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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의 정체성
    기독교는 유대교의 예언자들과 예수의 사도들이 남긴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으로 믿고,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육체적 부활 그리고 나사렛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는 예수의 신성을 믿는 믿음에 기초한다. 그런데 역사적 기독교 안에는 이런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주 나타났다. 그 역사가 기껏 130여년에 지나지 않는 한국 기독교에도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 중에는 신학교육을 받은 목사도 있었고, 성령체험을 했다는 평신도들도 있었다. 어떤 목사는 신학대학에서 꽤 이름있는 유명교수였고, 또 어떤 목사는 성경을 가르치는 교목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한때 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큰 부흥운동을 이끌기도 했다.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느날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쳐온 성경을 “99% 가짜”라고 부정하고(박태선), “나사렛 청년 한 사람이 십자가에 죽었다고 하여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는 없다”며 기독교의 가장 기본교리가 되는 그리스도의 대속론을 부정하며(문익환), 또 “역사적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사람의 아들이다.” “동정녀 탄생은 과학적 사실이 아닌 신앙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주님의 부활은 육체의 부활이 아닌 말씀의 부활, 의미의 부활이다.” “성경은 사람들의 신앙고백으로서 오류와 한계가 있는 기록임으로 문자 그대로 보면 안된다.” “기독교만이 진리라는 배타적인 생각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류상태)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모두 부정해버렸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기독교인이라고 말한다.그러면 대관절 기독교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두말할 필요없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가 곧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 곧 그리스도요, 그가 인류를 대속하기 위해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해 승천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사 인류를 참진리의 길로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교회는 이 사실에 감격해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기 위해서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다. 그래서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산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정체성이 흔들리면 교회관도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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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8-01
  • 국회 청문회 제도 조속히 개선돼야
    국회에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대통령 맘대로 공직자를 임명할 것 같으면 청문회는 뭐 때문에 하는 것인가. 청와대는 이번에도 국민을 상대로 버젓이 거짓말을 해댄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를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없이 일방적으로 임명했다. 이 정부 들어 청문보고서 채택없이 임명된 16명째 장관급 인사이다. 괜한 전파 낭비와 국론분열만 일으키는 지금의 공직자 청문제도는 없애든지, 바꾸든지 하는 것이 옳다. 윤총장은 자신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청문과정에서 마치 조폭조직이 그런 것처럼, 자신의 측근인사를 보호할 목적으로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음이 드러났다. 윤 총장은 청문회 내내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의 형인 전 용산세무서장 윤우진 씨에게 변호사를 소개한 일이 없다고 했다가, 자기 입으로 변호사를 소개했다고 말한 본인의 육성이 담긴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소개는 했지만 선임되지는 않았다'는 구차한 변명으로 말을 바꾸었다. 이런 것이 검찰의 중립을 해치는 일이지, 반드시 청와대의 외압을 견제하는 일만이 검찰의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이쯤 되었으면 청와대의 임명 발표 전에 왜 그런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국민 앞에 해명하고 사과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윤 총장은 해명도, 사과도 없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검찰총장에 적격자라며 임명을 강행했다. 국민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공직자의 최고덕목은 정직이다. 공직자가 정작을 잃으면 그가 하는 일이나 말을 공정하다고 누가 믿겠는가. 거짓말하는 공직자가 버젓이 TV 등에 얼굴을 내밀면, 청문과정에서 거짓말을 해대던 뻔뻔한 낯이 떠올라 불신이 쌓이고, 결국 그 불신은 정부의 짐이 되어 국가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된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국정수행의 지지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장관급 인사들의 일방 임명이 한몫 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검찰총장 청문회에서 드러난 국회 청문제도의 미비점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여야의 당리당략에 좌우될 문제가 아니다. 정직한 공직자를 뽑기 위한 국민적 관심차원에서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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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7-19
  • 우리는 아직도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다
    20세기 인류사에 새로운 메시야니즘처럼 혜성같이 나타났던 공산주의는 채 한 세기가 다하기 전에 수 많은 전쟁과 인명을 희생시키고 실패로 끝났다. 공산주의는 인류 구원의 메시야니즘이 아님이 증명된 것이다. 그리하여 공산주의의 원조들은 그 사상을 버렸으나, 그러나 아직도 한반도에는 교조적 공산주의가 살아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위협하고 있다. 거기에는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성만이 있을 뿐, 종교의 자유도, 개인의 자유도, 언론의 자유도 없다. 우리는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당의 남침으로 발발한 민족전쟁이 끝나지 않은 채, 아직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고, 북한 공산집단은 호시탐탐 남한의 적화(赤化)만을 노리고 있다. 그로인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소모전이 심각하다. 특히 근래 문재인의 좌파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평화’을 앞세우지만, 많은 국민은 ‘이러다 우리사회가 공산화 되는 것 이닌가’하는 우려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이유는 아직도 우리는 공산주의자들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독한 수령우상주의로 유사종교화 한 공산주의와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공산주의의 수령론은 그리스도교의 기독론을 차용한 것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것이 백두혈통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3대 세습에 이르렀다. 한때 김일성 일가가 추종하던 그리스도교는 억압하여 박멸시키고, 그 수령론이 남긴 소위 ‘주체사상’으로 인민을 교육하고 통치하는 사이비 공산주의 사회가 북한인 것이다. 거기에서 주체는 곧 김일성이고, 더 나아가 공산당이다. 이것은 전체주의 사회이다.그런데 그런 부자유한 사회를 동경해서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사회 구석구석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민족분열은 악(惡)이고, 민족통일만이 선(善)이라는 나이브한 진보주의자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많다. 민족통일이 선(善)임에는 분명하나, 공산주의로의 통일은 악(惡)임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북한 공산주의는 종교의 자유를 부정해 교회를 적대시 한다. 지금도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는 많은 기독교인이 구속돼 박해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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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7-19
  • 복음과 기독교
    우리가 믿는 공동체를 ‘그리스도교’라고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교를 한자 문화권에서 번안한 말이 ‘지뚜교’(基督敎)이다. ‘지뚜’는 그리스도를 중국어로 번안한 ‘지리스뚜’(基利斯督, 기리사독)에서 온 것이다. 이것을 첫글자와 끝글자를 따서 한국어로 표현한 말이 ‘기독교’(基督敎)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기독교’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와 ‘복음’이 같은 뜻으로 쓰인다. 이를 엄격히 구분한다면 기독교는 종교이고, 복음은 그 종교가 안고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계란의 껍질과 그 안에 담겨 있는 노란자위, 흰자위, 씨눈, 알끈과 같은 관계이다. 계란은 껍질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내용물에 생명이 있다. 껍질은 그 안에 있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생명은 복음에 있지만, 이 복음을 보호하는 것은 기독교이다. 그러나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그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일으켰다. 대표적인 예로는 복음과 성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킨 십자군 전쟁, 복음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설치된 이단재판소와 교황권 등이 그런 것이다. 그로인해 복음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기독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신생(新生)의 체험을 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교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도 신생의 체험없이 복음은 믿지 않고 기독교라는 종교만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은 그의 삶과 행위에서 어느 정도 드러난다. 이것을 사람이 확실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성령님은 다 아신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문제임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세가지 방법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복음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다분히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영역에 머물 수 있다. 말씀에 대한 순종,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 이웃에 대한 섬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포용,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용서, 사회적 구조악에 대항하는 정의로운 항거, 이런 것들을 실천하는 사람이 곧 복음을 믿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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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7-05
  • 북한 너무 뻔뻔스럽지 않나?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김일성 공산집단은 아무런 선전포고 없이 새벽 4시 미명에 기습 남침했다. 자유대한민국은 국토의 80%가 점령되고, 국군 137,899명이 전사하고 450,742명이 부상했으며, 유엔군 40,670명이 전사하고 104,280명이 부상했다. 또 민간인 373,599명이 학살당하거나 사망하고, 229,625명이 부상했다. 그리고 320만의 피난민과 30만의 전쟁미망인, 10여만명의 고아를 양산했다. 또 1천만의 이산가족은 아직도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전쟁의 책임을 엉뚱하게도 이승만 정부의 북침을 주장하고, 이에 동조하는 한국 내의 좌빨 지식인들은 “사실상 6월 25일 새벽에 누가 먼저총을 쏘았는지를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주장하거나, 심지어 논리적으로 어색하다고 여겨 ‘남침 유도설’까지 퍼뜨려 왔다. 그러다가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에서 기밀문서가 해제되어 6.25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자 더 이상 이승만 정부의 전쟁책임론을 주장하는 자는 사라졌다. 그러면 이제 북한은 최소한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6.25에 대한 사과를 민족 앞에 진솔하게 해야 옳다. 그런데도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수 차례에 걸쳐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도 6.25에 대한 사과 한 마디 없다. 그러면서도 주둥아리로는 말끝마다 ‘우리민족끼리’를 내뱉는다. 이 얼마나 역겨운 모순이란 말인가.6.25의 민족적 비극은 왜 일어났나? 두말할 필요없이 해방정국의 좌·우익의 첨예한 갈등과 북한 공산집단의 적화야욕에 기인한 것이다. 역사적 진실은 시대가 지났다고 달라질 수 없다. 아무리 북한을 두둔하는 좌빨 지식인들이 그것을 왜곡하고 감추려 해도 이미 밝혀진 진실을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진실을 가린채 손을 맞잡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진실은 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날조된 역사는 오히려 후손들을 나약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므로 가해자는 반드시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는 큰 아량으로 용서하며 서로 화합하는 곳에 평화가 있는 것이다. 잘못을 가리고 덮고 가려고 하다간 또다시 그 참혹한 역사는 되풀이 된다.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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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7-05
  • 우리민족끼리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은 당시 계엄군을 이끈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과 화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거기에는 평화가 없다. 신군부 세력이 아직 잘못을 시인하거나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충일을 앞두고 이달 초, 청와대는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들을 초청해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다. 거기에서 6.25에 아버지를 잃은 김성택 씨는 “화해와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킨 침략자의 사과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과없이 화해하는 평화를 말한다면 또다른 위선이고 거짓평화이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지적은 옳은 주장이다.이미 6.25는 해방 후 북한 공산집단을 이끈 김일성이 일으킨 민족전쟁임이 명확히 밝혀졌다. 전쟁의 참화로 군인뿐 아니라 민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희생자를 내었고, 조국 강산은 완전히 초토화 되었다. 부모를 잃은 고아와 남편을 잃은 아내의 하염없는 눈물이 하수를 이루었다. 이 엄청난 비극을 그저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덮을 수 있는 일인가? 당연히 남북이 6.25의 상처를 덮고 역사의 장으로 넘기려면 가해자인 북이 진정성을 담아 사과하고, 남의 유족과 국민들이 용서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난 후 비로소 화해가 가능한 일이다. 이런 선행 절차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내미는 평화는 허위의식이고 가짜이다.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인민군은 소련군의 사주를 받아 38선 전지역에서 일제히 남침하였다. 그로부터 3년 1개월 2일동안 국토의 80%가 점령되고, 한국군 137,899명이 전사하고, 450,742명이 부상했으며, 유엔군 40,670명이 전사하고, 104,280명이 부상했다. 그리고 4만명이 넘는 군인이 포로되었거나 실종되었다. 민간인 희생자뿐 아니라, 1천만의 이산가족의 아픔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이런 엄청난 일을 벌이고도 ‘우리민족끼리’만을 내세우는 북한에 대해 정부가 사과 한 마디 요구하지 않고, ‘평화’만을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아직도 마르지 않는 유가족의 눈물과 이산가족의 통곡은 어디로부터 위로를 받아야 하는가.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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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6-21
  • 한기총의 시국선언문에 대하여
    한국교회 보수교단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문재인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의 발표와 기자회견으로 인해 정교분리원칙 위배라는 비판이 비등하다. 우리나라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것이고, 이어 제20조는 정교의 분리를 명기하고 있다. 1항은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유민주 국가가 갖는 가장 중요한 사회규범이다.양심의 자유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종교 신행(信行)의 믿음과 행위이다. 1항은 종교자유를 보장하는 포괄적 의미에서 신(信)을 말하는 것이고, 2항은 종교가 정치권력에 관여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이 종교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행(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국가안전보장과 질서 그리고 공공복리를 위배하는 경우에 한해서 종교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헌법 제37조 2항).이번에 한기총의 시국선언문과 문 대통령 하야 기자회견은 종교인의 신앙행위의 자유로서, 그것이 과연 국가안전보장과 질서 및 공공복리에 위배하는가 하는 문제를 논해야지, 목사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논리는 옳지 않은 것이다. 지적한 대로 헌법의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는 말은 정치가 종교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지, 종교가 정치권력에 대해서 말해서는 안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런 주장은 정교분리를 핑계로 종교를 탄압하려는 발상에서 나오는 것이다.특히 기독교의 목사는 왕권을 보호하고 전통을 고수하려는 제사장직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직, 즉 예언자에서 계승되는 직분이다.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왕과 방백과 제사장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일탈을 비판하고, 시정토록 해야 할 책무가 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목사가 우리사회 지도자들의 일탈행위를 지적하지 않으면 누가 그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가? 지도자가 잘못 판단하고, 잘못 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 아무 말도 않는 것은 ‘벙어리 개’(사 56:10))라는 예언자의 말이 딱 들어 맞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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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6-21
  • 돌들이 소리치리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의 문 대통령 '하야' 시국선언이 일파만파를 만들고 있다.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보수파 연합단체가 지난 5일, 지금 “대한민국이 문재인 정권으로 인하여 종북화, 공산화되어 지구촌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위기를 맞이했다”며, “그동안 한국교회가 이루어놓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하여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연말까지 하야 할 것과, 정치권은 무너진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4년 중임제 개헌을 비롯하여 국가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자 내년 4월 총선에서 대통령 선거와 개헌 헌법선거를 실시할 것을 요구한다”고 선언하고, 이어 11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과 청와대 앞 시위, 그리고 ‘문 대통령 하야’를 위한 1천만명 국민청원 서명운동을 선언했기 때문이다.한국기독교 역사에서 그동안 시국선언문은 대체로 진보교회를 대표하는 단체에서 나왔는데, 이번에 보수교회를 대표하는 한기총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러자 내부적으로는 한기총의 현 지도부가 지나치게 편향된 정치적인 시각과 관점으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설립 목적과는 다른 일을 벌였다고 비판하고, 교계의 진보단체인 교회협은 ‘광기어린 일탈’ ‘수치스러운 스캔들’이라며,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욕되게 하지 말라”고 비난하고 있다. 사실 문재인의 좌파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국교회는 정부가 복음선교에 해악을 끼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의심해 왔다. 종교인 소득세 문제, 공영방송들의 대형 교회매도, ‘소주성’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경제정책 등이 그것이다. 교회가 이러한 정부정책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거기에 저항하지 못하고 불평만 하고 ‘기도하자’고만 하는 것은 나약한 모습이다. 문제는 한기총의 시국선언이 한기총의 총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대표회장을 비롯한 몇몇 지도자들의 정치적 색깔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인지가 시국선언의 이후 파장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동안 언제나 정부의 실정에 대해 각을 세워오던 교회협을 비롯한 진보파 연합단체가 아니라, 보수파 연합단체에서 이같은 시국선언이 나오게 된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주께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눅 19:40)는 말씀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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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6-12
  • 한국 기독교인의 신앙관
    한국 기독교는 이미 우리사회 주류종교의 위치에 있다. 기독교는 마을마다 골목마다 6만 개가 넘는 교회당이 있고, 20만명에 이르는 목회자들이 그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와 사회를 섬기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지도층에 기독교인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우리사회의 어떤 집단도 기독교만한 지도력과 결집력을 가진 조직은 없다. 그런데 왜 기독교가 우리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수구 보수적 모습으로만 비치는가? 그 답은 간단하다. 신행(信行)에 있어서 행이 신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대체로 그 교리(信)는 성경의 근본주의와 개혁주의를 보수한다. 그러나 그 가치관(行)은 세속적이고 기복주의적이다. 불교나 샤마니즘적 사고와 큰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기독교인의 가치관은 만사형통하고 잘 먹고 잘 사는데 있지 않다. 기독교인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 답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이다. 또 제2문은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주신 법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 답은 “신구약 성경에 간직한 하니님의 말씀입니다”라고 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경 어디에도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기복주의는 없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은 우리 일생의 삶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면, 자연히 주의 성령이 우리를 선한 길로 이끌어, 개인과 가족과 공동체의 삶이 행복하고 잘 먹고 잘 살게도 된다는 것이다.그런데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의 신앙의식을 보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는 커녕, 하나님을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위해 이용하려는 현세 기복주의에 너무 깊이 빠져 있다. 그래서 기독교도 다른 세속종교와 차별화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해야 비로소 우리사회에서 기독교의 존재가치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다종교 사회인 우리사회에서 기독교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말을 들어서야 되겠는가. 반드시 교회가 우리사회 변화의 중심이 되고, 축복의 근원이 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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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6-07
  • 기독교적 정당에 대해
    통칭 ‘기독당’이라 불리우는 정당이 내년 제21대 총선에도 간판을 내걸 채비를 하고 있다. 이번이 네 번째이다. 그런데 기독당의 중심에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청교도영성훈련원이 있다. 거기에다가 전 목사가 한기총 대표회장이 되면서 ‘한기총’까지 기독당운동에 휘말려들고 있다. 자칫 한국교회를 세속 정치집단화 하는 매우 위험한 도박이다.우리사회에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에 바탕한 기독교적 정당의 필요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그 정당이 반드시 기독교인들만의 정당이어서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성공할 수도 없다. 정당의 중심은 기독교 가치관에 바탕한 정치인들 일지라도 일반 대중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그것도 지역 선거구에는 낼 후보도 준비되지 않은 채, 오로지 정당투표에서 일정 표를 얻는다는 계획으로 선거에 나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꼭 기독교적 정당을 성공시키고자 한다면 긴 시간을 두고 뜻을 같이하는 정당인부터 먼저 길러야 한다.더욱이 그 정당에는 개교회를 맡고 있는 현직목사가 개입해서는 안된다. 목사는 어디까지나 후견인 역활에 머물러야지, 그 정당을 죄지우지 하는 위치에 서게 되면 결국 그 정당에도, 그 목사에게도, 그 교회에도 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유럽의 경우, 목사가 정당 활동을 하는 경우는 많이 있다. 그들은 모두 목사직을 사임하고 정당에 당수도 되고, 총리도 되고, 대통령도 되었지, 현직에서 개교회 목회를 하면서 정당을 이끈 예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정당활동도 넓은 의미에서 하나의 ‘목회활동’, 즉 목민활동(牧民活動)이기 때문이다.건국초기에는 우리 정당사에도 목사들이 여럿 참여했다. 해방 후에는 국회뿐 아니라, 지방의 지자체에도 많은 목사 출신들이 활동했다. 지금도 정치하기를 원하는 목회자는 개교회 목회를 그만두고 정치에 전문적으로 나서는 것이 옳다. 그래서 그들이 다시 젊은 세대 정치인들을 키워 우리사회 정치문화를 변화시키는 일에 이비지할 수 있다면, 그때야말로 한국에서 기독교정치가 설 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연지골
    • 사설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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