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덕 목사
제3장 목회자의 영성생활
6. 목회자의 설교생활
목회자의 설교! 아 이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한 사명인가? 이는 양들을 먹이는 주 하나님의 사자인 목회자들께 특별히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의 책임으로서 목회자의 특권 중의 특권이다. 이 설교권은 소크라테스나, 공자나, 맹자나, 석가모니나, 세상의 어떤 선생이나, 어떤 제왕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 목회자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설교권을 받은 귀하들이여, 이 설교권을 소중히 행사하라. 왜냐면, 설교자는 주의 사신이요 대언자가 아닌가.
설교는 왜 하는가? 불신자를 주께 인도하여 구원받게 함이요, 구원받은 자들을 참 교인 만들어 교회봉사와 주 하나님 섬기고 살게 함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설교를 뭐라고 하는가? 헬라어는 '케루그마'로 전도, 선포, 통지, 교리, 교훈이라 하고, 영어로는 'sermon', 설교하는 행위는 'preaching'이다. 동양에서는 설교(說敎), 전파(傳播), 선포(宣布), 전도(傳道) 등으로 부른다. 이는 주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 계명, 성경, 곧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설교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설교할 때 뭐라고 하는가? 세상사는 다 장사 지내고, 성경대로 주 하나님 말씀, 곧 예수 복음만 설교해야 한다. 마르틴 루터가 강조한 설교를 요약해서 언급한다면, 오로지 "복음만 설교하라" 이다. 여러분, 복음다운 복음의 설교, 능력있는 그 설교, 깊고 뜨거운 감화 감동으로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설교, 죽은 심령에 생명의 생기를, 생명의 불을 붙이는, 성령이 역사하는 강한 능력의 설교는 어디에서 오는가?
미국의 E.M. 바운즈는 "강력한 산 설교는 골방 기도실에서 나온다. 골방 기도실에서 설교자 자신이 가슴을 쥐어뜯고 통곡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될 때, 성경의 말씀을 붙들고 씨름할 때, 성령의 불을 받아 뜨거워 견딜 수 없을 때, 하나님의 환상의 깊은 계시를 체험할 때, 이렇게 골방의 기도 속에 파묻힐 때"라고 했다. 이때 세상과 나는 간곳 없고 구속한 나의 사랑하는 주님만 보게 될 게다. 이 때 새로운 천지가 보이므로, 지금까지의 죽은 설교, 장례식 설교를 탄식하면서 사망의 종소리는 돌려 보낼 것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생명력 있는 산 설교가 발설되는데, 마치 오순절 사도들이 다락방 기도실에서 나온 후 불이 혀같이 갈라지는 것을 보고 성령의 능력의 불을 받아 기사와 이적을 행한 것처럼(행 1:4, 2:1-7).
또 바운즈는 "설교하는 자는 강력하게 기도하는 자라야 한다. 그 속에서 강하게 자아를 부인하고, 자기를 부숴뜨리고, 세속 술에 취한 것을 깨버리고, 들락날락한 외부 활동을 끊어버리고, 직업적인 기도, 직업적인 설교, 직업적인 목회를 청산하라. 오늘날 강단 설교는 이것이 문제이다. 설교자가 골방 기도와 멀어지기에 생명을 죽이느 설교를 하고도 그것이 설교인 줄로 안다. 생명력 없는 설교는 설교자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
여러분, 생명력 없는 죽은 것들이 강단을 점령한 이유가 무엇인가? 42년간 목회 중 평생을 설교로 사역한 마틴 로이드 존스의 강한 탄식을 들어보라. "웅변과 연설이 교회에 들어오고, 성경을 권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권위있는 설교를 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한데 문제가 있고, 설교 내용보다 형식을 더 중시했고, 웅변과 수사를 더 중시하여 설교가 오락의 한 형태로 전락했고, 설교의 진실성 보다 문학적 표현을 더 강조하며, 영성이 결여된 설교가 되어 설교가 쇠퇴하므로 영화도 도입됐고, 노래행위도, 간증거리도, 상담도, 녹음 테이프도, 예배당 건축물들도, 강단에서 설교를 밀어내고 있다. 교회 목회자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것, 교회의 권위를 가진 자들의 주된 임무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는 것(행 6;4) 그것이다. 오늘날 강단의 설교를 살려라."
존 칼빈도 "하나님 말씀만 설교하라." 마르틴 루터도 "하나님 영광만 위해서 설교하라." 리치드 백스터도 "죽으러 간 사람처럼 간곡하게 설교하라"고 했다. 필자도 권한다. 어거스틴을 꺼구러지게 한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처럼, 김익두를 구원시킨 선교사 소알론 목사처럼, 온 교회는 목회자의 살아있는 설교를 소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