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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은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발언할 때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경제 외교 안보 모든 분야에서 위기로 내닫고 있다. 정권을 담당한 좌파들의 퇴행적 역사인식은 반일, 반미로 치닫고 있고, 아예 종북세력이 서울 한복판에서 준동하며 자유대한민국을 조롱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행위를 막으려는 공권력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사회가 자유대한만국을 유지함에 있어 그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체제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사회는 안보불안이 심각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일본의 경제보복과 한미동맹의 흔들림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 세력은 한국교회 밖에 없다. 기독교는 전국 방방곡곡에 6만여 개의 교회당과 20여 만명에 이르는 목회자, 약 100만명에 이르는 중직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사실상 다종교사회에서 우리사회를 이끌어가는 종교세력은 기독교이다. 물론 한국교회에도 지금 시국을 보는 시각이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어떠한 정치세력도 거부한다는 점에서는 진보도, 보수도 일치한다. 왜냐면 종교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선교도, 인권도, 자유도, 정의도, 사랑의 정신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 특히 종북세력이 우리사회를 분열시키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목회자들이 '영혼의 구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역사인식과 바른 삶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야 한다.기독교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또한 여당도, 야당도 아니다. 그러나 무신론과 사회적 분열을 확책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히 타도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기독교가 복음 선포를 방해받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미 교육현장을 비롯한 각계에 좌파들의 득세로 기독교 선교가 훼방을 받고 있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특히 진보적 기독정치인이나 기독지식인들이 이 점을 인식하고 복음 선포가 훼방받지 않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기독교 선교가 방해받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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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9-06
  • 교수 사회의 삐뚤어진 가치관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국의 딸 부정입학 시비는 비뚤어진 가치관을 가진 우리사회의 일부 지식인층의 양심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특히 여기에는 우리사회 젊은 세대에 공평과 정의를 가르쳐야 할 대학교수들이 제 자식을 위해서는 공평과 정의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최대한 이용해 편법과 불법적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이들의 행위는 ‘네 아들은 내가 챙겨 줄테니, 내 딸은 네가 잘 챙겨주라’며, 자기들이 잘 아는 교육법을 악용,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 열심히 하라’며 아무도 신청하지 아니한 장학금을 지급해 가며 ‘품앗이’를 하고 있다. 그 장학금은 어떤 모양으로든 결국 자기 자식들에게로 다시 되돌아올 것이라고 하는 기대를 갖고 주는 것이다.이런 비뚤어진 가치관을 가진 기득권층의 자식사랑은 거기에 다가가지 못한 다른 자식들의 권리를 빼앗아 제 자식에게 주는 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각한 범죄이다. 특히 대학교수들이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용서 못할 죄악이다. 그래놓고도 ‘당시에는 그런 행위가 위법이 아니었다’며 제도 탓으로 돌린다. 그런 양심을 가지고 어떻게 강단에 서서 학문의 진리를 말하고, 정의와 평등을 말하는가.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한술 더 떠서 당시 이런 제도의 허점을 노리고 그 제도를 악용해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박탈한 자들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도 없이 “입시제도 전반에 대해서 재검토하라”는 지시만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우리사회 기득권층의 악습을 제도 탓으로 돌리는 결과밖에 안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 대통령이 그간 해온 주장과도 거리가 먼 태도이다.이번 조 후보자 딸의 부정 편법 입시 사건은 개인의 영달과 이익에 눈이 먼 지식인 사회의 비양심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라는 점에서 철저한 수사가 요구되는 사건이다.따라서 조 후보의 법무부장관 취임과는 상관없이, 이번 사건에 연루된 모든 학교와 교수, 학생 모두에 대한 수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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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9-06
  • 한국교회와 이단 사이비
    한국교회 주변에는 왜 말도 안되는 허탄한 주장을 펴는 이단이나 사이비들이 이토록 자주 나타나는가?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성경을 제 멋대로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하여 기성교회 교인들을 미혹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저들의 주장이 터무니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곧바로 알 수 있는데, 교인들이 어리석게도 그들의 헛된 주장에 귀를 기울인다.한국교회는 성경을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서도, 교인들에게 그 성경을 해석하는 보편적 원리는 가르치지 않으므로, 성경을 영해(靈解)하거나, 또는 알레고리(비유적)로 해석하는 자들의 주장에 쉽게 미혹되 것이다. 물론 성경해석은 영해도 있고, 알레고리도 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을 모두 영해로 풀거나 알레고리로 풀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특정한 성경구절을 자신이나 또는 자기네 집단의 목적에 꿰맞춰 해석한다. 그러다보니 거기에서 재림예수도 나오고, 보헤사도 나오고, 창조주도 나오게 된다. 저주받을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이다.오늘날 한국교회를 어지럽히는 이만희의 신천지, 안상홍의 하나님의교회 등등 수도 없이 나타나는 기독교계 신흥종교는 모두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성경은 이에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0, 21). 문제는 성경에 기록이 있다고 하여 그 구절을 글자 그대로 아무데나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중세교회가 보편적 교회의 성경해석의 원리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성경을 읽는 것조차 금지한 이유가 이런데 있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만인제사에 의해 성경을 보고 해석할 자격이 있다.사실 한국교회에는 수천명에 이르는 신학자들이 있고, 10만명이 넘는 교육받은 목회자들이 있다. 그런데도 교인들뿐 아니라, 교회의 직분자들이나 평신도 가운데 이단 사이비들의 성경해석에 솔깃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모두 기성정통교회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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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8-21
  •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불러온 참사
    10년 전에 한국으로 온 40대 탈북여성이 한국에서 낳은 여섯 살 난 아들과 함께 서울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숨진지 두달여 만에 발견되었다. 경찰은 이 모자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은 것으로 사인을 추정하고 있다. 한씨로 알려진 이 여성은 2009년 탈북해 중국과 태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하나원을 수료한 후 기초생활 생계급여로 살면서 제빵 및 요리학원에도 다니는 등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더 이상 살아갈 힘을 잃고 죽음을 맞았다. 한 씨는 굶주림을 피해 탈북하여 한국으로 왔지만, 풍요로운 한국사회에서 끝내 굶어죽고 만 것이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복지안전망이 이렇게도 허술할 수 있는 것인가. 주민센터나 구청이나 모든 기초지자체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정이 없는가를 조사하고 지원하는 복지 프로그램이 있는데, 어찌하여 젊은 여인이 어린 자식과 함께 굶어죽게 방치되었다는 것인가. 더욱이 그 지역에 촘촘히 늘어서 있는 교회를 비롯한 종교단체들조차 그들의 생활고를 눈치 채지 못하고 그들을 돕지 못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탈북자로 일가친척이나 형제자매도 없는 남한에 와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함으로써 말을 터놓고 살아가는 이웃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대도시에서는 이웃과 친분을 나누기가 더욱 어렵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겐 체면이란 것이 있어서 ‘내가 배고프니 먹을 것을 좀 달라’고 손을 내밀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지역에 뿌리를 둔 교회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또한 지역교회들이 교파나 교단을 초월하여 모임을 만들어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사들과 정보를 교환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한 씨 모자 같은 불행한 죽음이 우리사회에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생활고에 내몰린 가정이 없는지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에는 지자체의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뿐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많은 구호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단체에 전화만해도 한 씨 모자 같은 불행은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웃에 대한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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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8-21
  • 한일 관계 외교가 답이다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불만을 품은 일본의 경제 규제로 한일 관계가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이는 역대 정부가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외교로 풀어야 할 사안을 일본이 경제보복 카드를 내든 것은 헛발질을 하는 것이다. 한국은 사법부를 앞세워서 일본을 압박하고, 일본은 무역 수출규제로 한국에 경제전쟁을 선포한 꼴이어서 괜히 양쪽 국민에 반일 감정과 혐한 감정만 쌓이게 되었다.사실을 말하면 그간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과거사 문제를 다르게 대처해온 한국측이 빌미를 제공한 면이 있지만, 그 근본 원인은 두말할 필요없이 일본측에 있다. 지금 한반도 분열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내선일체를 내세운 일제의 한반도 침략에 있고, 일제 식민지 36년 간에 한민족에 저지른 죄악에 대한 배상은 단순히 한일협정으로 그 역사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다. 일본은 피해를 입은 그 세대의 요구에 어떤 모양으로든 응해야 옳다. 우리는 역사이래 한 번도 일본열도를 침략한 일이 없다. 그러나 일본은 1592년에 임진왜란으로 한반도를 침략해 7년간 수많은 희생자를 내었고, 1910년 일제 침략으로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대한민국은 해외에 임시정부를 꾸리고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떠돌았다. 일제가 한반도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남북분단도, 6.25전쟁도, 그 모든 원인제공에는 일본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전쟁에 노무자로 끌려간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수도 없이 전쟁터에서 희생되었다. 그래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그 억울함을 호소하며 재판을 해온 강제징용 피해자는 그나마 이제 몇명 남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들에게 당연히 해주어야 할 피해배상을 정부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태도는 동의하기 어렵다.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정치인들이 순전히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양국 모두 반일 감정과 혐한 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여기에 동조하는 가벼운 사람들이 애국심을 무기로 불매운동 운운하는 것 또한 옳지 않은 일이다. 한번 상한 감정을 되돌리기는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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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8-01
  • 기독교의 정체성
    기독교는 유대교의 예언자들과 예수의 사도들이 남긴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으로 믿고,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육체적 부활 그리고 나사렛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는 예수의 신성을 믿는 믿음에 기초한다. 그런데 역사적 기독교 안에는 이런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주 나타났다. 그 역사가 기껏 130여년에 지나지 않는 한국 기독교에도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 중에는 신학교육을 받은 목사도 있었고, 성령체험을 했다는 평신도들도 있었다. 어떤 목사는 신학대학에서 꽤 이름있는 유명교수였고, 또 어떤 목사는 성경을 가르치는 교목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한때 세상을 놀라게 할만한 큰 부흥운동을 이끌기도 했다.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느날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쳐온 성경을 “99% 가짜”라고 부정하고(박태선), “나사렛 청년 한 사람이 십자가에 죽었다고 하여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는 없다”며 기독교의 가장 기본교리가 되는 그리스도의 대속론을 부정하며(문익환), 또 “역사적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사람의 아들이다.” “동정녀 탄생은 과학적 사실이 아닌 신앙고백에 지나지 않는다.” “주님의 부활은 육체의 부활이 아닌 말씀의 부활, 의미의 부활이다.” “성경은 사람들의 신앙고백으로서 오류와 한계가 있는 기록임으로 문자 그대로 보면 안된다.” “기독교만이 진리라는 배타적인 생각이 사회를 분열시키고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며(류상태)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모두 부정해버렸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기독교인이라고 말한다.그러면 대관절 기독교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두말할 필요없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가 곧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 곧 그리스도요, 그가 인류를 대속하기 위해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해 승천하시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사 인류를 참진리의 길로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교회는 이 사실에 감격해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기 위해서 부름받은 사람들의 모임일 뿐이다. 그래서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산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정체성이 흔들리면 교회관도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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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8-01
  • 국회 청문회 제도 조속히 개선돼야
    국회에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대통령 맘대로 공직자를 임명할 것 같으면 청문회는 뭐 때문에 하는 것인가. 청와대는 이번에도 국민을 상대로 버젓이 거짓말을 해댄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를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없이 일방적으로 임명했다. 이 정부 들어 청문보고서 채택없이 임명된 16명째 장관급 인사이다. 괜한 전파 낭비와 국론분열만 일으키는 지금의 공직자 청문제도는 없애든지, 바꾸든지 하는 것이 옳다. 윤총장은 자신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청문과정에서 마치 조폭조직이 그런 것처럼, 자신의 측근인사를 보호할 목적으로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음이 드러났다. 윤 총장은 청문회 내내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의 형인 전 용산세무서장 윤우진 씨에게 변호사를 소개한 일이 없다고 했다가, 자기 입으로 변호사를 소개했다고 말한 본인의 육성이 담긴 녹음파일이 공개되자 '소개는 했지만 선임되지는 않았다'는 구차한 변명으로 말을 바꾸었다. 이런 것이 검찰의 중립을 해치는 일이지, 반드시 청와대의 외압을 견제하는 일만이 검찰의 중립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이쯤 되었으면 청와대의 임명 발표 전에 왜 그런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국민 앞에 해명하고 사과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윤 총장은 해명도, 사과도 없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검찰총장에 적격자라며 임명을 강행했다. 국민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공직자의 최고덕목은 정직이다. 공직자가 정작을 잃으면 그가 하는 일이나 말을 공정하다고 누가 믿겠는가. 거짓말하는 공직자가 버젓이 TV 등에 얼굴을 내밀면, 청문과정에서 거짓말을 해대던 뻔뻔한 낯이 떠올라 불신이 쌓이고, 결국 그 불신은 정부의 짐이 되어 국가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된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국민으로부터 국정수행의 지지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장관급 인사들의 일방 임명이 한몫 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검찰총장 청문회에서 드러난 국회 청문제도의 미비점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여야의 당리당략에 좌우될 문제가 아니다. 정직한 공직자를 뽑기 위한 국민적 관심차원에서 확실하게 이루어져야 할 문제이다.
    • 연지골
    • 사설
    2019-07-19
  • 우리는 아직도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다
    20세기 인류사에 새로운 메시야니즘처럼 혜성같이 나타났던 공산주의는 채 한 세기가 다하기 전에 수 많은 전쟁과 인명을 희생시키고 실패로 끝났다. 공산주의는 인류 구원의 메시야니즘이 아님이 증명된 것이다. 그리하여 공산주의의 원조들은 그 사상을 버렸으나, 그러나 아직도 한반도에는 교조적 공산주의가 살아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위협하고 있다. 거기에는 수령에 대한 절대적 충성만이 있을 뿐, 종교의 자유도, 개인의 자유도, 언론의 자유도 없다. 우리는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당의 남침으로 발발한 민족전쟁이 끝나지 않은 채, 아직도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고, 북한 공산집단은 호시탐탐 남한의 적화(赤化)만을 노리고 있다. 그로인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소모전이 심각하다. 특히 근래 문재인의 좌파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평화’을 앞세우지만, 많은 국민은 ‘이러다 우리사회가 공산화 되는 것 이닌가’하는 우려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이유는 아직도 우리는 공산주의자들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독한 수령우상주의로 유사종교화 한 공산주의와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공산주의의 수령론은 그리스도교의 기독론을 차용한 것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것이 백두혈통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3대 세습에 이르렀다. 한때 김일성 일가가 추종하던 그리스도교는 억압하여 박멸시키고, 그 수령론이 남긴 소위 ‘주체사상’으로 인민을 교육하고 통치하는 사이비 공산주의 사회가 북한인 것이다. 거기에서 주체는 곧 김일성이고, 더 나아가 공산당이다. 이것은 전체주의 사회이다.그런데 그런 부자유한 사회를 동경해서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사회 구석구석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민족분열은 악(惡)이고, 민족통일만이 선(善)이라는 나이브한 진보주의자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많다. 민족통일이 선(善)임에는 분명하나, 공산주의로의 통일은 악(惡)임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북한 공산주의는 종교의 자유를 부정해 교회를 적대시 한다. 지금도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는 많은 기독교인이 구속돼 박해를 받고 있다.
    • 연지골
    • 사설
    2019-07-19
  • 복음과 기독교
    우리가 믿는 공동체를 ‘그리스도교’라고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교를 한자 문화권에서 번안한 말이 ‘지뚜교’(基督敎)이다. ‘지뚜’는 그리스도를 중국어로 번안한 ‘지리스뚜’(基利斯督, 기리사독)에서 온 것이다. 이것을 첫글자와 끝글자를 따서 한국어로 표현한 말이 ‘기독교’(基督敎)이다. 그래서 세계에서 ‘기독교’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와 ‘복음’이 같은 뜻으로 쓰인다. 이를 엄격히 구분한다면 기독교는 종교이고, 복음은 그 종교가 안고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계란의 껍질과 그 안에 담겨 있는 노란자위, 흰자위, 씨눈, 알끈과 같은 관계이다. 계란은 껍질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내용물에 생명이 있다. 껍질은 그 안에 있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생명은 복음에 있지만, 이 복음을 보호하는 것은 기독교이다. 그러나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그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일으켰다. 대표적인 예로는 복음과 성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킨 십자군 전쟁, 복음을 보호한다는 명분하에 설치된 이단재판소와 교황권 등이 그런 것이다. 그로인해 복음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기독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신생(新生)의 체험을 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교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도 신생의 체험없이 복음은 믿지 않고 기독교라는 종교만을 따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은 그의 삶과 행위에서 어느 정도 드러난다. 이것을 사람이 확실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성령님은 다 아신다.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문제임으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의지하는’ 세가지 방법으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복음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다분히 사변적이고 철학적인 영역에 머물 수 있다. 말씀에 대한 순종, 하나님의 사랑의 실천, 이웃에 대한 섬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포용,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 대한 용서, 사회적 구조악에 대항하는 정의로운 항거, 이런 것들을 실천하는 사람이 곧 복음을 믿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 연지골
    • 사설
    2019-07-05
  • 북한 너무 뻔뻔스럽지 않나?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김일성 공산집단은 아무런 선전포고 없이 새벽 4시 미명에 기습 남침했다. 자유대한민국은 국토의 80%가 점령되고, 국군 137,899명이 전사하고 450,742명이 부상했으며, 유엔군 40,670명이 전사하고 104,280명이 부상했다. 또 민간인 373,599명이 학살당하거나 사망하고, 229,625명이 부상했다. 그리고 320만의 피난민과 30만의 전쟁미망인, 10여만명의 고아를 양산했다. 또 1천만의 이산가족은 아직도 서로 만나지도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전쟁의 책임을 엉뚱하게도 이승만 정부의 북침을 주장하고, 이에 동조하는 한국 내의 좌빨 지식인들은 “사실상 6월 25일 새벽에 누가 먼저총을 쏘았는지를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주장하거나, 심지어 논리적으로 어색하다고 여겨 ‘남침 유도설’까지 퍼뜨려 왔다. 그러다가 소련이 무너지고 러시아에서 기밀문서가 해제되어 6.25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자 더 이상 이승만 정부의 전쟁책임론을 주장하는 자는 사라졌다. 그러면 이제 북한은 최소한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아넣은 6.25에 대한 사과를 민족 앞에 진솔하게 해야 옳다. 그런데도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수 차례에 걸쳐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도 6.25에 대한 사과 한 마디 없다. 그러면서도 주둥아리로는 말끝마다 ‘우리민족끼리’를 내뱉는다. 이 얼마나 역겨운 모순이란 말인가.6.25의 민족적 비극은 왜 일어났나? 두말할 필요없이 해방정국의 좌·우익의 첨예한 갈등과 북한 공산집단의 적화야욕에 기인한 것이다. 역사적 진실은 시대가 지났다고 달라질 수 없다. 아무리 북한을 두둔하는 좌빨 지식인들이 그것을 왜곡하고 감추려 해도 이미 밝혀진 진실을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평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진실을 가린채 손을 맞잡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진실은 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날조된 역사는 오히려 후손들을 나약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므로 가해자는 반드시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는 큰 아량으로 용서하며 서로 화합하는 곳에 평화가 있는 것이다. 잘못을 가리고 덮고 가려고 하다간 또다시 그 참혹한 역사는 되풀이 된다.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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