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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궁극적 관심 - 배성산목사
    영국의 작가 다니엘디포의 장편소설인 「로빈슨크루소」는 평범한 뱃사람인 로빈슨크루소가 무역선을 타고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대서양 적도로 이어진 기니아로 향하던 도중 서인도에서 좌초되어 홀로 무인도에 표착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줄거리는 단조롭고 구성도 평이하지만 출판 당시 작가 자신도 놀랄 만큼 호평을 받아 곧 그 속편을 썼다. 이 장편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어떤 이는 ‘모험 스토리’로, 어떤 이는 생존하려는 삶의 ‘투쟁의 스토리’로 이해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역경 속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신앙의 스토리’로 이해한다. 폴틸리히에 의하면 신앙은 ‘궁극적 관심을 갖는 상태’이다. 신앙은 삶의 궁극적 의미에 관한 문제로 삶에서 궁극적 관심이 경험될 때마다 거기에는 신성이 존재하는데, 하나님에 대한 의심조차도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궁극적 관심을 갖느냐 안 갖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실존적인 존재 또는 비존재를 결정하는 것이다. 세상의 한정된 것에만 머물러 좋은 것에만 관심을 둔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인데, 그것은 인간을 비존재로 떨어지게 만든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05-29
  • 성령강림절에 듣는 음악 - 배성산목사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회에 문화적 능력과 구조를 부여하고 성령의 일반적 사역을 통하여 역사를 창조하여 유지하며 이를 향유하게 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감사의 중심에 있지만 사회적, 문화적 감사도 상호 연관되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현실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러한 교회에는 생동감 넘치는 삶과 생활에 리듬이 따른다. 성령은 우리 사회가 어둠에서 빛으로, 죄에서 구원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시고 계신다. 교회는 살아 숨 쉬며 생동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리고 성령의 전으로서 향유(享有)하는 삶을 누리고 가짐으로 존재함을 알게 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가난한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심에 주목하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대로 오순절 날에 성령이 오셨다. 교회가 태어났다. 그 교회는 예수의 삶, 가르침, 고난, 생명의 부활로 삶의 활성화를 이 세상에 성령이 역사하시며 보여 준다. 그리스도인이라 함은 성령에 의해서 인도되는 사람들을 말한다. 성령은 삶의 자리에서 환경을 조성하시고 감성을 통하여 신앙의 분위기로 마음, 말, 행동으로 기쁨과 희열을 갖게 한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05-16
  • 사랑은 서로 하는 것 - 배성산목사
    톨스토이는 그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아래와 같은 천사 미카엘의 대사로 끝맺음을 하고 있다. “하 나님은 사람이 떨어져서 사는 것을 바라지 않으시며, 그리하여 저마다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드러내지 않으신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가 되어 살기를 원하시며, 그리하여 각각의 사람들에게 모두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드러내신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자신을 위한 걱정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들이 사랑에 의해서만 산다는 것을 이제 이해했습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그 사람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 단편에서 주인공 구두장이 '시몬'은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농가에서 구두수선을 하며 사는 가난뱅이다. 양가죽 외투를 사기 위해 마을사람에게 빌려준 5루블 20코페이니까를 받으러 농부의 오두막을 방문했지만 허탕을 친다. 울화가 치민 '시몬'은 보드카를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벌거벗은 채 교회에 기대어 앉은 거지 청년 '미카엘'을 발견한다. 구두수선공 ‘시몬’은 그 청년에게 자신의 옷을 입히고 갈 곳 없는 그를 집으로 데려와 저녁식사를 대접한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05-08
  • 말씀과 약속의 기다림 - 배성산목사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사가랴’(Zacharias)는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의 남편이며 세례 요한의 아버지였다. 그가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으로 활동하던 때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B.C 27-A.D 12)가 헤롯왕을 통해 유대를 통치하던 시기였다. 당시 로마와 결탁하여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며 보수적 기득권층을 이루었던 타락한 사두개인과는 달리 사두개인이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었던 사가랴는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으로 활동할 즈음 하늘의 말씀을 받는다. 하나님은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는 말씀으로 사가랴에게 그에게 펼쳐질 미래를 계시하시고,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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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산
    2013-04-18
  • 부활을 본 바울 - 배성산목사
    한 소경과 앉은뱅이가 있다. 소경은 앞이 보이지 않는 대신에 튼튼한 다리가 있고, 앉은뱅이는 걸을 수 없는 대신에 눈을 가지고 있다. 앉은뱅이의 눈과 소경의 다리는 따로 떨어져서는 불완전한 존재였지만, 소경이 앉은뱅이를 등에 업음으로써 훌륭한 동반자, 하나의 완성체가 될 수 있었다. 실 체(essence)와 인지(perception)와의 관계는 소경과 앉은뱅이의 관계로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실체는 내용, 즉 '속(알맹이)'이요, 인지는 현상, 즉 '겉'이다. 실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는 있지만 인지에 의해서 현실 속에 발현되어야 그 존재가치가 비로소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 “인지되지 않는 존재는 공허할 뿐이고, 존재 없는 인지는 맹목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믿고, 그것에만 집착하며 살려는 경향이 있다. 모두가 현상에 근거하여 인지하고 가치판단을 내리며, 현상의 ‘속’, 즉 그 본질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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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산
    2013-04-10
  • 성실과 진실로 사는 사회 - 배성산목사
    지금 우리의 사회현상 가운데 국민의 불신의 의식에는 정치와 권력 지향적인 성향이 짙게 배어 있다. 우리는 정치, 경제 제일주의와 권력이라는 등식관계가 절대적으로 인정되는 사회 제도 속에서 권력 남용이라는 인식의 현실에 시달려 온다. 가치가 전도된 시대에 방황하는 국민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정치인에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 그러나 그 기대는 실망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 개혁의 방향은 제도 개혁도 중요하지만 정치하는 사람, 하려는 사람에게 더 의식 개혁이 중요한 정치 현실임을 보고 있기에 이를 주지한다. 오늘의 정치의 위기는 잘못된 가치의식에서 성실과 진실이 결여된 그 사람(인간)에게서 유래된다고 본다. 즉 양심의 빈곤, 윤리의 타락, 질서의 굴절이라는 정신적 질환은 정의 보다는 불의, 신뢰 보다는 불신, 질서 보다는 무질서가 속출하는 처절한 사회현실을 보게 있기에 그렇다. 삶의 가치는 반드시 정로(正路)를 걸어가는 그 사람의 인생관, 가치관에 준한 삶에 성실과 진실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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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산
    2013-03-28
  •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무엇인가?② - 배성산목사
    기독교적 죽음의 이해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배우고 순종하는 신앙이다. 기독교의 죽음이해에 있어서 죽음과 창조가 본질적인 관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는 곳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여기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창조질서와 연관시켜 이해한다. 그는 만물이 지금까지 허탄한 데에 굴복하면 한없는 탄식으로 새로운 피조물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허탄한 옛 질서가 새로운 피조성의 질서에로 변화 가능한 곳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5:17). 그러면 이러한 바울의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해는 과연 예수 자신이 자신의 죽음을 이해한 것과 일치하고 있는가? 우리는 성서의 여러 곳에서 예수가 “…옛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라고 말씀하신 것들을 통하여 자신을 옛 질서를 부정하는 새 질서의 창조자로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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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산
    2013-03-21
  •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무엇인가? ① - 배성산목사
    모든 사람이 죽음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지만 반드시 죽음에 대한 바른 인식과 태도를 갖고 있지는 않음을 안다. 인간은 죽음을 예상하고 태어나며 죽음이 예정되어진 가운데 살고 있다. 이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과정이 또 죽음에의 과정이며, 인간의 마지막 삶이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음 이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기피하는 대신에 오히려 일상적으로 사색하고 정면으로 탐구함으로 공포와 불안을 불식하고 더욱 풍요로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면서 죽음에 대한 바르게 이해함에서 우리가 지금 사순절을 맞아 고난, 십자가, 죽음, 부활의 사순절에 임하고 있기에 여기에 의미를 곁들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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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성산
    2013-03-13
  • 거듭난 신앙 - 배성산
    사순절 기간이 금주부터 시작한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고 회개하는 "거듭난 신앙"의 절기이다. 재를 이마에 바르고 흙으로 돌아 갈 날을 알게 하고 재의 수요일(2013년2월13(수)일)이 사순절의 시작으로 부활주일 전까지 40일간을 지키는 절기이다. 이는 회개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이웃봉사로 사랑의 실천을 단행하는 기간이기도 한다. 성서에서 40이라는 기간은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출애굽 하여 40년간 광야생활을 통해 연단의 숙성을 단행하고 예수님의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며 시험받으심을 안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02-28
  • 이웃 사랑의 생활관 - 배성산목사
    ' 사람이 재산'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을 일컬어 삶에 욕망을 채워주는 재물과 같다는 뜻이다. 과거에 삶을 산 옛 선인들은 사람을 보화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관계로 우선 올바른 사람을 알아보며 생활하였다. 겉으로 드러난 외모만 보고 사람의 인품을 알아내려고 하지 않고 사람의 외모 뒤에 숨은 사람의 참 모습을 알아보며 사람을 보화로 삼을 수 있는 높은 인격과 능력을 지닌 고매한 사람을 가리켜 이렇게 말하였다. 예컨대 우리 한국인들은 옛날부터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이웃을 한 집안처럼 알고 서로 나누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이웃사촌’이란 말도 생겨났다. 이웃사람을 남이 아니라 한 집안 혈족으로까지 생각하게 한 것이었다. 과거 우리민족은 "이웃사랑의 생활관"이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 새나 짐승, 나무나 꽃, 풀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 이를 중히 여기고 살았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게도 일일이 마음을 나누고 정을 나누었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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