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2(일)

연지골
Home >  연지골

실시간뉴스

실시간 연지골 기사

  • 교단통합의 원칙과 분리주의의 위험-이 광 호 목사
    이번 가을 총회를 앞두고 몇몇 교단의 통합 소식이 들린다. 원래 모든 참된 교회들은 하나의 교회이다. 여러 지역에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지 교회들이 존재하지만 하나의 보편교회에 속해 있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지체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에서 함부로 잘라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몸에 누가 감히 근거 없이 함부로 칼질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원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참된 교회들은 항상 하나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하며 연합을 추구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외부로 드러나는 조직과 형식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과 연관된다. 세상에 흩어진 모든 참된 교회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가을(2015년), 일부 교단들 사이에 통합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우선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 교단들 가운데 필자의 관심을 끄는 대상은 예장 고신측과 고려측의 통합이다. 고려측은 1976년 제26회 고신 총회 때, “교회의 세상법정에서의 소송 문제”로 인해 분열된 교단이다. 즉 신학적인 문제가 양 교단이 분리된 핵심 이유이다. 양 교단의 통합문제가 필자의 각별한 관심을 끌게 되는 까닭은 필자가 속한 실로암 교회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실제적 교단 통합을 논의할 때 보편교회를 염두에 두고 그 원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물론 특정 교단들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을 논의하는 모든 교회들이 주지해야할 사항들이다. 교단간의 통합을 추구하는 이들은 분명한 원리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안을 진척시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의도하지 않은 또 다른 분열을 도모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한 교단 통합을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을 기억해야만 한다. 첫째, 교단간의 통합은 정치적인 수완으로 성사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서로 간 이해득실을 따지는 일종의 타협이 될 수 있다. 둘째, 몸 불리기 혹은 교단을 키우려는 불순한 동기가 없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적인 욕망이 반영된 것 이상 아니다. 셋째, 신학적인 성실한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신학적 해석 책임이 있는 기관을 통한 교리와 신앙고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모든 기득권은 완전히 포기되어야 한다. 통합이 이루어진 후에는 출신 신학교나 과거의 교단적 배경이 어떤 영향을 끼쳐서도 안 된다. 다섯째, 통합하려는 교단에서는 과거에 대한 철저한 살핌이 있어야 한다. 만일 지난 날 부당한 분리행위가 있었다면 그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자칫 안으로는 부당한 교권을 휘둘러 참된 교회를 잘라내고, 밖으로는 정치적인 통합을 외치는 위선에 빠질 수 있다. 개체 교회의 규모가 크고 작은 것이 근본적인 문제가 될 수 없듯이 교단의 외적인 규모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흡수 통합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큰 교단이라 해서 성숙하거나 온전한 것이 아니며 작은 교단이라 해서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만일 외형적인 조건으로 인해 자부심을 가진다면 그것은 교회론 부재로 인한 착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성실히 살피지 않은 채 작은 교회라 해서 멸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가장 무서운 악행이다. 힘없고 나약한 성도들을 신학적인 충분한 검증 없이 교단에서 축출하거나 분리하는 것은 참된 교회로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분리주의적 행태로서 감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인위적으로 갈라놓은 악행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다수 교단들은 그에 대한 인식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덩치 큰 교단들은 더 큰 덩치를 만들기 위해 주변을 살피며 타 교단에 접근을 시도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눈에 거의 띄지 않는 작은 교단과 교회에 대해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오만한 태도를 보인다. 나아가 자신의 분리주의적 행태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반성조차 없다. 본질을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통합이 아니라면, 외형만 취할 뿐 심각한 분리적 요소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통합을 시도하는 교단들은 하나님 앞에서 진지한 자세를 가지기 바란다. 그리스도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종교적인 야망이나 욕망의 대상으로 여긴다면 차라리 통합하지 않는 것이 낫다. 건전한 신학과 신앙을 배경으로 한 참된 통합이 이루어짐으로써 보편교회의 실질적 하나 됨이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5-09-18
  • 교회를 ‘무당 절간’ 운영하듯이 하지 마라
    한국교회에는 어떤 원칙이나 법치가 통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그 사회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원칙을 제공하는 공동체인데, 한국교회에는 그 윤리적 도덕적 원칙이 무시된다. 이혼한 목사가 청춘 남녀의 결혼식에 버젓이 주례를 하며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어떤 범죄에 연루되어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도 자숙기간 없이 강단에서 설교를 한다.그러다가 교회에서 이런 것이 문제가 되어 교회에 분쟁이 생길라치면 자기를 지지하는 패거리들을 모아 교회를 둘로 나눈다. 대부분이 지연, 학연 등 인간적 이해 관계로 얽힌 사람들이 집단을 구성해 새로운 교회를 형성하는 것이다. 법치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불교에 ‘무당 절간’이라는 것이 있다. 밖으로 보기에는 여타 절간과 별반 차이가 없는 사찰이지만, 그 내용은 개인이 멋대로 운영하는 독립 절간이다. 거기에는 소속 교단 간판도 있고, 정통교단에서 공부한 승려도 있다. 그러나 그 절간의 설립자와 운영하는 사람은 따로 있어 여차하면 그 사찰이 제3자에게 팔릴 수도 있고, 자식에게 상속도 할 수 있는 개인 사찰을 흔히 무당 절간이라고 한다.지금 한국기독교에 마치 이 무당 절간처럼 운영되는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 교회에는 버젓한 소속 교단도 있고, 정통교단 신학교에서 공부한 목회자도 있지만, 교회를 설립해 운영하다가 여차하면 제3자에게 팔거나 그 자녀에게 세습하는 교회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무당 절간처럼 운영되어서는 안된다.인류 구원의 비밀을 지닌 하나님의 교회를 마치 무당 절간처럼 하나의 종교사업체로 전락시키는 이러한 세속적 행태는 성령이 운영하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종교인 몇 사람 밥먹여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것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는 무슨 학교나 회사나 어떤 종교기관과는 다르다.그러므로 한국교회는 교회론을 바로 가르쳐야 한다. 세상에 모든 법과 원칙은 교육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교육이 바로 되면 그 사회나 집단은 바르게 운영된다. 교세를 늘리는 것보다 바른 교회론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연지골
    • 사설
    2015-09-18
  • 문화재와 종교편향
    산세가 뛰어난 전국의 명산에는 빠짐 없이 절간이 들어 서 있다. '전통사찰'이라 불리는 이들 절간은 모두 정부의 종교문화재로 등록되어 관리되고 있다. 그래서 절간 관리를 위해 관광객이나 등산객에게도 입장료를 받는다. 그 입장료가 얼마가 걷쳐서 어떻게 쓰이는지는 절간을 관리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또 정부는 매년 전국의 전통사찰 보호를 위해 수백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심지어 강풍에 기왓장 하나라도 파손되면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수리한다. 그들 절간은 신도들의 헌금 없이도 유지된다.이들 전통사찰들은 오랜 것은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부터 내려오면서 중건된 것도 있고, 조선 시대에 지어진 것도 있다. 대부분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절간들이다. 그 역사만 봐도 당연히 문화재가 된다. 뿐만 아니라, 그들 사찰 안에는 불교와 관련된 온갖 종교문화재가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깔고 앉은 수십만평씩의 부지는 불자들의 헌금으로 마련된 것이 아니고, 대부분 왕조 시대에 왕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국유재산이라고 봐야 한다.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복지를 떠안은 것은 불교의 사찰이 아니라 교회였다. 그런데 이제 살만해지니까, 정부는 불교를 전통종교로, 유교를 전통문화로 분류하면서,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기독교는 우리 땅에 비교적 늦게 들어 왔다는 이유만으로 외래종교로 폄하한다. 국가의 종교지원 예산은 90% 이상을 불교에 쏟아부으며 반기독교 정책을 쓰고 있다. 종교편향의 대표적 사례이다.그런데도 불교는 기독교인 대통령이 나오면 제일 먼저 '종교편향'이란 말을 들고 나와 정권의 기를 죽인다. 김영삼 정부 때도 그랬고, 이명박 정부 때도 그랬다. 오로지 대통령이 교회의 장로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주 사소한 행정처분까지도 트집잡아 대통령이 종교적 편향심을 갖고 있다고 시비했다. 그러면 정부와 여당은 절간으로 쫓아가 불교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겠노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은 심지어 공무원 사회의 자발적 기독교 신우회 모임까지도 시비하며 공직사회의 종교활동을 방해했다. 이는 명백한 기독교 선교를 억압하는 행위이다. 한국 기독교가 불교의 이같은 행태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
    • 연지골
    • 사설
    2015-09-18
  • 기복주의에 잠식당한 설교
    ◇초기 기독교의 설교는 ‘나사렛 예수가 왜 그리스도인가’에 맞추어져 있었다. 사도들은 이를 증거하기 위해 예수의 탄생, 사역, 죽음, 부활을 증언한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예수의 생애는 구약에 이미 예언되어 있음을 역설한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는 마리아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남으로써 비로서 성경에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선재(先在)한 존재로서, 인류의 구원자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는 것이 박해 속에서도 초대교회의 설교였다. 여기에는 어떤 개인의 경험이나 철학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더우기 성령의 역사와 인도가 강조될 뿐, 기복(祈福)이 개재될 공간은 없었다.◇그러나 기독교가 로마사회의 하나의 합법적 종교로서 자격을 얻고, 나아가 로마의 국교화 됨으로써, 로마사회 내에 있는 온갖 민족의 종교적 문화적 관습들이 기독교에 습합되기 시작했다. 개인의 종교적 체험이 강조되고, 성경해석과 신학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설교도 변질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교회는 설교의 통일성의 필요를 느끼고 4세기부터 8세기까지 전체 공의회를 열고 교리를 통일했다. 그것을 우리는 고대 에큐메니칼 공의회라고 부른다. 기독교는 325년 니케아회의부터 787년 니케아회의까지 신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등을 통일하고, 통일성을 강조했다. 교회의 모든 행사는 통일된 의전(儀典)에 따랐다.◇중세교회의 설교에서 통일성이 강조되자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의전에 따른 교회의 가르침은 획일화 되고, 이에대해 다른 소리를 내는 자는 모두 이단(異端)으로 몰린 것이다. 심지어 신학훈련을 받지 않은 평신도는 성경을 읽는 것까지 금지되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이단설을 주장할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종교개혁은 이 통일성만으로는 성경의 말씀을 바르게 전달할 수 없다며, 다양성을 역설한 운동이다. 이제 설교는 획일화를 벗어나 다양화 되었다. 그러자 여기에도 부작용이 나타났다. 설교에 개인의 경험이나 온갖 철학이 개재되어 제 멋대로 성경이 해석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보편적 기독교를 부정하는 또다른 이단들이 나타났다.◇현대 기독교 개신교파 가운데는 많은 교파가 의전이 따로 없다. 이 주간에 설교자가 어떤 성경 본문을 읽고, 어떤 주제의 설교를 해야 한다는 지침도 없다. 설교자가 멋대로 본문을 정하고 설교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경우 과연 그것이 설교인지, 만담인지 분간하기 어렵고, 심지어 무당의 점괘인지, 철학관의 예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온갖 잡소리가 석여 나온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삶의 복음’으로 소시민의 종교적 심성에 야합하려는 심각한 기복주의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기복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바로 서려면 설교에서 기복주의를 몰아내야 한다.
    • 연지골
    • 연지골
    2015-09-17
  • ‘참회’와 ‘회개’
    ◇참회(讖悔)와 회개(悔改)는 같은 의미이다. 그러나 그 뜻은 많은 차이를 갖는다. 불교에서 쓰는 참회는 뉘우칠 참(讖), 뉘우칠 회(悔)이다. 앞의 뉘우칠 참은 자신이 지난 과거의 저지른 잘못을 뉘우치는 것이고, 뒤의 뉘우칠 회는 앞으로 저지를 수 있는 잘못에 대해 뉘우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에서 쓰는 회개는 뉘우칠 회(悔), 고칠 개(改)이다. 앞의 뉘우칠 회는 지난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비는 것이고, 뒤의 고칠 개는 앞으로 그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이다.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일에 대해 두번 다시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悔)는 많으나 거기에 개(改)가 따르지 않는다면 온전한 회개가 될 수 없는 것이다.◇회개는 잘못된 죄의 길로 가던 것을 돌이키는 것이다. 그 길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길임을 알았다면 돌이켜 다시는 그 길로 가지 않는 것이 회개이다. 그런데 상습범들의 회개는 잘못을 깨달았다며 용서해 달라고 울고불고 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그 길로 들어서 같은 죄를 저지른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끊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회개가 이 상습범들의 회개와 닮았다. 하나님 앞에 모여서 회개기도를 할 때는 그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어놓고 얼마 못가 다시 그 이전의 길로 간다. 죄로부터 잠간 돌이켰다가 다시 되돌아 간 것이다. 그리고는 지난 번에 용서받은 잘못을 또 하나님 앞에 꺼내놓고 용서해 달라고 빈다. ◇참회는 스스로 깨달아 조심해 남에게 해(害)를 끼치지 않는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며, 회개는 하나님에게 잘못을 용서받고 사람이 완전히 변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가치관이 변하지 않았다면 진정으로 회개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설교의 주제는 언제나 ‘회개’여야 한다. 회개 없이는 사람이 변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 회개는 많으나 변화가 없는 이유는 온전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복과 축복은 서로간에 경쟁심만 부추길 뿐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만들지 못한다. 기독교의 생명력은 회개에 있다.◇천국에 합당한 백성은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은 사람들이다(행 3:19).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마 3:2, 8-9)고 선언했다. 예수님 또한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노라”(눅 5:32)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초대교회의 설교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하는 것”(행 20:21)이었다. 하나님을 등지고 죄를 향해 가던 사람이 성도(聖徒)가 되려면 그 길을 돌이켜 한번 진정한 회개를 해야 한다. 이것이 즉 ‘구원의 회개’이다. 그리고 구원받은 사람은 삶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유혹과 실수에 대한 ‘성화의 회개’도 항상 해야 한다. 이것이 곧 온전한 회개(悔改)이다.
    • 연지골
    • 연지골
    2015-09-04
  • 저출산시대 극복 위한 한국교회의 사명-장헌일 원장
    우리나라 출산율은 올해 추정치 기준 1.19명으로 세계 최하위권으로 나타났다. 미국 중앙정보국 월드팩트북이 합계출산율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는 224개국 중 219위를 기록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최하위를 차지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에 저출산·고령사회의 프레임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사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경고음이 울린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1997년부터 출산율이 1.45명으로 떨어져 초저출산국에 진입했고, 결국 2001년에 1.3명 밑으로 내려간 이후 13년째 1.3명 미만을 기록하고 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에 이어 내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세대’란 말이 등장하더니 ‘꿈’과 ‘희망’까지 놓아버린 ‘7포세대’까지 이른 현 세대를 반영하는 슬픈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중 가장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되는 저출산, 출산기피 현상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결혼 시기가 점차 늦어지고 있고, 심지어 결혼 이후에도 육아비용 부담과 자녀의 교육문제 등의 이유로 저출산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저출산 문제 극복을 위한 ‘한국교회와 함께할 수 있는 효과적인 출산장려’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방안을 제언한다.먼저 종교시설을 활용한 어린이집 활성화 대책이다. 2014년부터 새로 시행되는 출산장려지원제도에서 국·공립어린이집 105곳을 신설하기로 결정 되었다. 또한 연 평균 150개씩 늘려 2017년까지 600곳을 확충한다고 한다. 전체 보육 아동 중 직장, 국공립, 공공형 어린이집 이용 아동 비율을 작년 26%에서 2017년에 30% 이상 늘린다는 계획이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종교시설 활용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다음은 종교적 사회봉사 차원의 접근 방법을 통한 비영리적 운영모델이 필요하다. 최근 잦아지고 있는 보육사고 발생으로 낮은 위탁 신뢰도를 극복하여, 양질의 보육을 위해 책임과 헌신, 그리고 종교적 사명감으로 높은 위탁신뢰도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또한 비영리적 운영 접근으로 육아에 대한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 시켜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교회가 위탁 관리하는 것이다.하지만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되려면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교회 내부의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단기간 내 양질의 어린이집 개설 증대가 가능하고 우수한 보육환경과 낮은 보육료로 양질의 어린이집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부모의 선택권 확대에 기여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직장 어린이집 개설 지원과 같은 정부차원의 제도적 개설지원이 요구된다. 1층 시설만 인허가 가능한 현행 제도에 대해 안전을 갖춘 다면 2층도 가능하도록 규제 개선이 필요하. 또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중 하나로 국내 입양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 2012년 8월, 입양가족 허가제로 변경되며 입양신청수는 23% 감소했다. 입양의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혼혈·연장아동은 국내입양이 어려운 상황이. 입양에 대한 편견(입양가정, 장애·혼혈·연장아동입양, 절차의 복잡함 등)을 개선하는 활동을 통해 다문화, 장애인 등이 연계된 사회문제를 다음과 같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먼저 지역별 입양 네트워크 구성입니다. 입양 가족들간의 정보교류 및 멘토 역할과 교회 유휴시설을 모임 장소로 제공하여 입양공동체를 형성한다. 특히 TV와 뉴미디어를 통한 공익 광고와 함께 TV 스팟 광고, APP, SNS, 홈페이지 배너광고 등을 활용하여 다양한 입양공동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와 같은 정책시행과 함께 한국교회가 범교단적으로 연합하여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상설기구로 생명존중운동본부를 설치하여야 한다.특히 청소년생명존중 기독NGO 연대의 조직화(네트워크)를 통해 청소년 자살 방지를 위한 각 교단 내 기독 NGO를 연대하여 공동정책수립과 대정부, 대국회와 정책 사업을 공유하여 전국화 시키고 확산해 나가야 한다.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공공성과 공교회성을 회복하여, 생명존중운동과 함께 저출산·고령사회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도록 모든 힘을 모아 실천해 나가는 일이다. -장헌일 원장
    • 연지골
    • 토요시평
    2015-09-03
  • 한국교회도 난민 문제에 관심 가져야
    지금 전세계는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밀려드는 불법 난민은 하루에도 수천명씩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유럽 땅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죽음으로 내몰린다. 지중해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오는 난민의 무덤이 된지 오래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헝가리를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던 아시아계 난민 71명이 오스트리아에서 트럭 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너무나 비참한 일이다.그런데 유럽사회는 이들 난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 반이민정책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만은 예외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독일로 오는 난민을 모두 받겠다고 선언했다. 독일의 난민정책이 바뀐 데는 지난 6월 개최한 ‘독일 개신교회의 날’ 행사에서 채택한 선언에 기인한다. 이날 독일교회는 유럽사회가 난민 문제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독일정부에 전달했다. 목사의 딸 메르켈도 이 집회에 참석해 축사했다.독일교회는 매 2년에 한 번씩 ‘독일교회의 날’ 행사를 갖는다. 여기에서 교회가 채택한 사회적 이슈는 독일정부에 전달되고, 독일정부는 대체로 정부정책에 이를 반영한다. 독일교회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다.우리나라에도 많은 아시아계 노동자들이 들어와 불법체류를 하며 난민신청을 하고 있다. 불법체류와 난민 문제는 당국이 신중히 처리해야 하겠지만, 이 문제는 한국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당사자에게는 인권과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다음 주부터 한국기독교의 68%를 차지하는 장로교회의 총회가 일제히 열린다. 갈갈이 찢어져 있어 큰 영향력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장로교회가 전국에 4만5천여 개에 이른다. 당연히 총회에는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이슈가 제기되고, 총회는 여기에 답을 내어놓아야 한다. 이를 외면하고 총회 내부의 종교적 문제만을 논의하고 끝나는 것은 낭비이다.그동안 교회가 추구해온 ‘분단과 통일’만이 사회적 이슈가 아니다. 우리사회 공동체가 안고 있는 제반 사회적 문제 즉 ‘화해와 치유’ ‘양심적 병역 거부’ 등에도 적극적인 답을 내어 놓아야 한다. 그것이 교회가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 연지골
    • 사설
    2015-09-03
  • 신학대학 구조 개혁과 운영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 평가 결과 ‘부실 대학’으로 평가된 4년제 대학 가운데 신학대학 또는 신학대학을 갖고 있는 미션스쿨이 다수 포함되었다. 이들 대학들 중 A에서 E까지 등급을 매겨 D와 E등급은 정원이 감축되고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이나 국가장학금, 학자금 대출 등이 전면 제한을 받게 된다.이번에 발표된 ‘부실대학’(D+,D,E)에 포함된 4년제 대학은 모두 32개로, D+등급은 16곳, D등급은 10곳, E등급은 6곳이다. 이 중에 신학대학 및 신학과를 가진 대학으로 D+등급에 평택대, 안양대, 나사렛대, 그리스도대, 중부대가 들어 있고, D등급에 강남대, 한영신학대가 있으며, E등급에 루터대, 서울기독대가 있다.정부는 지난 2013년 고교 졸업생 숫자가 현재 56만명에서 2023년 40만명까지 줄어 들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학정원을 조정하려는 계획으로, 이른바 ‘대학 정원 16만명 감축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에따라 이번에 ‘대학 구조 개혁’ 차원에서 이같이 발표된 것이다.이들 신학대학들은 그동안 한국교회에 필요한 목회자들을 양육해 왔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장은 이들 신학대학 출신들의 헌신에 기인한다. 따라서 어떤 모양으로든 한국교회의 지원이 절실하다. 자기 교파 또는 자기네 교단 소속 대학만이 아니라, 뜻있는 교인들이 신학대학을 후원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가야 한다.대학도 스스로 많은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 먼저는 구조 개혁이다. 그리고 학생을 모집하고, 장학금 등을 모금할 때 교단 안팎의 뜻있는 유지들을 움직여 대학을 후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돈 있는 성도들이 그 돈을 자녀들에게 상속하기 보다 대학에 맡겨 후학을 키우는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기부해야 한다. 한국교회에는 상당히 큰 기업을 운영하는 실업인들이 많지만 그 사업에서 얻은 잉여금을 대학이나 교회에 기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회를 바꾸고 교회를 바꾸는 것은 교육밖에 없다.지금 한국 기독교에는 62개의 신학대학이 있다. 이 중 16개 대학은 종합대학 안에 있는 신학대학이고, 19개는 대학원대학이며, 나머지 27개는 교파나 교단의 신학대학이다. 신학대학을 육성하는 것은 곧 교회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 연지골
    • 사설
    2015-09-03
  • 왜 한국교회는 민족 평화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나
    남북이 휴전선에서의 긴장으로 일촉즉발의 전운에 휩싸였다가 고위급 접촉으로 가까스로 전쟁상황은 모면했다. 이번에도 역시 북측의 도발로 벌어진 일이다. 남쪽의 평화통일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이번에 보여준 남북간 긴장조성은 세계가 한반도 문제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임시방편으로 합의된 남북의 교류만으로는 언제 다시 트집잡아 긴장국면을 조성할지 모르는 일이다. 따라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과 남북이 한 자리에 앉아 한반도의 평화를 논의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것은 남북에 살고 있는 한민족이 참으로 못난 민족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어쩌다가 이념이란 것을 끌어다가 민족간 전쟁을 일으키고, 외세에 의해 분단된 민족이 70여년 동안이나 갈라져 총부리를 서로 겨누며 전쟁의 공포 속에 살아간다는 것이 세계인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말이다.2차 대전 이후 지역 문제로, 민족 문제로, 이념 문제로 갈라졌던 모든 나라들이 이제 모두 통일되었다. 한반도만 남은 것이다. 뿌리도 같고, 언어도 같고, 글도 같은 한 민족이 하나의 통일된 국가를 이루기가 이렇게도 어려운 것인가? 여기에 교회가 아무 역활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또한 부끄럽다.한국교회는 우리사회에서 가장 큰 사회적 조직을 갖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 6만여 개의 교회가 있고, 여기에 1천만의 교인들이 매주 한 번 이상 모여 말씀을 듣는다. 어떤 조직도 이만한 모임을 갖지 못한다. 그런데도 민족통일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무능함이다. 교회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면 되었지, 그 안에 진보니, 보수니는 왜 따지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는 진보나 보수 따위가 필요없다.한국교회는 무조건 하나되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서는 남북통일에 교회의 역활은 없다. 통일기도회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갈라진 교회안의 형제들부터 하나로 통일하라. 그래야만 하나님은 민족의 통일도 허락하실 것이다.
    • 연지골
    • 사설
    2015-08-28
  • 동성애 어디까지 가나? -유 만 석 목사
    지난 6월 서울시청 앞에서는 동성애 퀴어축제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국민들이 그렇게 반대하고 문제점을 제기해도 서울시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동성애자들의 입장을 수락한 것이다. 지난해 신촌에서의 경우를 보면, 반나체에 가까운 동성애자들의 거리 행진이, 뜻 있는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것을 생각하면, 분명 ‘음란공연’으로 보아야 하는데, 이를 서울시에서는 ‘문화축제’로 규정하여 방임한 것이다. 이런 짓을 일반인들이 거리에서 행했다면, 반드시 법의 규제를 받았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동성애자들은 한국의 유력한 지자체로부터 보호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또 동성애를 지지하는 미국 및 서구의 외국대사 17명이 동성애 퀴어축제 퍼레이드 현장에 나와서 동성애자들을 지지했다고 한다. 과거 이런 나라들은 동성애를 철저히 죄악시 했었고, 심지어 ‘정신병목록’에 넣었던 나라들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는 ‘동성결혼’을 인정하고 남의 나라에까지 동성애를 허용하라고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 기존의 윤리와 사회적 가치와 질서를 무시하는 ‘문화 침탈’이자, 우리나라의 윤리규범에 대한 ‘내정간섭’이다. 그러고 보면, 동성애는 단순히 소수자가 아닌 국제적으로 네트-웍을 구성한, 막강한 권력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성애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시작되었다. 지지난 해(2013) 동성 결혼식 행위를 한, 김 모 씨와 또 다른 김 모 씨는 서대문 구청에 ‘혼인신고’를 했지만, 구청이 이를 법적 근거가 없다고 거절하자, 이를 서울 서부지방법원에 <불복신청서>를 내어 법원은 비송사건(내용을 비공개)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서대문구청이 관련법 헌법 제36조 제1항의 양성평등원칙과 민법 제800조에서부터 제843조까지의 ‘혼인관련 법조항’에 의해, 거부한 것을 법원이 심리하기로 받아들인 것이다. 분명 헌법 제36조 제1항에서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兩性)의 평등을 기초로 하고 있다’그런가하면 지난 6월에는 미국의 대법원이 지난 40년간 미국 내에서 동성결혼 문제의 논쟁을 끝내는, ‘동성결혼 합법’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던, 대법관 한 사람의 결정이 결국 미국 전체 국민들의 양심의 소리까지 송두리째 앗아간 것이다.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에서, 하나님이 금하신, 동성애를 합법화시켜, 신앙과 진리에 조종(弔鐘)을 울리는 순간이었다. 법관 한 사람이 국민을 대표할 수 있는가?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지난 달 1일부터 여성가족부에서 ‘양성평등기준법’을 시행하여 남녀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각 지자체에게 ‘조례’를 만들어 시행하라는 것을 기화로, 일부 지자체에서는 ‘동성애 항목’도 슬쩍 끼워 넣었다. 어이없는 일이다. 공무원들까지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시대가 된 것인가? 기막힐 일은 또 있었다. 지난 4일, 82세의 나이로,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우리나라의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을 만나면서, 한국의 소수자(동성애)보호를 강조했다고 한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한국이 변화될 것이란 전망으로 한국을 압박하였다. 일련의 이런 사건들은 왜 일어나는가? 갑자기 일어나는 것인가? 아니다. 지난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동성애 단체가 청소년보호위원회를 상대로 낸 진정 사건에 대해서, ‘동성애 사이트는 청소년유해매체 아니다’라는 권고를 하게 된다. 사실상 사회 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성관계의 보루(堡壘)를 국가 기관이 깬 것이다. 그 이후 동성애 사이트와 카페는 청소년들의 ‘성적 일탈 창구’가 되었고, 호기심 많은 수많은 청소년들을 동성애에 빠지게 하였다. 지금은 동성애자 온라인 커뮤니티가 동성 성매매를 하는 경우까지 발생하여, 우리 사회 미래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동성애 사이트와 카페를 속히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해야 한다. 또 국가인권위는 한국기자협회와 함께 2011년 ‘언론보도준칙’을 발표해, 사실상 언론들이 동성애에 대하여 부정적인 보도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언론 통제’ 역할을 한 것이다. 동성애 문제는 결코, ‘성소수자’나 ‘성정체성’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성의 자유와 방종은 결국은 인류의 파국으로 몰아 갈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의 경계가 더욱 요청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5-08-28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