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성령운동에 대한 연구를 위해 독자들이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글에서 사용되는 전문 용어에 대한 개념을 파악하는 일이다. 적어도 독자들은 다음 몇 가지 용어들이 지닌 뜻을 잘 이해하기 바란다.
(1) 성령세례: 성령세례의 개념은 크게 두 노선으로 구분되어 설명된다. 그 하나는 거듭난 자에게는 누구나 성령이 내재(內在)해 계시며, 성령이 신자 안에 계시다고 하는 것은 이미 성령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중생은 성령세례의 결과이며, 중생한 자는 다시 성령세례를 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중생한 자는 오직 성령충만을 반복적으로 받을 뿐이라는 노선이다. 또 하나는 ‘세례‘라는 말 자체가 물에 흠뻑 빠지거나 어떤 것에 몰입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성령에 의해 완전히 사로잡히는 체험에 강조를 둔 것이다. 중생할 때 성령세례를 받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중생 이후 한동안 시간이 경과한 후에 성령에 의해 세례되어지는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2) 성결과 성령세례: 웨슬리안 성결운동 그룹에서는 전통적으로 성결과 성령세례가 동일시되어왔다. 즉 성결의 체험은 성령세례의 결과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개혁파 계통에서는 일반적으로 성결을 성령세례와 동일시하지는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이해와는 구별된다.
(3)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과 정통 개혁주의 성령론: 19세기 후반 미국의 개혁파 성령운동 노선에서는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죄성에 대한 제거설을 부인하고 일반적으로 죄의 경향성에 대한 반작용설이나 또는 억제설에 입각한 성결 관념을 따랐다. 그래서 근대 개혁파 성령운동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살아갈 때 지속적으로 죄로부터 승리할 수 있다는 차원으로 성결의 문제를 풀어나갔으며,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봉사의 능력’ 중심의 성령세례를 강조하였다.
(4) 웨슬리의 성결론과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 웨슬리의 성결론은 무엇보다도 웨슬리 본연의 신학적 전통을 따르는 노선이라는 점에서 19세기 미국 복음주의의 산물인 근대 웨슬리안 성결운동과는 그 성격의 차이를 지닌다. 예를 들어서 ‘성령세례‘라는 용어는 웨슬리의 상용어(常用語)가 아니라, 웨슬리와 프레처(John Fletcher)와의 성령세례론 논의를 거치면서 형성된 후, 마침내 19세기의 복음적 부흥운동의 경향이 성결론에 첨가된 결과로 인해 활용되었다.
(5) 전통 오순절주의: 전통 오순절주의는 1900년 초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20세기 은사적 기독교의 소위 ‘제1의 물결’에서 시작된 성령운동의 노선을 일컫는다. 전통 오순절주의에서는 회심 이후의 성령세례의 체험을 강조한다. 그리고 성령세례 받은 자는 초대교회 때 나타났던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 중에 특히 표적으로서의 방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6) 은사갱신운동: 은사갱신운동은 1960년대를 시점으로 오순절파뿐 아니라 가톨릭교회와 일부 복음주의 교파들에서도 시작되었던 ‘제2의 물결’을 가리킴이다. 은사갱신운동은 전통 오순절운동보다 훨씬 광범위한 신학적 유산을 지닌 성결파, 루터파, 개혁파는 물론이고 정교회와 가톨릭 교파와의 만남도 이루게 되었다.
(7) 제3의 물결: 이는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초교파적으로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능력 전도나 능력 대결을 강조하는 성령운동을 일컫는다. 성령세례 받은 명확한 증거로서 방언을 들지는 않는다는 점도 역시 제 3의 물결이 전통 오순절주의와는 구별되는 점이다.
(8) 은사적 기독교(Charismatic Christianity): 이 용어는 포우위(Karla Poewe)에 의해서 사용되었는데, 이는 전 기독교의 역사 가운데 성령의 역사와 영적 체험을 강조하는 노선의 흐름을 통칭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이 말 속에는 교회사에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모든 운동들이 다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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