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두 번, 아침 저녁으로 반드시 드리던 가정예배.
그때마다 아홉 자녀의 이름을 빠짐없이 부르며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음성은
팔십이 넘은 지금도 나의 귓가에 또렷이 들립니다.”
C채널은 <사랑하고 그립고 보고싶은 어머니>(이후 <사.그.보 어머니>) 일곱 번째 손님으로 할렐루야교회 원로목사이자 트리니티신대원대학교 명예총장으로 재직 중인 김상복 목사가 출연했다.
평양에서 태어나 주기철 목사가 섬기던 산정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자적 신앙으로 훈련받은 김상복 목사는 어린 나이에도 신사참배 거부나 주일 성수의 원칙을 절대적으로 지키며 자랐다. 아직 어린 상복에게 이에 따르는 핍박과 환란은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이었지만 어머니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강인한 신앙의 기준은 그에게 가장 큰 본이 되었고 중심을 잡는 용기의 원천이 되었다.
“부모님은 이북에 계신데, 형과 누나를 따라 엉겁결에 남쪽으로 내려오게 됐어요. 고아와 다름없는 삶을 살았죠. 그래도 온전히 주님만을 의지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붙잡고 외롭고 힘든 시간들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매달렸어요.”
김상복 목사는 의지할 것 하나 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만을 붙잡고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에서 폭포수처럼 흐르던 눈물을 추억하던 김상복 목사는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며 당시의 외롭고 간절했던 마음을 나누었다.
“삶의 모든 순간마다 아무 것도 없던 저에게 가장 좋은 것들을 허락하셨어요.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은혜를 누구보다도 풍성하게 받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만 붙잡으라는 신앙을 물려주신 어머니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하나님은 김상복 목사가 미국에서 학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동시에 북에서 살아계시는 어머니의 소식을 듣게 하셨고, 우여곡절 끝에 만날 수 있게 하셨다. 북한 체제 아래에서 꺼질듯한 36년을 힘겹게 살아오신 김상복 목사의 어머니는 신앙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김상복 목사를 통해 타오르는 불꽃이 된 것을 목도했다. 김상복 목사는 그 기적의 순간을 떠올리며,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에 없이 1, 2부로 편성되어 두 주간 시청자들을 찾아가는 <사그보 어머니> 김상복 목사 편을 통해 신앙이라는 가장 큰 유산을 남겨주신 어머니를 기억하며, 우리의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어머니가 되기를 소망하고 선포하는 귀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