위함으로 보아야 한다.따라서 우리가 이해해야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편애하고 다른 열방을 배제시킨 다는 오해를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그 속에 자신을 나타내심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열방들에게 하나님의 자기현시(Self-disclosure)를 나타내시기 위함이다(신 4:5-8, 35). 따라서 특권이라는 개념보다는 책임을 하나님으로 부터 강하게 부여 받았다고 해석함이 옳은 것이다. 즉 특권계급으로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종의 역할을 감당키 위해서 이다.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미치는 책임성에 대해서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심을 알리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 안에서 활동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의미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하심을 선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러한 삶이 선교적 존재(Missionnary Existence)로서의 삶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존재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바울이 언급한 대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현대를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 앞에 최선을 다하는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04-02
  • 화해의 아이들
    선교적 유비를 이야기 하면서 이리안 자야에서 선교사로 섬겼던 돈 리챠드슨을 빠뜨릴 수 없다. 20세의 청년 이었던 돈이 해외선교사로 헌신한 것은 1955년 프레이리(Prairie)성경학교의 한 예배 때였다. 그는 막연히 어디로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원시적인 생활을 하는 뉴기니아의 식인종에게로 가겠다는 뚜렷한 비젼을 가진 젊은이 였다. 그곳 학교는 해외선교를 꿈꾸는 학생들이 입학하여 소명을 받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금발머리를 가진 캐롤 스더스트롬(Carol Soderstrom)과 돈은 결혼을 하고 1962년 SIL(Summer Institute of Lingustics)을 마치고 뉴기니아로 건너갔다. 뉴기니아에 도착한 그들은 싸위족(Sawi) 속에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문제는 그들이 사역하고 있는 싸위족은 배반,배신을 이상적인 규범으로 여기고 식인습관과 해골사냥의 풍습이 복합된 문화를 가진 부족이었다. 이러한 잔악성을 지닌 환경 외에도 눈앞에 펼쳐진 정글과 독사와 악어 그리고 살인 지네야 말로 한발자국도 쉽게 띨 수 없는 환경이었다. 돈은 말을 배우고 싸위족과 친밀해 지고 나서도 예수님을 그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또 하나의 난제임을 깨달았다. 자신이 믿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이해와 그들이 알고 있는 복음의 내용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이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크나큰 간격이 두 세계의 이해를 완전히 갈라놓은 것을 느겼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인간들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희생 되셨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는 예수님은 부족한 사람이고 타인을 속이는 가롯 유다는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싸위족을 둘러싸고 있는 해남, 카무르, 요휘 부족들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 최대의 영웅이었고, 이를 위해서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타인을 얼마나 잘 속이느냐가 관건 이었다. 그들은 날이면 날마다 속이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것이 일이었다. 예수님의 은혜인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서 선교지에 왔지만 현실은 부족들 간에 처절한 전쟁만 부추기는 꼴이 되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성육신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는 복음이 들어 갈 수 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를 위해 구속의 유비를 발견하고 적용하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결국 자책감에 시달리던 돈과 아내는 그들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돈의 가족이 선교지를 떠난다는 소식을 접한 부족들은 깜짝 놀라서 보족간의 회의를 열고 서로 화해를 하겠다고 하였다. 돈은 참으로 기뻐하면서 부족들의 화해를 보기로 하였다. 아침이 되자 싸위족은 특별한 평화 의식을 거행 하였다. 싸움으로 점철된 부족들 간에 아이들을 교환 하였다. 그들의 문화 에는 교환된 아이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평화가 유지 되었다. 누구의 아이를 보낼 것인가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아이를 가진 부모님은 새파랗게 질려서 자신들의 아이가 아니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이이가 선택되었고 다른 부족에게 보내졌다. 그리고 얼마 후에 다른 부족에게서 한 아이를 데리고 왔다. 드디어 두 부족들 간에 평화가 수립되었다. 돈은 이 사건을 통해서 중요한 유비를 발견하게 되었다. 싸위족들에게는 자신들이 가진 문화적인 방법으로 약속의 신실성을 실천 하였다. 누구라도 적에게 자기 아들을 내어줄 수 있다면 그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바로 이러한 사건이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희생하신 뜻을 싸위족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유비가 되었다. 돈의 선교전략은 복음과 문화의 사이에서 많은 노쟁을 불러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돈은 현대의 어떤 선교학자 보다도 성경에 깊이를 둔 선교사였다. 초대교회의 선교사였던 바울은 문화의 다양성 속에서 복음증거를 위해서 구속적 유비가 필요함을 수없이 가르치셨다. 예를 들면 원주민의 언어 중에서 하나님 이라는 용어를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방인 개종자들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러한 윈리들은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 하라는 지상명령을 이루기 위해서 오늘날에도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이론이다. 돈 리챠드슨이 선교지에서 “화해의 아이”를 경험하고 만들었던 이론인 구속적 유비는 오늘날 한국선교에 있어서도 중요한 이론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단일문화권에서 출생하고 성장하였기 때문에 문화적 다양성을 경험하지 못하고 성장하였다. 이러한 우리에게 “화해의 아이”가 준 교훈은 문화의 벽을 넘는 선교사의 발을 가볍게 만들 수 있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03-11
  • IS에 대한 공격이 주는 선교적 의미
    IS에 대한 공격이 주는 선교적 의미 최근에 IS에 대한 글을 몇 번 기술 했던것 같다. 신문에 의하면 이라크가 1일(현지시각)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점령당한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 지역 탈환에 나섰다. 하이데르 알아바디 이라크 총리는 살라후딘주 사마라를 방문해 새벽부터 군사 작전을 개시를 지시했다. 이번 작전엔 병력 3만명과 훈련 받은 주민 5000명이 5~7개 방향에서 동시에 투입돼 IS 대응 단일 작전으론 최대 규모다. IS는 지역 주민들을 ‘인간 방패’ 삼아 저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기독교인들이 IS대원들에 무참히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고통을 안긴 그들을 위해서 이라크의 정부군이 투입되어 실지 탈환을 위해서 진군을 개시 했다니 기쁘기 그지없다. 기도 하기는 IS에 잡혀 있는 기독교인들이 하루 빨리 회복 되기를 기대해 본다. 사실 하나님의 은혜는 항상 놀라운 방법으로 위기를 탈출하게 하신다. 하나의 예를 들면 모세의 출애굽 과정에 나타난 기적의 역사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서 홍해 바다 앞에 도착하였을 때에 바닷물 때문에 앞으로 나갈 수도 없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쫓아옴으로 우왕좌왕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 모세의 희망적인 메시지는 크나큰 힘이 되었고, 자신의 백성을 책임지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제 시작이 되었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싸워 주시는 모습을 말씀하고 있다. 출애굽기 14장 21절에는 당시의 기적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세가 바다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닷가 마른땅이 된지라” 라고 기록 되어져 있다. 그토록 절망적인 상항을 일시에 소망이 넘치는 순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을 치려고 하였던 애굽의 군대들을 어지럽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출애굽기 14:31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노래를 하였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라고 기록 되어 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이 있을 때 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바로 왕이 노역을 심하게 시키고, 벽돌을 굽게 하는 어려운 일을 요구할 때마다 백성들은 야훼께 부르짖었다(출 5:21), 비록 하나님께 부르짖었지만 어려움이 닥치자 야훼와 모세에게 불평과 불만들을 늘어놓았다. 이것이 크나큰 문제다. 사실 그들은 부르짖기만 했지 하나님의 역사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금방 잊어버리기 까지 했다. 필자의 주위에는 수없이 많은 기도자들을 본다. 때로는 철야를 밥 먹듯이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기도 이후에 성취될 하나님의 역사를 잠잠히 기다리기 보다는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오늘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내용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불평을 쏟아내고, 원망하고, 때로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의 영적 리더자나 조직의 리더자에게도 이와 같은 생각을 갖기 쉽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영적 리더자를 신뢰하고, 그리고 조직의 리더자를 신뢰함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지혜로운 삶이 되어야 하겠다.사실 IS가 지경을 점점 넓힐 때만해도 두렵고 불길한 생각들이 스칠 때가 많았다. 만약 이라크가 그들의 손에 들어가고, 시리아가 들어가고 그리고 이집트 같은 국가들이 극단적인 이슬람 세력이 된다면 선량한 기독교인들은 입지가 좁아질 뿐만 아니라 그동안 어렵게 신앙을 지켜온 것 마저 종말을 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 였다. 그러나 이러한 필자의 이해를 불식 시키는 계기라 형성 되어져 가는 것 같아서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몇일 이후에는 국제 연합군이 IS를 물리치기 위해서 근거지를 공습하게 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러한 국제 정세를 보면서 결코 자신의 자녀들을 외면 하시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주님을 쳐다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험이나 시련을 당할 때에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고전 10: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실 줄 앎이니라(롬 5:3-5)” 우리가 곤경과 어려움에 처할 때에 그때는 하나님의 축복이 예비 된 시간이 됨을 우리는 알아야 할 줄 믿는다.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03-07
  • 음행의 죄
    음행의 죄 최근 우리 사회는 성적 방조 풍조의 도가 심하다. 성의 개방화와 성의 상품화로 인하여 음란한 풍조가 넘쳐나고 있다. 텔레비전의 저질스러운 프로그램, 포르노 잡지와 같은 저급한 신문들 그리고 인터넷에서까지 음란한 내용들이 유혹하고 있다. 잠시 한눈만 팔아도 세상의 음란한 풍조에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한 걸음만 실족해도 추락하여 죄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런 때에 눈길 한번만 잘못 줘도 또 한 발만 잘못 떼어도 음란한 죄의 올무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음행의 결과를 생각해보자. 첫째, 음행은 인격을 파괴 시킨다. 음행의 대표는 매춘이다. 매춘은 자신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돈으로 상대방을 사는 것이다. 사람을 존엄한 인격체가 아니라 돈으로 사고파는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해 인격적인 만남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동물적인 만남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모두 결국은 인간성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다. 돈을 받고 육체를 파는 사람은 스스로 고귀한 인격을 포기하고 물건이 되는 것이며 돈을 주고 사는 사람도 비인간적인 행위를 함으로 스스로 인간성을 상실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매춘이 아니더라도 비정상적인 음행을 하는 사람도 역시 그와 같다. 음행은 결국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인간성을 상실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 뿐이다.둘째, 음행은 행복한 가정을 파괴한다. 한 가정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부부이다. 부부는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관계(창2:18)로 사람이 결코 나눌 수 없다. 따라서 부부의 관계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하며 상대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순결을 전제로 한 사랑으로 맺어지는 관계이다. 그렇다면 한쪽이 음행을 행할 때 이미 상대방에 대한 순결의 악속을 깨뜨리게 되며 신뢰와 존중관계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부부관계를 회복하기 힘든 상태로 파괴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음행을 통해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가정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며 창조의 순리적 질서를 파괴하는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셋째, 음행은 육체를 상하게 한다. 의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의 성적인 능력은 마치 배터리와 같다고 한다. 하나님이 각 개인마다 일정량의 성적인 능력을 주셨다는 것이다. 그 성적 능력을 방탕하게 쓰면 일찍 소진된다고 한다. 그러기에 젊어서 방종한 사람은 쉽게 노쇠해지고 병도 잘 걸린다 한다. 남자뿐만 아니라 여성 역시 방종한 생활을 하면 자궁암에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또한 아기도 잘 나올 수 없는 몸이 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음행은 각종 성병을 야기 한다고 한다. 예로 임질, 매독 등 성병에 걸리게 되고 더 나아가 에이즈와 같은 무서운 병에도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음행은 육체를 추하게 망가뜨리는 것이다. 또한 음행은 육체의 정욕과 쾌락을 탐닉하는 마음 상태를 가지게 된다. 음행을 즐기는 자들은 매사를 음행과 관련시켜 생각한다. 누구든지 음행의 대상으로 보게 되고 마음이 부패해져 짐승의 마음을 가진 자가 된다. 이처럼 음행하는 사람의 전인격과 삶을 추하게 만들고 망가뜨린다. 넷째, 결국 음행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그 조상이 간음한 결과 후손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간 예를 볼 수 있다. 즉 야곱의 장남 르우벤이 서모인 빌하와 간음함으로써 야곱에게 저주를 받아 장자의 권리를 빼앗기고 그 후손까지도 지리멸절하게 되었다. 다윗도 마찬가지다. 휘하 장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 한 결과 선지자 나단의 책망을 받고 회개 한즉 비록 멸망의 심판을 받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그의 음행의 씨앗인 아이의 목숨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장자 암논이 이복누이인 다말을 겁탈 한 결과 다말의 친 오빠인 압살롬이 다윗에게 대항해 반역을 일으키고 다윗의 첩들을 백주에 백성들이 보는 눈앞에서 겁탈했다. 물론 압살놈의 반역은 진압되고 결국 압살롬도 죽게 되었다. 하나님은 다윗의 왕가의 음행에 징계하신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던 강한 로마가 멸망한 이유는 사치와 방탕으로 인한 국력 낭비 정신력의 해이해짐과 더불어 극심한 성적 타락이었다. 로마가 지배하는 모든 지역에는 온갖 매춘과 혼음 동성연애가 성행하였고 심지어는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여인들까지도 매춘 하였다 한다. 그로인한 성병이 만연함으로 나라를 이끌어 갈 젊음이들의 육체가 쇠약해졌다. 현대에 이르러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불리우는 AIDS(후천성 면역 결핍중) 또한 문란한 성생활로부터 오는 병이라고 한다. 음행은 한 개인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인류전체를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죄악이다. 그럼에도 음행이 주는 달콤한 쾌락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길로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성적인 유혹의 장소나 상황을 만날 때 동화 되지 말고 그곳을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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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15-03-06
  • 러시아 속의 개신교 선교 제언
    구정을 맞이하여 오랜만에 잠시 집에서 쉼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시간에는 TV프로그램이 매우 경제적이고, 가족들 간의 대화도 이끌 수 있는 기회이다. 때마침 집사람인 아내가 닥터 지바고를 보고 싶다고 하였다. 설원 속에 펼쳐지는 다양한 장면들을 연상하면서 평안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필자는 지난여름에 러시아의 중심지인 모스크바를 방문하면서 화려하게 장식된 정교회를 둘러 보았다. 사실 러시아는 988년에 끼예프 러시아의 블라지미르(Vladimir)公이 콘스탄티노플로부터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 러시아는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블라지미르의 결정은 기독교가 끼예프의 생활과 문화 속에 스며들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기독교는 끼예프를 통합하는 요소로 자리를 잡아 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기독교 국가가 근대사를 지나면서 공산화된 땅이 되었다가 지금은 개방된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개신교의 선교가 틈을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되었다. 이러한 러시아 땅을 위하여 몇가지 선교적 제언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영적인 차원으로서의 선교 접촉점으로, 예배를 신비적 차원에서 접근하여 성찬과 성례 성가대 등 예전을 경건하게 잘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초기에 도덕적 규칙이나 합리적 교리적 진술보다는 전례적인 접근, 즉 신적(神的) 예배라는 맥락에서 교리를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러시아 선교에 이어서 신비적 요소를 간과하면 안된다. 선교사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만 접근하면 러시아인들은 건조함을 느낀다. 그들은 예전을 무시하는 개신교를 낮은 수준의 종교로 이해한다.
    • 칼럼
    • 선교
    2015-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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