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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통교리 잘 모르는 목사들 많다
    한국기독교에는 6만여개의 교회와 약 17만에 이르는 목회자가 있다. 또 60여개에 이르는 신학대학이 있고, 300여개의 군소 교단신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서 매년 6~7천여명의 목회자가 배출된다. 그런데 한국교회에는 이들과 별개로 전혀 정통적 신학훈련을 받지 않은 채 목사로 안수받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그들도 맘만 먹으면 개척교회 간판을 달고 기성교회 행세를 한다. 문제는 그들 가운데 보편적 기독교와 다른 이단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 목사는 조그만 소그룹에서 강의시간을 통해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와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디에서 얻어들은 지식인지 알 수 없지만, 성경의 예수는 다윗의 혈통(롬 1:3) 또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마 1:1), 즉 다윗의 ‘씨’로 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기독교는 성령에 의해 마리아에게 처녀 탄생했다고 허황된 것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그야말로 명백한 이단설임에도, 마치 자신이 성경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원어를 섞어가면서 설명했다. 이런 유형의 목사가 한국교회에는 더러 돌아다닌다. 그래도 한국교회는 이런 사람의 주장을 막을 길이 없다. 제 멋대로 교단을 만들어 자신도 교단소속 목사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한국교회에는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별종이 많이 나타났다. 통일교, 천부교, 장막성전, 영생교, 신천지, 하나님의교회를 비롯, 분리파가 수도없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도 매일 몇 개씩 늘어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이유는 정통교회의 분열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런데도 정통교회는 교단을 통한 교권주의만 관심을 가질 뿐, 교계의 이런 문제를 정화하려는 노력에는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미래의 한국교회가 어떻게 되겠는가. 이단연구나, 이단정죄만로는 막기가 어렵다. 따라서 교단의 통합이 중요하다. 아예 이단운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막을 수가 없다하더라도, 잘 몰라서 그런 주장을 하고 다니는 사람은 정통교회가 바로 가르치면 된다. 이왕에 한국교회에서 목회를 하려면 보편적 역사적 교회가 가르쳐온 바른 신학, 바른 신앙을 전파해야 하지 않겠는가.
    • 연지골
    • 사설
    2019-12-20
  • 한국의 사회주의화 우려를 극복하는 길
    현재 한국사회를 극단적 변화로 이끌고 있는 이기주의적 집단은 세 가지이다. 교육계는 전교조이고, 노동계는 민노총이며, 지역은 전라도이다. 전교조는 좌파적 교육이념을 선전하는 교육계의 첨병이고, 민노총은 좌파이념에 바탕한 노동운동을 이끌고 있으며, 전라도는 첨예한 좌파적 정치적 지역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그동안 총선이나 대선을 통해 드러난 결과로 볼 때, 이들을 음양으로 지지하는 세력은 전체 국민의 약 40%에 이른다. 좌파를 대변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이 41.08%이기 때문이다. 한국기독교는 대체로 이들의 좌파적 이념을 북한 공산주의 집단과 연계하여 위험하게 보고 있다. 그래서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반대한다. 북한이 한국사회를 공산화 하려는 ‘적화통일’ 정책을 내세우지 않는다면 이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북한 공산당은 남한의 적화통일 규약을 그댜로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이같은 야욕이 수정되었다면 오히려 한국교회가 나서서 이같은 사회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옳다. 그것이 우리사회를 초일류국가로 이끌고자 하는 기독교 정신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현상은 이대로 가면 나라가 온통 사회주의화 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거리로 나서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오늘날 한국사회 종교적 지역분포는 ‘동불서기’(東佛西基) 현상이다. 동쪽은 불교가, 서쪽은 기독교가 우세하다는 뜻이다. 경상도가 겨유 10% 내외의 복음화를 이루고 있는 반면, 전라도는 35% 내외의 복음화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교권(敎權)의 명령체계를 따르는 가톨릭이나 정교회가 아닌, 모두 개혁주의 신교이다. 개혁주의 교회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바탕한 교회이다. 이 교회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뒷받침해 왔다. 그런 교회가 사회주의화를 동의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전라도 지역의 교회들이 좌파적 정치이념을 따르는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이끌어 한다. 언제 어디서나 교회는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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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12-20
  • 전광훈 목사의 망발
    요즘 광화문과 청와대 앞에서 기독교 우파 집회를 이끌고 있는 전광훈 목사가 지난 10월 청와대 앞 집회에서 하나님을 향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신성모독을 저질렀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그런데도 교계에서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언론에 고발하거나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최근 JTBC가 그 사실을 폭로해 교계에 알려져 우리를 경악케 한다. 한기총 대표회장까지 맡고 있는 전 목사가 어떤 의도에서 그 같은 망발을 늘어놓았는지 알 수 없으나, 목사 이전에 기독교인으로서도 절대로 해서는 안될 망언을 내뱉은 것이다. 전 목사는 이날 세상이 “전광훈 목사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어, 나 하나님 보좌를 꽉 잡고 살아. 꽉 잡고.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하나님 까불면 내게 죽어.”라고 했다. 아니, 대관절 이게 무슨 망발인가.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까불면 내게 죽어”라니, 이게 과연 목사가 할 수 있는 말인가? 전 목사가 평소에도 그 말이 좀 거칠다는 평을 듣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성모독이 분명하다. 자신에게 국민적 인기가 좀 쏠린다 싶으니까 정신이 홱가닥 돌았나, 아니면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교주가 되어 하나님과 경쟁하려 하는 것인가? 전언에 의하면 자신이 하나님과 가까이 있다는 의미에서 ‘어리광(어린양)’을 지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어리광(어린양)이라도 용납될 수 없는 말이고, 농담이라도 용납될 수 없는 말이다. 어떻게 기독교인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목사라는 사람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한기총 대표회장이란 사람이 ‘하나님, 하나님 까불면 내게 죽어’라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이후 그 같은 엄청난 신성모독에 대해 전 목사가 회개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따라서 전 목사는 이후에도 그런 류의 신성모독적 망발을 쏟아낼 가능성이 있다. 재발방지를 위한 교계적 대책이 필요하다.그러므로 이 문제는 한국교회가 미친자(者) 헛소리 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 책임있는 교계 단체나 기관에서 전 목사에게 회개와 재발방지를 경고해야 한다. 아무리 교계가 X판이 되어도 이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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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12-13
  • 예장통합 장신대, 동성애 강연 책임 물어야
    예장통합측의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최근 동성애 옹호 강연이 총회 결의를 역행하고 일부 재학생들에게 ‘비밀 강연’이 이루어졌음이 밝혀져 또 한번 교계를 놀라게 만들고 있다. 강연자는 허호익 대전신학대학교 은퇴교수로 통합측 소속 목사이다. 허 교수는 지난 봄에 ‘동성애는 죄인가’라는 동성애 옹호 책자도 발간해 한국 교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문제는 통합측 총회가 제102회부터 104회까지 3회에 걸쳐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결의를 했고, 103회 총회는 동성애 신학으로 불리는 '퀴어신학'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장신대가 2018년 5월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사건’에 이어서 이번에 또다시 동성애 강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103회 총회는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동성애자와 동성애를 지지·옹호하는 자는 교회의 직원 및 신학대학 교직원이 될 수 없다”고 결의하고 있다. 그리고 통합측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의 학칙에도 “성경에 위배되는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는 입학을 불허한다”는 내용을 반영토록 했다. 그런데 총회의 이 결의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교단 목회자가 될 신학생들을 상대로 동성애 강연을 한 것이다. 성경은 동성애를 타락한 성문화로서 심각한 사회악임을 규정한다.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갈지니라”(레 20:13). 동성애는 인류의 성적 타락으로 생겨난 죄악이다. 그래서 사람들 속에 잠재해 있다가 사회질서가 문란해지고, 사회악이 만연하게 되면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나게 된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어도 결코 바뀔 수 없는 것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다. 성경에서 명백히 죄악이라고 선언한 동성애를 언필칭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수와 소명을 받았다는 신학생들이 그것을 옹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도전이다. 총회와 신학교 당국은 반드시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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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12-06
  • 교계 연합단체들 너무 늙어가고 있다
    우리사회 고령화 현상이 교계에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교회 연합단체 자체가 너무 많이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각종 연합단체 행사에 나가보면 젊은 목회자나 평신도 대표들은 찾아보기 어렵고, 거의 모두가 60대 이상의 노년층이거나 아예 은퇴한 인사들로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경우도 많다. 더구나 여성들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다. 이대로 가면 수년 내 교계의 많은 연합단체들은 유명무실한 허명뿐인 기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런 현상은 초교파 평신도단체들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개교회에 청장년층이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직 장로나 안수집사들 중에 4,50대가 많이 있다. 선배들이 이들을 발굴하여 연합운동에 천거하고 참여시켜야 한다. 그들이 경험이 적고 좀 서툴더라도 왠만하면 그들에게 각부서나 임원자리를 주고 은퇴자들은 뒤에서 자문역을 감당함이 옳은 일이다. 그래야 다음세대가 이어져 지도력의 공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음세대 문제는 개교회의 청소년 문제만이 결코 아니다. 연합단체들도 다음세데를 걱정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지금 교계에서 내노라하는 목회자나 평신도 지도자들은 그들이 교계에 얼굴을 내민 때가 대체로 4, 50대였다. 그들의 활동기간이 바로 한국교회 연합운동이 왕성하던 시기이다. 그런데 그들이 이미 70이 훌쩍 넘어 대부분 교회를 은퇴하고 이제는 교계의 연합단체 행사에 간혹 얼굴을 내미는 것으로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 그런 단체가 창의적인 활동이 어럽다는 것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이런 현상은 교단이 장로나 안수집사를 40대로 연령을 올리면서 개교회가 늙은데도 원인이 있다. 이젠 개교회 장로는 40대도 찾아보기 어렵다. 보통 5, 60대에 이르러 장로가 되는데 그러면 시무장로를 20년도 채우지 못하고 은퇴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교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간은 너무 짧은 것이다.오늘날 세계는 3,40대가 총리도 되고 장관도 되는 시대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오히려 젊은 세대를 교회에서 외면하는 꼴이 되어 교계의 연합단체들도 제대로 된 리더를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교계의 연합단체를 운영하는 선배들이 과감히 문을 열고 각 교단에서 후배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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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12-06
  • 종교와 기복
    기복(祈福)은 문자 그대로 복을 비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종교가 있는 곳에는 기복행위가 있다. ‘비손’이나 ‘굿’이나 ‘예불’이나 ‘제사’ 등 모든 종교행위에 기복이 있다. 그것이 소시민들의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복’과 ‘종교’는 분명하게 서로 구분되는 현상이다. 더우기 ‘기복’과 ‘복음’은 전혀 다르다. 마태복음 5장에서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심령이 부한 자, 애통함이 없는 자, 남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 세상에서 돈과 명예가 있어 내노라 하고 사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 않는다. 기독교보다 앞서 한국에 전래된 대표적 고전종교들 마저 모두 기복주의에 의해 그 생명력을 잃고 허명(虛名)만 남아 미신화 되어 가고 있다. 민족 구원의 방주를 자처하는 기독교 조차 그래서는 안된다. 기독교의 복음은 ‘꿩 잡는 것이 매’가 되어서는 안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하는 것은 기독교의 복음이 아니다. 썩어져 가는 구습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으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성도(聖徒)라고 한다. 성도는 육신의 욕망과 소욕대로 살고자 하는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복음으로 거듭나 성도가 되었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 믿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빽을 빌려 잘 먹고 잘 살려는 세속적 욕심이 생긴다면 이런 신앙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한국기독교는 결국 민족복음화란 미명하에 새로운 기복집단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심히 우려되는 일이다. 세속적 현세적 욕망을 위한 기복주의는 끝없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기복주의는 사람을 계속 좇기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한국기독교가 분열과 경쟁의 시대를 거치면서 교회의 목회자들도 성공주의에 빠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인들의 욕망에 영합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그들의 현세적 욕망의 충족을 위한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이름아래 생각없이 전하고 있지는 않는지… 기독교의 복음은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만사형통하고, 잘 먹고 잘 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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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11-25
  • 도덕심
    인간은 생물계의 분류상 동물계에 속한다. 그런데 인간이 같은 동물계에 속하는 여타 짐승과 다른 점은 ‘도덕심’이라는 것을 가졌다는 점이다. 인류사회의 규범은 이 도덕심에서 나온다. 도덕심은 양심에 바탕하고,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을 갖는다. 그래서 도덕심이 부족한 사람을 짐승같은 놈이라고 한다. 사자성어의 인면수심(人面獸心)도 그런 인간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그러면 양심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오는가? 장로교 정치 원리 제1조는 양심의 자유를 제1원리로 삼는다. “양심을 주재하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양심의 자유를 주셨다”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신앙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그 양심대로 할 권리가 있으니 아무도 남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양심은 곧 천부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신앙은 이 양심의 자유에 바탕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교인들로 하여금 양심에 바탕한 도덕심을 일깨우는 일에 힘써야 한다.최근 우리사회의 분열은 양심없는 사람들에 의해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소위 ‘조국사태’라고 불려온 보수 우파와 진보 좌파로 나누이는 광화문 집회와 서초동 집회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검찰에 의해 소상히 드러난 조씨 집안의 불법성을 권력주변의 어용지식인들과 여당인사들이 양심을 외면하고 일방적 옹호가 만들어 낸 분열 현상이 지금 우리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회 곳곳에 있다. 심지어 교회 안에도 종종 있다. 한 줌도 안되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양심을 외면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증언을 하여 이웃을 해친다. 양심을 거스리니 자연히 도덕심이 타락하여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양심은 사람에 따라 수정처럼 맑은 양심이 있고, 발바닥처럼 무딘 양심도 있다. 수정처럼 맑은 양심은 세미한 먼지에도 반응하지만, 발바닥처럼 무딘 양심은 왠만한 모래 한 알쯤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우리사회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 자주 설교해야 한다. 사회적 도덕성이 곧 현대사회의 경쟁력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는 경제도, 정치도, 종교도 제 몫을 감당하기 어렵다.
    • 연지골
    • 사설
    2019-11-25
  • 종교자유가 없는 사회는 인권도 없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인권의 보장도 없다. 북한은 매년 종교 박해 1위 국가에 오르내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인권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인권운동단체나 인권운동가들 중에 유독 북한의 종교탄압에 대해서는 말하는 것을 듣기 어렵다. 왜 그럴까. 그들의 인권운동이 순수한 인권개선에 있는 것이라기 보다 어떤 목적을 위한 정치적 운동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배경이다. 얼마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종교박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백악관에서 만나 북한의 종교탄압을 듣고 심각히 우려했다. 북한은 법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지만, 실상은 종교 박해가 가장 심각한 나라이다. 미 국무부는 매년 종교적 자유 침해가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국가를 종교 박해 ‘특별우려국’으로 지정하는데, 북한은 매년 빠짐없이 그 명단에 오르고 있다. 특히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종교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는 나라들, 특히 기독교 박해 국가 10위에는 북한, 이란, 사우디 아라비아,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카타르, 파키스탄, 에르트리아, 수단이 들어 있지만, 철저한 공산 독재국가인 북한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슬람 국가들이다. 당연히 이들 나라에는 인권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슬람 국가들은 샤리아법에 따라 끔직한 인권유린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마치 중세에 기독교 국가에서 벌어졌던 이단심문 또는 마녀재판과 유사하다. 두 말 할 필요없이 거기에도 심각한 인권 유린이 있었다. 일단 한번 찍히면 인권은 고사하고 절대로 거기서 빠져 나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사회에서 인권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가장 최악의 인권유린이 이루어지고 있는 북한을 비롯한 각국의 종교 박해에 대해서는 일절 침묵한다는 사실이다. 우리사회의 사소한 인권 문제라도 당연히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해야 하지만, 종교 박해라는 인권유린의 거악에 대해서는 더욱 심각히 대처를 해야 옳다. 그러므로 한 사회의 인권의 신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종교의 자유가 중요하다. 이처럼 귀하고 중한 종교의 자유가 어떤 세력으로부터도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또 끊임없이 종교자유를 요구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9-11-18
  • 민족교회로서의 한국기독교
    격변하는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도태(淘汰)되는 것은 기술이나 문명만이 아니다. 정신영역을 지배하는 종교 사상도 마찬가지이다. 한국교회는 영적 전쟁에서 지난 100여년이 넘는 동안 잘 싸워왔으나 근래에 이르러 이 전쟁에서 번번히 실패하고 있다. 이 시간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변화와 개혁없이는 어떤 종교든 끝내는 쇠퇴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요즘 세속언론이나 안티기독교가 한국교회를 침소봉대 해 헐뜯는 것은 교회가 우리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스스로 먼저 우리사회가 믿고 지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세속주의를 몰아내고, 기독교의 보편적 가치인 사랑, 정의, 평등, 자유 등의 개념에 신앙생활의 목표를 고정시켜 가야 한다. 소명받은 목회자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종’(從)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종은 세상의 종도 되고 이웃의 종도 된다. 이를 베드로전서에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우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2:9)고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기독교가 민족공동체의 구원을 이루는 ‘민족교회’로서 복음을 증언하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민족의 당면과제를 이루어가는 일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옳다. 첫째는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한 헌신이다. 나누어진 민족의 통일은 우리시대 교회가 짊어진 사명이다. 기도와 설교와 봉사가 민족통일에 맞추어져야 한다. 둘째는 기독교의 문화적 토착화이다. 무속화 한 민족의 전통문화를 기독교적 문화로 재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한국기독교가 500년 혹은 1000년의 민족공동체의 구원의 방주가 될 수 있다. 지금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미래 한국교회의 장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이다. 교회가 세속주의에 빠져 한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결코 차질을 빚게 해서는 안된다.
    • 연지골
    • 사설
    2019-11-18
  • 여호와의증인
    요즘 서울을 비롯한 주요도시의 길거리에 보면 “하느님의 이름이 ‘예수’입니까?” “아니다 ‘여호와’입니다”라는 팻말을 세우고 전도하는 여호와의증인 파이오니아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여호와의증인이 기독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도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계시를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보편적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신관(神觀)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증인은 기독교가 아니다.기독교는 초기 박해 시대를 지난 후, 세계교회가 한 자리에 모여 신관을 확정했다. 그것이 ‘삼위일체 교리’라고 불리우는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에서 여호와라고 불리운 ‘성부 하나님’과 성육신 하셔서 예수라고 불리운 ‘성자 하나님’과 보혜사라고 불리운 ‘성령 하나님’을 한 분 하나님으로 믿는 신앙이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관을 가졌으면 기독교이고, 삼위일체 신관을 부정하면 기독교가 아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신관과 하나님의 계시를 가졌을지라도 유대교는 기독교가 아니다. 그리고 여호와의증인은 성경을 말하고, 하나님을 말할지라도 ‘여호와’ 유일 단일신관을 가졌으므로 기독교가 아니다.그런데 한국 기독교인들 가운데 마치 여호와의증인이 성경을 보편적 교회와 약간 다르게 가르치는 ‘기독교의 일파’로 알고 동조하는 경우가 있다. 인천에 살던 장로교의 한 장로는 여호와의증인에 들어가 자녀들에게 여호와의증인 신앙을 전수하여 자녀들이 군에서 집총을 거부하여 감방살이를 했다. 의사로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던 그는 장로교의 장로일 때, 노회의 성경학교에서 성경을 배우는 등 기독교에 대해 좀 더 알고자 애쓴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여호외의증인을 만난 후에 그들의 성경(신천지역)을 배우고 장로교를 떠났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어떠한 종교를 믿든 그것은 자유이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표출될 때는 그 사회적 규범과 충돌할 수 있다. 여호와의증인은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여호와의증인의 세계통치체의 결정과 지시에 따라 병역과 집총을 거부할 뿐 아니라 병원에서 수혈을 거부하여 우리사회의 사회적 규범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는 잘못된 신앙이다.
    • 연지골
    • 사설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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