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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의 추억과 현실
- 올해로 6·25전쟁 70주년을 맞는다. 70년 전 북한의 김일성은 중공과 소련의 지원 하에 3·8선 전역에서 남침 전쟁을 일으켰다. 그래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공산군의 수중에 떨어지고, 1달 만에 전국토의 90%를 공산군에게 뺏기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미국과 유엔군이 참전하여 나라를 지키게 되고, 완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됨을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70년 전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 세계의 독립국 90여국 가운데 60여 개국이 이 전쟁에 참여하거나 협력했으니, 가히 세계적인 전쟁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성경에서처럼,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후 70년 만에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는 기쁨이 한반도에도 올 것을 기대했는데, 느닷없이 북한의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6월 초에 ‘삐라’ 담화를 발표하면서, 남북은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고 있다. 탈북민들이 보낸 소위 ‘삐라’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북측이 드러내면서, 개성 공단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는 어이없는 일까지도 벌어졌다. 연락사무소뿐만 아니라, 뒤편의 건물 등 우리 돈으로 지은 건물과 재산 700여억 원의 물적 손해를 유발시키고도 북한은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그럼 김여정이 말하는 ‘삐라’가 대체 무엇이기에 그런 강수를 두고, 그 동안 쌓인 남북 간의 신뢰까지 폭파시키는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나는 어렸을 때, 우리 마을과 학교 가는 길에서 심심찮게 북한에서 보낸 삐라를 본적이 있다. 이것을 주우면 곧바로 학교로 가져가거나 지서(지금은 지구대, 경찰)에 갖다 주면 연필이나 공책(노트)을 받곤 하였다. 이제는 수십 년이 지나서, 삐라를 주을 때의 두근거림은 추억처럼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삐라 때문에 남북 간에 초긴장이 빚어질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사실 한반도에서의 삐라의 역사는 꽤 길다. 우선 삐라라는 말은 영어의 ‘전단지’에 해당하는 ‘Bill’과 일본어의 비속어인 ‘비라’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이는 오래 전에 남북 간에 심리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서로가 적진에 뿌렸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 상태에서도 쌍방은 삐라를 뿌린 것으로 나타난다. 1960~1970년대 한국과 유엔군 측에서는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는 사연과 월남(越南) 방법과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알리는 내용을 보냈다. 반면에 북한 측은 유엔군을 대상으로 가족들이 기다린다는 식으로, 외국 병사들의 향수를 자극하여 전의를 상실하게 하고 내부를 이간질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또 1980~1990년대에 한국에서는 수영복을 입은 미인들을 내세워 북한 병사들의 귀순을 유도하는 내용이 많았다. 반면에 북한 측은 미군은 살인마, 흡혈귀 등 부정적인 존재로 부각시키고, 김정일은 추켜세우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1988년 한국은 올림픽을 개최하여 북한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비약적인 경제 발전, 정치 민주화를 가져오면서, 체제 경쟁에서 북한은 밀리게 되고, 삐라 살포도 주춤하게 된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와 탈북민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에 의하여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내용들이 다양하게 북한 지역에 살포되게 된다. 이에 대하여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한국은 북한과 다르게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또 폐쇄된 북한 체제의 특성상 북한의 문제점을 잘 모르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삐라가 상당한 사실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져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번에 삐라 사건을 지적하면서 김여정은 탈북민들을 ‘사람값에도 들지 못하는 쓰레기’라고 까지 표현하였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까지 싸잡아서 비난한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와 공산·독재주의에 대한 비교는 끝난 것이며, 그 결과는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한보다 경제력이 앞섰던 북한이 이제는 한국과 비교하여 50배의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이번에 발끈한 것은 비단 ‘삐라’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핵과 미사일 개발로 인한 유엔의 대북제재는 북한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이제는 삐라가 추억 속에 남아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 남북 간 예측하기 어려운 대치 국면이 되고, 작은 삐라 앞에서도 흥분할 수밖에 없는 북한 측의 절박함은 어느 정도일까? 북한은 세계와 공산 국가에서도 유일하게 3대 세습으로 72년 이상 독재·공산 정권을 끌어오고 있다. 그 동안 주민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 속임수와 인권 유린의 혹독함을 북한 주민들이 알게 될 때, 그것은 심리전에서 사용하는 삐라의 문제가 아니라, 김일성 3대가 그 동안 공들여 만들어온 독재정권에 가해지는 위력이, 핵폭탄보다 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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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의 추억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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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의 추억과 현실
- 올해로 6·25전쟁 70주년을 맞는다. 70년 전 북한의 김일성은 중공과 소련의 지원 하에 3·8선 전역에서 남침 전쟁을 일으켰다. 그래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공산군의 수중에 떨어지고, 1달 만에 전국토의 90%를 공산군에게 뺏기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미국과 유엔군이 참전하여 나라를 지키게 되고, 완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됨을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70년 전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 세계의 독립국 90여국 가운데 60여 개국이 이 전쟁에 참여하거나 협력했으니, 가히 세계적인 전쟁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성경에서처럼,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후 70년 만에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는 기쁨이 한반도에도 올 것을 기대했는데, 느닷없이 북한의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6월 초에 ‘삐라’ 담화를 발표하면서, 남북은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고 있다. 탈북민들이 보낸 소위 ‘삐라’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북측이 드러내면서, 개성 공단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는 어이없는 일까지도 벌어졌다. 연락사무소뿐만 아니라, 뒤편의 건물 등 우리 돈으로 지은 건물과 재산 700여억 원의 물적 손해를 유발시키고도 북한은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그럼 김여정이 말하는 ‘삐라’가 대체 무엇이기에 그런 강수를 두고, 그 동안 쌓인 남북 간의 신뢰까지 폭파시키는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나는 어렸을 때, 우리 마을과 학교 가는 길에서 심심찮게 북한에서 보낸 삐라를 본적이 있다. 이것을 주우면 곧바로 학교로 가져가거나 지서(지금은 지구대, 경찰)에 갖다 주면 연필이나 공책(노트)을 받곤 하였다. 이제는 수십 년이 지나서, 삐라를 주을 때의 두근거림은 추억처럼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삐라 때문에 남북 간에 초긴장이 빚어질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사실 한반도에서의 삐라의 역사는 꽤 길다. 우선 삐라라는 말은 영어의 ‘전단지’에 해당하는 ‘Bill’과 일본어의 비속어인 ‘비라’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이는 오래 전에 남북 간에 심리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서로가 적진에 뿌렸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 상태에서도 쌍방은 삐라를 뿌린 것으로 나타난다. 1960~1970년대 한국과 유엔군 측에서는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는 사연과 월남(越南) 방법과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알리는 내용을 보냈다. 반면에 북한 측은 유엔군을 대상으로 가족들이 기다린다는 식으로, 외국 병사들의 향수를 자극하여 전의를 상실하게 하고 내부를 이간질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또 1980~1990년대에 한국에서는 수영복을 입은 미인들을 내세워 북한 병사들의 귀순을 유도하는 내용이 많았다. 반면에 북한 측은 미군은 살인마, 흡혈귀 등 부정적인 존재로 부각시키고, 김정일은 추켜세우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1988년 한국은 올림픽을 개최하여 북한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비약적인 경제 발전, 정치 민주화를 가져오면서, 체제 경쟁에서 북한은 밀리게 되고, 삐라 살포도 주춤하게 된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와 탈북민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에 의하여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내용들이 다양하게 북한 지역에 살포되게 된다. 이에 대하여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한국은 북한과 다르게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또 폐쇄된 북한 체제의 특성상 북한의 문제점을 잘 모르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삐라가 상당한 사실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져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번에 삐라 사건을 지적하면서 김여정은 탈북민들을 ‘사람값에도 들지 못하는 쓰레기’라고 까지 표현하였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까지 싸잡아서 비난한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와 공산·독재주의에 대한 비교는 끝난 것이며, 그 결과는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한보다 경제력이 앞섰던 북한이 이제는 한국과 비교하여 50배의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이번에 발끈한 것은 비단 ‘삐라’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핵과 미사일 개발로 인한 유엔의 대북제재는 북한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이제는 삐라가 추억 속에 남아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 남북 간 예측하기 어려운 대치 국면이 되고, 작은 삐라 앞에서도 흥분할 수밖에 없는 북한 측의 절박함은 어느 정도일까? 북한은 세계와 공산 국가에서도 유일하게 3대 세습으로 72년 이상 독재·공산 정권을 끌어오고 있다. 그 동안 주민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 속임수와 인권 유린의 혹독함을 북한 주민들이 알게 될 때, 그것은 심리전에서 사용하는 삐라의 문제가 아니라, 김일성 3대가 그 동안 공들여 만들어온 독재정권에 가해지는 위력이, 핵폭탄보다 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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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의 추억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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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흑인들의 문제에 관한 단상
- “일반적으로 아녀자(兒女子)란 말 속에는 약자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지 않나 여겨진다. 이는 미국사회에서 흑인(黑人)이란 말 속에 약자라는 뜻이 깃들어 있는 경우와도 유사하다. 흑인들 가운데서도 약자 아닌 강자, 이를테면 위대한 스포츠맨이나 이름난 연예인처럼 몇몇의 흑인들은 확실히 강자임에 틀림없지만, 일반적으로 흑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힘없는 약자들로 인식된다.” 이는 필자가 지난 토요시평 <아녀자들의 문제에 관한 단상>이란 제목의 글 속에서 썼던 구절의 일부이다. 그때 필자가 아녀자들의 문제에 관해 다루는 글 속에서 왜 갑자기 흑인의 문제를 끄집어들였던지 잘 모르겠지만, 결과는 오히려 시의 적절한 게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차피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에 관해 다루기 시작했다면, 아녀자들의 문제에 관해서뿐만 아니라, 특히 요즘 크게 문제시되고 있는 미국의 사회적 약자들인 흑인 문제에 관해서도 다루어야 할 계기를 만들어주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나마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요즘 특히 미국 흑인 피의자들(범죄 혐의를 받는 자들)에 대한 미 경찰들의 대응 자세가 일정한 한도를 벗어나고 있는 문제와 관련된다. 제3자인 우리가 바라보기에는 흑인 피의자를 다루는 미 경찰들이 적법(適法)한 대응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기에 앞서, 과연 그들(경찰)도 인간인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물음을 불러일으키게 만든 당사자들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문제(범법 문제)를 다루는 일선 실무자가 먼저 인간이어야 하는데 그들(경찰)이 전혀 인간이기를 포기한 존재들이라고 한다면 그 문제의 심각성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보겠다. 법을 집행하여 범법자(피의자)들을 취체함으로써 사회적 안정 유지(또는 치안 유지)에 기여하겠다는 자세로 공적(公的) 위치에 임해 있는 사람들이 불법과 탈법을 마치 밥 먹듯이 자행하고 있다면 이들이 과연 공인으로서의 경찰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간(흑인) 피의자들이 불법을 행하는 것과 공인으로서의 경찰이 탈법을 자행하는 것을 같은 레벨에서 비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느 모로 보나 경찰은 민간 범법자(피의자)보다는 한 수 위여야 한다. 그만큼 윤리적인 면에서 비교적 우월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미 흑인 조지 플로이드(46세) 압살 사건만 놓고 보더라도 그 경찰의 만행이 극에 이르렀음을 부정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플로이드의 목을 무려 8분46초 동안이나 무릎으로 누르고 있었던 경찰은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경찰이) 결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려주었다고 보아 틀림이 없다. 그는 아예 그(플로이드)를 죽이겠다고 작심한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목이 졸려 죽을 것 같다’고 하소연하는 피의자를 그렇게 오랫동안 누르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살인죄이다. 피의자를 잡아 법정에 세우겠다고 하는 경찰이 그러기 전에 자기 일개인 선에서 그를 죽여버리겠다고 작심했다면 그것은 엄연한 살인행위이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도 함부로 죽이지 못한다. 그들의 생명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그 어떤 인종인가를 불문하고 동등한 차원에서 존귀하게 생명을 부여하셨으니, 생명에 대한 인식에 그 어떤 인종차별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이 사건에 대한 전 세계의 비판적 여론이 비등해지자 미 검찰이 그 가해 경찰을 몇 급의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고 하며, 그 현장 주위에 있었던 서너 명의 경찰들도 방조자들로 함께 기소했다고 한다. 그 흑인의 목을 그렇게 오랫동안 무릎으로 짓누르고 있었던 경찰도 문제였지만, 그 옆의 경찰들 어느 누구도 그 만행을 말려보려고 노력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던 게 그 현장을 바라본 제3자인 우리들에게는 분통터질 일이었다. 그만큼 미 경찰들이 그런 잔인한 일에도 무신경한 지경에 처해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들려오는 소식은 여전히 미 경찰이 피의자에 대한, 또는 부당함에 항의하는 이들에 대한 그 목누르기 행위를 그친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플로이드 사건 며칠 뒤에도 어느 여인이 그와 똑같은 만행에 걸려들어 이젠 나도 플로이드처럼 죽는구나 하는 생각을 다 했었다고 보도되었다. 그리고 플로이드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말하자면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고 그로 인해 정상인 아닌 상태로 돼버린 이들이 무수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미 경찰의 통렬한 자기반성과 그에 따른 인도주의적 실천만이 남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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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흑인들의 문제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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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문제, 새로운 도전 앞에서
- 지난 18일 총신대학교(이하 총신대) 재단이사회는 이 모 교수(조직신학-생명윤리)에 대하여 ‘해임’처분 결정을 내렸다. 이는 이 교수가 지난해 가을 학기 동성애의 문제점을 강의하는 가운데, 일부 여학생들이 성적 수치심을 느껴 이것이 ‘성희롱’ 사건으로 비화된 것이다. 총신대의 “성희롱·성폭력예방과 처리에 관한 규정”에 보면, ‘성희롱이라 함은 성범죄 행위의 구성여부에 관계없이 교육, 업무, 고용, 기타 관계에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일체의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기준은 ‘피해자의 합리적·주관적 판단을 원칙으로 한다’고 정한다. 이 문제가 지난 해 불거져 나오자 총신대에서는 <성희롱·성폭력대책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대책위원회에서는 이를 ‘성희롱’으로 보지 않아 징계하지 않기로 결의했으나, 재단이사회는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지난 3월 총장의 제청을 얻어 징계위원회에 회부한 것이다. 이 결정을 함에 재단이사회는 ‘성희롱 발언과 그에 따른 2차 피해 유발, 학내 문란 등의 이유로 해임 한다’고 명시하였다. 학내 문란 못지않게 총신대의 정체성 문제도 결코 가볍게 볼 수는 없다고 본다. 이번 재단이사회의 결정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결정을 하였다기보다, 동성애 반대에 입을 틀어막겠다는 것으로 비춰진다는 의견들도 있는데, 현재 총신대의 재단 이사는 관선 이사로 구성되어 있어 신학대학의 독특성과 특수성, 그리고 고유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는지 궁금하다. 이미 학내 대책위원회에서 결의한 것을 무시하고, 재단이사회가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결정을 다르게 한 것은, 신학대학에서 가르치는 것의 기준이 되고 성경에 근거한 ‘동성애’ 문제와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다른 측면에서의 문제를 파생시키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해 1월 합동교단 56명의 노회장들의 입장문과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의 이 모 교수 징계 반대 집회를 ‘진영 논리로 학교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본 것은 과잉 대응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와 관련하여 기독교계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9일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에서는 총신대에 공문을 보내, 이상원 교수에 대한 해임 결정 취소를 요청하였다. 이유는 ‘한국에서 성경적 개혁신학에 가장 충실해야 할 학교 중의 하나인 총신대학교가 더 이상 성경적 입장에서 생명윤리를 말하지 않고, 세상 방식으로 윤리 문제에 접근하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1일 <성산생명윤리연구소>도 성명을 발표하였다. ‘동성애의 문제점을 의학적·과학적으로 강의한 내용을 성경적 기준이 아닌, 사회적 성 인지 감수성 기준으로 해임을 결정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라는 것이다. 또 23일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25인은 입장문을 통하여 ‘이 교수가 지난 20여 년 동안 수천 명의 후학을 가르치며 보여준, 신학의 교훈과 신앙의 귀감을 생각할 때 해임 결정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학교의 신학적 정체성, 신학교육의 일관성을 고려해 이번 중징계를 고려해 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현재 총신대 신학대학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도 졸업생과 재학생 등 300여명이 이 모 교수의 해임을 철회해 달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이 교수에 대한 해임 결정은, 단순히 한 개인의 신상의 문제가 아니라, 향후 동성애 문제에 대한 응전의 변수가 될 것으로 본다. 지난 21일 총신대 이 모 총장은 “교원 징계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했는데, ‘총장인 저를 비롯하여 총신의 모든 교수들은 결코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용인하지 않으며, 일관되게 그리고 확고하게 그러한 입장을 유지할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총신대 교수로서 거의 유일하게 드러내 놓고, 반동성애 진영에서 싸워온 이 모 교수의 해임에 대한 책임과 철회를 위해 힘쓰는 것만이, 자신의 확고한 입장을 증명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이 모 교수의 해임은 ‘반동성애’를 위해 지금까지 싸워온 것에 대한 공격이 아니겠는가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총신대가 성희롱으로 촉발되어 동성애에 대한 소극적인 자세로 바뀐다면, 한국의 대표적인 신학대학의 정체성에 손상을 입게 될 것인바, 이는 성경적, 신학적, 신앙적 관점에서도 큰 것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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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문제, 새로운 도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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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녀자들의 문제에 관한 단상
- 영국 배우 리처드 버튼이 16세기의 영국 왕 헨리8세로 분장, 출연한 영화 <천일의 앤>을 오래전에 보았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 영화 가운데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는 것은 비운의 왕비 앤이 마지막 단두대에서 망나니가 칼을 휘두르기 직전 그(망나니)를 향해 얼굴을 비호같이 빠르게 돌리던 때의 그녀의 그 번쩍이던 눈빛과, 그리고 그 처형이 끝나고 난 직후 짙푸른 하늘 아래 처형장의 잔디밭을 아장아장 걸어가고 있는 세 살짜리 어린 딸의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왜 그 장면이 지금도 나의 머리에서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선명하게 각인돼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나는 거기에서 이른바 아녀자(兒女子)들의 서글픔 같은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게 되었는지 모른다. ‘어린이와 여자들’의 서글픈 삶의 역사, 그게 바로 인류의 역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던 것 같다. 왕 헨리8세는 후계자가 될 왕자를 낳지 못한 죄(?)에다가 엉뚱하게도 딸의 왕위계승권까지 주창한 앤을 간통죄로 누명을 씌워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하였다. 그 결과가 어린 딸 엘리자베스로 하여금 이후(일생 동안) 어머니 없는 아이가 되어 홀로 외롭게 살아가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주로 방콕 신세가 되어, 막강한 리모콘 운영권을 지닌 나의 내자가 즐겨 시청하는 중국 역사드라마를 나도 모르게 그냥 따라보는 시간이 많게 되었다. 그러다가 나도 흥미를 크게 느끼게 된 중국 사극이 ‘사마의2-최후의 승자’란 TV극이었다. 이 극이 끝나고 났음에도 나의 머리를 떠나지 않고 선명하게 각인돼 있는 장면이 위나라의 세 번째 황제 치하에서 ‘대장군’직을 지녔던 조상 장군과 그의 어린 아들이 모반죄로 함께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때의 모습과, 특히 처형장에서 어린 아들이 죽어가던 때의 그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당시 모반죄는 3족을 멸한다는 법에 의해 아버지만이 아니라 어린 아들까지 함께 처형장으로 압송해 갔던 것이었는데, 자기가 무슨 일로 손이 묶이어 끌려가는지도 모르는 세 살의 어린 아들이, 길가에서 민요를 부르며 따라오는 동네 어린이들의 그 흥겨운 노랫가락 때문이었는지 자기도 흥이 나서 개구쟁이처럼 싱글벙글 웃으며 따라가고 있는 장면이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러나 더욱 시청자들을 울렸던 결정적인 장면은 어린 아들이 참형을 당할 때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그의 어미가 옆에 놓인 약사발을 들어 아들에게 먹여주려 애를 쓰고, 아들은 그 물이 역해서인지 그걸 거듭 뱉어내고 하면서 서로 실랑이를 벌이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처절한 장면이었다.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야만 했던가? 한마디로 ‘욕망’ 때문이었다. 대장군 조상이 나이 어린 황제를 퇴위시키고 그 자리를 자기네가 빼앗고 싶어 했던 그 권력욕이 부른 참극이었던 것이다. 그 자신이 모반죄로 참형을 당하는 일이야 자기 책임 때문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더라도, 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의 목숨까지 희생시켜야만 했는가 물었을 때 그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의 그 욕망 때문에 죄 없는 그의 ‘아들과 아내’가 함께 극단의 비극으로 치닫게 되었던 것이니, 나는 여기서 예의 그 ‘아녀자(兒女子)들의 서글픔’ 같은 것을 다시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녀자(兒女子)란 말은 한마디로 약자라는 말과도 같다. 약자라고 표현하기가 무엇한 아녀자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아녀자란 말 속에는 약자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지 않나 여겨진다. 이는 미국사회에서 흑인이란 말 속에 약자라는 뜻이 깃들어 있는 경우와도 유사하다. 흑인들 가운데서도 약자 아닌 강자, 이를테면 위대한 스포츠맨이나 이름난 연예인처럼 몇몇의 흑인들은 확실히 강자임에 틀림없지만, 일반적으로 흑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힘없는 약자들로 인식된다. 이와 비슷한 원리로, 우리 사회에서 아녀자들은 일반적으로 약자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강자인 성인(成人) 남성 중심의 지배 사회가 오래 지속되어온 결과라고 보겠다. 그런데 요즘 들어 미투(me-too)운동의 여파 때문에서인지, 어떻든 여성들의 파워가 점차 강해져가고 있는 현 추세라고 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일반적으로 아녀자들 모두가 강자로 인식될 정도로의 환경 변화가 그렇게 빨리 다가올 것 같지는 않다. ‘박사방’이니, ‘n번방’이니 하는 디지털 성범죄의 사례들이 우리에게 타산지석으로 가르쳐 주었듯이, 우리는 강자인 성인 남성 중심의 사회로부터 벗어나 약자인 아녀자들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그런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이 ‘가정의 달’을 맞아 새로이 다짐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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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녀자들의 문제에 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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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위 표제어는 1970년대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자매 트리오인 ‘쿨씨스터즈’가 부른 유행가 가사 가운데 하나이다. 내용은 공부해야 할 학생이 공부는 안 하고 데이트만 하다가 시험 준비를 못하고, 낭패스럽다는 내용이다. 지난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끝났다. 이번 총선을 보면서 이 말이 생각난 것은 왜일까? 국민들은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거대 여당을 만들어 주었을까? 이번 총선에서 여당은 300의석 가운데 무려 180석을 얻었다. 국민들이 표를 준 비율로 따지면 여당에 5, 야당에 4를 줬지만, 실제적인 의석수로는 2:1로, 여당이 압승을 거둔 것이다. 소선거구제가 갖는 현상이다. 오직 1등만 당선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여당의 180석에 친여적(親與的)인 진보성향의 의원까지 합하면 190석이 된다. 국회에서 한 당이 180석이 되면, 어떤 법안도 다른 당의 도움 없이 처리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이 주어지게 된다. 이번에 여당이 180석이 된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한번도 없었던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동안 국민들은 대통령이 속한 정당을 견제하기 위하여, 지방선거나 총선에서는 야당을 다수당으로 만들거나, 집권 여당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야당의 세력을 만들어 주었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집권 여당에게 마음만 먹으면 헌법 개정 외에, 어떤 법안이라도 통과시킬 수 있는 큰 권한을 쥐어 주게 되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중앙정부, 지방정부는 물론, 사법부를 장악하고 있다. 거기에다 집권당이 거대 여당이 되어, 이번에는 입법부를 장악하게 되었다. 뿐만이 아니라 제4부의 권력이라는 언론도 손에 쥐었고, 제5부의 권력이란 주요 시민단체도 대부분 현 정부에 우호적이다. 이렇게 되면 현 여당은 국무총리, 대법관, 헌법재판관을 뜻대로 임명할 수 있고, 국회의장과 국회의 주요 상임위원장을 대거 차지할 수 있다. 엄청난 권력이 현 정권에 부여되는 것이다. 이제는 민주국가의 핵심인 삼권분립도 무색하고, 그 힘에 의한, 어떤 모습이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현재도 정부 여당에 대하여 ‘오만하다’는 평가가 있어왔다. 그런데 여기에 더 큰 힘을 실어주었으니, 국민들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격은 아닌지? 힘이 한쪽으로 쏠릴 때 나타나는 현상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독선’ ‘독주’ ‘독단’ 심지어 ‘독재’까지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국민들도 이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집권 3년이 된 지금 시기는 현 정권의 실정(失政)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심판 성격을 띠어야 했는데, 오히려 하고 싶은 대로 더 해 보라는 식의 밀어주기는 뭔가를 불안하게 한다.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여·야간에 건강한 견제와 균형, 협치(協治)와 통합이 마땅한데, 이것을 절묘하게 맞추지 못하다니. 사실 이런 거여 구도는 현 여당에도 오히려 많은 짐을 안겨 주리라고 본다. 그동안 여당은 정치가 뜻대로 안 되면 야당의 탓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푸념(?)이나 부정도 통하지 않게되었다. 또 어떤 법안을 만들었을 때에도, 그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집권당이 져야 한다. 이제 걱정되는 것은 한국교회이다. 아마도 21대 국회가 개원되면, ‘차별금지법’을 비롯한 교회를 옭죄는 법안들을 대다수 만들려고 할 것이다. 지난 2013년 차별금지법을 만들려고 66명의 국회의원들이 발의했을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당시에도 더불어민주당(당시는 민주통합당)의원이 대부분이었고, 일부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 의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차별금지법 속에는 ‘독소 조항’이 있었는데, 성적지향(동성애)과 성 정체성(트랜스젠더)이 있었고, 전과(前科)에 대한 것, 사상과 정치적 견해, 그리고 종교에 대한 것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을 ‘차별금지’조항에 넣을 경우, 우리 사회의 근본을 이루는 윤리, 도덕, 가정해체, 양심과 종교에 대한 제한과 모독, 국가 정체성의 파괴 등 다양한 면에서 많은 혼란이 올 것으로 예견된다. 그래서 기독교계에서는 그 동안 이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것이 아닌가!한국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기독교의 가치관과 성경 말씀이 무시되고, 폄훼될 것이 뻔한데 그대로 두고 볼 것인가? 정치와 권력에 의하여 기독교의 가치관과 정체성이 훼절될 때, 한국교회는 정말 어떻게 할 것인가?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후회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닐 것이다. 단단한 결의와 결기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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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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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첫 열매
- 각급 학교의 금년 1학기는 온라인 수업으로 끝날 것 같다. 우리 손주들이 한창 활동량이 많을 때에 집안에만 있게 하니 갑갑증이 심한가 보다. 손자가 진지하게 질문한다. “할아버지 공부를 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나는 대답대신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할아버지 고향에는 참외농사를 많이 하는 곳인데 참외를 저녁에 심어서 아침에 따먹을 수 없단다. 씨를 심고 싹이 나고 덩굴이 뻗어나고 눈보라와 추위를 견딘 후, 꽃이 피고 나서 참외는 콩알만하게 열리지만 또 밤낮을 보내고 시간이 흘러 비로소 노란 참외, 맛있는 과일이 열리게 된단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참외를 얻을 수 없단다. 인내와 수고, 땀 흘리지 않고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듯이 공부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말했다.우리는 강한 결과주의 병에 걸려 있다. 움직이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수고의 땀을 쏟아 붙는 과정이 생략된 영광의 결실만 얻으려고 하는 사고와 행동양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한 계단 한 계단 모진 비바람을 이기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붙잡고 굵은 줄을 붙잡고 한탕을 잘해서 성공을 노리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병이 만연해 있다. 이 병이 우리사회의 약점이다.십자가 없는 부활의 영광, 고난이 없는 행복, 눈물이 없는 성취, 땀 흘림이 없는 성공을 얻으려고 하면서 과정이 생략된 영광을 사모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독생자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구원도 기복신앙이 되었고, 세속적인 가치와 축복이 전도의 도구가 되기도 하였다. 이것을 신앙의 유일한 열매로 삼고 있다.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있다. 우리는 다시 부활절을 맞았다. 신앙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이라는 것을 새롭게 깨달아야 한다. 행복과 기쁨, 영광됨에 앞서 내가 누구냐? 왜 하나님의 독생자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나? 하는 그 의미와 가치가 아니라 사실에 관한 것을 인정해야 한다.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은 하나님이 누구시며 나는 누구냐 하는 것을 가장 잘 드러낸 계시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 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라고 고백을 하는 것이다. 그 말씀은 요한복음 1장이 선언하는대로 곧 하나님 자신이시고, 세상의 창조자시며, 우주의 섭리자이시다. 그가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시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여기에 우리의 신앙의 초점이 있는 것이다.내가 얼마나 복 받았느냐? 영광스러우냐? 성공의 자리에 섰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이 약속하셨고 명령하신 것 속에 내가 있지 아니하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복이고 영광이고 성공이라는 것이 위태로운 것일 뿐이다. 죄와 허물로 죽은 내가 나의 부활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 때문에 우리의 전파하는 것과 믿음이 헛되지 않는 것이다.성경은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6-20)라고 했다. 기독교의 부활신앙은 우리가 믿는 도리의 근본이다. 인간은 죄로인해 누구나 죽지만 유독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으로 부활 하셨다. 성경의 기자들은 확실히 고난과 영광을 동시에 보았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함임을 확신했던 것이다.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삶이다. 이제 그리스도의 부활신앙 안에서 이 열매를 얻기까지 십자가를 지고 기쁨으로 나아가자. 이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지나서 부활의 첫 열매에 동참자가 되자.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계 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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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첫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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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첫 단추는 잘 꿰었는가?
- 우리는 위험한 시대를 어렵게 살고 있다. 지난 1월 20일에 한국에서 중국 우한발 폐렴 즉, 코로나바이러스 첫 확진자가 나왔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역병(疫病)은 이미 지난 해 12월부터 중국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한 것인데(그래서 ‘코로나19’로 명명됨) 우리나라는 한 달이 지나서야 첫 확진자가 나온 것이고, 그 후로도 2월 18일 신천지 신도에 의한 31번째 확진자가 나올 때까지도 크게 염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3월 23일 현재, 8,961명의 확진자가 나왔고(사망 118명), 세계적으로는 34만 8,449명의 확진자와 15,302명의 사망자가 나온 상태이다. 물론 완치자도 99,078명이나 나왔다. 특히 이탈리아 같은 경우는 확진자 59,138명 가운데 5,476명이 사망하여 9%대가 넘는 가장 높은 치명률을 보이고 있다. 이 코로나바이러스는 세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은 당분간 계속 될 것이고, 이로 인한 각종 손실과 고통은 이루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야말로 지금은 ‘팬데믹 패닉’(전염병의 세계적 유행)인데, 인간의 삶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고 피해를 주는 것이 경제 분야이다. 그 경제가 심상치 않다. 세계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의 경제가 2020년 2분기 성장이 최대 마이너스 50%까지 갈 것으로 전망한다고 하니, 우리나라 경제는 어떻게 되겠는가? 미국은 과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루고, 경제 대공항과 금융 위기 등을 여러 번 겪었는데,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는 이런 충격들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란 예상을 하고 있어, 무겁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성장을 보일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어, 불안한 현실이다. 그런데 중국 우한발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는 이런 경제적이고, 육신의 삶에 대한 심각한 현상과 어려움도 있지만,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영적인 삶의 예배와 신앙생활에도 심대한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이 나타나자, 국회와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재빨리 교회의 예배 중단 문제를 들고 나왔다. 지난 7일 국회에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종교집회 자제 촉구 결의안’을 의결하였다. 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종교집회 전면금지 긴급명령’을 고려중이라고 하더니, 급기야 3월 19일에 실행에 들어간다고 하였고, 박원순 서울시장도 같은 내용을 발표하였으며, 20일에는 대통령도 이를 적극 지지한다고 하였다. 정치권과 정부가 사실상 코로나바이러스 문제를 빌미로, 교회에서의 예배 중단을 공권력으로 막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발 빠르게 2월부터 문제가 발생한 교회에서 ‘온라인 예배’로 드리기 시작하였고, 2월말부터는 여러 교회들이 자발적으로 ‘영상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협력은 왜 저평가되고 있는가?정부나 지자체가 질병확산을 막겠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신천지를 뺀 정통교회에서의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지금까지 ‘교회’로 거명된 곳이 13군데 되지만, 2군데는 이단이고, 1군데는 천주교 교인들이고, 1군데는 교회가 아닌 경로당이고, 1군데는 초기 마스크 착용이 일반화되기 전의 사례였고, 3군데는 모두 음성판정이 났고, 2군데는 교회에서 예배를 통해서가 아니라 청년 수련회를 통해서였고, 3군데는 신천지의 활동과 관련되거나 된다는 의혹을 받는 곳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 전체를 잠재적 질병 확산지로 단정하여 전면적으로 예배를 제한하며, 또 수칙을 위반할 시, 구상권(求償權)까지 발동한다는 것은 아주 지나치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이런 위중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급하게 오프라인 예배를 중단하고, 온라인으로 전환했으며, 그렇지 못한 교회들은 일방적으로 예배를 중단당한 것이다. 벌써 한 달 정도를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이런 모습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 한국교회 선교 135년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일제 강점기, 6·25전쟁 중에도 예배는 쉬지 않았다. 그런데 너무나도 쉽게 예배당을 비운 것은, 권력 앞에 예속되었다는 역사적 판단의 단초(端初)가 되지는 않을까? 한국교회, 역사상 초유의 사태에서 과연 첫 단추를 잘 꿴 것인가? 이런 상황들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영적 공동체의 역동성을 상실할 것’이라고 염려한다. 또 성도들에게 은연중에 ‘신무교회주의’를 심어주지 않을까 우려한다.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바이러스에 의한 인간 공격은 자주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럼 그때마다 교회는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의 요구대로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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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첫 단추는 잘 꿰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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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종교집회 자제 촉구 결의안’을 접하고
- 코로나 19사태가 한창 진행되던 지난 2월 말 나는 고심 끝에 섬기는 교회의 성도들을 대상으로 <동석교회입장문>을 발표하고 개인톡에 발송했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 19사태가 대단히 엄중한 상황임을 인식하고 이런 상황에서 일부 개신교 대형교회와 가톨릭교회가 대중 예배와 집회를 일시적으로 폐하는 이유가 코로나19에 의해 사람이 상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고, 생명을 살리기 위한 것이며, 나아가 일반 시민과 공공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이해한다. 우리는 또한 대중 예배를 ‘모여서’ 드리는 것을 피하면서, 가정에서 혹은 영상을 통해 예배를 드리는 것도 현 상황에서 차선의 방안으로 이해한다. 우리는 대중 예배의 폐쇄를 일괄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한국 개신교 교회는 숫자가 많고,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며 대중예배를 유보할지, 최소화해서 드릴지는 교회의 구성원들이 교회의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보며, 이 경우 회집인원의 수가 얼마인지, 도시 지역인지, 이동 인구가 많은 곳인지. 노약자가 많은 곳인지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우리 동석교회는 이런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금주 한 주간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여타의 집회를 갖지 않기로 한다. 우리 동석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교회지침을 따르면서 대중 예배를 드리게 되던 유보하게 되던, 이웃 교회에 대해서는 사랑과 배려의 마음으로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혼란하고 힘든 시기에는 비판보다 서로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 동석교회 성도들은 개인위생과 건강관리에 있어서 정부와 방역당국의 지도지침에 적극 동참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오늘의 사태에 대하여 몸 된 교회일원으로서 하나님께 회개하며 코로나 사태가 신속히 진정되고 회복되기를 위하여 기도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민주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한다.>그리고 3월 1일주일부터 두 주간 째 <교회입장문>에 발표한대로 이를 시행 중이다.   그런데 지난 3월 7일 대한민국 국회는 ‘종교집회 자제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종교집회 전면금지 긴급명령’ 가능성을 자신의 SNS에 올리고 그 실행여부를 고심 중에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국회나 이재명 지사가 코로나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교회집회문제를 거론한 배경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식은 사태를 진정시키기보다 오히려 우리사회에 불필요한 대립과 논쟁을 야기 시킬 수 있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종교나 그러하지만 특히 우리 기독교는 교회조직이라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교회는 성경에 명시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매주일 정기적인 집회를 갖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주일예배 외에도 주중에도 다양한 모임과 예배가 진행된다.기독교에 있어서 주일예배는 기독교의 본질과 가치, 그 존재이유를 밝히는 상징적인행위로서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행정당국이 사태의 엄중함을 따라 부득이한 조처로 교회에 종교집회 자제를 요청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당국의 요청에 비교적 감염위험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는 대형교회들이 자체판단과 결정으로 모임을 자제하는 것은 앞서 <교회입장문>에서 밝힌 것처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국회가 이 사안과 관련하여 ‘종교집회 자제 촉구 결의안’을 채택한 일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비록 그것이 강제명령은 아닐지라도 국가의 행정력으로도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는 일을 입법부가 결의안을 채택하여 교회, 혹은 여타 종교단체에 심리적 억압을 가하는 일은 종교의 사회적 기능이나 그 구성원들의 심리적 안정의 가치를 너무 가볍게 보는 관점에 문제가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더욱이 이지사가 ‘종교집회 전면금지 긴급명령’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그 실행 여부를 떠나서 그 발상자체가 대단히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이미 한국교회는 정부와 방역당국의 지침을 따라 자발적으로 방역을 위해 노력하였고, 많은 모임들을 최소화하여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주일예배를 어떤 형식으로 드리느냐 하는 문제는 교회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 영상예배를 드리든지 가정예배를 드리든지 잠정적으로 교회 예배공간을 폐쇄하든지 그 결정을 교회가 하는 것이지, 교회가 아닌 권력 기관이 좌지우지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특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장이 행정권발동이라는 카드로 이 문제에 개입하려 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됨은 물론이요, 교회와 국가 간에 불필요한 긴장을 조성하는 악수(惡手)가 되는 것이다. 만약 이런 일이 실제적으로 일어난다면 그동안 정부당국에 협력해 온 교회들이 등을 돌리게 될 것이고 정부는 난처한 정국에 처하게 될 것이다. 우리사회가 좌파, 우파의 이념대립이 첨예한데 만일 이지사의 ‘종교집회 전면금지 긴급명령’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일부 극우파기독교의 광장집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결과가 될 것이요,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권을 향해 사회주의자니 공산주의자니 하는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극우파 기독교지도자들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이재명지사가 모임을 갖고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교회는 당국이 요청한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이 지사는 자신의 그러한 발언이 사태의 엄중함에 따른 도정 최고책임자로서의 고뇌에서 나온 방안이었으나 적절치 못한 것임을 인정하고 상호 협력하기로 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이번 코로나19사태로 인해 우리 국민 모두와 함께 정통 기독교회는 이단 집단인 신천지교로 말미암아 유형 무형의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의연한 자세로 사태의 진정과 회복을 위해 정부와 방역당국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국회의 ‘종교집회 자제 촉구 결의안’이나 이지사의 ‘종교집회 전면금지 긴급명령’발상은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것으로 마땅히 철회되어야 할 결의안과 발상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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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종교집회 자제 촉구 결의안’을 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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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잡이와 칼잡이 커크 더글러스
- 미국 서부영화의 전설적 명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지난 2월5일 103세의 장수를 누리고 영면하였다. 그의 장남으로서 부친 못지않게 영화계에서 맹활약을 해온, 오스카(아카데미)상 수상자이기도 한 마이클 더글러스를 뒤에 남겨두고 표표히 현세를 떠나갔다. 이 기회에 배우 커크 더글러스에 대하여 좀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인들(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들에 대한 대박해, 소위 홀로코스트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그보다 더 이른(앞선) 시기에 러시아인들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들에 대한 대박해, 소위 포그람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홀로코스트만큼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러시아에서의 포그람도 유대인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큰 박해였고, 그것을 참아내기 힘들었던 그들 중의 일부는 고향을 찾아 떠나는 연어처럼 옛 고향(고국) 땅으로 되돌아갔으며, 또 일부는 미국 땅으로 이민을 떠나버린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영화 <OK 목장의 결투>로 잘 알려진 미국 서부극의 명배우 커크 더글러스는 러시아인들의 포그람(유대인 박해)에 견디다 못해 미국 땅으로 이민을 떠나버린, 러시아계 유대인의 아들로 뉴욕(인근 작은 마을)에서 1916년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 그는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그리고 학비 조달을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신문배달은 기본이고 노점상, 정원사, 경비원… 등 닥치는 대로 이일 저일, 여러 일터들을 전전했던 것이다. 그는 레슬링 선수 생활로 몸을 단련했고, 그 스포츠를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이용해 생활비 또는 학비를 조달하는 데 일정액 보태어 쓰기도 했다. 어떻든 그는 “젊어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 청년 때부터의 그 고난의 삶을 자연적으로 터득하게 되었고, 거기에다 신체적 단련까지 곁들여 탄탄한 몸매와 강인한 정신력을 함께 구비한 채 자신의 앞날(은막생활)에 대비해 왔다고 보겠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스파르타쿠스>란 영화의 주인공인 노예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야무지고도 강인한 모습은 벌써 청소년 때부터 자기단련을 통해 그가 이미 습득해 지녔던 그다운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어느 영화학교에 들어가 배우로서의 기본훈련을 마친 뒤 30세란 늦은 나이에 영화계에 투신하게 된다. 일생 동안 무려 90여 편에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다고 하는데, 그것들 중에서 특히 그의 대표작들로 일컬어지는 <OK 목장의 결투>와 <스파르타쿠스>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케빈 코스트너의 서부극 <늑대와 춤을>이 나오게 되면서 할리우드 웨스턴에도 일대변화가 오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 영화는 1990년에야 나온 작품이었다. 달리 표현하자면 그때나 되어서야 썩 참신한 미국의 서부극, 곧 인디언을 진멸(盡滅)의 대상이 아닌 화해(和解)의 대상으로 삼은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1957년)에 이미 커크 더글러스 주연의 <OK 목장의 결투>가 나왔으며, 그 작품 속에 인디언들은 아예 출몰하지도 않았던 것은 매우 이색적인 일이었다고 하겠다. 지금껏 존 포드 감독의 서부극 같은 데서 ‘인디언 악당’이란 공식이 널리 통용되고 있었음을 상기해 본다면 충분히 이해될 만한 일이다. 커크 더글러스는 그 영화 속에서 포악한 인디언이 아닌 탐욕가인 백인 악당들을 무찌르는 최고의 속사포 총잡이로 그 위력을 발휘한다. 커크 더글러스는 그보다 몇 년 뒤에 나온 영화 <스파르타쿠스>(1960)의 주연을 맡아, 이번엔 불세출의 검투사가 되어 위력적인 칼잡이로서의 힘을 발휘한다. 로마 의 절대권에 대항해 노예항쟁을 이끌었던 노예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영웅적인 삶을 연기함으로써 배우로서도 완전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배우로서의 그는 이처럼 총잡이와 칼잡이로서 세상의 악(惡)과 절대권에 맞싸워 승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영화 속이 아닌 일반 현실 속에서도 총잡이나 칼잡이로 행세할 수는 없었지 않았겠는가.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도 그는 훌륭한 면을 보여준 생활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950년대 미국 사회에 소위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쳤을 때 영화계라고 해서 그 거센 바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때 소위 블랙리스트에 오른 동료 배우들을 위해 사실상 블랙리스트 철폐운동에 적극적으로 투신함으로써 총잡이나 칼잡이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는 것은 미국 영화사의 엄연한 한 페이지로 남아 있다. 그렇다고 그가 투사로서만 위대했던 것만은 아니다. 한편,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자선사업을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가 이번(생의 말년)에 자신의 사유재산 거의 전액(한화 600억원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는 엄연한 사실에서도 튼튼하게 뒷받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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