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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우리사회에서의 기독교의 위치
    오늘날 우리사회를 다종교사회라고 한다. 다종교사회란 사회적으로 대표성을 가질 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관을 공급하는 종교가 여럿이라는 뜻이다. 정부 정책상 소위 '전통종교'라고 불리는 불교가 있고, 또 '전통문화'라고 불리는 유교가 있으며, 그리고 천주교와 기독교가 있다. 이 넷은 그 사회적 영향력이 엇비슷하다. 그래서 한국의 종교학자들이 우리사회를 다종교사회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지금 우리사회는 누가 뭐라고 해도, 기독교가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여타 종교에 비해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기독교는 전국 방방곡곡에 교회당 수가 6만 개, 전임 목회자가 16만명, 신도가 1천만명에 이르는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우리사회가 전반적으로 기독교적 도덕성과 가치관이 형성되어서야 옳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사회의 지성인들이 정신적 아노미 현상을 겪고 있고, 정치적으로 사회가 혼돈에 빠지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기독교인들이 주로 이 사회를 주도하는 각 영역에서 크게 활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신앙행위에 있어서는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가족과 집안이 만사형통 하고, 또 소시민적 기복성에 만족감을 갖는 것으로 기독교인 행세를 다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생명 없는 복제신앙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는 나는 좀 힘들더라도 이 땅을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리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예수 안에 있는 개인이 복을 받고, 만사형통 하게 된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과 그 사회에 더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삶은 그 우선 순위가 달라져야 한다. 우리사회의 소시민들은 기독교에 희망을 걸고 있는데, 21세기의 한국교회가 아직도 기복주의나 개인주의에 머물러 있는 것은 한국기독교의 미래를 위해 매우 불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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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9-27
  • [사설] 목회적 봉사를 넓게 보는 페러다임의 전환 필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사회든 그 시대의 사회적 가치관은 주류종교의 가르침에서 나온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는 공산주의 이념이 곧 그 사회의 종교적 가치관을 대체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주류종교가 여럿으로 사회적 가치관이 혼재해 있으므로 다종교사회라 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론에 따른 헌법질서가 작동하고 있어 사회가 잘 조화되고 있다. 지난 1일에도 전국적으로 지자체 선거가 실시되어 질서있게 새로운 지도자들을 선출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자 선출에 교회를 비롯한 사회적 가치관을 제공해야 할 종교집단의 영향력은 매우 미흡했다. 이런 현상을 흔히 우리사회가 정치와 종교의 분리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생각은 틀린 것이다. 세속정치도 당연히 우리사회의 주류적 종교에서 그 가치관이 제공되어야 한다. 현대 우리사회 구성원의 약 절반에 이르는 인구가 종교를 믿고 있고, 그 가운데 신구교 기독교 인구는 전체 국민의 약 35%나 된다. 특히 개신교의 경우, 전국에 6만여 개의 교회당이 있고, 매 주일 그 교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신도 수는 줄잡아 약 6백여 만명이나 된다. 거기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의 말씀을 따라 인간이 살아가야 할 건강한 삶의 기본 도덕과 규범이 설파되고, 현대인의 윤리적 삶의 질서를 배운다. 그것이 곧 사회적 가치관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과연 그 기능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솔직히 지금 한국교회의 신앙은 '영육의 하나의 온전한 삶'이 아니라, 영과 육의 삶을 따로 보는 '일종의 이원론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형태는 기독교적 가치관과 거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에는 60여 개의 인가받은 목회자 양성대학이 있고, 거기에 또 각급 교단이 목회자 양성을 위해 설립 운영하는 소위 무인가 신학교가 전국에 1백여 개 이상이 있다. 이들 신학대학이나 신학교들은 하나같이 교회를 봉사하는 '목양(牧羊) 목회자' 양육에만 심혈을 기울이지, 사회를 봉사하는 '목민(牧民) 목회자' 양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에는 '목양 목회자' 못지 않게 '목민 목회자'도 절실히 요구된다. 목민 목회자는 직장선교회를 비롯해 시장, 기업, 지자체 등 사회 전반에서 목회적 봉사를 감당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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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6-28
  • [사설] 6·25 상기 72주년, 교회의 언어로 평화를 요구하라
    유물 사관을 토대로 하는 공산주의는 기독교 사상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다.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같이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사회에서 기독교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동방정교회가 대변하던 러시아와 로마 가톨릭이 지배하던 동구라파, 그리고 아직도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 등에서 그래도 교회가 살아 남았다. 그러나 그 교회가 과연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한국교회는 공산주의 또는 공산당과 기독교가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6.25 전쟁이라는 비극을 통해 몸으로 체험한 바 있다. 올해가 6.25 72주년이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전쟁 중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오로지 기독교 신앙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생명을 잃었다. 그때 정치적인 죽음은 두고라도, 순교자만 수 백명이 넘는다. 어찌 그 비참함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세월이 많이 가고 나니 한국교회 안에서도 북한 공산당에 대한 적대감이 많이 희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북한을 다른 시각으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일고 있다. 6.25를 일으키고 같은 민족 앞에 직접 총부리를 겨눈 자들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남북이 공히 전후 세대가 역사를 이끄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언젠가는 그들과도 만나는 날이 오겠지만, 북한 공산당은 핵으로 무장하고 아직도 남한에 대해 적화통일을 노리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이런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교회의 언어로 평화를 요구하는 일이다. 그 소리가 비록 미미할지라도 하나님이 듣고 일어서시면, 땅이 진동하며 열국이 전율하고 영원한 산이 무너지는 날이 오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합 3:6).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선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 약속과 이 소망을 붙잡고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통일의 그날이 올 때까지 민족에 수난을 가져온 북의 공산집단에 대한 경계의 끈은 결코 늦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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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6-28
  • [사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3월 16일) 로마 가톨릭교회의 수장 프란치스코 교황과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 키릴 총대주교 간에 줌(Zoom)으로 대화를 나눈 얘기가 한달 반이 지난 이달 초에 공개됐다. 교황은 총대주교에게 “우리는 평화의 대로를 추구해야 하고, 무기 사용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퓨틴의 잘못된 행동을 쫓지 말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그러자 총대주교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위협당하고, 서방이 소련 해체 이후에 나토를 확장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어긴 것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는 퓨틴의 주장을 되풀이 했다고 한다. 이에 교황은 “우리는 국가가 임명한 성직자가 아니고, 예수의 언어가 아닌 정치의 말을 사용하면 안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종” 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처럼, 같은 기독교신앙을 믿는 국가 간에 전쟁이 일어나 무고한 시민들과 어린이들까지 죽이는 전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70년 전 6·2 5 전쟁을 겪은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남의 일 갖지 않은 감정으로 새록새록 솟아난다. 기독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악한 자를 대적치 말며 네 오른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네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는 네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고 가르친다고 해서, 전쟁을 무조건 반대하는가. 그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평화의 종교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기독교 역시 '정당한 전쟁'은 인정한다. 정당한 전쟁이란, 전통적으로 공격이 아니라 방어하는 전쟁, 상대방의 공격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자가 그 피해를 보상 받기 위해 벌이는 전쟁을 이르는 말이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공적인 인물이 수행하는 전쟁’, 독재자나 해적 등으로부터 ‘참된 정의를 구현하고 평화를 세우기 위한 전쟁’을 정당한 전쟁으로 규정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이를 ‘ 합법적 전쟁’이라고 부른다. 성경은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고 말한다. 남의 국토와 재산을 빼앗기 위한 침략전쟁은 반대해야 하지만, 폭력과 불의로부터 양심의 자유, 국가의 평안, 재산과 생명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의 불가피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어떤 명분으로도 인정받기 어려운 ‘불의한 전쟁’ 이다. 그래서 세계가 비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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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6-14
  • [사설] 한국교회, 공부하는 목회자 시대를 열자
    세계 교회 가운데 한국교회 만큼 바쁜 목회자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교회는 매일의 새벽기도회부터 수요기도회, 금요철야기도회, 주일날 두세 차례 거듭되는 주일예배에 이르기까지 한 주간 내내 목회자가 설교를 준비하고 예배를 인도해야 한다. 거기에 심방이나 결혼주례 또 장례나 중직자들의 회갑연, 또는 시찰회나 노회 등 교회 안팎에 목회자의 참여가 필요한 온갖 모임이 있다. 그러다보니 마음 잡고 앉아 책 한 권 읽을 여유를 갖기 어려워 가장 중요한 설교 준비도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다. 설교가 재탕 삼탕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매 주 같은 시간이 되풀이 된다. 교계에는 많은 수의 출판사들이 있다. 이들 대다수의 출판사들은 목회자들에게 필요한 책을 발간한다. 그러나 15만 여명에 이르는 목회자를 가진 한국교계에서 출판사들은 기껏 초판 1000여 권을 발행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 1000권조차 소비가 되지 않아 창고에 쌓이고 재판을 하는 신간은 그리 흔치 않다. 물론 관심을 끌만한 수준을 갖춘 책을 찾지 못하는 출판사의 영세성에도 문제가 있지만, 목회자들이 자기네의 전공서적조차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목회자는 대학교수 집단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학력을 쌓은 사람들이다.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고, 3년의 신대원 및 대학원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 대학과정만 최소 8-10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다른 학문의 세계라면 이 정도 학력을 쌓으면 누구나 전문가 대접을 받게 된다. 물론 목회자 역시 전문가 중에 전문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다른 학문 세계 사람들은 전공학문의 새로운 지식을 계속 업그레이드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세계에서 남에게 뒤쳐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책 읽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목회자들이 모이면 그 화두로 이번에 어떤 책을 읽었는가 하는 것을 논하는 것을 보기 어렵다. 기껏 책에서가 아니라 인터넷에 흘러다니는 정보로 대화의 주제로 삼는 것은 너무 가벼운 처사이다. 책을 읽어야 한다. 책에서 설교가 나오게 해야 한다. 매일 성경을 읽는 것처럼, 먼저는 목회의 전공분야를 읽고, 역사나 문학 그리고 철학이나 과학적 관심 분야를 읽어야 한다. 현대교회의 설교자는 그래야 한다. 선생(先生)은 먼저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먼저 공부한 사람이다. 즉 책을 먼저 읽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책을 읽지 않고는 리더가 될 수 없다. “모든 책은 살아서 오늘 내게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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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6-14
  • [사설] 부차 민간인 학살 만행 유엔과 서방세계에 책임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결국 21세기에 상상할 수 없는 민간인 학살이라는 엄청난 만행을 저질렀다. 세계는 러시아 군대의 부차 학살 현장을 보고 민간인 학살을 막지 못한 유엔의 존재 의미를 묻고 있다. 부차 뿐 아니라 다른 도시와 농촌에서도 민간인 학살과 여성에 대한 강간 살해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아마도 이 추악한 전쟁이 끝나고 나면 1950년 한국의 6.25와 같이 우크라이나에서도 수만 수십만 명의 민간인 희생자가 나올 것으로 보여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인간은 그 속에 천사와 같은 착한 마음도 있고, 사탄과 같은 악마성도 있다. 공산주의자들의 세계관은 '인간이 중심'이라면서도 인간의 고귀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인간 속에 있는 영혼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인간이 만물보다 고귀한 영적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거기에 인권의 존엄성 따위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공산주의의 종주국인 소련이 무너지고 동구권에 자유주의의 바람이 일어나 많은 위성국가들이 독립을 선언할 때 더 이상 참혹한 전쟁은 없을 것이라 믿었는데, 러시아는 공산주의 시대의 발톱을 드러내고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전세계가 이처럼 비참한 인권유린을 목도하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 평화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거대한 유엔은 이를 막을 아무런 조치도 내어놓지 못하고 있다. 우리 말에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러시아의 퓨틴과 같은 반인륜적 만행을 저지르는 범죄자에게는 유엔의 경제적 제재만으로는 이를 막을 수 없다. 전세계가 몽둥이를 들고 일어나 러시아 자체를 조각 내 더 이상 그 힘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무고히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는 결국 망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보여주는 것이 유엔이 할 일이 아닌가. 지금의 유엔이 그런 힘을 가질 수 없다면 이를 해체하고 그런 힘을 갖는 기구로 다시 조직될 필요가 있다. 러시아군의 부차 학살 만행을 막지 못한 책임이 유엔과 서방세계에 있다. 원칙론만 내세우지 말고, 세계가 일어나 지금 당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막아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22-04-22
  • [사설] 그리스도인의 종말론적 삶과 부활
    동정녀 마리아의 태에서 난 나사렛 청년 예수가 인류의 구원자 메시야 그리스도가 된 것은 그의 부활에 있다. 예수는 공생애를 통해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이적을 베풀다 유대교의 핍박으로 고소당해 로마 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유월절 어린양으로 희생되었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린 시신을 끌어내려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고 돌을 굴러 입구를 막고 봉인했다. 영원히 그 안에서 썩어 없어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는 장사한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 40일간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시다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들리워 올라갔다. 이것이 복음서가 증언하는 내용이다. 이러한 초기 사도들과 제자들의 눈으로 본 체험을 증언하는 자들을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고, 그들의 공동체가 곧 기독교라는 종교집단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인류사회를 향한 메시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부활'에 있다. 고대로부터 인간의 부활을 상정한 개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 죽었다가 부활한다는 가르침은 기독교에서 가장 확실하게 드러난 특별한 교리이다. 인간은 영과 육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어떠한 존재와 구별된다. 유물론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초대교회 교부 오리겐은 인간론에 대해 "성자께서 창조한 영원한 세계는 영(靈)들의 세계이다. 이 영원의 세계에서 모든 영들은 동일한 영광과 덕으로 지음을 받았고, 모두 자유의지를 가지도록 창조되었다. 이 영들 가운데 어떤 것은 이 자유를 덕되고 고결하게 사용해서 선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천사가 되었다. 또 다른 영들은 그들의 자유의지를 남용해서 악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마귀가 되었다. 그러나 또 천사들처럼 복종하지도, 마귀들처럼 불순종하지도 않은 제3의 영들이 있었다. 이들이 바로 인간이 되었다. 이들 모든 영들은 동일하게 창조되었다. 천사들을 위해서는 하늘이 창조되었으며, 마귀들을 위해서는 지옥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인간을 위해서는 이 세상이 창조되었다"라고 했다. 이처럼 인간은 영적 존재로 창조된 것이다. 단지 첫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은 죄 아래 있어서 죽음이 필연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영적 존재여서 죽음으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마지막 때에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부활한다고 믿는 것이 기독교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부활의 종교라는 선언이다. 오늘도 역사 속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부활에 참여하기를 기대하며 종말론적 삶을 살아간다.
    • 연지골
    • 사설
    2022-04-22
  • [사설] 새로운 정부가 유의해야 할 대목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 결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1636만표(48.57%) 표를 얻어 1611만표(47.81%)를 득표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0.76%(25만 여표) 차이로 당선됐다. 이로써 20년 집권을 말하던 좌파 운동권 정권은 5년 만에 물러나고 우파 정권의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그러나 국회는 아직 좌파 운동권이 주도하는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선거운동 기간 동안 정치권이 무속과 신천지 등을 끌어들여 우리사회에 종교문화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종교자유를 위축시키고 우리사회를 분열시키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무속이든, 신천지든, 종교 문제는 종교계 내부의 문제로 남겨 두어야지, 애초에 정치권이 나서서 이러쿵 저러쿵 휘둘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종교자유가 있는 사회에서 그것은 믿는 자의 절대신념체계이고, 누가 어떤 종교를 믿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대표적 다종교사회이다. 다종교사회란 말은 우리사회를 대표하는 뚜렸한 주류종교가 없이 여러 종교전통이 엇비슷하게 그 가치관을 형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기독교, 천주교, 불교가 엇비슷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종교적 현상을 드러내는 민족종교 또는 무속종교 및 기성종교에서 파생한 분파적 현상들이 뒤섞여 있다. 가히 한국사회를 향해 종교박물관이라고 부르는 말이 크게 틀린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의 특정 종교에 대한 거부나 혐오는 적절치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나 사회적 가치관은 그 사회의 주류 종교 또는 지배 종교에서 나온다. 종교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회의 주류 종교의 정통성과 건강성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가치관을 공급하는 주류 종교가 기복화 되거나, 세속주의화 하여 본래적 가르침에서 일탈하게 되면 그 종교만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도 가치관의 혼돈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종교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북한사회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종교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인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가치가 종교의 자유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건강한 문화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사회 모든 영역에서 종교 활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종교가 폄훼되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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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4-10
  • [사설] 신천지에 대해 '사교'운운 하는 정치인의 망발
    20대 대선에 느닷없이 '신천지'가 소환되었다. 여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야당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윤석열 후보가 검찰총장 당시 신천지에 대한 수색영장 발부를 거부한 것으로 봐서 신천지와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우파 기독교인들의 윤석열 지지를 분열시키기 위한 마타도어인 듯 하다. 한국기독교는 신천지라면 무조건 치를 떤다는 정서를 이용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신천지는 한국기독교의 이단집단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당 후보가 선거 연설 중 신천지를 향해 공개적으로 수 차례에 걸쳐 '사교'(詐敎)라고 발언했다. 과연 종교의 자유가 있는 사회에서 '사교'란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인가? 사교란 말은 종교를 빙자하여 남을 속여 그 재산과 생명을 갈취하는 사기꾼 조직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사회에 유사종교인 '사이비교'(似而非敎)란 말은 있을 수 있어도, 사교란 말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집단이 있다면 이는 당연히 범죄집단으로서 두말할 필요없이 형사처벌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당 후보의 이 발언은 신천지에 대한 명예훼손을 넘어 심각한 종교자유의 침해로 밖에 볼 수 없다. 신천지는 기독교의 '이단'임엔 틀림 없다. 그 집단에 교주를 '보혜사'로 보는 교주우상주의가 있고,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기독교를 심각히 왜곡하고 있다. 기독교의 보혜사는 성자 그리스도와 성령을 일컫는 말이다. 즉 삼위일체 하나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이단이 된다. 그러나 이단의 문제는 종교집단 내부의 정통성의 문제이지, 결코 사회적 문제는 아닌 것이다. 설혹 신천지가 특정 정치집단과 연계되었다 할지라도, 신천지에 대해 '사교'라고 하려면 그 집단의 행태에 사교라고 일컬을 만한 어떤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거니와 사교이면 당연히 우리사회에서 척결되어야 마땅하다. 사교는 범죄집단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런데 기독교를 비롯한 기존 종교단체들도 우리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가진 유력한 정치인들의 종교에 대한 망발을 그대로 침묵해서는 안된다. 비록 신천지가 이단일지라도 그 집단을 향해 사교 운운하는 것을 용납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종교세력이 정치권으로부터 그 같은 공격을 받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 이상 종교자유에 대한 침해를 받지 않으려면 기성종교단체들이 정치인들의 망발에 경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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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2-02-22
  • [사설] 새해 첫 주일날 예배에 참삭한 여야 후보들
    지난 연초 2022년 1월 2일 첫 주, 대표적 장로교회 두 곳에 여야 대선 후보들이 각각 예배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는 용인의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서울 명성교회(김하나 목사) 예배에 참석한 것이다. 이는 오는 3월 제20대 대선에 있어 매우 상징적인 사건으로 읽힌다. 이 두 교회는 합동측과 통합측에서 각각 대표적 신흥세력으로 급부상한 교회이다. 새에덴교회는 목사가 호남 출신으로서, 교인들의 분포가 대체로 민주당 지지세가 많고, 명성교회는 설립자 김삼환 목사가 영남출신으로서, 교인들의 분포가 국민의힘 지지세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교회는 각기 이들을 교회 앞에 소개하고, 교인들은 박수로 응답했다. 여기까지는 여타 교회들이 각급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을 소개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일은 새해 대선정국에서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이 두 교회는 각기 합동과 통합의 교단적 색깔이나 정서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카리스마적 목회자의 지역색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선거에 교회세력을 이용하려는 후보들의 득표전략에 한국교회가 휘둘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어서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역주의로 표출되어서는 안된다. 한국교회는 대통령 선거를 치를 때마다 많은 휴유증을 앓아왔다. 멍청한 교회지도자들의 영웅심의 발로로 선거를 치루고 나면 교인들이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특정 후보에 대한 목회자의 호불호(好不好)는 있을 수 있지만, 여기에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를 끌어들여서는 안된다. 교회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있을 뿐 여야가 없다. 따라서 목회자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듯한 언동을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럼에도 역대 대선에서 아예 내놓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지역주의 맹주들이 있었다. 이러한 행위는 곧바로 교회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차라리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목회를 그만두고 정치권으로 나서는 것이 옳다. 그래도 이번 대선에는 진보. 보수로 갈라져 있을 뿐, 지역색을 대표하는 후보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망국적 지역주의를 이런 기회에 소멸시켜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가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3월 9일 대선까지는 주일날이 5-6번 더 남았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대형교회들이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 연지골
    • 사설
    202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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