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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 구속 사태를 보고
    부산지방법원은 지난 8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를 이끌던 세이브코리아 대표 손현보 목사를 공직선거법 위반협의로 구속했다. 손 목사가 유튜브 등을 통해 부산시 교육감 사전선거운동에 개입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예장고신측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는 지난 봄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정국을 맞아 전국적으로 탄핵반대 집회를 대대적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손봐야 할 인물 중에 한 사람으로 찍힌 것으로 보인다. 손현보 목사의 세이브코리아 운동은 한국기독교 목사로서 그 양심에 따라 나선 선한 행동이다. 이만한 결단력을 가진 목사를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손 목사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 시킨 것은 종교의 자유를 심대히 침해하며,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양심을 억압하고 핍박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고신측 뿐 아니라, 모든 한국기독교가 손 목사에 대한 구속의 부당성에 대해 항의해야 한다. '우리 교단과는 관계가 없다, 또는 내 생각과는 달라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일원으로서 옳은 태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특히 한국교회는 교파나 교단이 달라도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오만한 정치세력, 부패한 사회를 향해 끽소리도 못하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 '벙어리 개'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 꾸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사 56:10). 이 말은 이 시대 목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이 시대는 정치집단이 모든 국민의 생활을 좌지우지 한다. 콩나물 값 하나, 두부 한 모도 정치권의 결정에 좌우된다. 모든 국민의 삶을 정치가 좌우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정치세력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언론뿐 이니라, 모든 국민이 관심 가져야 할 중대한 사안이고, 특히 우리 사회의 정의를 대변하는 종교의 몫이기도 하다. 따라서 목회자 또는 종교인들이 이런 사태를 강건너 불구경 하듯이 남의 일로만 여기게 되면 언젠가는 그 불길이 한국교회 전체로 번져 자신의 옷자락에도 옮겨 붙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여기에 독일 나치에 항거했던 우리가 익히 아는 마틴 니뮬러 목사의 시 한편을 인용한다. "처음에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또 사회주의자들을 잡으로 왔을 때,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다시 노동조합원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 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또다시 유태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이제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70-80년대 정치권에 대해 그렇게 당당했던 한국교회가 왜 이처럼 주눅이 들었는지, 벙어리 개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이다. '손현보 목사가 잘 난체 해서 밉다거나, 교단이나 교계의 동의도 없이 세이브코리아를 조직해 정치적 문제에 개입했다'거나 하는 비판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한국교회가 하나되어 손 목사 구속에 대해 항의해야 마땅한 일이다.
    • 연지골
    • 사설
    2025-09-10
  • [사설] 종교적 근본주의가 망가뜨린 나라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무력 충돌이 미국의 직접 개입으로 그나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어 다행이다. 대체로 국가 간 충돌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끼리 다툰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이란은 국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시오니스트라며 그 존재를 부정한다. 이스라엘은 시오니즘 운동으로 건국된 나라이니 시오니스트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란의 이슬람 시아파 종교지도자의 입에서 '시오니스트'라고 하는 것은 곧 이슬람에 대한 테러리스트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들린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을 가지게 되면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 위협이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핵이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테러집단의 손으로 넘어갈 것을 우려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절대로 이란의 핵 개발을 용납할 수 없다. 이란은 문화와 역사가 깊은 나라이다. 일찌기 종교적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였지만 그래도 팔레비 왕조까지는 친서방 정책으로 신생 이스라엘과도 잘 지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조를 몰아내고, 미국과도 외교를 단절하고 반서방노선을 견지하며 시아파의 맹주노릇을 자임하기 시작하면서 서방측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그 존재 자체를 아예 부정하면서 불량국가로 변질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말에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대로 중동의 모든 반이스라엘 테러리스트의 배후에는 이란이 있다는 말을 들어온 것이다. 서방과 대척점에 선 이같은 이란의 외교노선은 결국 이슬람 혁명을 빙자한 근본주의 종교지도자들의 권력 유지 수단과 맞물려 있다고 봐야 한다. 전 세계에 석유 수출로 국가 경제를 유지하는 이란은 외교가 중요한 나라인데도, 굳이 서방측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순전히 이슬람 근본주의 종교정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수단이이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나 종교적 근본주의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면 결국 그 사회는 퇴보한다. 오늘날과 같은 탈종교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다민족사회인 이란의 경우 이슬람 시아파는 국민의 60%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슬람 종교정권을 떠받치고 있다. 이란은 이슬람 혁명으로 서서히 망가져 가고 있다. 특히 이번 미국의 적극적 개입으로 이스라엘과의 휴전이 이루어져 다행이다.
    • 연지골
    • 사설
    2025-07-17
  • [사설] 우리사회 정치 경제 문화 발전의 원동력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4만불 시대에 이르고 있다. 이대로만 나아가면 수십년 내에 선진국을 넘어 세계로부터 문화대국이란 부러움을 살 수도 있다. 이미 전 세계로부터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찾아 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의 정치와 경제 상황이다. 오늘날 같이 정국이 불안정하고 보혁간 이념투쟁이 지속되면 경제활동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거기에다가 자칫 좌파 정권이 포플리즘 정책에 매달리게 되면, 공들여 쌓아온 외교와 경제가 타격을 받아 남미 베네수엘라 꼴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과연 대한민국이 일류국가로 나아갈 수 있느냐는 문제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이다. 국민의 절대적 각성이 필요하다. 정치안정과 경제성장에는 반드시 국민의 정신 수준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국민의 정신이 미개하면 아무리 애를 쓰도 문화적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종교적 가치관이다. 사회적 주류종교가 어떤 세계관과 가치관에 서 있느냐에 따라 국민의 정신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해방 후 이만큼 선진화 된 데에는 기독교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컸다. 세계종교에 유일신관을 가진 종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유대교이고, 둘째는 기독교이며, 셋째는 이슬람이다. 이 셋 다 성경의 아브라함의 유일신관에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기독교만이 세계화 인류화 되어 있을 뿐, 유대교는 유대인들의 민족종교에 지나지 않고, 이슬람은 아랍인들의 종교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중세 기독교는 각 시대정신에 맞는 신학을 제공하고 있어 사회 정치 경제 발전에 있어서 기독교 신앙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가 주류종교인 한국사회는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한국교회의 신앙형태이다. 한국 개신교회는 약67%가 개혁파인 장로회주의 교회이다. 중세 종교개혁으로 파생한 개혁파 교회는 그 가치관이 그 어떤 기독교 종파 보다 뚜렷하다. 그런데 한국의 장로교회는 몇 가지 극복되어야 할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기복주의이고, 둘째는 개교회주의이며, 셋째는 세속주의이다. 이런 신앙형태의 극복 없이는 종교적 미개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사회가 일류국가가 되고, 더 나아가 초일류국가가 되려면 먼저 주류종교인 한국교회의 신앙의식 수준이 향상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기독교가 우리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발전의 원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 연지골
    • 사설
    2025-07-17
  • [사설] 지금은 평신도 선교사 시대
    한국교회는 전세계에서 미국교회 다음 최대 선교사 파송국이다. 북한을 제외하고 한국인 선교사가 없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들 중에는 목회자 선교사가 많다. 그런데 지난 코로나 정국을 지나면서 많은 선교사들이 그 사역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음 사역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 역시 코로나 이후 선교 열정과 사명감이 많이 위축된 듯하다. 한국교회가 심각히 자성해야 할 때이다. 그리고 다시 심기일전하여 선교사 파송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지금 세계 젊은이들은 한국어교육에 관심이 많다. 한류 바람을 타고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뿐 아니라 개발도상국과 유럽의 선진국에서도 한국어교육 열기가 뜨겁다. 일찍부터 정부 차원에서 지원해온 세종학당이 각 나라에서 운영되고 있고, 한글학교와 한국어학과 등이 있다. 근래 한국 K팝 영향으로 한국어붐이 일어 200개가 넘는 나라에 세종학당이 이미 설치되었다. 그러나 해외파견 한국어교원과 지원이 절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한국교회가 관계 당국과 협의하여 한국어교원 자격을 갖춘 교사들을 선교적 사명을 부여하여 파송하는 것도 하나의 선교정책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일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태권도 사범이라는 이름으로 종교의 자유가 제한되는 많은 나라들에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는 선교사들을 파송해 왔다. 이들 사범 중에는 대체로 목회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수받은 목회자 선교사보다 전문교육을 받은 평신도 선교사가 필요한 시대이다. 여기에는 한국어교원 뿐 아니라, 농업 및 임업 전문가를 비롯, 컴퓨터 전문가 등 낙후한 지역을 선진기술로 지원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선교사들이 많이 필요하다. 한국교회 신학교들이 이런 분야에 종사할 선교사들을 양육하고, 또 교단과 개교회는 이런 평신도 선교사들을 파송 후원한다면, 세계 복음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또한 선진 기술이나 선진 시민의식을 가진 평신도 선교사들에 의해 지역이 발전하고, 또 먹거리나 일터가 늘어나 그 선교사가 현지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되면 자연히 복음이 전파가 늘어 교회가 설립될 수 있다. 목회자 선교사 파송은 그때 해도 늦지 않다. 문제는 한국교회의 의식 전환이다. 사명감 가진 이런 평신도 지도자들을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 연지골
    • 사설
    2024-06-21
  • [사설]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
    역사적 기독교에는 황제나 제왕이 통치하던 국가교회, 또는 교황이나 감독이 통치하던 감독교회의 시대가 있었다. 종교개혁 이후 교회에 대한 그들의 통치력이 약화되긴 했지만, 지금도 일부 지역에 따라서는 국가교회나 감독교회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교회는 누구나 성경대로 믿고, 양심대로 말할 수 있는 종교개혁 이후 탄생한 자유교회에 기반을 하고 있다. 이 자유교회의 원리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장로교의 헌법 정치 원리이다. 장로교회 정치 원리에는 제일 먼저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를 선언한다. "양심의 주재는 하나님 뿐이시라, 그가 양심의 자유를 주사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위반되거나 과분한 교훈과 명령을 받지 않게 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신앙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그 양심대로 판단할 권리가 있으니 아무도 남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 또 교회의 자유는 "개인에게 양심의 자유가 있는 것 같이 어떤 교파 또는 어떤 교회든지 교인의 입회 규칙, 세례교인 및 직원의 자격, 교회의 정치 조직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대로 설정한 자유권이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유교회의 기본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가 심각히 침해 당하는 사례가 비일비재 하다. 무슨무슨 총회 또는 교단이란 이름의 교권 세력이 자기 입맛대로 교계를 지배하고, 개인의 신앙을 규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개혁주의 교회는 바로 이러한 교권의 영향을 신앙생활에서 배제하려는데 그 목적을 가진 교회이다. 다만 교인 가운데 진리와 신앙의 본분을 준수하지 않고, 또는 행위가 도덕적으로 부패했거나 악한 자에 대해서는 성경이 가르친대로 교훈하고, 그래도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 때는 정한 법도에 따라 권징함이 옳다. 그러나 개혁주의 교회를 표방하는 교회에서 교권의 힘으로 개인의 신앙을 규제하려는 것은 그 본분을 넘어선 행위이다. 진리는 선행의 기초이다. 따라서 진리가 진리 되는 증거는 그 사람으로 성결케 하는 일이다. 주께서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고 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 교단을 보호한다' 또는 '진리를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그리스도의 피 아래 있는 형제를 정죄하고, 복음 사역에 부름 받은 동역자를 훼방하는 자들이 있으니, 이런 자들은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자들이다.
    • 연지골
    • 사설
    2024-06-21
  • [사설] 최재영목사는 한국교회에 사과하라
    요즘 우리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정치적 이슈는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사건이다. 이 사건은 윤 대통령에 대한 대선 불복 세력이 꾸민 정치 공작 몰카 함정취재임이 밝혀졌다. 이 사건을 만든 세력에는 재미 교포 최재영이라는 목사도 끼여있다. 경기도 양평 출신이라는 최 목사는 김건희 여사의 아버지와 친분이 있다며 김 여사에 접급해 300만원 상당의 명품백을 선물로 건넸다고 한다. 이 명품백은 이 사건을 꾸민 유튜브측에서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최 목사는 이 전달 과정을 손목에 찬 시계에 장착된 카메라로 몰래 녹화해 그동안 윤 대통령을 공격해온 유튜브 서울의소리를 통해 방송했다. 김건희 여사는 그들의 악의적 숫법에 철저히 당한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부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고소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정치적 이슈로 삼아서 야당이 물고 늘어지니 큰 사단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이 사건에 목사가 끼였다는 것은 교회가 참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 목사라는 사람은 현재 한국교회 목사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한국교회 주변에서 목사가 된 사람은 분명한 것 같다. 한국교회에는 약 20만에 이르는 목사가 있다. 한국교회 목사 교육과정은 대체로 엄격하다. 목사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최소 3년을 더 신학과 영성을 공부해야 하고, 여기에 2년 혹은 3년을 더 연수한 후에 목사가 된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채 목사가 대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다가 목사를 배출하는 교단이 수백 개로 갈라져 있으니 목사가 된 후에 엉뚱한 짓을 하고 다녀도 통제할 기구도 없다. 그러다보니 사기 사건 등 경제 문제나 온갖 사회적 비리에 목사가 끼어 있다. 한국교회 전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앞의 최재영 목사는 어떤 교단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목사가 되었는지 알려지진 않았다. 그런데 윤 대통령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 한다면 목사로서 당당하게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비난할 것은 비난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 진실을 말해야 하는 목사가 어떻게 범법조직의 사주를 받아 몰카 시계를 차고, 그것도 고향 사람이라며 대통령 부인에 접근해 대통령실 공격에 가담할 수 있는가. 이는 한국교회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린 행위이다. 20만 목사와 한국교회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당연히 한국교회에 사과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24-02-15
  • [사설] 교계, 선거철에 ‘가짜뉴스’에 주의해야
    성경 여호수아 22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전쟁이 끝나자 그 전쟁에 참가했던 강 동쪽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자신들의 유업으로 받은 지금의 요르단 땅으로 되돌아가며 요단 가에 한 기념단을 쌓았는데, 이 일이 가나안 땅에 남아있던 이스라엘에게 강 동쪽 백성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거역하고 독립하려 한다는 소식으로 전해진 것이다. 이에 온 이스라엘 회중이 이를 용납할 수 없다며 저들과 싸워야 한다고 흥분했다. 그때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일어나 각 지파의 대표를 보내 저들의 진위를 먼저 확인해 보자고 제안했다. 대표들이 가서 확인한 결과 저들이 여호와와 이스라엘을 배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나안 땅에 있는 지파들과 자신들이 '하나'라는 사실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단을 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명백한 '가짜뉴스'로 인해 자칫 오해와 불신으로 부족간 큰 전쟁을 치를 뻔한 사건이었다. 어느 시대나 가짜뉴스는 생산된다. 온갖 매체가 횡행하는 현대사회는 더욱 그러하다. 어떤 이들은 큰 악의 없이 '아니면 말고'식으로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개인이나 자신들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거기에 속으면 개인이든, 공동체든 할 것 없이 오해와 분열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므로 사실 가짜뉴스는 매우 엄중한 범죄인 셈이다. 따라서 오늘날에 불필요한 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가짜뉴스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에게는 더욱 그러한 혜안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사회에서 선거철만 되면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린다. 교회도, 사회도구성원들이 이런 가짜뉴스를 매우 경계해야 한다. 이미 제22대 총선의 선거정국이 시작되었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집단에서 생산되는 주장일지라도 그대로 믿고 전파하지 말고 다시 한번 팩트를 확인해 봐야 한다. 더우기 목회자의 언행은 신도들에게 절대적 신뢰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가짜뉴스에 속아 그것을 그대로 전파하게 되면 아무런 이해 관계도 없는 신도들이 피해를 입게된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할 일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가짜뉴스는 우리 사회만 혼란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도 혼란케 한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경계해야 한다. 80~90년대에는 많은 교회들이 지역주의로 갈라진가짜뉴스로 인해 서로를 저주하며 갈등했다. 그런 일이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 연지골
    • 사설
    2024-02-15
  • [발행인 칼럼] 한국교회가 총선을 감시하는 파수꾼 되어야
    올 4월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새해 들어 여·야 정치권의 극한 투쟁이 국민의 삶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지난 한 해는 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하루도 빠짐없이 세상을 떠들썩 하게 하더니, 이번에는 새해가 되자 마자 야당 대표의 피습과 여당 의원의 피습으로 정치상황은 매우 엄중한 방향으로 내닫고 있다. 정치권은 선거철이 되면 언제나 서로 헐뜯고 공격하는 것이 의례히 있어왔지만, 이번에는 아예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말자 정치투쟁을 이어온 것이다. 그 배경에는 첫째 여야의 태생적 지역 정당 문제가 있다. 소위 보수 정당과 진보 정당이라는 가면을 쓴 정치권의 망국적 지역주의이다. 둘째는 여야의 사상적 대립이다. 자유민주질서를 헌법정신으로 하는 우리나라는 해방 후, 대한민국이 건국되자 마자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아 6.25전쟁을 치뤘고, 지금도 그들로부터 적화를 위협받고 있다. 그럼에도 여야 정치인들의 인식은 무서울 정도로 판이하게 다르다. 보수 정당은 철저한 반공주의를 정치이념으로 하지만, 진보 정당은 친북 용공주의를 용인한다. 그러므로 총선이든, 대선이든 매번 선거를 치를 때마다 이 이념전쟁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휘말리게 되면 가족도, 회사도, 종교도, 지역도 모두 분열한다. 우리는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그것을 경험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22대 총선은 이처럼 엄중한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심각히 되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의 이 분열 행위를 극복하고 화해시키며, 대한민국을 일류국가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세력은 한국교회 밖에 없다. 그러므로 금년 총선에서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의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첫째, 목회자나 장로 등 교회의 중직자들의 자세이다. 선거철만 되면 지역 선량들이 여야를 막론하고 교회를 찾아온다. 목사든, 장로든 누구나 특정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의견을 드러내놓고 표면화 해서는 안된다. 그런 행위는 자칫 교회를 분열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80~90년대 그런 사례를 많이 목도해 왔다. 둘째, 어떤 경우에도 상대를 미워해서는 안된다. 한국교회는 대체로 반공주의를 갖고 있다. 그것은 6.25를 치르면서 공산주의자들로부터 겪은 교회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로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맞아 죽고 불타 죽은 순교자를 수없이 배출했다. 그리고 교회당도 수없이 불태워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혔다. 교회가 공산주의자들을 미워한 것이 결코 아니고, 공산주의자들이 처음부터 기독교를 적대시 해서 생긴 일이다. 당연히 교회는 그 같은 피해를 더 이상 입지 않기 위해 공산주의자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북한 공산집단과 우리 내부 공산주의자들의 온갖 음해를 딛고 짧은 기간에 경제대국을 이루어 전세계가 부러워 하는 나라를 만들었다. 이는 정치 경제 사회를 이끈 지도자들의 희생적 지도력과 온 국민의 노동력이 일사분란하게 애쓴 결과로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이제 특별한 분쟁 없이 이대로 발전해 가면 우리 사회는 선진국을 넘어 일류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교회가 공공선을 위해 선거에 유언비어나 가짜뉴스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 연지골
    • 사설
    2024-02-15
  • [사설] 한국교회 교세 감소,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한국기독교의 사회적 신뢰 추락은 교세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3년간 이어진 코로나 정국에 장로교 주요 교단에서만 약 80여만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회 전체를 따진다면 아마도 여기에 배를 더해야 할지도 모른다. 참으로 위기이다. 이런데도 한국교회 대다수 목회자들은 이러한 교세 감소에 위기의식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로 잠깐 빠졌지만 결국은 되돌아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들은 '기독교'를 떠난 사람들이라기 보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로서, 개교회에 적을 두지 않고 기독교인 행세를 하는 노미날리티(일명 가나안 교인)로 남을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90년대 이후 각종 세속 언론 매체들의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보도와 교회 지도자들의 도덕적 일탈, 교인들 간의 갈등과 분열 등이 교회의 정체성 상실로 이어져 사회적 불신을 가져온 데 원인이 있다. 거기에다가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예배를 장려한 영향이 크다.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전에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대안은 기도와 설교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기도운동의 열정이 식어 부흥회도, 사경회도, 기도원도 모임이 많이 줄었다. 또한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온 설교가 기복주의로 기울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민족복음화라는 이름 아래 하나님의 은혜로 '복 받고 만사형통'하는 기복(祈福)에 호소하는 설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사는 길은 기도운동의 활성화와 바른 설교에 있다. 바른 설교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의 증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교에서의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 없는 설교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종교강화(宗敎講話)일 뿐, 하나님의 말씀은 아닌 것이다. 태초에 말씀으로 계신 아버지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 속에 오셔서 인류를 위해서 이루신 구속 사역을 증언하는 것이 바른 설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루신 구속의 역사는 죄로부터의 인간의 구원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희생의 정신이요,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이루는 봉사의 정신이다. 이것이 이루어진 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한국교회는 이제부터라도 기복 아닌 바른 설교가 요구된다. 여기에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회복과, 교세 감소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 연지골
    • 사설
    2023-11-02
  • [사설] 종교개혁기념 제506주년을 맞아
    1517년 중세의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비성경적 비기독교적 교리와 제도에 대한 성경적 개혁운동이었다. 이로 인해 새롭게 탄생한 교회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개신교'라고 불리우는 기독교이다. 현재 한국에는 천주교와 정교회 등의 기독교 교파들도 있지만, 한국에서기독교라고 하면 개신교를 이르는 말이 되고 있다. 그만큼 현재 한국에는 종교개혁에서 파생한 이 개신(改信) 교파들이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성공회나 감리교 같은 감독파(에피스코팔 처치)도 있고, 장로회주의와 같은 개혁파(리폼드 처치)도 있으며,침례교나 회중파같은 환원파도 있다. 이들을 모두 통털어 그냥 '개신교'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세의 종교개혁운동은 신·구교 간의 30년 전쟁을 거치면서 똘레랑스를 통해 종교개혁이 완성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 않다. 개신교는 '개혁이 완성된 교회'가 아니고, 역사 속에서 '개혁이 계속되는' 진행형의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 '개혁하는 교회'라고 부른다. 따라서 개신교는 오늘날도 개혁운동이 멈춰서는 안된다. 개혁운동이 멈추는 순간에 그 교회는 개혁 이전의 중세교회로 회귀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러한 딜렘마에 빠져들고 있다. 첫째, 대교단들의 이기주의이다. 대교단의 이기주의는 교권주의로 발전하고 있다. 이 교권주의가 남의 신앙 경험을 쉽게 이단으로 규정하기도 하고, 오로지 자리 다툼으로 교계의 연합과 일치를 파괴하기도 한다. 둘째, 대교회 중심의 탐욕이다. 사람도, 헌금도 모두 대교회가 쓸어간다. 그런데도 교단 차원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같은 노회, 같은 지방회의 어려운 지체들마저 외면한다. 이렇게 되면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 자매'가 아니다. 셋째, 종교개혁 기념 행사조차 줄어들고 있다. 10월이 되면 종교개혁 기념 축제가 교회마다, 교단마다, 신학교마다 떠들썩하게 준비되어야 하는데, 오늘날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기념 행사를 쉽게 만나기 어렵다. 종교개혁기념 예배와 학술대회나 세미나, 또는 음악회, 연극, 영화, 바자회, 독서토론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여기에 안 믿는 친척이나 친구 등을 초청해 전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종교개혁운동에 대한 기념 행사가 시들해지면 우리의 신앙도, 열심도 시들해 질 것이다. 종교개혁 기념 행사가 곳곳에서 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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